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가 성숙한다고 해서 다양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카테고리가 성숙할수록, 즉 카테고리 내 브랜드와 제품의 수가 증가할수록, 제품들 간의 차이는 점점 좁아지다가, 나중에는 구별하기가 힘든 지경에 이른다. 정말 그럴까? 못 믿겠다면, 우리에게 친숙한 비누, 시리얼, 신발 등 성숙한 카테고리를 하나 정해서, 그 카테고리 속의 제품 사이에서 차이점들을 찾아보자. 물론 여러분들은 여러 가지 차이점을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찾아낸 차이점들은 대부분 지극히 사소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이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 보자면, ‘카테고리가 성숙해 나감에 따라 제품들은 이종heterogeneity의 단계에서 동종homogeneity의 단계로 진화해 나간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제품들 사이의 차이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차이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진다는 뜻이다. 가령 파랑과 빨강의 차이에서 청록과 남색의 차이로 변해 간다는 뜻이다.
이종의 단계에서 동종의 단계로 나아갈수록, 그 카테고리 내에서는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오직 전문가들만이 제품들 간의 차이점을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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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세계사 - 한 잔의 커피로 마시는 인류 문명사
탄베 유키히로 지음, 윤선해 옮김 / 황소자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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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스무 살 넘은 한국인 1명이 마신 커피의 양은 353잔이었다. 이는 전 세계 1인당 소비량인 132잔의 3배에 달한다. 인구 대비 커피 매장 수도 미국·중국·일본보다 많다. 고급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국내 수요가 늘어나면서, 스타벅스 리저브 바·블루보틀·커피앳웍스 같은 매장이 늘고 있다. 특히 스타벅스는 한국에 고급 매장(리저브 바)을 많이 개설했는데, 그 수가 인구 1,000만 명당 9.8개다. 전 세계에서 인구 대비 가장 많은 수다(조선일보, '당신이 1년간 마시는 커피 '353잔'', 2019. 8. 30.). 그만큼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유별나다.

 따지고보면 커피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기호식품이다. 이런 커피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커피라는 사물은 도대체 어떻게 탄생해 지금에 이르렀을까'였다. 커피 역시 다른 사물처럼 역사를 지닌 물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커피 세계사>>를 알게 됐다. 이 책은 커피를 중심으로 세계사를 조망한다.

 커피의 역사를 짚기 전에 커피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부터 다루는 게 좋을 듯하다. 커피 애호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고 봤을 법한 단어가 '모카'일 것이다. 모카는 어떻게 만들어진 어휘일까? 모카는 아라비아 반도 남단에 위치한 예멘의 항구도시다. 17세기, 예멘과 에티오피아 산지에서 수확한 커피콩을 이 항구에서 유럽으로 수출했다. 이 과정에서 모카는 가장 오래된 커피 브랜드이자 이후 고가에 거래되는 고급 커피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19세기 전반, 모래가 쌓이면서 항구는 폐쇄되고 만다. 그러나 모카라는 브랜드는 그대로 살아 남아 근린 항구로부터 수출됐고, 그 명성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음료인 커피는 커피나무라고 불리는 꼭두서니과 식물의 종자(커피씨)로 만들어진다. 커피의 총 소비량은 하루 약 25억 잔인데, 이는 물과 차(1일 약 68억 잔) 다음으로 많다. 국가별로 소비량을 살펴보면 북유럽 국가가 가장 높다. 1위인 핀란드는 1인당 평균 1일 약 3.3잔이며 미국은 1.2잔이다. 일본은 1.0잔을 기록했다.

 '커피'라는 명칭은 아라비아어의 '카와qahwah'에서 나온 말로, 커피가 유럽으로 본격 수출되면서 coffee(영국), cafe(프랑스), kaffee(독일) 등 각국어로 파생됐다. 일본에는 네덜란드인이 처음으로 전했기 때문에 네덜란드어의 koffie에서 따와 '코히'라고 불리게 됐다.

 중세 아라비아의 사전 편집자에 따르면, 아라비아어의 카와는 '식욕을 줄여준다'는 뜻의 단어로부터 나온 말이다. 이것이 아라비아 반도에서 커피가 본격적으로 음용되기 시작한 15세기경부터 '수면욕을 없애주는' 음료를 지칭하는 것으로 정착한 듯하다. 카와의 어원과 관련해서는, 커피나무의 원산인 에티오피타 서남부의 '카파kaffa'라는 지역명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이 설에 의문을 제기한다.

