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시 - 외롭고 힘들고 배고픈 당신에게
정진아 엮음, 임상희 그림 / 나무생각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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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FM <시 콘서트>의 경력 30년차 방송작가이자 동시와 동화를 쓰는 등단작가 정진아 님이, 방송에서 다룬 작품들을 주로 하여 시집을 묶어내셨습니다. 음식에 관한 시들을 모아놓은 것인데, 단순한 음식의 맛이 아닌 인생의 달고 쓴 참맛을 느끼게 해주는 멋진 시들입니다.


읽다가 무릎을 치며 웃은 작품부터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꼭 함께 읽고 공감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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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학년 (by 박성우 - <가뜬한 잠>, 창비)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엌 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

동네 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거도 몽땅 털어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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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말로 빵 터지는 작품인데, 써놓고 보니 조금은 연령대가 있어야 공감이 되지 않을까 싶긴 하네요^^


배한봉의 '통영의 봄은 맛있다'를 읽고 있노라면 지금 내가 뜨거운 김이 솟는 맛깔난 음식을 먹고 있는 듯한 기분에 빠져듭니다. tvN의 알쓸신잡 첫편의 방송도 떠오르는데, 찾아보니 황교익 씨가 데리고 갔던 도다리쑥국의 집이 이 시에 나오는 분소식당이었네요. 어쩌면 황교익 씨는 이 시를 알고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박혜선의 '숟가락은 숟가락이지' 작품을 읽노라면 삶에 대한 시인의 내공이 어떨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할머니의 입을 빌려 털어놓는 그 한마디. "그냥 밥 잘 뜨고 국 잘 뜨면 그만이지" (p. 48)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요즘 세태에 시인의 입담이 우리를 무장해제시켜 버립니다.


안현미의 '비굴 레시피'를 보면 시인의 눈은 평범한 우리네와는 역시 다름을 느낍니다. '비굴'을 영양 가득한 굴의 한 종류로 읽은 시인은 "비굴은 나를 시 쓰게 하고 / 사랑하게 하고 체하게 하고 / 이별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고 / 당신을 향한 뼈 없는 마음을 간직하게 하고 / 그 마음이 뼈 없는 몸이 되어 비굴이 된 것이니" (p. 72) 하며 사랑을 노래합니다.


이어진 해설에서 정진아 님은 시인은 그 비굴로 시를 썼지만,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그 비굴로 자식들을 길렀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그 까다로운 비위를 맞춰가며 키웠고, 벌어먹일 가족을 위해 삶의 여러 장면에서 비굴했을 우리 부모님들, 또 현실의 질곡에서 자주 비굴을 삼켜야만 하는 우리들...


엄재국의 '꽃밥'을 읽고 있으면 내가 지금 먹는 이 밥이 그냥 밥이 아니구나~ 새삼 느낍니다. 시인이 생각했던 아궁이에 불을 지펴 나무를 태워 짓는 가마솥 솥밥은 아닐지언정, 내 생명의 가지를 튼튼히 하고 내 삶의 꽃을 피워줄 밥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함민복의 '눈물은 왜 짠가'를 읽으면 설렁탕에 말은 밥과 깍두기를 씹으며 눈물을 찔끔 흘리고만 아들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가없는 사랑을 새삼 느낍니다. 최치언의 '설탕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는 늦은 오후 당분이 부족하다며 믹스커피의 달콤함을 찾는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 어차피 삶은 너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p.150) 천양희의 '밥'은 냉혹한 세상을 밥심으로 정면돌파할 힘과 격려를 얻습니다. 이 시집을 엮은 정진아 님의 시도 있는데 '라면의 힘' 입니다. 등산하고 정상 언저리에서 컵라면 먹었던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동시 작가여서인지 아이의 시선으로 쓰셨습니다.


책을 받은 당일에 리뷰를 작성하는건 처음인것 같습니다. 얼마전 읽었던 다른 시집의 리뷰를 쓸때 처음 읽었을 때의 그 느낌이 잘 떠오르지 않아 고생했던 기억이 나서였습니다. 지금 느끼는 이 감동을 빨리 옮겨쓰지 않으면 잊어버릴까봐... 노트에 메모를 하다가 컴퓨터 앞으로 옮겨 앉았습니다.



<맛있는 시>는 단순히 시만을 엮어놓은 시 모음집이 아니어서 더욱 좋습니다. 한편의 시 옆에는 마치 방송의 나래이션을 듣는 듯한 따뜻한 해설이 함께 합니다. 또 오랫동안 '사라져가는 달동네 풍경' 이라는 주제에 천착한 임상희 님의 그림이 그 곁에 조화롭게 자리합니다. 만약 임상희 님의 그림이 없었다면 '맛있는' 느낌이 절반은 줄어들었을 거에요^^


좋은 시와, 따뜻한 해설과, 분위기 있는 그림이 함께 어우러져 멋진 마리아주를 보여주는 <맛있는 시>. 책 표지의 정감있는 카피로 대신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외롭고 힘들고 배고픈 당신에게...

따뜻할 때 드세요. 당신을 위한 맛있는 시~



카페 '책과 콩나무'의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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