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말 - 2,000살 넘은 나무가 알려준 지혜
레이첼 서스만 지음, 김승진 옮김 / 윌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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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나무는 나에게 사랑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어디 가든 나무를 유심히 살피고 아무도 묻지 않지만, '나의 나무'를 한 그루씩 정해놓곤 했다. 특히, 외국에 나가면 우리나라의 식생과 달리 이국적인 나무들을 보면 매료되어 바라보곤 했다. 그렇기에 '나무의 말'이라는 제목과 '2,000살 넘은 나무가 알려준 지혜'라는 부제에 자석에 이끌리듯 끌렸다.

이 책은 저자가 남극에서 사막까지 10년간 세계를 다니며 2,000살이 넘은 나무들, 때로는 이끼, 잡목 등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긴 책이다. 예술과 과학을 날실과 씨실로 수 놓듯이 경계를 넘나들며 기록한 귀중한 자산이다.

어떤 나무들이 나오나 궁금하여 목차를 살펴보는데 성경에 감람나무로 기록되어 있는 중동의 대표적인 나무인 '올리브 나무',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원령 공주>의 모티브가 된 야쿠시마의 '조몬 삼나무',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밥 나무', 그리고 독이 있으나 코알라는 그 독을 해독할 수 있다고 하는 이름도 예쁜 '유칼립투스 나무' 정도만 아는 이름이었다.

                            

영원이라는 거짓 감각, 불멸이라는 환상


"굉장히 긴 수명을 가진 생물들은 우리가 영원이라는 거짓 감각을 믿게 만든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변하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장기적인 생각 없이 현실의 일상에 쉽게 파묻혀버린다. 하지만 오래 살았다고 해서 불멸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두 번째 기회가 있다 해도 그 기회가 마냥 기다려주는 것도 아니다." (111쪽)

생물이지만 동물과 같은 역동성이 눈에 보이지 않기에 식물, 특히 크게 오래된 나무는 우리에게 영원과 불멸을 꿈꾸게 하는 것 같다. 아니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을 거라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3천 살까지 살았다고 해서 3천 5살까지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약에 취한 젊은이들의 실화로 인해 3천 년의 역사를 가진 나무가 한 줌의 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상원의원 나무를 죽게 했느냐고? 필로폰에 취해 공원에 몰래 들어와 나무 안으로 들어간 20대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은 마약을 더 잘 보려고 성냥(어쩌면 라이터)를 켰고 갑자기 상원의원 나무의 몸통은 굴뚝이자 땔감이 되었다." (113쪽)

이 부분을 읽으며 정말 울고 싶었다. 그들에게 따지고 싶었다. 자연과 공존하는 것이 청지기된 우리 인간의 책무이자 권리일 텐데 훼손하고 파괴하는 주된 범인이 인간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허무함.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었기에 내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우리에게 경각심을 주는 것 같다. 끝이 있다는 것. 그 끝이 언제일지 모른다는 것. 유한한 인간이 겸손해야 할 이유인 것 같다. 다행히 이 나무는 나뭇가지 일부를 잘라내어 접붙이기에 성공하여 제2의 삶을 살 기회를 얻었다고 하니 한 줄기 위안으로 삼아본다.

극단적인 조건 '덕분에'


"브리슬콘은 극단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생존해온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조건 '덕분에' 생존했다." (57쪽)

우리의 짧은 식견과 감상에 젖은 피상적인 시각으로는 눈물이 날 만큼 척박한 환경일지라도 그 척박한 환경이기에 생존했던 식물들이 존재한다. 예전에 애국가가 나올 때 나오는 영상 속의 바위를 뚫고 뿌리를 내린 동해안의 소나무처럼 전 세계의 식물들도 극단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생존한 것이 아니라 그 조건 덕분에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생존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숭고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되새겨보게 된다.

남극에서 사막까지


저자는 집세 낼 돈이 없으면서도 이 취재를 위해 전 세계를 종횡무진 발길을 옮겼다. 바다 속 생물을 보기 위해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고 남극에서 맨 몸으로 바다에 뛰어들고 산호에 찔리고 목숨을 위협하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깨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2천 살이 넘는 지구상의 가장 오래된 식물들을 찾아다니는 이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 노력과 투지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인류 역사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쉽게 방에 앉아서 읽어도 되는 걸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모험 정신이라고는 약에 쓰려 해도 없는 사람이지만 나의 분야에서 저자와 같은 투지를 발휘해 보고 싶다는 소망을 감히 품어보았다.

"고령 생물들은 우리를 심원한 시간에 연결시켜준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찰나적인 감각, 생각, 감정에 묶여 있고 그것들로 구성돼 있다."(186쪽)

찰나적이고 유한한 존재인 우리가 영원과 불멸의 존재는 아니지만 2천 살이 넘은 나무들을 보며 그 말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이렇게 인생의 10년 이상을 투자한 매개자의 역할을 해 준 저자에게도 무한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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