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상견례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지역 갈등',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 출신을 따지고 들면서 친해지기도 하지만, 서로 아웅다웅 다투는 모양새는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좁은 땅 덩어리에서 그렇게 사람들끼리 편을 가르고 적과 동지를 만들며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는 거. 물론 지금은 예전과 다르게 많이 퇴색이 됐다며 애써 부인하고 지내지만, 이게 웃긴 건, 잊고 살만하면 특히 선거철에 다시 불거지는 지역색을 띤 갈등들, 특히 영호남으로 대표되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이전투구 양상은 오래된 한국의 문화유산?처럼 아직도 자리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리고 이런 갈등의 양상은 또 다르게 사회면을 장식하는 기사로 주목을 끌고, 또는 책이나 드라마로 나오는 대표적 단골소재이기도 하다.

영호남의 지역 갈등을 소재로 만든 연애가족담 <위험한 상견례>

그리고 이번에 제대로 지역색을 띤 영호남의 인간 군상들을 그리며 이것을 코미디로 승화시켰으니 바로 영화 <위험한 상견례>다. 이미 유료 시사회를 통해서 이상하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이 영화의 장르는 단연코 코미디다. 물론 우리네 소소한 일상을 다루지만 이미 소재에서 알다시피 영호남으로 대표되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사투리가 가열하게 내뿜으며 때론 폭소를, 나이든 어른들에게는 때론 향수에 젖게 만들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강호도 그런 맛을 적잖이 느꼈는데, 물론 영화적 소재는 대충 알고 가 시대적 배경이 현재 21세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영화의 배경은 80년대 말 198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88올림픽이 끝난 이듬해.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의 사회적 풍경을 추억케 하는 또 다른 맛도 제공했으니, 영화 <위험한 상견례>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말리면 말릴 수록 붙는다?! |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 (위험한 상견례)

‘현지’라는 가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순정만화 작가인 전라도 순수 청년 현준(송새벽). 펜팔에서 만난 경상도 여인 다홍(이시영)과 알콩달콩 연애하며 사랑을 키워가던 그는 아버지의 강요로 선을 봐야 한다는 다홍의 말에 그녀와 결혼을 결심한다. 하지만 뼛속까지 경상도 남자인 다홍의 아버지로 인해 현준은 전라도 남자임을 감춰야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서울말 특별 과외를 거쳐 압구정남으로 변신한 현준. 드디어 결혼을 승낙 받기 위해 부산에 위치한 다홍의 집으로 향하고, 다홍 가족과 대면한다. 왠지 음침한 다홍의 오빠 운봉(정승화)을 시작으로 호시탐탐 현준의 흉을 찾으려는 노처녀 고모 영자(김정란), 경부선 밖은 나가본 적 없는 우아한 서울 여자인 어머니 춘자(김수미), 첫만남에 악수 대신 야구 공을 던지는 초강력 적수 아버지 영광(백윤식), 거기에 언제 뒤따라 왔는지 현준의 아버지가 스파이로 보낸 형 대식(박철민)까지.. 과연 현준은 이 모든 난관을 헤치고 다홍과 사랑을 이뤄낼 수 있을까?


(경상도 처녀와 전라도 청년의 만남, 이 세상의 무엇도 우릴 갈라놓을 순 없당께요..)

