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이야기
메이 싱클레어 지음, 송예슬 옮김 / 만복당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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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영혼, 사후세계, 초자연현상을 소재로 한 20세기 초 영국 소설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으면서도 철학적 사유가 담긴 책으로, 공포심을 자아내지는 않아서 무서운 이야기를 읽지 못하는 독자도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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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이야기
메이 싱클레어 지음, 송예슬 옮김 / 만복당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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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기이한 이야기>에는 20세기 초 영국에서 널리 알려졌던 소설가이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작품에 접목시킨 최초의 작가 중 한 명이라는 메이 싱클레어가 쓴 일곱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었다.

 


제일 앞에 위치한 ‘그들의 불이 꺼지지 않는 곳’에서는 오스카 웨이드와 불륜을 저지른 해리엇 리가 마주하게 되는 사후 세계를 볼 수 있고, ‘징표’는 남편 도널드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올케 시슬리의 유령이 보이는 시누이 헬렌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죽은 시슬리가 남편 도널드를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세 번째로 수록된 ‘크리스털의 결점’은 100페이지가 넘어 이 책에 수록된 단편소설 중 가장 길이가 긴데, 소설의 주인공 애거사 버럴은 어느 날 다른 사람의 몸에 닿지 않고 심지어 멀리 있어도 그 사람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게 되고 그 능력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면서 위험에 처하게 된다.

작가 메이 싱클레어는 애거사의 힘이 발휘되는 과정과 그 힘의 정체에 대해서 섬세하게 묘사했다.


‘증거의 본질’에서는 사랑하는 아내 로저먼드가 세상을 떠난 후 폴린 실버와 재혼한 에드먼드 마스턴에게 전처 로저먼드의 유령이 찾아와 그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죽은 자가 알게 된다면’은 사랑에눈이 멀어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게 된 오르가니스트 윌프리드 홀리어 이야기다.



“오, 제발. 그런 말 말아요. 당신 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 윌프리드.”
“알고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처럼 이야기하시는걸요. 만일 죽은 자가 알게 된다면.......”
죽은 자가 알게 된다면.......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그의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아들이 자기 죽음을 바랐고 그 소망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갔음을 알게 된다면.......
죽은 자가 알게 된다면.......

p.253



‘희생자’에서는 폭력성 있는 남자 스티븐 애크로이드가 결혼까지 앞두었던 연인 도시가 자신을 떠나자 그 원인을 제공했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고용주 그레이트헤드 씨를 치밀한 계획 하에 죽이는데, 살인 과정이 주는 긴박함 때문에 일곱 개의 단편소설 중에서도 페이지가 가장 빠르게 넘어갔으며 살인이라는 흉악한 범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일곱 편의 소설 중 가장 철학적 냄새가 짙고 복잡한 세계관을 가진 ‘절대적 세계의 발견’을 읽으면서는 형이상학적 진리를 좇으며 살아온 스폴딩 씨가 마주한 죽음 이후의 세계에 방문할 수 있다.


스폴딩 씨가 마주한 사후세계는 책의 첫 번째 단편소설에서 해리엇 리가 본 사후세계와는 또 다르다.
해리엇 리가 본 사후세계는 지옥에 가까운 반면에 스폴딩 씨가 있는 사후세계는 천국에 가까우며 더욱 정신적이고 철학적이다.

스폴딩 씨는 이 사후세계에서 그렇게 동경하던 철학자 이마뉘엘 칸트를 만나 정신적 상태 그 자체인 이 특별한 세계의 원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선형적으로 확장하는 일차원적 시간이 아닌 삼차원의 입체적 시간을 경험하는데, 나도 스폴딩 씨가 보고 느낀 것을 작가가 묘사한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시간의 어마어마한 평면들이 교차하는 것을 보았다. 마치 한 공간의 평면들이 돌아가며 뒤섞이는 것과 같았다. 다른 시공간들이 일어났다가 쓰러지고, 둘러싸고 둘러싸였다. 그리고 거대한 장면 속 작디작은 부분에, 탄생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자신의 삶이 곧 다가올 천상에서의 삶과 함께 담겨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안에서 보면, 한때는 너무나도 가혹하고 참기 힘들었던 엘리자베스의 불륜도 사소하고 별것 아닌 사건이었다.

