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자로 살기 팬인가, 제자인가
카일 아이들먼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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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제자로 산다는 것, 어쩌면 우리에겐 너무나 커다란 짐이요 부담일수도 있다.

특히나 주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주님은 우리에게 제자로서의 부르심을 쉬지 않으신다.

심지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제자라는  말씀까지 하시면서 당신의 뒤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다행인것은 그 주님은 결코 우리에게 처음 가보는 길을 가라고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이미 당신이 승리해 놓은 그 길을 따라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특별히 이 책은 그런 승리의 길을 걷길 원하는 그래서 제자의 삶을 살길 원하는 이들을 향한 간결하고도 강한 메세지들이 들어 있다.

 

그 중 읽는 내내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 있다.

아이러니한 일이긴 하지만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말씀을 받고 있는 그 순간 산 아래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고 만지고 예배할 수 있는 신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며 집집 마다 가지고 있던 금붙이들을 가지고 나와 황금송아지를 만들고 있었다. 비약처럼 들릴지는 모르지만 우리도 이와 같은 어리석은 짓을 한다. 전능하신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자신의 얇은 지식에 의지하고 별것 아닌 권력에 몸을 기대고 얼마 안되는 경제력에 목숨을 건다. 그러면서 말로는 '하나님 사랑합니다'라고 외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출애굽이라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그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보이는 신을 달라고 외치는 그들이나 주님의 은혜 아니면 살수 없습니다라고 눈물 콧물 다 흘려가며 기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전의 본성과 습관들이 그대로 다시 되살아 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자존심을 망가뜨리는 행동들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우리나 별로 다르지 않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팬인가? 제자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 보았다. 그러나 결코 쉽게 답할 수 없었다. 누군가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될것이다. 이것이 출발 같다. 이러한 고민을 통해 새로운 출발을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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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생각한다
이재훈 지음 / 두란노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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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엔진 브레이크가 걸려 있어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자동차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교회를 향한 저자의 외침은 분명하다. 그 매임에서 나오라는 것이다. 주님이 우리의 매임을 풀어 주러 오셨던 것처럼 매이고 얽힌 그곳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과거의 상처로 부터 혹은 실패로 인한 절망으로부터 또는 죄악의 습관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매임의 근원이 사탄이며 그 사탄의 매임에서 우리를 풀어주기 위해 주님이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누가복음 13장에 나오는 회당장의 모습을 인용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아무도 눈길 조차 주지 않던 18년 동안 허리를 펴보지 못한 여인을 향한 놓임의 말씀을 통해 기득권의 잘못된 신앙관에 대해 도전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그린다. 18년이라는 긴 시간을 절망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던 여인의 결박을 푸시는데 채 18분도 걸리지 않으신 주님의 모습이 기득권 층에게는 분명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merry'가 아닌 "messy"가 되어 버린 헤롯의 오판 처럼 말이다. 비단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베다스다의 연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을 때도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미문의 앉은뱅이를 치유 했을 때도 기득권은 거의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 자신들이 세워 놓은 종교적 체계에 대한 거부와 반항이이며 고귀한 가치의 손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역시 다르지 않다. 자신들이 세워 놓은 가치관과 규칙에 조금이라도 위배되면 잡아먹을 듯이 달려든다. 달려들어 뜯고 찟고 망가 뜨린다. 심지어는 이단이라는 가장 혐오스러운 낙인 마저도 찍어 버린다. 정작 자신들은 그렇게 조자도 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을 앞에 두고 예수님이 오신다면 "위선자들아"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자신들이 보편적으로 옳다고 생각한 오류에 빠져 있는 성경적이지도 예수적이지도 않는 단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오류 덩어리의 규칙을 신적인 것으로 여기는 그들을 향해 분명 주님은 "위선자"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도 자체를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전정한 필요와 문제는 외면해 버리는, 마치 집단 최면에 걸린 듯한 그들 속에 혹시 나는 들어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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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의 신비 세계기독교고전 52
존 플라벨 지음, 박문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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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역사들, 즉 "창조" 또는 "섭리"를 통해 자기 자신을 계시하신다. 특별히

섭리에 의한 하나님의 역사들의 주된 영광과 위대하심은 그것들이 바로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들을 실제로 성취하고 이룬다는 데 있다. 섭리는 하나님의 원수들조차도 하나님의 참되심을 증언할 수 있는 수많은 증인들로 만들어 왔고,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해 준다. 그러나 섭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섭리들이 서로 조명해 준다는 것을 보여주고, 섭리에 의해 떄를 따라 베풀어 주시는 온갖 크고 작은 일들이 다 성경에 들어 있는 것임을 보여주며, 말씀 속에 있는 약속들은 여러가지 곤경과 환난에 처하게 된 교회에게만이 아니라, 그 각각의 지체에게도 그대로 성취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신비를 아는 것이 지혜일것이다.

