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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단 하나의 시 - 지치고 힘든 당신에게
조서희 지음 / 아마존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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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깊은 울림이 있는 시를 좋아합니다. 소외된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주고, 외로운 이들에게 눈물과 그리움의 말을 건네주는 시를 좋아합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5쪽) -


이 책을 엮고 지은 조서희 님은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고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다채로운 시들을 소개합니다. 단순히 시만을 소개한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시에 해설을 쓰고 엮은 이의 감상을 덧붙여 본래의 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마흔다섯 편 밖에 되지 않는 시가 실려있음에도 이 책이 독자에게 묵직한 감동을 전해주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단 하나의 시>는 총 4장으로 254페이지로 되어 있는데, 각 장의 제목 하나하나가 울림이 있어 꼭 소개하고 싶습니다. 1장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다, 2장 우리는 그저 모두 상처받은 사람일 뿐, 3장 슬픔을 세탁하는 방법, 4장 이번 생은 처음이라. 독자가 지금 처한 상황에 따라 손길 가는 페이지를 열어볼 수 있어 고마운 구성입니다.


문정희 님의 '이별 이후'는 가슴 저린 아픔을 노래합니다. "너 떠나간 지 / 세상의 달력으론 열흘 되었고 / 내 피의 달력으론 십 년 되었다 / 나 슬픈 것은 / 네가 없는데도 / 밤 오면 잠들어야 하고 / 끼니 오면 / 입안 가득 밥을 떠넣는 일이다 (24쪽)" 니 생각 날까봐 니 생각에 체할까봐 밥도 잘먹지 못한다는 포맨의 노래 '못해'가 떠오릅니다. '내 피의 달력'이라는 시어는 가슴 사무치는 절창입니다.


tvN의 <알쓸신잡> 첫 방송에서 백석이 통영의 충렬사 계단에서 썼다는 시가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것은 '통영', 방송에서 나온 것은 '통영 2'입니다. 두 시는 비록 나뉘어 있지만, 실은 하나의 연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엮은이의 해설과 그에 붙은 '자다가도 일어나 달려가고픈 곳'이라는 제목은 통영 2의 시어를 빌린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아우야, 니가 만약 효자가 될라 카머 / 너거무이 볼 때마다 다짜고자 안아뿌라 / 그라고 젖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 된다 (98쪽)" 는 이종문 님의 '효자가 될라 카머' 는 늙으신 어머니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젠 기력이 많이 빠지셔서 당신 몸 하나 가누기 어려우신데도, 늘 자식 걱정이 먼저인 어머니.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잔소리만 늘어놓는 불효한 자식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겠습니다.


'농업 박물관 속 허수아비'를 보며 "사랑은 이렇게 두 팔을 활짝 벌리고 / 오지 않을 너를 맞이하는 것" 이라고 말하는 이창훈 님은 어떤 사랑을 하셨기에 이리도 절절한 것인지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허공에 들린 발 / 바닥에 박힌 못은 / 녹슬어 가는 안간힘으로 / 땅에 뿌리박은지 오래 / 올 수도 갈 수도 없는 / 기다림은 얼마나 참혹한가 (116쪽)" 이 시의 4연은 허수아비 바로 그 자체입니다.


킴벌리 커버거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과 나희덕의 '다시, 십년 후의 나에게' 는 과거와 오늘과 미래를 마주하는 나를 앞뒤로 되돌아보게 합니다. "시 한편에 삼만 원이면 /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 쌀이 두말인데 생각하면 /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194쪽)" 라는 함민복 님의 '긍정적인 밥'은 나의 내면에 너그러움과 세상을 향한 시선에 희망을 드리우게 합니다.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단 하나의 시>를 엮은 조서희 님도 <소금꽃 피다> 등의 시집을 낸 시인입니다. 시인은 "지치고 힘든 당신에게... 살다 보면 마음이 힘들 때가 있지요. 그럴 때가 시를 읽을 때입니다." 라며 이 책을 우리에게 건넵니다. 자연스레 눈길이 가는 시를 조용히 읊조려 봅니다. 사랑하는 이의 눈물을 닦아주듯, 한 편의 시가 우리의 가슴을 다사롭게 씻어줍니다~



카페 '책과 콩나무'의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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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 한나 아렌트의 삶과 사상을 그래픽노블로 만나다
켄 크림슈타인 지음, 최지원 옮김, 김선욱 감수 / 더숲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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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창한 한나 아렌트. 그녀에 대해서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보고서에서 앞서의 개념을 이끌어냈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20세기 최고의 정치사상가 중 하나로 꼽힌다는 한나 아렌트, 그녀의 삶과 사상이 궁금했다. 마침 그래픽노블(graphic novel)*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씌어져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을 보게 되었다.


