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2disc)
봉준호 감독, 송강호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지난해 오랜 시간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인물의 정체가 밝혀졌다. 바로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다. 진범이 드러나면서, 해당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 '살인의 추억'이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2003년 4월 25일에 개봉한 이 영화는 김광림의 희곡 '날 보러 와요'(1996년)를 각색한 작품으로, 개봉 당시 525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영화를 제작한 봉준호 감독은 전작인 '플란다스의 개'를 통해 맛본 실패를 만회한 것을 넘어 세계적인 감독으로 올라서는 초석을 다졌다. 개봉 후 제작진, 감독, 관객, 평단 모두에게서 호평을 받은 영화는 국내 주요 영화제들에서 큰 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다. 2015년에는 미국 영화 매체인 '시네마스코프'가 살인의 추억을 2000년대 최고의 영화 9위에 선정하기도 했다.

 살인의 추억은 1986년에서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일대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과 범인을 쫓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범죄물이다. 영화는 장르 속에서 범인을 추적하는 형사들을 통해 80년대를 저격한다. 계속해서 범인을 잡지 못하는 형사 박두만(송강호)과 조용구(김뢰하)는 아무런 근거 없이 지적장애인인 백강호(박노식)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취조를 하는 동안 고문과 폭행, 증거 조작을 일삼는다. 서울에서 내려와 합리적인 수사를 하고자 하는 서태윤(김상경)의 논리적인 설명은 그들에게 전혀 먹히지 않는다. 두만과 용구가 취조 과정에서 행사한 폭력은 당시 실제로 이뤄진 행위였는데, 이는 80년대를 휘감았던, 군사 정권의 산물인 폭압적 분위기를 상징한다. 또 영화는 수사에 매진해야 할 경찰 인력을 시위 진압에 투입하는 장면을 통해, 당시의 군사 정권이 국민의 안전보다는 정권 안정에 더 매진했음을 보여준다. 결국, 영화는 사건을 수사하는 두만과 용구의 폭력과 함께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는 데에만 혈안이 된 정권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80년대를 관통했던 당시의 사회상을 고발한다. 정리하자면 봉준호 감독은 80년대의 폭압적인 시대상에 기초해 수사와 취조를 진행하는 형사들의 모습과 국민 안전을 등한시하며 오직 권력 유지에만 매달린 정권의 태도를 조명하면서, 당시의 시대 분위기가 사건이 오랫동안 미제 사건으로 남는 데 일정 부분 역할을 했음을 지적한 것이다.

 한편 영화는 80년대의 모습을 담고 있는 농촌의 풍경과 시위 장면, 시위를 진압하는 전경, 등화관제 등을 통해 과거를 충실히 재현했다. 그리고 첫 사건이 일어난 장소의 풍경과 현장을 통제하는 형사의 모습을 '롱 테이크'와 '딥 포커스 쇼트'를 결합해 표현하면서 현장감과 사실감을 높였다. 산에서 강호의 진술을 강요하는 장면에서는 두만과 용구, 이 두 사람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태윤에게 각각 다른 딥 포커스를 적용해 같은 공간에 있는 이들을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것처럼 표현했다. 이 같은 섬세한 연출을 통해 봉 감독은 '봉테일'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작년에 범인이 잡히면서 오랜 시간 동안 미해결 사건으로 남아 있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일단락됐다. 이로써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채 끝났던 살인의 추억의 엔딩도 그 마무리를 지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당시 사건과, 수사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 인해 생긴 피해와 아픔은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이제 우리에게는 그 피해와 아픔을 치유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그래서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봉준호 감독은 왜 해당 사건을 주제로 영화를 제작했을까? 영화가 개봉한 건 2003년이다. 사건의 주 배경이었던 80년대를 지난 지 20년 가까이 돼 가는 시점이었다. 이에 봉 감독은 80년대보다 여러 면에서 진보한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던 우리가, 그 당시의 시대상이 만들어낸 미제 사건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이 사건이 하나의 추억으로 변해가는 것은 아닌지 묻고자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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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0-09-08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진호님 글이 전문가처럼 느껴집니다ㅎ 전문가가 아니신지 의심스럽습니다ㅎ 마지막 문단 좋은 글 감사합니다.

kpio99 2020-09-08 10:15   좋아요 1 | URL
많이 부족한 글에 과찬을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