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커버
아마릴리스 폭스 지음, 최지원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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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이 있다면 바로 저자 아마릴리스 폭스의 삶이 아닐까 싶다. 20대 초반에 CIA 요원으로 발탁되어 본부에서 공작팀을 지원하는 분석팀을 거쳐 공작팀 요원으로 활동하다가 예술품 사업가라는 위장 신분으로 가장 비밀스럽고 위험한 작전을 펼치는 비공식 요원으로까지 활약했던 1980년생 여성의 회고록이다. 왜 출생연도를 굳이 언급했는가 하면 이 비범한 삶을 살았던 주인공과 동시대인으로서 그때 나는 무엇을 했는지 하나하나 생각해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아래 여동생이 1980년생이라서 더욱 실감이 났다.

아는 역자님이 회고록 장르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나 역시 생생하고 촘촘한 사실의 기록인 회고록을 좋아한다. 자서전이라 해도 좋고 논픽션이라 해도 좋다. 이 저자는 필력 또한 보통이 아니다. 사건의 묘사와 함께 실제로 모든 일을 겪었던 당사자이기에 가능한 심리적인 갈등과 철학까지 허구의 문학이라면 이렇게 사실적으로 기록해낼 수 없었을 것 같다. 사실 너무 자세한 묘사와 설명으로 인해 이슈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나는 스파이물, 특히 언더커버 즉, 잠입이나 변장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에 열광하는 타입이고 게다가 여성으로서 뛰어난 지력과 신체 능력, 배포까지 겸비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스파이의 비일상적인 삶을 엿보고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의 성장배경, 그리고 대학 합격 후 아마도 Gap year를 버마에서 보내면서 저자의 사상을 형성했던 남다른 경험들, 그리고 옥스포드와 조지타운 대학 대학원을 거쳐 CIA 요원으로 발탁되어 훈련을 받으며 어엿한 첩보요원으로 거듭나는 모습이 너무나 현실감이 없을 정도로 멋지고 대단했다. 그러나 그녀가 한 인간으로서, 한 여성으로서, 더 나아가 한 엄마로서 고뇌하고 얻게 된 신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테러와 파괴의 의외의 원인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관한 매우 통찰력 있는 일화가 있었다. 테러의 원인이 거창한 정치외교적, 혹은 군사적 이유가 아니라 아끼는 펜을 빼았겼거나 소중한 식구에게 선물받은 것을 짓밟히는 등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소중한 것, 자신의 인격을 무시당하고 짓밟힌다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 중대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개인적인 삶에서나 국가적인 운명에 있어서나 깊이 새겨볼 만 한 부분이라고 생각됐다. 피와 살이 가진 인간이라는 존재, 이성과 신념과 함께 감정을 가진 다면적인 존재에 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매일의 삶 속에서 누군가를 경멸하거나 얕보거나 소중한 것을 짓밟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며 숙연해졌다.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지켜지고 있는 세계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해주는 건 이렇게 특별한 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하루였다. (329쪽)

우리가 취직 걱정을 하고 연애를 하고 가정을 꾸리는 일상의 삶을 살아갈 때 누군가는 핵전쟁을 막고 핵테러를 막기 위해 생명을 거는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그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희생으로 '특별한 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하루'를 누릴 수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평소와 그리 다를 것 없었던 2001년 9월 11일, 그 누구도 상상도 하지 못할 테러가 세계의 경제 중심지 뉴욕에서 발생하여 전 세계를 큰 충격에 빠뜨렸던 것을 기억한다. 그 전날과 그리 다를 바 없었던 날이었는데 한순간 세계는 통곡에 빠졌다. 어제의 평화가 오늘의 평화를 보장하지도 않고, 오늘의 평화가 내일의 평화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어제, 오늘의 평화 역시 한순간에 빼앗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으로 지켜졌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테러범들은 테러를 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가 더없이 소중하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가슴 찡한 인간애와 모성의 위대함

공작원을 포섭하는 과정에서 '취약성'을 파고든다. 즉, 경제적 어려움, 가족의 질병 등 제안을 거절할 수 없는 약한 부분을 가진 사람을 타겟으로 하지만 저자는 그보다 더 '고매하고 휴머니즘적인 인간의 본질적인 선의'를 믿으며 그런 '초자아(superego)'적 측면에서 호소한다. 진심은 통한다고 믿는다.