* 그래픽노블 : 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을 취하는 작품이다. 일반 만화보다 철학적이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며 스토리에 완결성을 가진 단행본 형식으로 발간되는 것이 특징이다.



한나 아렌트의 예민한 철학적 감수성은 어려서부터 차별을 당했던 경험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싶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친구와 주변으로부터 받아야했던 손가락질, 부친이 매독에 걸렸다는 이유로 잠재적 환자 취급을 당해 정기적으로 주사를 맞았던 일 등등.


교사들을 규탄하는 파업을 계획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한 아렌트는 마르부르크 대학에 진학해 그녀의 삶과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친 하이데거를 만나게 된다. 하이데거는 아렌트의 스승이자 연인이었다. 둘의 관계가 다소 소원해졌을 때에도 아렌트는 유부남이었던 하이데거와 사랑을 나누곤 했다.


언론인이자 철학자였던 귄터 슈테른과 결혼한 아렌트는 로마니셰스 카페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사상가와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안목을 넓혀나갔다. 반면 독일은 점점 더 나찌즘의 광풍으로 치달아가고 있었다.



첫번째 탈출

독일 언론에 실린 반유대적 기사와 선전물을 모으는 자료수집 활동이 공포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구치소에 수감되었던 아렌트는 체코의 프라하로 탈출한다. 이어 프랑스의 파리로 간 그녀는 첫번째 남편과 이혼 후 하인리히 블뤼허와 결혼했다. 파리에서 철학적 탐구를 계속하면서도 그녀는 유대인 아이들을 유럽 밖으로 피신시키는 단체의 활동가로도 일했다.


두번째 탈출

독일과 대립이 격화되던 1940년 프랑스는 독일 여자들을 벨디브 경기장으로 소집시켰고, 다시 귀르의 포로수용소로 옮겼다. 나치의 돌격대가 파리를 통과하며 만들어진 귀르의 혼란을 틈타 아렌트는 수용소를 탈출했다. 모뷔송에서 남편 블뤼허를 우연히 만난 아렌트는 마르세유 교외의 은신처로 합류했다가, 경찰의 추격을 피해 리스본으로 이동, 배를 타고 뉴욕으로 떠난다.


세번째 탈출

1951년 <전체주의의 기원>이라는 책으로 큰 주목을 받은 그녀는 미국 시민권까지 얻게 되었고, 프린스턴 대학 최초의 여성 정교수가 되었다. 1958년에는 생애 최고의 야심작 <인간의 조건>을 발표했다. 탄생성과 복수성의 개념을 통해 새로운 공공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그녀는 사상적으로도 하이데거와 완전히 결별한다. 자신 없지만 아마도 이것이 세번째 탈출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홀로코스트라는 전대미문의 악을 저질렀던 사람들이 프랑켄슈타인 같은 괴물이 아니라, 우리네 같은 평범하고 선량한 시민들이라는 것.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주어진 명령과 지시에 따르기만 한다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놀랍고도 끔찍한 통찰!


사실 예루살렘에만 아이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일제 강점기 식민 지배의 첨단에서 그들의 하수인이 되었던 친일민족반역자는 누구였던가. 제주 4.3 사건 당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던 집단 학살, 100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6.25 전쟁의 민간인 학살 문제, 5.18 민주화 운동 때 광주 시민을 향해 총격을 가한 계엄군 또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문제일 터이다.


오늘 2019년 4월 16일. 세월호 5주년을 맞아 어느 정당의 차모, 정모 씨 등이 징하게 해 처먹는다느니, 그만 좀 우려먹어라 하는 막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걸 보면서 과연 저들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기는 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알쓸신잡3 프라이부르크 편에서 나왔던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무능력, 그것이 바로 악(惡)이다" 라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기준으로 한다면, 저들의 이 무지막지한 발언을 무어라 평할 수 있을까.


어떻게 감히 피해자들을 탓할 수 있죠? 평범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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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 파멸해갈 때 유대 지도자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않은 것이

이 어두운 이야기에서도 가장 어두운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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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성은 '의미 없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사유하지 않는 걸 뜻해요.


