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전 - The Front Lin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무더운 여름을 날려버릴 스펙타클한 영화 장르를 꼽는다면 'SF 액션 스릴러'가 단연코 생각난다. 그런데 그 액션이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을 다룬 영화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바로 사람의 목숨이 한두 명에 그치는 게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선 수없이 죽여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그 자체를 꺼려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영화라서 가능한 것이라 하지만 보통의 전쟁물들은 허구 보다는 실제 역사성을 띄고 있어 이마저도 쉽지 않다. 즉 전쟁이라는 장르 자체가 근원적으로 다가오는 깔끄장한 기운을 주는 동시에, 그 전쟁으로 인해 상흔을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다 보면 영화는 꽤 비장해지고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개봉한 한국 전쟁영화 '고지전'은 이른바 책무를 다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보기 전부터 또 전쟁영화라서 다소 고리타분하고 너무 메시지적이지 않을까.. 또 무더운 여름에 걸맞은 팝콘무비식 오락영화가 아니라서, 괜히 센치해져 우울해지지 않을까하는 다소 걱정과 우려가 있었지만, 영화는 단독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 모든 것을 타파하고 남을 정도로 꽤 신선하게 한국 전쟁영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보듯, 기존의 전쟁영화와는 궤를 달리한 느낌을 단박에 받게 된다. 즉 전쟁영화 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보여준 방식과는 다르게, 아니 기존의 것을 답습하면서도 무언가 리얼리티를 살리고, 내가 살고자 발버둥치는 그 이면에 휴먼을 담아내며, 그곳 전장터에서 쓰러져간 우리시대 전우들의 날것 그대로 모습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이 영화 '고지전'은 새롭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어떤 내용일까? 먼저 영화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1951년, 우리가 알고 있던 전쟁은 끝났다 이제 모든 전선은 ‘고지전’으로 돌입한다!

1953년 2월, 휴전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는 가운데 교착전이 한창인 동부전선 최전방 애록고지에서 전사한 중대장의 시신에서 아군의 총알이 발견된다. 상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적과의 내통과 관련되어 있음을 의심하고 방첩대 중위 ‘강은표’(신하균)에게 동부전선으로 가 조사하라는 임무를 내린다. 애록고지로 향한 은표는 그 곳에서 죽은 줄 알았던 친구 ‘김수혁’(고수)을 만나게 된다. 유약한 학생이었던 ‘수혁’은 2년 사이에 이등병에서 중위로 특진해 악어중대의 실질적 리더가 되어 있고, 그가 함께하는 악어중대는 명성과 달리 춥다고 북한 군복을 덧입는 모습을 보이고 갓 스무살이 된 어린 청년이 대위로 부대를 이끄는 등 뭔가 미심쩍다. 살아 돌아온 친구, 의심스러운 악어중대. 이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은표는 오직 병사들의 목숨으로만 지켜낼 수 있는 최후의 격전지 애록고지의 실체와 마주하게 되는데…



(최전방 동부전선 악어중대에 찾아온 강 중위와 그 부대의 리더 김 중위, "니가 지옥을 알아..")

영화의 시작은 보통의 전쟁물이 보여주는 가열한 전투씬으로 달리지는 않는다. 한국 전쟁이 발발했음에도 어느 시가의 모습은 그냥 평상시 모습 그대로다. 때는 바야흐로 전쟁이 일어나고 2년 여가 지난 1953년 2월, 한창 전쟁이 벌어지는 게 아니라 이미 대규모적 전쟁은 끝난지 오래, 이들에게 남은 건 바로 전방의 고지 탈환에 목숨을 건 그 사투만이 있을 뿐이다. 북한과 유엔군의 휴전협상이 하루 이틀이 멀다하고 난항을 계속 거듭하는 가운데, 그 최전방 동부전선에서는 지도상의 1cm를 더 차지 위해서 버티는 군인들만이 존재한다. 그것은 저쪽의 인민군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아군의 악어중대에 방첩대 강은표(신하균) 중위가 그곳을 찾아간다.