예술품 사업가라는 위장 신분으로 상하이에서 거주할 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중국인 도우미 '아이' 씨와도 위장 생활 중에 드러낸 진심이 마주쳐 공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테러를 꾀하는 집단의 리더를 만나서 대면했을 때는 그의 4개월 된 자녀가 천식을 앓고 있는 듯하자 정향유를 내밀며 부모 대 부모로 진심을 보여준다. 그 상대 역시 그 마음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 정말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장면 중 하나이다.

정말 거의 머신 수준에 가까웠던 주인공은 딸 조이의 임신, 출산, 육아와 함께 첩보 작전을 병행했다. 그리고 조이와 같은 아이들이 위협받지 않고 그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으로 딸을 떼어놓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작전을 수행하러 떠난다. 같은 엄마로서 가슴이 찡했다.

*

CIA를 떠난 후 그녀는 저널리스트이자 방송인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게다가 <캡틴 마블>의 히로인 브리 라슨 주연의 영화로 제작된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부디 우리의 특별한 일 없는 아름다운 일상이 지켜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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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 - 세계 문명을 단숨에 독파하는 역사 이야기 30개 도시로 읽는 시리즈
조 지무쇼 엮음, 최미숙 옮김, 진노 마사후미 감수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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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도시를 사랑했다. 도시의 역동성, 편리함, 익명성 모두 사랑한다. 어렸을 때는 자연과 아름다운 풍경을 좋아하기 때문에 한가로운 남부 프랑스의 전원풍경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대학교에 진학하고 외국에 나가보고 경험하면서 나는 도시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연이 잘 가꿔진 도시면 금상첨화이다. 서울과 도쿄와 같은 메가시티, 시애틀과 고베 같은 중형 도시, 그리고 싱가포르 같은 도시국가까지 매료되었다.

이 책은 서른 개의 도시를 중심으로 그 도시를 둘러싼 세계사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는 책이 있다. 하루에 한 도시씩 골라볼 수 있으며,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없이 먼저 읽고 싶은 곳부터 골라볼 수 있다는 즐거움과 편리함도 있다.

1년 전쯤, 이 책이 일본에서 출간되자마자 아마존재팬에서 원서로 보고 이 책을 번역 기획해보고자 하는 생각도 했으나, 대형 출판사에서 발 빠르게 나올 것이라는 예감이 이미 들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교과서를 통해 시계열로 배우는 정통 세계사의 시각과는 좀 다른 앵글에서 한 가지 주제를 통해 세계사를 바라보는 책들이 트렌드가 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도시를 주제로 삼다니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목차를 보면 서른 개 도시와 표제어들이 나온다. 아무래도 가본 곳을 찾아보게 되는데 몇 곳 없다. 교토, 베이징, 상하이, 싱가포르 정도이다.

 

동경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뉴욕의 이야기를 읽어보았다. 세계 최첨단의 패션과 금융의 도시로서의 뉴욕의 위상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대서양 건너 유럽을 마주보고 있는 연안의 항구로서 뉴욕을 통해 유럽인들이 유입되었고 복잡다단한 유럽과의 관계 속에서 최초의 미국 수도였다가 지금은 경제 중심지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뉴욕에 관해 아는 게 많지 않았다. 9/11 테러, 자유의 여신상, 센트럴 파크, 수많은 미술관 등 가게 된다면 가보고 싶은 여행지만 머릿속에 새겨져 있을 뿐, 그 도시의 역사는 피상적으로밖에 알지 못했다.

