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 Confession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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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편의 일본영화가 나름의 논란을 일으키며 지금 이목을 끌고 있다. 제목도 엣지있게 짧고 강렬하게 '고백'이다. 왜 '고백'일까? 사랑하는 연인 앞에서 아니면 고해성사를 하듯이 '고백'을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런 로맨스나 자기 성찰에 대한 고백이 아니다. 여기서 고백은 자신을 인생의 나락으로 내몬 이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선전포고이자 복수극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그렇기에 그가 아니 그녀가 말한 고백은 꽤 임팩트있게 강렬하다. 하지만 모양새는 잔잔한 호숫가의 물결이 일듯 평온하기 그지없다. 다만 그 고백의 충격파를 받은 아이들에게 크나큰 문제가 생긴 것이지, 정작 그녀는 우아하게 아이들을 대했다. 그렇다면 중학생에 갓 올라간 13살의 아이들과 이 여선생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그녀는 아이들 앞에서 수업 시간에 '고백'을 하게 됐던 것일까? 그런 의문은 이미 영화 포스터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은 우리 반에 있습니다" 로 이 영화의 느낌을 단박에 알린다. 그렇다. 이 영화는 사람을 죽인 범죄자를 단죄하는 드라마 타입의 스릴러 영화다. 하지만 그 어떤 긴장감을 주는 스릴러 대신에 여기서는 아이들을 예의주시하며 그들의 과거와 동선을 좇는데 주력해 색다른 몰입감을 제공한다. 그러면서 그 아이들이 살인 범죄를 저지르게 된 동기와 상황 묘사에 대해서 질답을 던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범죄는 실정법상 '청소년법'에 의해서 보호받아 과한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렇기에 여기 여선생 '유코'는 수업 시간에 그들을 지목하고, 앞으로 내가 알아서 너희들을 처단할 거라는 암시를 주며, 마지막으로 이 교단을 끝으로 나간다. 꽤 색다른 시퀀스가 아닐 수 없는데, 이것이 바로 영화 '고백'의 서막이자 이야기의 출발선이다. 그렇다면 그 '고백'의 끝은 어떻게 됐는지 먼저 영화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은 우리 반에 있습니다”

자신이 근무하는 중학교에서 어린 딸 ‘마나미’를 잃은 여교사 ‘유코’(마츠 다카코)는 봄방학을 앞둔 종업식 날, 학생들 앞에서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자신의 딸을 죽인 사람이 이 교실 안에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한다. 경찰은 사고사로 결론을 내렸지만 사실 마나미는 자신이 담임인 학급의 학생 2명, 범인 A와 B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것. 유코는 청소년법에 의해 보호받게 될 범인들에게 그녀만의 방법으로 벌을 주겠다고 선언한다. 이후 사건을 둘러싼 이들의 뜻밖의 고백이 시작되는데...


(아이들이 제각각 떠들어도 여선생 '유코'는 설을 풀듯 '고백'은 계속된다.)

영화의 시작은 여느 학교의 풍경처럼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교실 모습으로 시작한다. 여기 학생들은 갓 올라온 중학생들처럼 보이는데, 앞에 여선생님이 있어도 자기들 제멋대로다. 서로 치고 박고 놀리고 웃고 가관도 아니다. 그런데 여선생은 무슨 수업을 가르치는 것도 아닌 듯 싶은데, 주절히 계속 떠든다. 자신의 소싯적 연애담부터 해서 궁시렁 되는데, 이런 모습은 꽤 잔잔하게 평온하게 상대방이 없다는 듯 쏟아낸다. 그러면서 어느 날 벌어진 사건 하나를 들춰내 어린 여자아이의 죽음을 꺼내든다. 그리고 그 죽은 아이는 자신의 딸이고, 그 딸을 죽인 사람은 여기 교실에 있다며 지목한다. A와 B라 칭하며 둘을 가리키고, 이때부터 아이들은 각자 떠드는 것을 중단하고 분위기는 싸해진다. 지목된 두 소년 '나오키'와 '슈야'는 좌불안석이요, 아이들은 그런 두 소년을 그때부터 이지메(집단 괴롭힘, 소위 왕따) 시키려 한다.

이 교실 안에 내 딸을 죽인 범인이 있어요.. 그것이 '고백'의 핵심이다.

각자 핸드폰으로 문자질하고 난리도 아니다. 쟤가 죽였대.. 정말.. 완전 대박이다.. ㅋㅋ 이런 식이다. 그들에게는 그런 살인조차도 희번덕거리는 놀이쯤으로 보였나 보다. 그러면서 여선생은 두 아이에게 HIV(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가 들어간 우유를 먹였다며 이들을 놀라게 한다. 본격적으로 여선생 '유코'의 복수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유코는 학교에서 영영 사라지고 학생들 켵에 나오질 않는다. 마지막 '슈야'를 처단하는 직전까지는..

어쨌든 이야기의 서막은 이렇게 시작됐고, 이때부터 영화는 두 소년에 초점을 맞춰 보여준다. 누굴 A와 B라고 할 것 없이, '나오키'라는 소년은 '히키코모리'(완전 방콕 인생)로 변모돼 마치 원시인의 모습처럼 완전 미친 녀석으로 돌변하게 된다. 잠시 기절했던 그 여자아이의 눈 뜬 모습을 보고도 수영장에 던졌다는 자책감인지 몰라도, 그는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며 미쳐간다. 학교에서 새로 부임한 남자선생님과 여학우가 찾아와도 보이기는커녕 문전박대요, 어머니마저 자식의 이런 모습에 서서히 지쳐가더니 아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할려고 마음먹는다. 그리고 유서를 남긴 뒤, 칼을 들고 방으로 찾아가 아들에게 도리어 사이코적 칼질로 난도질 당해 어미는 그렇게 죽어버린다. 나오키는 이미 아이가 아니었다.