p.341



이렇게 <기이한 이야기>에서는 유령, 영혼, 사후세계,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지만 공포심을 자아내려는 목적이 아니고 철학적이기 때문에 밤에 읽어도, 오늘처럼 비가 내려 어둑어둑한 날에 읽어도 (이런 날에 잘 어울리기는 하다) 무서운 느낌이 전혀 없으니 무서운 이야기를 못 읽는 독자가 읽어도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뷸륜 관계가 나오는 단편소설이 몇 편 있어 불륜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그 부분이 조금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초자연적 현상을 소재로 한 20세기 초 영국 소설의 독특한 분위기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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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과 왕릉, 600년 조선문화를 걷다
한국역사인문교육원(미래학교) 지음 / 창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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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과 왕릉, 600년 조선문화를 걷다>는 역사인문 평생교육기관인 한국역사인문교육원 저술교실의 열여섯 명이 각자 한 주제씩 맡아 자료를 수집하고 써낸 글 열여섯 편을 묶어 출간한 책이다.
(한국역사인문교육원 대표 오정윤 씨는 지은이 중 한 명으로 이름이 올라갔지만 이 책을 전체적으로 개괄하는 머리말만을 썼다)
열여섯 개의 글은 문체와 구조가 비슷해서 각 글을 쓴 사람이 달라도 이질감 없이 한 권의 책 같았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왕과 왕비, 공주와 왕자, 그리고 궁녀와 내시, 이렇게 주요 궁궐 사람들에 대해서 알아가는 ‘궁궐과 사람들’.
다음으로 군주의 상징인 용, 추녀마루 위에서 궁궐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하는 잡상, 그리고 조선의 궁 건축에 영향을 끼친 철학적 텍스트 <주역>을 다룬 ‘궁궐과 상징들’.
그 다음으로 유교 이념과 궁궐의 정치문화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요소인 오례, 관리들의 등급과 경력과 신분을 나타내는 이력서와 같은 품계훈작, 조선의 궁, 궁궐의 중심 건물인 정전, 그리고 조선의 새로운 도읍의 행정부로 조선의 심장과 같다는 한성부를 다룬 ‘궁궐과 제도들’.
마지막으로 왕의 다양한 호칭과 그 의미, 왕과 왕비가 영원히 잠드는 공간인 왕릉,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로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왕실의 유교 사당 종묘,그리고 국왕의 권위의 상징이자 예술적 집합체인 옥새를 뜯어보는 ‘궁궐과 의례들’.

책은 이 모든 것을 너무 깊지는 않되 조선 궁궐 내 문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주요한 부분은 콕콕 찝어 다루어서 조선 궁궐 내의 문화라고는 드라마나 영화로 접한 것이 전부인 입문자가 읽기에 적당해 보인다.

<궁궐과 왕릉, 600년 조선문화를 걷다>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교과서적인 책으로, 사진과 그림자료 그리고 표를 활용하고 번호를 매겨 주제에 대한 여러 내용을 잘 정리했다.
책을 읽으면서 내시와 환관이 같은 직책을 말하는 것인지, 궁궐 여성들을 부르는 여러 호칭들은 무슨 의미이고 어떻게 나뉘는지와 같은 궁금증을 풀 수 있기 때문에 조선 궁궐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호칭이며 그 문화가 복잡하게 보여 대강 넘어가고는 한다면 인물 구분을 명확히 하고 드라마와 영화를 더욱 즐기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사진과 그림 자료는 흑백으로 인쇄되었는데, 그건 둘째 치더라도 한눈에 보아도 선명하지 않은 사진과 그림이 여럿이고 심지어 크기가 작은데도 이미지가 깨져서 대강의 형태만을 알아볼 수 있는 자료가 있다는 점이 책의 완성도 떨어뜨린다.