싱가포르는 여행갔던 곳 중에서 가장 좋은 인상을 준 곳이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 세 곳, 시애틀, 도쿄, 싱가포르 중 앞의 두 곳은 '거주'를 해봤던 곳이지만 싱가포르는 단 3박 4일 여행을 갔을 뿐인데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다. 아래 사진처럼 마천루가 늘어선 깨끗한 도심, 활기찬 도시 분위기, 편리한 교통수단, 친절한 사람들 모두가 맘에 들었다. 싱가포르의 평균인구가 젊어서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에스컬레이터가 무지하게 빠르게 오르내렸던 기억이 가장 신기했다. 저래서야 노인들이나 아이들은 무사히 계단에 올라타고 내리려나 싶었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만난 여고생이 너무 친절하여 이런저런 얘길 하며 점심 먹을 만 한 곳도 소개받았고 다들 영어를 잘하여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싱가포르에서는 '래플스'가 들어가면 일단 최고급이라고 보면 된다. 이 책을 보면 그 답이 나온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토마스 래플스가 처음 싱가포르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싱가포르를 동남아시아 무역의 중심지로 부상시킨 사람이었다. 싱가포르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남동생에게 언뜻 들었던 것 같은데 책을 통해 역사를 볼 수 있으니 더욱 흥미로웠다. 싱가포르가 영국의 식민지였는지도 몰랐으니 나의 무식함이 부끄러울 뿐이다. 그저 싱가포르의 표면만을 봤던 것 같다.

과거에 영화를 누렸으나 지금은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도시들, 우리에겐 익숙치 않지만 세계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여러 도시들을 간접 경험한 것 같다. 곁에 두고 심심할 때 한 도시씩 읽어도 좋을 듯하고, 여행 계획이 있다면 사전 조사 겸하여 도시의 역사를 공부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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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말 - 2,000살 넘은 나무가 알려준 지혜
레이첼 서스만 지음, 김승진 옮김 / 윌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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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나무는 나에게 사랑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어디 가든 나무를 유심히 살피고 아무도 묻지 않지만, '나의 나무'를 한 그루씩 정해놓곤 했다. 특히, 외국에 나가면 우리나라의 식생과 달리 이국적인 나무들을 보면 매료되어 바라보곤 했다. 그렇기에 '나무의 말'이라는 제목과 '2,000살 넘은 나무가 알려준 지혜'라는 부제에 자석에 이끌리듯 끌렸다.

이 책은 저자가 남극에서 사막까지 10년간 세계를 다니며 2,000살이 넘은 나무들, 때로는 이끼, 잡목 등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긴 책이다. 예술과 과학을 날실과 씨실로 수 놓듯이 경계를 넘나들며 기록한 귀중한 자산이다.

어떤 나무들이 나오나 궁금하여 목차를 살펴보는데 성경에 감람나무로 기록되어 있는 중동의 대표적인 나무인 '올리브 나무',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원령 공주>의 모티브가 된 야쿠시마의 '조몬 삼나무',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밥 나무', 그리고 독이 있으나 코알라는 그 독을 해독할 수 있다고 하는 이름도 예쁜 '유칼립투스 나무' 정도만 아는 이름이었다.

                            

영원이라는 거짓 감각, 불멸이라는 환상


"굉장히 긴 수명을 가진 생물들은 우리가 영원이라는 거짓 감각을 믿게 만든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변하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장기적인 생각 없이 현실의 일상에 쉽게 파묻혀버린다. 하지만 오래 살았다고 해서 불멸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두 번째 기회가 있다 해도 그 기회가 마냥 기다려주는 것도 아니다." (111쪽)