                                      -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p. 228


똑바로 정신차리고 있지 않으면 악하지 않은 사람도 악에 가담할 수 있다는 것. 악은 결코 나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늘 깨어있는 정신으로 되새겨야 한다. 그러기에 나도 모르게 악에 가담하지 않기 위해서는 생각해야 된다는 것. 이 책의 말미에 있는 "살아있는 것과 사유하는 것은 결국 같은 거야" 라는 아렌트의 말도 결국 비슷한 의미일 것이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이라고 했던 고인의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 때로 어떤 일의 시행에 반대할 때 흔히 부딪치는 지적은 '대안 없는 비판'이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하지 않는 것 자체가 이미 대안이다~! 하면 안되는 걸 하지 않을 용기. 오직 사유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리!



카페 '책과 콩나무'의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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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시 - 외롭고 힘들고 배고픈 당신에게
정진아 엮음, 임상희 그림 / 나무생각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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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FM <시 콘서트>의 경력 30년차 방송작가이자 동시와 동화를 쓰는 등단작가 정진아 님이, 방송에서 다룬 작품들을 주로 하여 시집을 묶어내셨습니다. 음식에 관한 시들을 모아놓은 것인데, 단순한 음식의 맛이 아닌 인생의 달고 쓴 참맛을 느끼게 해주는 멋진 시들입니다.


읽다가 무릎을 치며 웃은 작품부터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꼭 함께 읽고 공감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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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학년 (by 박성우 - <가뜬한 잠>, 창비)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엌 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

동네 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거도 몽땅 털어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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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말로 빵 터지는 작품인데, 써놓고 보니 조금은 연령대가 있어야 공감이 되지 않을까 싶긴 하네요^^


배한봉의 '통영의 봄은 맛있다'를 읽고 있노라면 지금 내가 뜨거운 김이 솟는 맛깔난 음식을 먹고 있는 듯한 기분에 빠져듭니다. tvN의 알쓸신잡 첫편의 방송도 떠오르는데, 찾아보니 황교익 씨가 데리고 갔던 도다리쑥국의 집이 이 시에 나오는 분소식당이었네요. 어쩌면 황교익 씨는 이 시를 알고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박혜선의 '숟가락은 숟가락이지' 작품을 읽노라면 삶에 대한 시인의 내공이 어떨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할머니의 입을 빌려 털어놓는 그 한마디. "그냥 밥 잘 뜨고 국 잘 뜨면 그만이지" (p. 48)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요즘 세태에 시인의 입담이 우리를 무장해제시켜 버립니다.


안현미의 '비굴 레시피'를 보면 시인의 눈은 평범한 우리네와는 역시 다름을 느낍니다. '비굴'을 영양 가득한 굴의 한 종류로 읽은 시인은 "비굴은 나를 시 쓰게 하고 / 사랑하게 하고 체하게 하고 / 이별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고 / 당신을 향한 뼈 없는 마음을 간직하게 하고 / 그 마음이 뼈 없는 몸이 되어 비굴이 된 것이니" (p. 72) 하며 사랑을 노래합니다.


이어진 해설에서 정진아 님은 시인은 그 비굴로 시를 썼지만,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그 비굴로 자식들을 길렀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그 까다로운 비위를 맞춰가며 키웠고, 벌어먹일 가족을 위해 삶의 여러 장면에서 비굴했을 우리 부모님들, 또 현실의 질곡에서 자주 비굴을 삼켜야만 하는 우리들...


엄재국의 '꽃밥'을 읽고 있으면 내가 지금 먹는 이 밥이 그냥 밥이 아니구나~ 새삼 느낍니다. 시인이 생각했던 아궁이에 불을 지펴 나무를 태워 짓는 가마솥 솥밥은 아닐지언정, 내 생명의 가지를 튼튼히 하고 내 삶의 꽃을 피워줄 밥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함민복의 '눈물은 왜 짠가'를 읽으면 설렁탕에 말은 밥과 깍두기를 씹으며 눈물을 찔끔 흘리고만 아들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가없는 사랑을 새삼 느낍니다. 최치언의 '설탕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는 늦은 오후 당분이 부족하다며 믹스커피의 달콤함을 찾는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 어차피 삶은 너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p.150) 천양희의 '밥'은 냉혹한 세상을 밥심으로 정면돌파할 힘과 격려를 얻습니다. 이 시집을 엮은 정진아 님의 시도 있는데 '라면의 힘' 입니다. 등산하고 정상 언저리에서 컵라면 먹었던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동시 작가여서인지 아이의 시선으로 쓰셨습니다.