그리고 앞으로 보완했으면 하는 점이 있다.
앞서 말할 것처럼 이 책은 역사인문 평생교육기관저술교실 사람들이 나름대로 조사해서 쓴 글을 묶은 것인데, 책날개에 있는 지은이들의 한 줄 소개를 보면 궁궐문화원 책임연구원/선임연구원이나 역사문화 전문해설사나 문화유산 해설사나 박물관 전문해설사와 같은 활동을 한 이력이 있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필자도 보인다.

역사를 어느정도 깊이있게 전공한 전문가가 아니라면 이런 책을 쓰지 말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향후 시민들의 평생학습과 생산적 학습은 이런 방향의 성과물로 결과를 맺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한국역사인문교육원 대표 오정윤 씨의 말에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다만 이번에 책 내용의 근거가 되는 문헌의 출처를 자세히 표기했거나 역사를 깊이 있게 전공하고 그 분야에서 탄탄한 경력을 가진 전문가의 감수가 있었다면 책이 더 전문적으로 보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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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 - 하늘·땅·자연·몸에 관한 2천 년의 합리적 지혜
신동원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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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 우리나라의 과학과 의학 기술은 선진국 반열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웬만한 선진국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기도 할 만큼 인정 받고 있지만, 과거 우리나라의 과학과 의학 기술에 대해 생각하면 나만해도 동시대의 다른 나라에 비해 뛰어났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도 우리 전통 의학에서 비롯된 한의학은 과학적이지 않고 양의학(서양 의학)만 못하다는 생각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말이다.
나는 과거 우리나라의 과학문명에는 관심을 갖지 않아 아는 게 별로 없었기 때문에 우리 과학문명의 역사를 폭넓게 다룬 책을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를 손에 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과학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영국 케임브리지 니담 동아시아과학사연구소 방문연구원을 지낸 뒤 현재는 전북대학교 과학학과 교수이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문화재위원, 한국과학사학회 회장, 대한의사학회장, 국제동아시아과학사학회 공동 조직위원장 경험도 있고 책도 여러 권 출간했다.
이렇게 이력을 보면 저자가 한국과학문명사 분야 전문가 중의 전문가라는 것을 알 수 있어 책 내용에 신뢰가 갔고, 또 편향된 사관을 피하고자 결이 다른 여러 선행 학자의 연구를 참고하고 가능한 한 당대사람의 시각에 초점을 두었다는 것도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되었다.

사실 과학문명의 역사에 대한 책이라니 어렵고 지루해 보일 수도 있을 테고, 미주와 참고문헌을 제외해도 845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을 보고 책을 펼치기 전부터 부담스럽게 느낄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경험자로서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일단 책을 펼쳐서 본문을 몇 장만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먼저 이 책은 친절한 교수님이 조곤조곤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문체로 쓰였기 때문에 보통 역사책 하면 떠올리는 것처럼 딱딱하지가 않다.
그리고 한국과학문명사에서 중요하고 흥미로운 부분을 쏙쏙 골라잡아 폭넓게 다루어서 지루하기는커녕 사진과 그림 자료를 함께 보며 읽다보면 어느새 수십 페이지가 넘어가 있을 것이다.
(더 깊게 알고 싶다면 책 말미에 있는 참고문헌을 찾아 읽어보면 된다)

또 본문은 천문학과 수학을 다룬 1부 하늘, 지도와 지리 그리고 광물을 다룬 2부 땅, 농사를 비롯한 생활 그리고 동식물과 곤충에 대해 다룬 3부 자연, 우리의 전통 의학을 다룬 4부 몸, 금속활자와 훈민정음 등 과거 우리 기술의 결정체를 만날 수 있는 5부 기술과 발명, 서양 문물을 마주하고부터 일제강점기 시기의 과학기술까지 다룬 6부 한국 근현대 과학사, 이렇게 주제별로 나뉘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폭넓은 한국과학문명사가 착착 정리된다.

무엇보다 한국과학문명사는 그 이름이 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흥미롭다!