여기 줄거리에서 보듯 사실 스토리는 아주 간단하다 못해 초간단하다. 복잡하지 않아서 좋다. 전라도 청년과 경상도 처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국 양쪽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에 골인한다는 게, 이 영화의 기본 플롯이자 줄거리다. 그래서 영화는 이들의 사랑을 중점으로 그들의 연애담을 좇으며 관련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런 모양새가 웬지 촌극처럼 흐르면서도 정극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의 시작은 전라도 순수 청년 현준이 군에서 제대한 1987년, 그 자리에 다홍이 쑥스럽게 서 있다. 아마도 그때 처음 본 사이인 것 같다. 그리고 2년이 흐른 1989년, 이미 둘은 현준이 군에서 펜팔로 만난 사이였기 때문에 그동안 편지로 줄기차게 연애질을 해왔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던 시절도 아니요, 오로지 러브레터를 통해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른 거. 물론 가끔 집으로 통화도 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 두 청춘의 연애는 참 지금하곤 다르게 꽤 정석대로 순수하게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같이 만난 데이트는 양식집 가서 폼나게 칼질하고, 스프를 오뚜기스프로 시키는 센스를 작렬하며, 밥 먹은 후 다방가서 차 한잔 하고, 버스를 놓쳐서 모텔 방에 들어가 거기시한 분위기 속에서 다홍의 완곡한 부탁으로 손만 잡고 자게 된 이 남자 현준. 실은 그는 순정 만화를 그리는 인기 만화작가 '현지'로 통하는 남자다. 물론 다홍은 이런 사실을 알고 현준의 매력에 더 빠졌고, 그것은 현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두 커플의 만남을 반대하는 이가 있었으니 양쪽 집안의 아버지들이다. 현준의 아비는 전라도 광주에서 잘 나가는 나이트클럽 사장으로, 그의 비서 겸 몸빵 대식(박철민)이 현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어떻게 그 집안에 가서 잘 하는지, 여차 싶으면 나오라는 언질까지 준 것인데, 그리고 다홍의 아버지는 부산에서 제일 잘 나가는 예식장 사업을 하는 나름 거부(巨富)다. 그래서 집도 앞마당이 넓은 대저택으로, 한마디로 다홍은 지역 유지의 딸인 셈. 그런 다홍이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는 전라도 청년과 사귀니 아비는 미칠 노릇이다.


(식사 도중, 다홍의 아비가 '전라도' 남자만 아니면 된다는 말에 식사 중 체증이 걸린 현준..ㅎ)

물론 처음엔 몰랐다. 인사를 드리러 온 현준이 다홍의 집에서 며칠 숙식을 하게 되는데, 현준은 서울 사람이라며 속이고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같이 식사를 하고, 식사하다 체증이 걸려 몸저 눕다가 저도 모르게 전라도 사투리가 나오면서 서서히 의심을 받는다. 심지어 다홍의 오빠마저 소녀 취향의 만화에 빠져 살다가 현준이 그것을 그린 작가라는 사실에 그만 그의 팬이 되고 만다. 그리고 다홍의 어머니는 나름 현준을 잘 대해주는데, 문제는 다홍의 아비가 뼈속까지 전라도를 싫어하는지라,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함께 이 커플을 예의주시하며 현준의 정체를 터트려버린 다홍의 고모까지.. 이렇게 두 커플은 사실 결혼 입성까지 순탄치 않는다. 더군다나 현준의 아비조차도 뼈속까지 경상도를 싫어하는지라, 아들 놈이 그 집안에서 그런 푸대접을 받고 있으니, 당장 집으로 올라오라고 대식한테 시키는데.. 과연 이 커플은 어떻게 결혼에 골인했을까.. 이게 코미디로써 새드가 아닌 이상 당연히 결말은 그렇게 나온다.

물론 이런 내막엔 이들 두 아버지의 과거지사가 나와 왜 이 지경까지 오게 됐는지 보여준다. 군시절의 고생한 경험과 고교에서 잘 나가던 야구선수로써 악연 등, 실은 어찌보면 두 아버지가 나고 자란 고향이라는 그런 지역색 이전에, 이런 경험들이 더욱더 지역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든 것인데, 그런데 이게 조금은 어설퍼 보이는 설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어디 한번 데이면 소위 학을 띌 수도 있으니 그럴만도 하다. 어쨌든 영화는 지역색을 단단히 띠고 있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가족을 통해서 그려내는 남녀의 연애담이다. 그러면서 그들의 연애가 어떻게 방해를 받고 난관에 부딪치고 종국에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코믹한 드라마다. 그런 코미디에는 이른바 거시기한 전라도 사투리가 가열하게 펼쳐지고, 경상도 사투리 또한 만만치 않게 펼쳐지며, 마치 사투리 경연장을 보듯, 우리네 방언적 문화 코드를 끄집어내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다양한 캐릭터에 빵빵한 조연들의 사투리 향연, 이 영화의 또 다른 강점이다.)

이런 역은 리얼한 사투리의 호연을 펼친 두 주인공 배우에게 있는데, 이미 작년 한 해 영화계에서 <방자전>, <시라노:연애조작단>, <해결사> 등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며 3번 씩이나 신인상을 거머쥔 충무로의 블루칩 '송새벽'과, 다소 새침하면서도 남성적인 스포츠도 즐겨한다는 매력적인 처자 '이시영', 두 배우가 호흡을 맞추며 80년대가 물씬 풍기는 알콩달콩한 러브스토리를 제대로 만들어냈다. 지금 보면 소위 닭살이 돋을 정도로, 그들 커플의 연애담은 마치 우리네 삼촌과 아버지의 연애담을 보는 기분이 들게 만든 것인데, 또한 이 두 배우 말고도 여기는 소위 빵빵한 조연들의 출연으로 극을 제대로 코미디로 만들고 있다.