책을 받은 당일에 리뷰를 작성하는건 처음인것 같습니다. 얼마전 읽었던 다른 시집의 리뷰를 쓸때 처음 읽었을 때의 그 느낌이 잘 떠오르지 않아 고생했던 기억이 나서였습니다. 지금 느끼는 이 감동을 빨리 옮겨쓰지 않으면 잊어버릴까봐... 노트에 메모를 하다가 컴퓨터 앞으로 옮겨 앉았습니다.



<맛있는 시>는 단순히 시만을 엮어놓은 시 모음집이 아니어서 더욱 좋습니다. 한편의 시 옆에는 마치 방송의 나래이션을 듣는 듯한 따뜻한 해설이 함께 합니다. 또 오랫동안 '사라져가는 달동네 풍경' 이라는 주제에 천착한 임상희 님의 그림이 그 곁에 조화롭게 자리합니다. 만약 임상희 님의 그림이 없었다면 '맛있는' 느낌이 절반은 줄어들었을 거에요^^


좋은 시와, 따뜻한 해설과, 분위기 있는 그림이 함께 어우러져 멋진 마리아주를 보여주는 <맛있는 시>. 책 표지의 정감있는 카피로 대신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외롭고 힘들고 배고픈 당신에게...

따뜻할 때 드세요. 당신을 위한 맛있는 시~



카페 '책과 콩나무'의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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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시 한 잔 - 오늘도 시를 읽고, 쓰고, 가슴에 새기다 감성필사
윤동주 외 55인의 시인 지음, 배정애 캘리그라피 / 북로그컴퍼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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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시집이다.

시를 멀리했던 시간이 이렇게 길었나 생각하곤 새삼 놀란다.

이 시집의 제목은 너무 멋지다.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정말 상주고 싶다~^^



<매일, 시 한 잔>은 윤동주 외 55인의 시 중에서 가려뽑은 시 모음집이다.

김억, 김소월, 백석에서부터 정호승, 도종환, 안도현까지 근현대의 우리 시인들과,

릴케, 예이츠, 워즈워스, 랭보 등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외국 시인의 작품도 함께 실려 있다.

배정애의 캘리그라피는 시의 감성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고재종의 '첫사랑'은 그 시어와 배경 때문에 봄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와 벚꽃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연일 계속되는 미세먼지 속에 바라마지 않던 푸른 하늘로 인해 펴보게 된 김수영의 '푸른 하늘을'은 제주 4.3의 희생자들과 고독한 독립혁명의 길을 걷던 임시정부를 연상케 했다.



젊은날 읽었던 예이츠는 왜 그대를 바라보며 한숨짓는지 그 풀리지 않는 의문은 여전했고, 하늘의 무지개를 볼때마다 뛰었던 마음이 늙어서 그러하지 않거든 목숨을 거둬가라는 워즈워스의 시는 이제는 마음 깊이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나태주의 '그리움'은 예사로운 사랑 노래가 아닌데, 왜 복면가왕의 불광동 휘발유가 불렀던 케이윌의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 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시를 읽느냐에 따라 떠오르는 단상과 느낌이 다른 것은 익히 경험한 것이지만 그게 또 새삼스럽다.


황동규의 '조그만 사랑 노래'는 그의 또다른 작품 '즐거운 편지'와 어딘가 닮아 있었다. 그시절 얼마나 많은 청춘남녀들이 '즐거운 편지'를 읽고 서로 건네주며 사랑에 가슴설레어 했던가. 지난 젊은 날과 그때 그시절이 아련하게 추억으로 떠오른다.


신경림 시인의 작품이 하나도 실리지 않은 것은 개인적으로 좀 아쉽다. 그러고보니 작년 30주년 스페셜 에디션이 나왔던 김초혜의 <사랑굿>도 없다. 사랑굿을 떠올리니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300만부 넘게 팔리며 한국 시집 출판의 역사를 새로 쓴 서정윤의 <홀로서기>도 생각난다.



창비시선 200 기념시선집 <불은 언제나 되살아난다>가 마지막으로 산 시집이었으니,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시집이어서 더욱 반가웠다. 이 작은 시집이 젊은날의 추억과 감성으로 나를 이끌고, 따뜻한 카페라떼 처럼 내 눈과 마음을 다사롭게 감싸준다.


오랫동안 시를 잊은 나에게... 매일 시(詩) 한 잔, 마시고 싶다~!

오늘은 어떤 시를 고르고, 내일은 또 어떤 시를 마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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