애록고지 전투에서 전사한 중대장의 죽음이 미심쩍다는 것과 그 중대 내에서 인민군 편지가 발견돼 적과 내통하는 이가 있을 거라는 보고에 악어중대에 찾아온 거. 그리고 그곳에서 은표는 과거 전쟁 초반에 죽은 줄 알았던 친구 김수혁(고수)을 만나게 된다. 당시 이등병 계급이었는데 지금은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인지 중위로 껑충 뛴 그의 모습을 보고, 반갑기도 하지만 무언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방첩대 본연의 임무처럼 중대장이 정말 전사한건지 아니면 항명에 의한 사고사인지, 또 적과 내통하는 소위 빨갱이는 없는지 찾는 게 그의 임무. 하지만 악어중대는 그런 강 중위와는 별개로 이들이 그래 왔던 것처럼, 오늘도 저 애록고지 탈환을 위해서 불철주야 뛸 뿐이다. 한 번은 아군이 접수하고 또 한 번은 인민군이 점령하는 등, 수없이 주인이 바뀌면서 죽어나간 군인들만 많을 뿐이다. 그 시체가 산을 뒤엎을 정도로 말이다.


(애록고지 탈환 전투는 자주 벌어지며 주인이 매번 바뀌지만, 군인들의 시체만이 쌓일 뿐이다.)

그러면서 이번에 애록고지를 점령한 악어중대는 그 곳에서 적과 내통을 했을 거라는 의심의 박스를 강 중위에게 보여주며 내통에 대한 실체를 밝힌다. 실체는 정말 내통이 아니라, 저기 어디 '공동경비구역JSA'처럼 인민군과 국군이 서로들 모여서 아니, 만난 건 아니고 서로가 필요한 물품과 편지 그리고 술 같은 걸 그곳에 담아 서로가 고지를 탈환했을 때, 보게 되는 일종의 보물찾기 게임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서로가 적이지만 전쟁 전후로 월북과 월남이 크로스돼 찢겨진 가족들의 사연을 보여주며 이들의 애환을 담아낸 장치인 셈이다. 그러니 이건 내통이 아니라 영화가 그리고자 하는 일종의 인간애에 대한 판타지라 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어느 한 여자의 엇갈린 운명?도 있었지만서도.. 어쨌든 그 애록고지는 그렇게 하루가 멀다하고 전투의 연속이다.


(인민군 최정예 일명 '2초' 저격수 '차태경' 역의 김옥빈 처자.. 나름 어울려 보이더라는..)

하지만 이런 각개 전투가 벌어지는 사이, 악어중대를 위협하는 골칫거리 중 하나인 인민군 저격수 '2초'를 잡기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 하지만 이등병으로 입대해 고참들의 사랑을 듬뿍받은 남성식(이다윗) 이병이 '2초' 저격수에게 처참히 스파이닝 되는 등, 그 저격수는 베일에 쌓여있다. 하지만 그 인물은 이미 전단지 홍보에도 나왔듯이 바로 컴퓨터를 만지는데 일가견을 갖고 있다는 김옥빈으로, 그녀는 680m 밖에서 적을 쏘아 맞추는 인민군 최정예 사격수 '차태경'으로 나와 제대로 호연?을 펼쳤다. 거의 말이 없는 표정으로 일관하며 총신을 가다듬는 폼이 나름 제대로다. 물론 이외에 영화 초반 '이 전쟁 7일이면 끝난다'고 드립치며 '이 전쟁이 왜 일어났으며 왜 하는지 아느며' 물었던 인민군 중대장 역의 류승룡도 나름 포스있게 나와 극의 무게감을 잡는다.

어쨌든 그 애록고지를 두고 악어중대가 점령하는가 싶었는데, 역시 중공군이 나서면 답이 안 나온다. 인해전술은 여기서도 먹히니, 막대한 피해를 보고서야 악어중대는 물러나 다시 고지를 뺏기게 된다. 이런 지리한 공방전이 계속 되며 서로들 지쳐가는 사이, 드디어 계절이 바뀌고 한 여름이 찾아왔다. 이들의 수색전과 탐색전이 계속 되는 가운데, 드디어 라디오 너머로 7월 어느 날 휴전협정에 싸인이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 거. 다들 드디어 전쟁이 끝났다고 기뻐하며 이젠 집으로 돌아갈거라 기대를 하는데.. 하지만 그 휴전협정 부칙에 의거하여 12시간 동안 더 싸워서 고지를 탈환하라는 임무가 부여되며 이들은 그 마지막 전투를 치르게 된다. 정말 이젠 살아서 돌아갈려는 찰나 이렇게 전투를 다시 치르게 됐으니, 이들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 이것은 바로 고지전 최후의 장면으로 방점을 찍게 된다.