생물이지만 동물과 같은 역동성이 눈에 보이지 않기에 식물, 특히 크게 오래된 나무는 우리에게 영원과 불멸을 꿈꾸게 하는 것 같다. 아니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을 거라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3천 살까지 살았다고 해서 3천 5살까지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약에 취한 젊은이들의 실화로 인해 3천 년의 역사를 가진 나무가 한 줌의 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상원의원 나무를 죽게 했느냐고? 필로폰에 취해 공원에 몰래 들어와 나무 안으로 들어간 20대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은 마약을 더 잘 보려고 성냥(어쩌면 라이터)를 켰고 갑자기 상원의원 나무의 몸통은 굴뚝이자 땔감이 되었다." (113쪽)

이 부분을 읽으며 정말 울고 싶었다. 그들에게 따지고 싶었다. 자연과 공존하는 것이 청지기된 우리 인간의 책무이자 권리일 텐데 훼손하고 파괴하는 주된 범인이 인간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허무함.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었기에 내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우리에게 경각심을 주는 것 같다. 끝이 있다는 것. 그 끝이 언제일지 모른다는 것. 유한한 인간이 겸손해야 할 이유인 것 같다. 다행히 이 나무는 나뭇가지 일부를 잘라내어 접붙이기에 성공하여 제2의 삶을 살 기회를 얻었다고 하니 한 줄기 위안으로 삼아본다.

극단적인 조건 '덕분에'


"브리슬콘은 극단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생존해온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조건 '덕분에' 생존했다." (57쪽)

우리의 짧은 식견과 감상에 젖은 피상적인 시각으로는 눈물이 날 만큼 척박한 환경일지라도 그 척박한 환경이기에 생존했던 식물들이 존재한다. 예전에 애국가가 나올 때 나오는 영상 속의 바위를 뚫고 뿌리를 내린 동해안의 소나무처럼 전 세계의 식물들도 극단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생존한 것이 아니라 그 조건 덕분에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생존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숭고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되새겨보게 된다.

남극에서 사막까지


저자는 집세 낼 돈이 없으면서도 이 취재를 위해 전 세계를 종횡무진 발길을 옮겼다. 바다 속 생물을 보기 위해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고 남극에서 맨 몸으로 바다에 뛰어들고 산호에 찔리고 목숨을 위협하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깨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2천 살이 넘는 지구상의 가장 오래된 식물들을 찾아다니는 이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 노력과 투지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인류 역사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쉽게 방에 앉아서 읽어도 되는 걸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모험 정신이라고는 약에 쓰려 해도 없는 사람이지만 나의 분야에서 저자와 같은 투지를 발휘해 보고 싶다는 소망을 감히 품어보았다.

"고령 생물들은 우리를 심원한 시간에 연결시켜준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찰나적인 감각, 생각, 감정에 묶여 있고 그것들로 구성돼 있다."(186쪽)

찰나적이고 유한한 존재인 우리가 영원과 불멸의 존재는 아니지만 2천 살이 넘은 나무들을 보며 그 말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이렇게 인생의 10년 이상을 투자한 매개자의 역할을 해 준 저자에게도 무한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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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일본 경제의 미래 -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가 찾은 경제 위기 돌파 전략
데이비드 앳킨슨 지음, 임해성 옮김 / 더난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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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에 관한 책들을 보며 우리나라 경제의 미래를 점쳐보고 대응책에 관한 통찰력을 한발 앞서 얻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특히, 이 책은 일본에서 30년 이상의 시간을 보낸 일본을 잘 아는 서양인, 그리고 경제금융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저자의 시각이라 더 관심을 끌었다.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일본 드라마나 문학을 좀 본다는 사람은 모두 보았을 법한 <한자와 나오키>에서 한자와가 은행의 횡포로 자살한 한자와의 아버지를 회상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티타튬으로 만든 것이었던가? 하여간 가볍고 작은 나사를 손에 쥐고 이 작은 나사가 일본의 경제의 버팀목이 되어 왔다는 독백이다. 그걸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던 기억이 있다. 일본식의 감성팔이 중 하나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 역시 우리 부모님 세대의 뼈를 깎는 노력과 희생으로 전후 전 세계에 유례 없는 성장을 이루어냈기에 그 감정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에 눈물이 핑 돌았던 것 같다.