흥미로운 내용이 많아서 하나하나 말하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몇 가지만 꼽아보자면, 역사 속 여성에 관심이 있는 나는 드라마 <대장금>으로 잘 알려져 있는 조선의 여성 전문 의료인인 의녀를 다룬 부분도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유교 이념을 따르던 조선에서는 남녀유별 의식이 팽배했기에 궁중과 양반집 여성의 의료를 담당하는 의녀가 존재했는데, 각 지역의 어린 여종 중에 뽑인 아이들이 십대 초중반 나이에 혜민서에 입학해서 치열한 경쟁 끝에 의녀가 될 수 있었고, 그 중 장금은 중종을 간병하고 어의와 함께 약에 대해 논했다는 기록까지 있을 정도로 뛰어난 의녀였다.
의녀는 여성이 전문적인 일에 종사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았던 유교 사상의 시대에 전문적인 일을 하는 여성이었기에 더 특별하게 보였다.

그리고 백신이 나왔지만 코로나19라는 전세계적인 전염병이 아직 종식되지 않은 만큼 옛사람들의 전염병 대처 방법도 기억에 남는다.
조선 시대에는 돌림병이 몇 해에 한 번씩은 있을 정도로 잦았다는데, 마을에 돌림병이 돌면 우리 조상들은 산 너머 다른 마을에 있는 친척집에서 지내거나 산속에서 생활하며 돌림병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고 한다.
1920년에 콜레라가 생겨 마을 사람들이 산으로 피신한 모습이 담긴 사진이 책에 실려 있는데 그 사진을 보며 그 이전의 모습도 상상해보았다.
물론 천연두를 치료한 그 유명한 허준과 같이 돌림병에 맞서 이겨내려고 노력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장 흥미로워 할 내용은 바로 조선시대 법의학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시체에 남아 있는 단서를 과학적으로 풀어내 살인범을 잡는 CSI같은 미국 드라마에서 만날 수 있는 법의학은 원통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의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 법의학 전통은 고려시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조선 세종 때에 본격적인 기록이 있는데, <신주무원록>과 <증수무원록>이 당시에 법의학 지식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때는 사또가 수사 지휘를 맡았기 때문에 사또는 <무원록> 내용을 통달해야 했다.
물론 시체를 검사하는 직책은 오작인이라고 따로 있었는데, 오작인은 시체에 식초나 술지게미를 바르고 물로 닦아내어 상흔이 드러나게 했다.


(...) 이런 단계를 거쳐, 살인 사건이 난 고을의 수령은 수사관이 되어 몸에 난 흔적을 근거로 어떻게 살해되었는가를 밝히게 됩니다. 자살인가 타살인가, 병으로 죽었는가 독살인가, 왼손잡이한테 칼을 맞았는가 오른손잡이에게 칼을 맞았는가, 물에 빠져 죽었는가 다른 방식으로 죽인 후 물에 빠뜨려 익사를 꾸민 것인가 등을 알아냈죠. 꽤 과학적이죠? 조선시대에 실제로 이렇게 수사가 이루어졌습니다.

p.488


그리고 독약을 먹여 죽였을 경우에는 은수저나 은비녀를 시체의 목구멍에 찔러 넣어 색깔 변화를 확인했다는데, 지금도 잘 알려졌다시피 독에 있는 비소와 황이 은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은이 검게 변하는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또 <신주무원록>에서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초동수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주무원록>에는 피가 섞인 형제나 부모자식을 구분하는 방법으로 각자 피를 뽑아 한 그릇에 떨어뜨렸을 때 피가 섞인 자들이라면 피가 섞이고 아니면 섞이지 않을 것이라는,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내용이 적혀 있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밥상에서 중간중간 입가심이 되어주는 시원하고 아삭한 김치처럼 곳곳에 배치된 이야기를 또 빠뜨릴 수 없는데, 나는 <단군신화> 속 쑥과 마늘에 대한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다.
사람들 대부분은 동굴에서 100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고 곰에서 사람이 된 웅녀 이야기를 알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마늘을 많이 먹기로 유명해서 온라인에서 그에 대한 재미있는 사진이 돌아다니기도 할 정도고, 나도 마늘을 많이 먹는 편이어서 정말 마늘 먹고 사람 된 웅녀의 자손답다고 웃고는 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단군신화>에서 말하는 마늘은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마늘이 아니었다!
식물의 역사에서는 달래와 마늘을 모두 ‘산’이라고 했는데, 달래는 작아서 소산이라 하고 마늘은 커서 대산이라 했다고 한다.
이렇게 마늘과 달래는 명칭이 헷갈리기 짝이 없었던 데다 <단군신화>의 배경이 되는 기원전 2333년에는 우리 땅에 마늘이 없었기 때문에 신화 속 ‘산’은 마늘이 아니라 달래일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단군신화>에서 곰과 호랑이에게 주어진 쑥은 우리가 알고 있는 쑥이 맞지만, 다른 하나의 정체는 마늘이 아니라 달래 혹은 산마늘이었다.
<단군신화>를 떠올릴 때마다 빈속에 마늘을 그렇게 먹으면 사람이 되기 한참 전에 속 다 뒤집어지겠다 싶었는데, 그러면 그렇지, 환웅은 그렇게 잔인한 신은 아니었다.

