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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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리뷰

 

​무라카미 하루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네이버 책 정보


무슨 일이든 하고 싶은 마음이 당길 때 허겁지겁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반대로 좀처럼 마음이 끌리지 않는 일에는 손길조차 대지 못하는 편이다. 이는 어쩌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인데, 내가 좋아하는 일에는 놀랄 만큼(!) 엄청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그렇지 않은 일에서는 마치 '부진아'처럼 빌빌대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이제는 좀 알아두어야 겠다 싶어 이것저것 일을 벌려놓기는 하지만 역시나 예상대로 끝은 좋지 않다. 사실 그 끝이 기억이 안 나는 적이 더 많다. 제대로 끝을 본 적이 없으니.

다행히 책읽기는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고나 할까. (나는 모든 사물에 감정이입하기를 좋아한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공부하라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는 것조차 쉽사리 허용하지 않았던 선생님들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면학 시간마다 소설책을 꼭 한 권씩 들고 오곤 했다. 뭐든지 시키면 하기 싫은데 하지 말라는 건 더욱 더 하고 싶었던 게 그 시절 학생들의 한결같은 마음이었을 테지만. 그렇게 공부보다 더 재밌는 세상이 많다는 걸 학창시절부터 조금씩 알아갔다. 독서를 방해하는 누군가가 부재한 대학에 와서는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읽을 수 있는 때가 왔다. (지금은 또 다시 약간 부진해졌다...) 주로 맞는 건 문학이다.

© 김영사,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작가의 무성의함이 돋보이는 에세이집​

웃긴 건 이상하게도 에세이류를 기피했다는 점이다. 지금에 와서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뭔가 작가의 노력이 덜 들어갔다'는 실로 위험한(!) 생각에 빠졌던 건지도 모르겠다. 혹은 에세이는 감성에 젖어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는 이에게나 어울리는 책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제와서는 (조금 늦은 것 같지만) 그 때의 내 어린아이 같은 생각에 대해 수많은 에세이집 작가 분들께 심심한 사과를 드리려 한다(...). 물론 대부분의 유명 에세이집은 내가 읽지 않아도 이미 잘 팔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는 특별히 '작가의 무성의함'이 돋보이는 에세이집이다. (또 다시 폭탄발언을 하게 되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원래 작가도 친절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기는 하다. 놀라운 걸작 소설들로 유명한 작가의 조금은 까칠한 일기장을 읽어보는 느낌이라면 그래도 조금 정확할까.

물론 <앙앙> 독자가 내가 쓰는 글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느끼고 계신지, 거기까지는 나도 잘 모릅니다.

만약 "이 아저씨는 무슨 소릴 하는 지도 모르겠고 완전 시시해. 종이가 아깝다니까" 라고 생각하셨다면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립니다.

나 자신은 상당히 재미있고 즐겁게 썼습니다만, 미안합니다.


- 첫머리에, p. 10


작품이 아닌 어떤 아저씨 한 명을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아무튼 재미있는 책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이번 여름 휴가에 동행할 책으로 골랐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글의 분량은 에세이 한 꼭지당 칼같이 3페이지다. 투박한 일러스트가 함께 수록되어 있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들어오는 뜨거운 여름 풍경과 아주 잘 어울린다. 다만 의식의 흐름대로 작가의 글이 흘러가니까 논리정연을 따지는 건 조금 미뤄두는 게 좋겠다. 하루키의 작품이 아닌 하루키라는 어떤 아저씨 한 명을 만나보고 싶은 팬이라면 더욱 좋은 선택이다.


그런데 늘 희한하게 생각하는 것. 언제부터 소설가를 '작가님'이라 부르게 된 걸까? 옛날에는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채소가게님' '생선가게님' 같은 느낌이다.

뭐 사운드 면에서 편하기 하지만, 그렇게 불릴 때면 이따금 "아, 예, 예, 어서 옵쇼"하고 두 손을 비비며 나가야 할 것 같다.

- 일단 소설을 쓰고 있지만, p. 83


© 김영사,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그러나 그 맛 이상으로 내 속에 '좋은 토마토'로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은 아저씨가 자신이 키운 토마토에 긍지를 갖고, 그 신선한 성과를 나와 나누고 싶다고 생각해준 것이었다. 뙤약볕 아래를 걸으면서 그 토마토를 우적우적 통째 먹으니, '세상에 이렇게 살아 있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네' 하는 실감이 들었다.

- 제일 맛있는 토마토, p.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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