일본의 경제를 든든히 뒷받침해왔다고 생각하는 중소형 공장들 주로 대기업의 하청 및 재하청을 맡아온 영세공장들은 지금 시대에는 설 자리를 잃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옛 것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 변화를 싫어하는 일본인의 습성은 미래와 과거가 공존하는 듯한 일본 특유의 독특한 문화 및 거리 풍경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또한 관광자원이 된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일본 여행을 하는 한국인들 중 그런 특유의 정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일본의 고령화와 저출생이 맞물려 지금까지와 같은 생산성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저자는 고차원 자본주의 즉 노동력에 의지하는 박리다매 식의 경제가 아니라 고부가가치를 창출하여 좋은 것을 비싸게 받고 파는 자본주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2008년 리만 쇼크 이후 전 세계는 돈을 마구 찍어내어 푸는 양적 완화를 시행해 왔다. 양적 완화를 통해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이고 시중은행에 돈이 풀리면 그것을 주택담보대출 수요를 높이고 부동산 시장의 활황을 통해 경제가 선순환되어야 하는데 일본은 이미 집 가질 사람들은 다 가졌고 현재 청년층은 낮은 임금 수준으로 꿈도 못 꾸는 시대가 되어 양적 완화의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한다. 정부 주도로 최저임금을 높여서 기업이 생산성을 향상할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의한다. 자율적으로 맡겨서는 개별 기업이 그렇게 시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관하여 반대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 인재평가는 세계 4위인데 임금 수준이 너무 낮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이 일본보다 높던데 어떤 근거로 산출해냈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2년간 급격히 최저임금을 높였기 때문에 단순 수치상으로 그렇게 나타난 것인지, 정말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체감상 그렇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최저임금 인상은 좋지만 최근 우리 정권에서 시행한 것처럼 급격히 시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몇 년에 걸쳐 4, 5%씩 인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리어 부작용이 나타나 해고당하는 사람들이 늘고 심지어 고용주조차 불안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등은 그리 큰 영향을 받지 않을지라도 자영업자나 대기업의 하청을 하며 비용 감축의 압박을 받는 중소기업 등은 결코 쉬비 않고 심지어 존폐 위기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직접 와서 돈을 쓰는 관광이야말로 최고의 수출이라는 의견에 우리나라에서 귀를 기울이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와 그에 이은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전 국토가 초토화되어 전통이나 유서 깊은 문화라고 할 만한 것은 많이 소실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싱가포르나 홍콩 등을 방문할 때 전통을 보려고 방문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나라의 강력한 한류 붐과 깔끔하고 정성스러운 서비스, 편리하고 안전한 사회 인프라 등에 좀 더 주력하여 아시아부터 시작하여 관광객을 유인했으면 좋겠다. 무조건 저렴하고 싼 맛에 오는 곳이 아니라 뭔가 추억을 쌓을 수 있는 문화 공간이 되면 좋겠다. 소형 뮤지컬 등을 육성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예전에 일본인 지인이 한국의 뮤지컬을 너무 좋아해서 몇 번이고 와서 본다고 했다. 우리나라만의 문화의 강점으 분명히 있다. 자금력이 필요한 대형 클래식 콘서트, 미술 전시회는 일본이 역시 강하지만 우리만의 고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문화가 있을 것이다. 일본을 많이 다녀본 개인적인 경험으로 분명히 일본은 매력이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2011년 동북대지진과 방사능 유출 등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위험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고령화로 인해 성인 교육에도 더욱 주력해야 한다고 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청년도 일할 자리가 없는데 중장년이 일할 곳을 만들려면 더 궁리가 필요할 것 같다. 청년층의 일자리도 문제이지만 사실 경제의 중추가 되어야 할 30대 후반~40대의 일자리를 지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일본에서 그들은 가장의 위치이고 대부분 30년 주택담보대출을 끼고 집을 사므로 그들이 직장을 잃으면 대출금 상환이 어려워져 국가 전체의 경제가 흔들릴 수 있다. 평생 교육으로서 어떤 교육을 시켜야 할지도 국가적 차원에서 고민해 볼 문제 같다.