이렇게 흥미로운 내용이 술술 넘어가는 글로 적혀있으니, 읽다보면 어느새 책장이 훌쩍 넘어가 있어서 일명 벽돌책이라고 불리는 두께임에도 책을 읽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를 읽는 시시간은 비어있는 지식의 곳간을 채우고 우리 역사 속 과학문명에 대한 애정을 쌓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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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시간 시간 속의 역사
고석규 지음 / 느낌이있는책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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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과거, 현재, 미래 시간의 흐름 속에 관통하는 진리, 그것을 읽어내는 것이 역사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p.64


방금 시간은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한다는 의미로 ‘공기와도 같다’는 표현을 쓰려다가 멈칫했다.
어떠한 물질도 없이 비어있는 진공 상태처럼 공기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는 있지만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시간을 흥미로워하는 건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시간을 흥미롭게 생각하는 동시에 가끔은 미워하기도 하는데, 하루에 수십 번씩 시간을 확인하며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 때나 시간이 흐르는 것이 너무 아까워 붙잡고 싶을 때는 시간이 미워진다.
내가 시간을 미워할 때는 대부분 시계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확인할 때라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은 시계를 볼 줄 몰랐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전에도 시계를 볼 줄 아는 어른들에게 시간을 물으며 시간을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내가 시계를 보는 방법을 배운 것은 학교에 다니는 게 슬슬 익숙했졌을 즈음, 그러니까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다.
그렇게 시간을 인식하고 측정할 수 있게 된 그 때부터 시간은 내 생활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고, 때로는 유용하게 때로는 마치 족쇄처럼 영향을 미쳤다.

개인만 해도 이러한데 그렇다면 인류가 시간을 인식하고 시간을 측정한 역사는 어떠하며 또 그러한 것들이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역사 속의 시간 시간 속의 역사>는 먼저 시간의 개념과 다양한 시간관을 소개하며 차근차근 시간의 역사를 전개해나가는데, 서양(서구)의 시간과 시계를 다루는 1부를 읽으면서는 해의 운행을 보고 만든 역법인 태양력의 기원이 되는 고대 이집트부터 율리우스력과 그레고리력을 거쳐 현대에서 사용하고 있는 역법에 이르는 과정, 그리고 해시계와 물시계처럼 자연현상을 활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기계시계가 등장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알 수 있다.

1280~1300년 사이에 처음 제작되었을 거라고 추정되는기계시계는 톱니바퀴와 추를 이용해서 처음에는 다루기 힘들 정도로 컸지만 태엽을 이용하면서 시계 크기가 작아지며 회중시계를 거쳐 손목시계에 이르게 되었고, 이전의 기계시계들에 비해 정확도가 획기적으로 높은 진자시계가 17세기에 탄생한 뒤 시계는 자유추시계와 수정시계를 거쳐 세슘원자시계까지 이르며 오차를 줄이고 정확도를 높였다.
이후로도 기술이 발전해서 오차 없는 절대 시계로 향하고 있다고 하니 이쪽 방면 기술 발전도 어마어마하다.

