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를 만들어 내는 교육





콩도르세(1743~1794)가 교육의 목적에 관해 설명한 대로, ‘교육의 목적은 현 제도의 추종자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라는 관점에서 볼 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일본의 대학교육을 조사하기 위해 미국에서 건너온 윌터C.일즈의 말


‘일본 대학생은 교실 좌석에 배열되어 있는 ‘찻잔‘과 같은 존재다. 교사는 ‘주전자‘를 이용하여 계속해서 지식을 ‘찻잔‘에 따르는데, 그 찻잔의 용량 따위는 완전히 무시된다‘

- 분문 56~58쪽 편집


근대화의 필요성에 의해 수입된 일본의 대학은 모든 교육은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국가의 요구에 부응하는 학술과 기예를 가르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게다가 동양적 전제주의에 종속된 관료기구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라는 역사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근대화 기획을 고스란히 이식하고 모방해온 우리의 교육은 어떠한가?

‘교육‘이라는 한자 자체에 동양적 교육의 주입식 모순을 본다면 논리의 비약인가?
참교육을 이야기하고 많은 부분이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100년전과 지금의 교육은 여전히 일방적이고 실용적(?)이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 <대학의 사명, 1930>의 한 절을 인용한다.

‘현대사회에서 교양의 특징은 그 내용 대부분이 과학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사, 공무원, 장관, 문헌학자, 종교인, 요컨대 사회의 지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설사 모든 법규, 약제, 교리 등에 아무리 정통했다고 해도 오늘날 물리학적 세계 질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있다면 그들은 완전한 야만인이다.
(...)
물리학적 이념, 생물학적 이념, 그리고 철학적 계획 등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자는 교양 있는 인간이 아니다‘- 52쪽

<역사를 위한 변명>으로 20세기 역사학에서 혁명적 업적을 남긴 마르크 블로그도 그의 저서 <이상한 패배. 1940년의 증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험과 등수에 연연하는 초,중,고등학교의 교육이 학생들을 개로 만든다면서 서커스에서 재주를 부리는 개는 많은 것을 아는 개가 아니라, 미리 선택된 연습을 통해서 알고 있는 듯한 환상을 주도록 훈련된 개라고 말한다‘- 72쪽





점수의 달인으로 훈련된 소위 ‘엘리트‘들이 특권의식으로 추억과 우정을 나누고, 그들만의 사회속에서 인간적인 문제에 진정성을 알지 못하고, 세상을 모르고, 새로운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우두머리, 정치가, 행정가의 자리를 꿰차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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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3-16 12: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금에 등장하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적폐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북프리쿠키 2019-03-16 12:45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님 안녕하세요^^
그러네요. 다양한 스펙트럼의 적폐..
점수는 돈벌이가 되고,
그 점수를 얻을 능력이 없는 돈 많은 자는 점수를 얻은 자와 야합하겠지요.
즐주하시고 좋은 책 많이 소개해 주세요^^



2019-03-20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1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