 주로 재배되는 커피는 아라비카종과 로부스타종인데, 여기에 리베리카종을 더해 '커피의 3원종'이라고 한다. 이 중 아라비카는 전 세계 생산량의 60~70%를 차지하며, 에티오피아 서남부 에티오피아 고원이 원산이다. 나머지 30~40%는 로부스타가 차지하고 있는데, 로부스타의 원산은 중앙 아프리카 서부다. 리베리카의 원산도 중앙 아프리카 서부다.

 시중에 있는 커피 관련 책을 살펴보면, 커피와 인간의 최초 만남과 관련해 두 가지 에피소드가 존재하고 있다. '염소치기 칼디 발견설'과 '쉐이크 오말 발견설'이다.

 분자진화시계에 따르면, 커피나무의 기원은 '중신대(약 2,300~53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약 1,440만 년 전 카메룬 부근(중앙 아프리카)에서 근종 식물과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커피나무 동종(커피나무속)이 아프리카 대륙의 일대 열대림으로 확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커피나무는 아프리카 각지에서 다양하게 분기됐다. 이것은 약 420만 년 전의 일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때 소말리아 반도에서 진화한 것 중 일부가 인도 연안부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로, 탄자니아에서 진화한 것 중 일부는 코모로 제도와 마다가스카르섬으로 전파됐다.

 인류가 최초의 커피로 이용한 것은 아라비카종이다. 그런데 19세기 후반 녹병이라는 병해가 세계적으로 만연하면서, 내병 품종 탐색이 이뤄졌다. 이때 발견한 것이 바로 로부스타종과 리베리카종이다. 로부스타종과 리베리카종은 중앙 아프리카 서부에서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지만, 아라비카종의 탄생 경위는 이와는 다르다. 아라비카종은 커피나무가 아프리카 각지에서 진화를 거친 후, 탄자니아 서부 고지대에서 자생하는 '유게니오이디스종eugenioides'이라는 커피나무에 로부스타종 화분이 수분되면서 탄생했다.

 현재까지 밝혀진 가장 오래된 호모 사피엔스는 지금으로부터 약 20만 년 전 에티오피아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때 이미 아라비카종도 에티오피아에 널리 서식하고 있었다.

 앞서 밝혔던 것처럼 두 가지 커피 발견셜은 '산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자라고 있던 커피를 발견했다'는 이야기지만, 각각의 탄생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실제 최초의 만남은 이와 달랐을 가능성이 높다. 인류가 지구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커피나무가 이미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에티오피아에서 유라시아로, 그리고 세계 각지로 여행을 떠나게 됐다. 이는 약 7만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아라비카종이 에티오피아에서 세계로 퍼져나간 것은 훨씬 이후의 일이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재배 작물은 세계로 퍼져 커다란 영향을 준 '확산형'과 한정된 지역에 머물렀던 '국소형'으로 나뉜다. 이 중 후자로는 에티오피아 고지대에서 재배되는 곡물인 '테프'와 '엔세테'를 들 수 있다. 아라비카종도 이들처럼 고도 1,000~2,000미터의 열대 고지대에 적응한 식물이다. 따라서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를 떠난 후에도 에티오피아 산속에 남겨져 현지인들만이 아는 존재가 됐다.

 에티오피아 서남부 부족들이 언제부터 커피를 이용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에티오피아 서남부에 관해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가 남긴 자료다. 이들이 에티오피아 서남부로 진출해 커피를 이용하고 있던 현지 부족을 처음 만난 때는 9세기경이라고 추정된다.

 에티오피아인이 예멘으로 건너 갔음에도, 노예로 팔려간 탓인지 이들이 커피를 전했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대 이후 세계 학문의 중심으로 떠오른 페르시아 의학서에 커피로 추정되는 생약이 기록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9세기 후반부터 10세기 초경, 테헤란 근교의 '레이'라는 마을에 한 학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알 라지Al-Razi'였다. 그는 925년에 사망했지만, 그가 남긴 글들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의학집성>>이라는 책으로 만들어졌다. 이 책은 아쉽게도 현존하지 않는다. 과거 연구자들에 의하면, 이 책에 '분 혹은 분카'라는 이름의 식물 열매와 종자로 끓여서 만든 약이 등장한다고 한다. 여기서 분은 15세기 이후 아라비아어로 커피콩과 커피 열매를 의미했다.