3만 년에 1초의 오차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 정확도 높은 세슘원자시계는 전세계에 50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정동진 시간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니, 정동진에 가면 해돋이만 보고 올 게 아니라 시간박물관에 가보는 것도 좋겠다.

또 지금 우리가 세계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역법은 서양의 역법에서 비롯되어서인지 1부에서는 국제표준시 GMT(Greenwich Mean Time)와 협정세계시 UTC(Universal Time Coordinated)와 함께 시간의 사회사도 다루는데, 특히 4부 시간의 사회사는 현대인들에게 더 가깝게 느껴지는 내용이라 읽으면서 한번 환기가 되는 듯했고, 세포의 노화를 측정하는 생체시계 텔로미어와 노화의 비밀, 그리고 2000년 밀레니엄에 대한 글은 더욱 흥미로웠다.

2부에서는 조선의 역서와 시계를 중심으로 조선의 역법을 다루는데, 2부 내용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저자 소개를 해야겠다.
이 책의 저자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모두 마치고 타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현재는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으로 탄탄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 말은 2부가 저자의 전문분야에 더 가깝다는 것이고, 안 그래도 요즘 조선시대에 관심이 가던 차였기 때문에 2부는 더욱 기대하며 읽었다.

과거 전통사회에서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추산하여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일은 왕이 해야 할 중요한 책무이자 왕에게만 허락되었다.
이 일이 중요한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당연히 농업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는 하늘이 현상으로 인간세계 일을 알려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후자의 믿음 때문에 해와 달이 잡아먹히는 일식과 월식 예보는 국가 차원에서 중시되며 천체 관측과 천문 역법 발달에 힘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법은 달력을 만드는 역서와 시각을 알려주는 보시 기능으로 구분되기에 2부에서 조선의 시간은 역서와 시계로 나뉘어 소개된다.
처음에는 역서가 책인 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달력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조선시대에는 달력이 역서나 책력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 역서를 다른 나라의 것을 받아들여 사용한 시절도 있었지만 지리상의 차이 때문에 우리와 맞지 않아 우리 실정에 맞는 역서의 필요성을 느꼈던 데다가 자주적인 사고가 더해져 본국력을 만들게 되었고, 교정에 교정을 거쳐 독자적인 역법의 본국력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책에 담겨있다.

그렇다면 지금 내 책상 위에 있는 달력은 언제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것일까?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양력은 1부에서 보았던 그레고리력으로, 고종 재위 시절인 1896년 1월 1일부터 사용했다.
사실 음력(태음태양력)의 정확성이 높아서 일상에서 사용하는데 부족함은 없었기 때문에 양력 사용은 단지 서양 근대문물 수용과정일 뿐이었다.
전통 역서의 단절은 역시나 일제의 식민지 침략에 의해 발생했고, 지금 나와 여러분의 책상 위에 있는 달력을 포함하여 대한민국 달력은 어떤 디자인으로 만들어지든간에 국립천문대인 한국천문연구원 배포 역서 내용대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렇게 조선의 역법과 역서를 다룬 장을 지나면 해시계 앙부일구, 물시계 자격루, 천문시계 혼천의와 혼천시계처럼 학창시절 역사 교과서에서 봐서 이름만은 알고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잊어버린 시계부터 배웠지만 기억을 못하는 건지 아니면 안 배운 건지 이름도 낯선 흠경각 옥루와 같은 시계까지 조선의 여러 시계를 만날 수 있다.
과연 이 장에서는 세종의 이름이 진하게 묻어나는데, 19세기 천문학의 한계까지 이야기한 것이 좋았다.

시간과 역사는 모두 내가 흥미로워하는 주제인만큼 <역사 속의 시간 시간 속의 역사>도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조선의 역서와 시계를 통해 우리 시간의 역사를 알게 되니 음력에 대한 내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도 명절이나 생일 등 음력이 쓰이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는데, 나는 음력으로 기념일을 챙기는 경우를 번거롭다고만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앞으로도 지금처럼 음력을 사용했으면 좋겠고, 더 나아가 내 생일도 음력으로 챙기고 싶은 마음가지 생긴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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