('고지전'의 두 남자 주인공 '고수' '신하균', 극에 제대로 녹아들 게 열연을 펼쳤다.)

이렇게 영화는 고지를 탈환하는 군인들의 전투를 담아낸 전쟁물이다. 그런데 그 전쟁이 가열하고 스펙타클하게 전개가 되는 것 보다는, 즉 어떤 대규모적 물량공세는 둘째치고 총알이 빗발치는 모습으로 고지 탈환 과정이 나름 리얼하게 펼쳐진다. 그 빨간 불빛이 철모를 수없이 관통하듯. 그렇게 동부전선 최전방에서는 애록고지 탈환에 목숨을 건다. 정작 그들은 책상머리 지도에서 1cm 영토라도 더 얻겠다며 협상하지만, 여기 생사를 넘나드는 그곳에서는 이런 사투로 인해 많은 이들이 죽게 된다. 그렇다. 영화는 전쟁의 한복판이 아닌, 그 전쟁의 끝물에 벌어졌던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6.25 전쟁의 끝을 다룬 것이다. 그러면서 얼마나 많은 군인들이 산을 시체로 덮을 정도로 죽어나갔는지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과연 승자와 패자는 누구였던가? 하는 물음과 함께...

승자와 패자도 없는 6.25 마지막 전투 '고지전', 한국 전쟁영화의 '신기원'

그래서 영화는 종국에 가서는 비장함마저 띈다. 절대 웃으면서 볼 수 없는 상황, 엔딩 크레딧에서 출연 배우들 역할의 면면을 흑백 처리한 화면으로 나름 숙연하게 만드는데, 그것은 아마도 장훈 감독 스스로 이 전쟁에 바친 '장송곡'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물론 영화 전반적으로 악어중대 부대원 중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한 류승수고창석의 알토란 같은 연기들이 있어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지만, 그건 어찌보면 전쟁이라는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일 것이다. 그외 두 주인공 고수 신하균이 전쟁에 지치고 미쳐가는 열연은 물론, 신임 젊은 중대장 역을 맡은 이제훈의 전쟁 트라우마를 지닌 신들린 연기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남성식 이병을 통해서는 목숨을 건 전쟁에 대한 공포까지, 이들 캐릭터는 다양하게 포진돼 있다.

그래서 영화는 이런 캐릭터를 통해서 전쟁이 남기는 '상흔'이라는 다소 클리셰적 주제의식에도 많이 다가선다. 그러면서 그 전쟁의 상흔은 바로 고지 탈환으로 사투를 벌이는 군인들의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그런데 그 방식이 기존의 전쟁물에서 본 듯한 장면들로 오버랩된다. '웰컴 투 동막골'의 유머적 분위기의 느낌과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적과 만나 우애를? 다지는 상황, 그리고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리얼한 전투씬과 형제애 같은 우정까지, 여기 '고지전'은 이런 영화들의 장점들을 취합한 듯한 인상이 짙다. 그래도 영화는 그 전장터에서 누구나 살고자 죽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군인들의 임무를 생생히 담아냈다. 하지만 그 임무란 게, 6.25 역사가 기억하지 못하는 또 그 전쟁이 어떻게 끝났는지 모를 우리시대에게 이렇게 보여주며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마지막 전투를 기억해 달라면서..

아무튼 오랜만에 한국 전쟁영화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만한 '신기원'적 영화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특히나 영화 전문 기자들의 평가들도 가히 좋은 것을 보면, 이 영화 '고지전'은 분명 기존의 전쟁물과는 다르게 진일보한 측면이 많다. 한국 전쟁영화 장르의 새로운 패러다임까지 불릴 정도로, '고지전'은 그 제목처럼 '고지'를 점령한 듯 싶다. 한국전쟁의 마지막 날, 기록되지 않은 그들의 마지막 전투를 담아낸 '고지전'.. 괜찮은 전쟁영화 이전에 꽤 와닿게 그린 전장물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분명 볼만했고 되새겨봄 직한 영화다. 그래서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듯 싶은데, 우리시대 그 전쟁을 겪은 7~80대 어르신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 ~

예고편 :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74315&mid=15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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