 알 라지 이후 약 100년 뒤, 페르시아에서 또 한 명의 뛰어난 학자가 활약한다. 이름은 '이븐 시나Ibn Sina'. 그가 1020년에 쓴 <<의학전범>>의 약 해설에 '분큼 혹은 분코'라는, 예멘에서 전해진 식물 생약이 실렸다. 이 역시 분처럼 커피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두 문헌이 등장한 시기와 에티오피아 서남부 사람들이 노예로 끌려간 시기 및 예멘에서 그 수가 증가한 시기가 겹친다는 점은, 이 시기에 아라비아 반도에 커피가 전해졌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근거 중 하나로 쓰인다.

 한편 10~11세기에 간신히 모습을 나타내는 듯하던 커피 관련 기술은 이후 400년이 넘도록 관련 문헌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다시 커피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15세기 예멘이었다. 라수르 왕조 말기, 알 라지 이후 약 400년이 흘렀을 때 예멘에서 커피가 다시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아마 이 시기에 에피오피아에서 예멘으로 커피가 다시 전래된 듯하다.

 14~15세기에 걸쳐 에티오피아 서남부에서 이파트를 거쳐 홍해 연안부, 예멘에 도달하기까지 비교적 거대한 사람들의 이동이 있었다. 이 움직임 이후 15세기 예멘에서 커피가 모습을 드러낸다.

 15세기가 되면, 커피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바로 예멘에서 확산한 '카와'다. 카와는 14~15세기에 에티오피아 홍해 연안부에서 예멘에 도래했지만 처음에는 커피 이외의 재료로 만들어졌다. 예멘에 최초로 소개된 카와는 커피가 아니라 하라 원산인 '캇Khat'이라는 식물의 잎으로 만든 차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15세기에 접어들어 예멘의 아덴에서 커피로 만드는 카와가 발명된다. 예멘에 카와를 전했다고 알려진 사람은 샤즈리 교단의 수피인 '알리 이븐 우말 아 샤즈리'다. 당시에는 아직 빈촌이었던 모카로 이주해 사람들에게 포교를 했다.

 캇을 이용한 커피는 15세기 초 모카에서 예멘 각지의 수피들에게 전파됐다. 커피처럼 고지대에서만 자라고 신선도가 중요한 캇을 사람들은 예멘의 산속에서 재배했다. 산과 멀리 떨어진 항구마을 아덴은 캇을 구하기 어려웠다. 아덴 수피들은 구하기 어려운 캇의 대체재는 없는지, 어느 수피 도사에게 질문했다. 그는 '무하마드 자말린 아 자부하니'다. 자부하니는 '커피 열매와 종자에도 캇과 같은 성분이 있으므로, 그것으로 카와를 만들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 무렵, 커피 카와에는 두 종류가 있었다. 둘 다 현재의 커피와는 다르다. 하나는 '기실(껍질) 카와', 또 다른 하나는 '분(커피 열매) 카와'다. 예멘의 카와가 세계에 알려지는 과정 속에서 기실은 모습을 감추고 분만 남았다. 분 카와가 콩 부분만을 사용하는 현재의 커피로 변모한 것이다. 그래서 '카와가 커피의 기원이다'라고 할 수 있다.

 커피 카와는 캇과 달리 장기간 보존과 수송에 용이했다. 이 점 덕분에 머지 않아 예멘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더 나아가서는 이슬람권 타 지역으로도 확산했다.

 1470~1495년에는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의 예멘인 거주 지구에서 커피 카와가 음용되면서 이 지역과 교류하던 마을의 사람들에게도 전파되기에 이른다. 수피가 졸음 방지용으로 마셨음을 물론 이슬람 학교의 학자와 학생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학업과 업무에서 능률 향상을 위해, 또는 단순 기호식품으로서 커피를 이용했다.