내가 20년 이상 지켜본 일본과 서구인의 시각을 비교하며 읽는 것도 무척 재미있었다. 일부 자료들의 기준이나 신뢰성에 좀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지만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충분히 의미있었던 것 같다. 세계 최악의 부채를 떠안고 있고 이미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일본를 타산지석 삼아 우리나라의 정책을 잘 수립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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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쌍곡선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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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끝까지 실망을 주지 않은 멋진 미스터리였다.



도쿄의 강도 사건과 도호쿠 산골짜기 호텔의 연쇄살인사건이 쌍곡선을 그리며 독자적으로 진행되다가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 짜임새 있고 복잡하지 않고 불공평하지 않은 고전 본격 미스터리이다.



일란성 쌍둥이를 소재로 마술 영화 《프레스티지》를 보고 진실은 의외로 단순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이 출간된 1970년대에는 대단히 참신하고 충격적인 트릭이었을 것 같다.



도쿄에서 발생하는 연쇄 강도 사건. 범인은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세 번째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이 움직이고 용의자로 20대 중반 남성을 잡는다. 그런데, 그와 똑같이 생긴 남성이 있었다. 피해자들과 경찰은 모두 혼란에 빠진다. 둘은 일란성 쌍둥이였고 이들의 범행인지는 알지만 정확히 누구인지는 특정할 수 없다. 의심만으로는 체포할 수 없다는 것을 악용한 영악하고 대담한 범행이었다.



한편, 정체불명의 초대장을 받고 도호쿠 지역의 외딴 산간지방의 호텔에서 스키여행을 하러 온 6명의 남녀. 곧 바깥세상과의 모든 소통의 끈이 끊기고 이들은 한 명씩 죽어나가고 그럴 때마다 볼링핀이 하나씩 사라진다.



전혀 상관이 없어보이는 두 사건이 평행선처럼 펼쳐지다가 만난다.



*



70년대 레트로 감성 물씬 나는 소설이다. 스마트폰, 네비, 위치추적시스템 없이 그 시절에는 어떻게 수사하고 범인을 검거했을까?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형식을 빌어서 진행했지만 니시무라 교타로만의 방식으로 무척 독특하고 참신했다. 정말 즐길 수 있는 미스터리였다. 사회파 미스터리도 메시지도 있고 재미있지만 정통 미스터리랄까, 본격 미스터리는 정말 너무 재미있다. 게다가 밀실살인은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이다.



일란성 쌍둥이라는 소재가 더 이상은 먹히지 않겠지만 충분히 반전이었다. 처음 본 사람은 충분히 헷갈릴 수 있을 듯하다. 초등학교 때 동네 친구 중 어른들도 다 헷갈린다고 할 만큼 닮은 일란성 쌍둥이 친구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절대 헷갈리지 않았다. 분명 그렇게 닮은 쌍둥이도 드물긴 할 테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그리고 수십 년 지나고 우연히 둘 중 하나를 지하철에서 봤는데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강도를 당하는 경황없는 중에 본 사람이라면 둘을 대조하면 알아보지 못하는 게 당연하겠다.



그런데 살인의 동기... 그 정도로 이 정도의 연쇄살인을 하려나? 사회심리학 용어 중 '제노비스 신드롬%이라는 게 있는데 뉴욕에서 괴한에서 구타당하다 죽은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있다. 그걸 지켜보던 30여명의 사람들은 외면했다. 명백히 그들은 칭찬받을 수는 없는 자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해당해야 할 당위성이 있을까? 음, 난해하다.



어쨌든 컬러TV가 자랑이던 70년대 본격 미스터리 색다른 맛의 즐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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