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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이야기
메이 싱클레어 지음, 송예슬 옮김 / 만복당 / 2021년 2월
평점 :
이 책 <기이한 이야기>에는 20세기 초 영국에서 널리 알려졌던 소설가이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작품에 접목시킨 최초의 작가 중 한 명이라는 메이 싱클레어가 쓴 일곱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었다.

제일 앞에 위치한 ‘그들의 불이 꺼지지 않는 곳’에서는 오스카 웨이드와 불륜을 저지른 해리엇 리가 마주하게 되는 사후 세계를 볼 수 있고, ‘징표’는 남편 도널드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올케 시슬리의 유령이 보이는 시누이 헬렌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죽은 시슬리가 남편 도널드를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세 번째로 수록된 ‘크리스털의 결점’은 100페이지가 넘어 이 책에 수록된 단편소설 중 가장 길이가 긴데, 소설의 주인공 애거사 버럴은 어느 날 다른 사람의 몸에 닿지 않고 심지어 멀리 있어도 그 사람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게 되고 그 능력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면서 위험에 처하게 된다.
작가 메이 싱클레어는 애거사의 힘이 발휘되는 과정과 그 힘의 정체에 대해서 섬세하게 묘사했다.

‘증거의 본질’에서는 사랑하는 아내 로저먼드가 세상을 떠난 후 폴린 실버와 재혼한 에드먼드 마스턴에게 전처 로저먼드의 유령이 찾아와 그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죽은 자가 알게 된다면’은 사랑에눈이 멀어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게 된 오르가니스트 윌프리드 홀리어 이야기다.
“오, 제발. 그런 말 말아요. 당신 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 윌프리드.”
“알고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처럼 이야기하시는걸요. 만일 죽은 자가 알게 된다면.......”
죽은 자가 알게 된다면.......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그의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아들이 자기 죽음을 바랐고 그 소망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갔음을 알게 된다면.......
죽은 자가 알게 된다면.......
p.253‘희생자’에서는 폭력성 있는 남자 스티븐 애크로이드가 결혼까지 앞두었던 연인 도시가 자신을 떠나자 그 원인을 제공했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고용주 그레이트헤드 씨를 치밀한 계획 하에 죽이는데, 살인 과정이 주는 긴박함 때문에 일곱 개의 단편소설 중에서도 페이지가 가장 빠르게 넘어갔으며 살인이라는 흉악한 범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일곱 편의 소설 중 가장 철학적 냄새가 짙고 복잡한 세계관을 가진 ‘절대적 세계의 발견’을 읽으면서는 형이상학적 진리를 좇으며 살아온 스폴딩 씨가 마주한 죽음 이후의 세계에 방문할 수 있다.
스폴딩 씨가 마주한 사후세계는 책의 첫 번째 단편소설에서 해리엇 리가 본 사후세계와는 또 다르다.
해리엇 리가 본 사후세계는 지옥에 가까운 반면에 스폴딩 씨가 있는 사후세계는 천국에 가까우며 더욱 정신적이고 철학적이다.
스폴딩 씨는 이 사후세계에서 그렇게 동경하던 철학자 이마뉘엘 칸트를 만나 정신적 상태 그 자체인 이 특별한 세계의 원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선형적으로 확장하는 일차원적 시간이 아닌 삼차원의 입체적 시간을 경험하는데, 나도 스폴딩 씨가 보고 느낀 것을 작가가 묘사한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시간의 어마어마한 평면들이 교차하는 것을 보았다. 마치 한 공간의 평면들이 돌아가며 뒤섞이는 것과 같았다. 다른 시공간들이 일어났다가 쓰러지고, 둘러싸고 둘러싸였다. 그리고 거대한 장면 속 작디작은 부분에, 탄생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자신의 삶이 곧 다가올 천상에서의 삶과 함께 담겨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안에서 보면, 한때는 너무나도 가혹하고 참기 힘들었던 엘리자베스의 불륜도 사소하고 별것 아닌 사건이었다.
p.341이렇게 <기이한 이야기>에서는 유령, 영혼, 사후세계,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지만 공포심을 자아내려는 목적이 아니고 철학적이기 때문에 밤에 읽어도, 오늘처럼 비가 내려 어둑어둑한 날에 읽어도 (이런 날에 잘 어울리기는 하다) 무서운 느낌이 전혀 없으니 무서운 이야기를 못 읽는 독자가 읽어도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뷸륜 관계가 나오는 단편소설이 몇 편 있어 불륜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그 부분이 조금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초자연적 현상을 소재로 한 20세기 초 영국 소설의 독특한 분위기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