이미 전작 <시라노..>에서 같이 출연하며 에피소드 1에서 송새벽을 보고 '말투가 금강 하류쪽이시네요.." 로 그를 코치한 '난 애드립 치는 사람이 제일 싫다''박철민'이 송새벽의 삼촌격으로 나와 제대로 웃음을 선사했다. 전라도 아저씨의 걸죽한 입담을 제대로 선보였는데, 이와 함께 다홍의 고모로 나온 김정난 누님도 역시 늙은 노처녀의 경상도식 히스테리를 제대로 보여주며 폭소를 자아냈고, 다홍의 오빠로 나온 소녀 취향의 다소 변태스런 정성화, 그리고 다홍의 엄마로 나온 김수미의 우아하면서도 내면에 전라도 사투리의 피가 흐르는 작태까지.. ㅎ 물론 두 아버지 역으로 다홍의 아비인 백윤식과 송새벽의 아비로 나름 악역 전문 중견배우인 김응수 이분도 만만치 않게 전라도 어르신의 포스를 제대로 선보였다. 그리고 까메오인지 몰라도 현준에게 서울 말투를 가르쳐 준 DJ 이한위 옹까지.. ㅎ


(정말로 두 커플이 전라도 청년과 경상도 처자로 보인 '위험한 상견례')

이렇게 이 영화는 남녀커플 주인공 송새벽과 이시영 이외에도 막강한 조연들의 파워를 위시로, 이들의 맛깔난 영호남의 사투리 속에서 극을 제대로 코미디스럽게 만들며, 이들의 위험하면서도 사람 냄새나는 상견례를 지켜보게 만들었다. 특히 박철민이 차 사고난 후 빨간 공중전화를 쓸 때 가게 여주인과 입담에서 정말 뿜었는데, 그외 정란 누님도 웃겼고, 정승화까지.. 물론 두 주인공도 기본 이상은 했다.

지역색을 뛴 연애가족사 코미디물 <위험한 상견례>, 가족과 볼만하다.

이렇듯 이 영화는 어찌보면 고리타분한 소재일 수 있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팽배해있는 지역색을 가지고 메스를 가한 영화다. 그렇다고 영화가 소위 가르치려 드는 건 아니다. 영호남이 어디서부터 잘못돼 이런 골이 깊어졌는지에 대한 물음이 아닌, 우리네 지역적 정서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며, 종국에는 인간사 특히 남녀간의 연애와 결혼이라는 문제에 있어, 그것이 결국은 지역색을 뛰어넘는 진실한 사랑으로 한 가족이 될 수 있다는 화두를 던진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메시지가 정극스러운 건 아니고 코미디 장르이다보니 다소 촌극스런 분위기는 감지되지만, 그래도 영화는 꽤 산뜻한 기분이 들게 만들기도 했다. 아직도 지역색으로 사람의 잣대를 들이대는 구시대적인 발상에 영화조차도 구시대적으로 그림을 그려나갔지만, 종국에는 화합하며 '잘 살아보세'로 그려낸 본격 휴먼틱한 코미디 영화 <위험한 상견례>, 그래서 이 영화는 지금의 청춘 남녀들이 보면 그 시절 연애담과 과거를 배우며, 우리시대 부모님들이 보면 그 시절의 추억 때문에 더 빵터질 영화가 아닌가 싶다. 물론 가족끼리 보면 더 좋다. 아무튼 강호는 재밌게 잘 봤다. 나도 이쪽 출신인지라.. ~~


ps : 특히 우리네 아줌마 아저씨들이 보면 더욱 와 닿는 영화라는 점.. 극장에서 얼마나 웃던지.. ㅎ
10대는 이해불가?! 20대는 그저그런 코미디, 30대 이상은 나름 빵 터지는 게, 특히 그 지역 분이라면.. ㅋㅋ

ps2 : 영화에서 전라도 출신으로 나온 송새벽(군산)과 박철민(광주)은 실제로 전라도 출신이고..
그래서 같은 출신인 김수미 여사가 모 인터뷰에서 이들을 주로 챙겼다는 뷰티풀한 후담이.. 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