 1500년경, 메카에서 '카페하네(커피하우스라는 뜻)', 즉 커피를 마시는 전문점이 문을 열었다고 한다. 다만 카페하네에는 기본적으로 남성만 드나들 수 있었다. 1510년경에는 당시 이슬람 대국이었던 이집트 맘루크 왕조의 수도 카이로에도 커피가 전해졌다.

 또 다른 이슬람 대국 오스만제국에도 16세기에 커피가 전파됐다. 이스탄불 시민들에게 알려진 것은 좀 더 시간이 흐른 16세기 중반이다. 오스만제국이 직접 재배한 커피가 더 널리 보급됐는데, 커피가 많은 이슬람 교도들에게 사랑받으면서 예멘의 주요 특산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에 오스만제국은 1544년경부터 예멘 주민의 캇 재배를 제한한다. 대신 외화획득수단인 커피나무 재배를 장려했다. 오스만제국의 수도인 이스탄불에서 커피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1554년이다. 두 명의 시리아인 하킴과 샴스가 커피하네를 오픈한 것이 계기라고 한다. 16세기 중반, 오스만제국에서는 현실에 절망한 사람들이 수피즘에 빠지기 시작했고, 커피와 카페하네가 유행했다. 원통형 수동 배전기와 커피 그라인더 등 커피 전용 기구도 이 시대에 이스탄불에서 고안됐다.

 한편 이슬람권에 확산된 커피는 16세기 후반 유럽인들에게도 소개됐고, 17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유럽까지 도달한다. 크게 네 개로 이뤄진 루트는 각각의 사연을 지니고 있다. 연대가 이른 순서대로 정렬하면 '지중해 루트-동인도회사 루트-파리 루트-빈 루트' 순이다.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전반 무렵, 레반트와 이스탄불에서 유럽인들이 목격한 것은 분이었다. 따라서 유럽에는 지금처럼 커피콩만 이용하는 형태가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유럽으로 건너간 커피는 영국·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에 정착했는데, 이 중 프랑스에서는 카페가 프랑스 혁명의 시작점 역할을 했다. 커피는 미국으로도 건너갔는데, 그곳에서는 커피하우스가 공민관으로 쓰였다. 이후 커피는 나폴레옹 시대와 대공황, 제1·2차 세계대전 등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 속에서 부침을 겪어가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거의 매일 마시는 커피의 맛 등에는 관심을 보여도 역사에는 그만큼의 흥미를 갖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상황 속에서 커피의 기원과 변천 과정, 현재 모습 등을 통해 세계사의 흐름을 바라볼 수 있어 흥미진진했다. 

 개인적으로 한 사물의 역사 등을 알게 되면 그 사물을 보는 사고가 그만큼 확장된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 비춰봤을 때, 이 책은 우리에게 커피에 관한 사고를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일상 속 익숙함으로 인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커피와 관련된 사고의 폭을 넓히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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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들의 순진한 애정을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국내 시상식들의 상도덕 부재에 있다. 유료 투표를 폐지하고 투표 기준을 엄격하게 세우는 것만이 스스로의 공신력을 높이는 방법임을 국내 시상식들이 이제라도 깨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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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편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투표 행위를 철없고 부화뇌동하기 쉬운 어린 팬들의 행동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그 속내가 훨씬 복잡하다. 아이돌 음악시장은 일반 대중이 아닌 팬덤에 의해 굴러가다시피 하는 곳이다. 앨범을 사고 음원을 스트리밍하고 공연을 보고 굿즈를 사는 팬덤의 규모와 구매력이 바로 아이돌 가수의 수명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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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 투표 옵션은 바로 이런 팬심을 악용해 일부 국내 시상식들이 자행하는 꼼수다. 아직까지 외국 시상식에서는 한 번도 유료 투표 옵션을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대체 국내 시상식이 무슨 배짱으로 이런 시스템을 공공연하게 운용하는지, 또 이 문제에 제대로 칼을 대는 언론사는 왜 없는 건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해마다 시상식 철만 되면 은근슬쩍 유료 투표 옵션을 집어넣는 국내 시상식의 행태는 아이돌 시장 생태계를 교란시킬 뿐만 아니라 아이돌 팬덤 대부분이 십대로 구성된 상황에서 소비자 권리를 적극적으로 어필하기 어려운 미성년 아이돌 팬을 현금지급기 취급하는 도덕적 해이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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