(사이코패스의 극단을 제대로 보여준 우수한 소년 '슈야')

그리고 여선생의 딸을 직접적인 죽음으로 몰고 간 '슈야'라는 다소 우수한 분위기가 풍기는 녀석, 소위 '나는 니들과 다르다'는 자아도취형으로 공부는 물론 특히 전자공학쪽에 탁월한 능력을 보인 이 소년은, 자신의 범죄가 드러난 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학교를 다니는 다소 뻔뻔한 녀석이다. 자신의 과학적 능력을 뽐내고자 장난스럽게 시작한 게, 그 어린 여자아이를 죽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도 큰 죄가 아니라 생각한다. 학교에서 이지메를 당하며 친해진 그 소녀와 함께 연애에 빠지고 키스도 나누는 등, 그에게 있어 이 세상은 어떤 의미였는지 다소 몽환적인 구석이 많은 아이다. 그것은 자신의 어미로부터 물려받은 거. 엄마가 전자공학도를 꿈꾸던 시절, 그를 낳았고 그런 재목으로 키우기 위해서 무진장 애를 쓰며 이렇게 달려온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정점에서 엄마는 홀연히 떠났고, 남겨진 아들은 그렇게 혼자서 엄마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능력을 이렇게 발휘한 것인데, 하지만 그에게는 일말의 죄책감조차 안 보인다. 나오키를 끌어들여 그렇게 어린 여자아이를 죽여 놓고도, 심지어 친해진 그 여학우를 망치로 척살해 사체를 냉장고에 집어 넣는 등, 이 녀석은 사이코패스의 극단을 달린다. 외견상 범죄와는 멀어보이는 이 소년의 내면에는 악마적 본성이 있는 것인지, 그는 아예 학교를 통째로 날려 버릴 심산으로 폭탄을 제조해, 자신이 강단에 선 자리에서 함께 폭발로 산화할려고 작정한다. 하지만 이것은 불발로 그치고, 그 화는 자신의 어미에게 돌아가 터지고 만다. 바로 그 여선생 유코가 폭탄을 미리 빼돌려 놓은 것인데, 이로써 '슈야' 사랑하는 어미를 잃게 되고 그 앞에 나타난 여선생 '유코'는 그런 그를 스산하게 바라보며 말한다.



 "이것이 내 진짜 복수란다.. 진짜 지옥을.. 이제부터 갱생의 길이 시작될 거다.."

이렇듯 영화는 복수극의 정점을 찍듯 쓰러져 울부짖는 그 아이 앞에서 대미를 장식한다. 정말 의미있는 결말의 시퀀스가 아닐 수 없는데, 어쨌든 그녀는 복수를 제대로 시원하게 한 셈이다. 하지만 이건 단편적으로 받아들이기에 다소 문제가 있어 보이기도 하다. 소위 미성년을 상대로 한 복수극, 우리 형법에도 14살 이하는 어떤 형사상에도 처벌받지 아니한다는 불가 조항이 있듯이, 그녀가 철저하게 준비해 온 한 편의 이 복수극은 그 대상이 분명 14세 이하 미성년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영화적으로 그려낸 그림들은 꽤 복수극의 전형을 띄면서도, 작금의 시대에 갈수록 예의없이 흉포화되는 '청소년 범죄'에 대한 가열한 단죄를 가한 모양새가 다분하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보고 나서 속이 후련하다, 통쾌하고 멋진 복수극이다. 아니다, 그들의 범죄에 대한 고찰이 더 필요하다 등 나름 의미있는 설들을 쏟아내고 있다.

잔잔함과 미친 광기의 대비를 격조있게 그려낸 범죄극 '고백', 수작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고백'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한 여선생이 예기치않게 딸을 잃어버린 사고 이후로, 그와 관련된 고백을 쏟아내고 그 목표점을 바로 두 소년에게 돌리며 복수의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면서 종국에는 그 고백 앞에서 어느 누구도 깊은 상처가 남긴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죄책감으로 귀결시키며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어찌보면 그것이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자 여백미라 할 수 있을 터. 그래서 영화 전체적으로는 분명 복수극의 양상으로 흐르면서 두 소년의 잔인한 살인마적 광기를 보여주며 스릴러적 요소로 흘렀지만, 그 분위기는 영화 전반에 흐르는 팝발라드와 클래식의 분위기처럼 꽤 잔잔하면서도 의미깊게 때로는 차가운 시선으로 기품있게 그려낸 게 아닌가 싶다.

이것은 이미 2009년 일본 베스트셀러 1위인 '미나토 가나에'의 동명소설 <고백>을 원작으로 했던 것으로 , <불량공주 모모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만든 감독 '나카시마 테츠야'가 새롭게 연출하고, 때로는 백치미와 잔잔한 광기를 평온하게 보여준 여배우 '마츠 타카코'의 호연으로 더욱더 영상미가 빛나지 않았나 싶다. 특히 영화 초반 30여분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 앞에서 넋두리 하듯 쏟아낸 그 고백은 정말 일품이 아닐 수 없는데, 아무튼 영화는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청소년 범죄'를 잔혹하게 다루면서 그것을 단죄하는 복수극의 양상으로 치닫으며 다소 논란이 되긴 했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광기의 복수극도 말 그대로 미친 광기가 아닌, 잔잔하면서도 꽤 격조있게 그려낸 범죄 드라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여기 여선생과 두 소년의 광기는 대비되듯 보여지고, 그 고백을 통한 복수는 한마디로 '쿨' 했음이다.

그래서 박찬욱 감독의 그 유명한 '복수 삼부작'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데..
이래저래 영화도 그렇고, 이즈음에서 '미나토 가나에'의 원작소설 <고백>이 끌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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