 

특별히 저자는 섭리를 묵상해야 하는 의무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하나님이 그렇게 행하라고 명시적으로 명령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묵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부르심에는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의 의무가 된다. 그래서 성경은 도처에 "기억하라, 바라보라, 찾으라, 보라"등의 명령들을 통해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묵상하라고 한다. 특별히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 내시는 섭리의 시작을 이야기 할때 "보라"라는 단어를 두번이나 사용하며 주의를 환기 시키며 강조한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보라,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이제 보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출3:2.9). 직접 보라는 것이다. 의심과 불신의 사람에게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받아 들이라는 것이다. 믿음으로 바라보고 신앙으로 받아 들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섭리이다. 억지로 무지막지하게 밀어 붙여서 믿으라가 아니고 보고 듣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신약에도 이와같은 말이 나온다. "와서 보라"는 구절이다. 와서 직접 보라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혼돈과 무질서의 세계에서 자신이 없으면 "와서 보라"는 소리를 할 수가 없다. 발달된 문명으로 거의 모든 것이 발가 벗겨진것처럼 드러나기에 정말 자신이 없으면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주님은 하나님은 "보라"라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보는 것이 묵상이다. 모든 생각과 사고의 관점을 집중하고 바라보는 것이다. 말씀 속에서 거하시는 분을 보는 것이며, 찬양 가운데 임하시는 분을 보는 것이며, 삶의 모든 순간에 개입하시는 분을 보는 것 이것이 섭리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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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처럼 세계기독교고전 28
앤드류 머레이 지음, 원광연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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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그리스도인이라면 꿈꾸는 것이 있다. 바로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다. 그를 흉내내고 그를 닮고 싶고 그와 같이 살고 싶은것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꿈꾸는 가장 큰 소망일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 앞에 그 소망함을 단 1초도 유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늘 넘어지고 늘깨어지고 늘 범죄하는 삶이기에 날마다 우리는 바울의 고백과도 같은 십자가 앞에 날마다 스스로를 쳐서 복종케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그러한 좌절의 삶과 실패의 반복을 살아가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던지는 도전이자 외침일 것이다.

 

특별히 눈에 들어 오는 구절이 있다.

많이 읽어보고 들어 보았음직한 구절인  빌2:3-8절 말씀에 대한 설명에 보면 이 구절이 상황적 오류에 대한 반박을 위한 진리의 기술이나 믿음을 강건하게 하는 목적으로 기술 된것이 아니라 여전히 교만해 있고 사랑이 결핍되어 있는 빌립보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모범을 제시하며 그들에게 그리스도가 하신것 처럼 그들도 자신을 낮추라는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 쓰여졌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이땅에 내려오심과 십자가의 굴욕을 통한 구속을 이루심과 이 땅에 살아가심등을 통하여 스스로 낮아지심의 모범을 보이시며 제자인 우리에게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고 명령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 주님은 단 한번도 당신이 먼저 가시지 않은 길을 우리에게 가라고 하지 않으신다. 항상 우리 보다 앞서 가시며 그 뒤를 따라 오라고 말씀하신다. 특별히 겸손과 낮아지심에 대해서 그렇다, 마지막 식사의 자리에서 친히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여 제자들의 발을 씻기 신다. 그 집에 하인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열정적으로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그렇게 하심으로 스스로 낮아지심과 스스로 섬기심의 모범을 보이시는 것이다. 그렇게 하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

 

누군가에게 자신을 따라오라라고 나를 본받으라고 말한다는 것은 그 자신의 삶에 당당할 수 있을 때이며 그 삶이 부끄럽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주님은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시며 나를 본받으라고 말씀하신다. 그 만큼 자신에게 철저하셨기에 그 스스로 복종의 삶을 사셨기에 그의 삶이 복음 그 자체이기에 가능한 말씀이다. 요즘과 같이  높아지기만을, 누군가 보다 우월해 보이려고 발버둥치기에 급급한 현실 속 우리들에게 주님은 여전히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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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 나 좀 도와줘
헤더 히브릴레스키 지음, 김미란 옮김 / 걷는나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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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은 누구에게나 고민이 있다. 말 할 수 있는 고민이 있기도 하고 때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아야 하는 고민이 있다. 이럴때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있다면, 혹은 나의 이야기에 조금이라도 반응해 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항상 친절해 왔고 그렇게 사는것이 익숙하고 그래서 늘 손해보는 '친절한 호구'의 삶을 사는 이의 질문과 폴리의 대답은 현대를 살아가는 '친절한 호구'들에게 사이다와 같은 소리일것 같다. 대부분의 친절한 사람은 친절한 사람이면서 또한 분노로 가득 찬 사람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완전한 모순덩어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괜찮다고 한다. 우리는 그런 존재들이고 너나 할것없이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화를 삭히길 잘하는 그래서 자기 속은 썩어 문드러지면서도 친절함을 가장한 호구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그마한 반항을 시작해 보라고 한다. 급진적이지 않고 천천히 조금씩 반응해 보라는 것이다. 대항도 해보고 반발도 해보고 아니다라고 말도 해보라는 것이다. 그냥 먀번 사람 좋은 호구만 되지 말고 때로는 강력한 반발을 시도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도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돌아보게 되고 굽힐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기분 나빠 했다고 자책하지도 말고 상대방의 인상이 찌푸려진다고 움츠리지도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차라리 매정하고 부당한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괜히 스스로를 썩어 문드러지게 만드는 호구가 되지 말고 차라리 매정한 사람이 되는 편이 본인을 위해 훨씬 좋다고 말한다.

 

동의한다. 괜히 우리 남의 눈치나 보는 '친절한 호구'는 되지 말자. 당당히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나타내면서 주눅들지 말고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멋진 인생을 살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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