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 영화


10월 20일에 개봉한 작품. 영화 '에이리언'(1987), '블레이드 러너'(1993), '델마와 루이스'(1993), '글래디에이터'(2000), '블랙 호크 다운'(2002), '킹덤 오브 헤븐'(2005), '마션'(2015) 등을 연출한 할리우드 명감독 리들리 스콧의 작품이다. 에릭 재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마션'에서 호흡을 맞췄던 맷 데이먼, 감독의 차기작 '하우스 오브 구찌'에도 출연할 아담 드라이버, 벤 애플렉과 조디 코머가 주연을 맡았다. 각본은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 니콜 홀로프세너가 썼다. 1998년에 개봉(국내)한 명작 '굿 윌 헌팅'에서 맷과 벤은 공동 각본·출연에 나섰는데, 이번 작품에서 또 한 번 두 사람의 공동 각본·출연이 이뤄졌다. 감독과 함께 '글래디에이터', '마션' 등을 함께 연출했던 제작진이 이번 작품에 합류하기도 했다.

작품의 배경은 14세기 프랑스다. 전쟁터에 나가기 위해 '장 드 카루주'(맷 데이먼)가 집을 비운 사이, 한때 그의 친구였지만 원수가 되어 버린 '자크 르 그리'(아담 드라이버)가 장의 부인 '마르그리트'(조디 코머)를 겁탈한다. 마르그리트는 이를 장에게 말하고, 장은 자크의 죄를 알린다. 하지만 자크는 성폭행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두 사람은 국왕 앞에서 '결투 재판'을 벌이기로 한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결투 재판에서 이기는 사람은 진실이고, 지는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는 동시에 거짓이 된다. 과연 이 싸움의 승자는 누구이며, 진실은 무엇일까?

영화의 특이점은 세 사람, 즉 장과 자크·마르그리트의 시점을 오간다는 것이다. 세 사람이 사건을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만큼, 같은 장면이 다른 맥락에서 펼쳐진다. 시점에 따라 장은 자크의 죄를 밝혀서 아내의 치욕을 씻어주려는 정의의 사도이고, 자크는 마르그리트와 별 문제 없이 성관계를 맺었으며, 마르그리트는 성폭행의 피해자다. 이 방식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집 '라쇼몽'(1917),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연출한 동명의 영화(1950)와 같다. 하나의 사건을 주제로 각자의 입장에서 진술을 하는 인물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관객은 혼란을 겪게 된다. 마르그리트의 시선에 이르면서 진실이 드러나지만, 한편으로는 그 역시 본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기에 의심의 끈을 완전히 놓을 수 없었다.

'에이리언'과 '델마와 루이스', '지. 아이. 제인'(1997) 등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은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 서사를 그렸다. 이번 작품에서도 같은 서사가 등장한다. 사람들의 모욕적인 언사, 침묵을 강요받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마르그리트는 사건의 진실을 말한다. 이 부분에서 오늘날의 '미투'가 떠올랐다. 마르그리트를 통해 감독은 주변의 시선과 강요로 침묵하는 사회적 약자에게 연대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개인적으로 결투장에서 싸움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과연 그들은 사건의 진실에 관심이 있을까? 사건의 진실은 안중에 없고, 승패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건 아닐까? 물론 당시에는 결투에서 이기는 자가 진실인 만큼, 승패가 중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결투장을 찾은 사람 중 그 누구도, 결투의 결과 이전에 사건의 진실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치 한 사건의 진실보다 이를 두고 벌어지는 언쟁, 가십거리에만 치중하는 현재의 언론 행태와 일부 대중을 보는 듯했다. 물론 나도 여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결투 장면을 보면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앞서 언급했던, '라쇼몽'을 계승한 연출 방식이 흥미로웠다. 이를 통해 하나의 진실을 각기 다르게 해석하는 인간의 특성을 잘 표현했다. 또 실제 중세 시대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고증도 인상적이었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특히 마지막 결투신은 극강의 몰입도를 선사했다. 연출과 연기 모두 극찬을 받아 마땅하다. 왜 감독과 제작진, 배우들이 할리우드 명감독이자 배우로 불리는지 다시 한번 알 수 있는 작품이었다.


평점-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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