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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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문학의 발자취에서 이제는 손꼽는 자리에 올랐지만, 아직도 일부 독자들이 그를 '청년작가'라 부르는 문인 중 한 사람. 하지만 죽을 때까지 강력한 '현역작가'로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 '박범신' 작가. 그가 90년대 절필 후 다시 재개하면서 글쓰기 유혹에 빠진 채, 최근 신작 <은교>까지 이른바 '갈망의 삼부작'을 완성시키며, 또 하나의 장편 소설을 내놓았으니 그것이 바로 <비지니스>다. 얼추 제목만 봐서는 기업소설 같은 기시감이 들지만, 정작 여기서 말하는 비지니스는 기업상의 일거리가 아닌 우리네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특히 이 가열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지니스 즉, 각자 버티며 살기 위해서 매달리는 일을 눙쳐서 말하는 그 '비니지스'를 일컫는 것으로, 여기선 다소 은어적 느낌으로 다가온다. 과연 박범신 작가가 말한 그 '비니지스'는 무엇이었을까? 그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해 본다.



여기 한 도시가 있다. 그런데 이 도시는 이름이 없다. 그냥 우리말 자음 'ㅁ'(미음)시다. 위치는 중간 정도에 서해안쪽. 원래는 오래된 한적한 시골 도시였지만, 여기에 간척지 사업에다 각종 개발 바람이 불면서 ㅁ시는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지방의 굵직한 도시가 된다. 옆에 중국과의 수출입 교역도 활발해지면서 그렇게 된 것인데, 이렇게 ㅁ시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모 시장은 중앙정부에서도 인정받는 권력의 실세가 된다. 그리고 여기 ㅁ시는 개발이라는 동전의 양면처럼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뚜렷히 양분된다. 즉 신시가지는 강남과 같이 휘황찬란하게 개발돼 장족의 발전을 이루지만, 구시가지는 쓰레기 소각장 등 대규모 매립 단지 조성으로 이른바 '죽음의 도시'로 서서히 변모해간다. 그래서 구시가지에 사는 사람들은 오늘도 내일도 돈을 벌러 신시가지로 노예처럼 빨려 들어간다.

그 중심에는 여기 주인공인 한 여자가 있다. 남편과 함께 공기 좋고 물 좋은 ㅁ시로 내려왔다가, 구시가지에 정착한 이들로 중학생 아들이 있다. 그런에 '칼라'라 불리는 이 여자는 내일 모레 40을 바라보면서도 그 자태는 아직도 매혹적인 매력을 풍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몸을 무기로 매춘을 한다.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남자들을 상대로 몸을 파는 거. 이유는 무얼까? 그렇다. 신시가지에 있는 외국어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서 아들의 학원비에다 과외비를 벌기 위해서 직접 생활전선?에 뛰어든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천하게 노는 계집 창녀같이 싸게 보이진 않는다. 마치 고급콜걸처럼 때로는 기품있는 자태로 그녀는 그만의 '비니지스'를 할 뿐이다. 그리고 그녀와 관계를 맺은 남자 '옐로'라는 중년 신사도 그만의 비지니스를 갖고 그녀와 관계를 지속하는데, 그 남자는 이른바 대도(大盜)라 불리는 '타잔'이었다.

매춘으로 만난 '칼라와 옐로'를 통해 본 자본의 비애와 갈망 그리고 고독

즉 이 남자는 ㅁ도시에서 잘 살아볼려고 내려왔다가 한 때 잘나가던 횟집이 신시가지 개발 붐으로 구시가지가 나락으로 몰리면서 직격탄을 맞은 거. 부인마저 환경 오염 속에서 지병을 못 이기고 죽고, 하나 있는 중학생 아들은 자폐증 증세로 그의 생활고는 심해진다. 그래서 신시가지에 살고 있는 부자들의 패물과 값나는 물건을 훔치는데, 결국 시장까지 납치하는 등 그런 일에 그녀까지 공범조로 어쨌든 가담돼 인생의 끝자락으로 내몰린다. 이렇게 여기서는 매춘하다 만난 두 남자 '칼라'와 '옐로'를 화자로 내세워 그들이 처한 상황과 신시가지와 구시가지 즉, 강남과 강북으로 대표되는 마치 양지와 음지처럼 선연히 분리되는 자본의 계급화를 신랄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칼라의 동성 친구인 '주리'를 통해서 졸부들의 작태를 보여주고, 칼라의 남편은 전도유망한 법조인을 꿈꾸었지만 희망의 대척점에서 낙오자로 몰린 상황을 그리며 이들의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결국 죽을 각오로 옐로가 시장까지 납치하면서 이들 사이는 위기를 맞는다. 물론 이들은 처음엔 나락의 끝자락에서 몸을 탐닉해 만난 사이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때로는 파토스적 사랑에 다가가며, 그렇게 그들은 구시가지의 황야처럼 고독과 갈망으로 내닫게 된다. 과연 칼라와 옐로는 어떻게 됐을까? 단순히 해피엔딩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이 이야기는 다분히 메시지적으로 자조섞인 비애감이 물씬 풍기는 매력을 마지막까지 선사한다.

이렇듯 이 소설은 매춘으로 만난 '칼라와 옐로'를 통해서 우리의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그런데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길지 않게 200여 페이지로 짧은 편이다. 컴팩트한 양장본 스타일로 이야기도 심플하게 아주 담백하다. 즉 장문보다는 단문의 향연을 보듯 이야기 자체는 꽤 몰입감을 준다. 개발 붐으로 양면으로 갈리게 된 신시가지와 구시가지가 축을 이루고, 여기서 살고 있는 인간 군상들을 통해서 자본으로 대표되는 산업화의 몰인정을 가감없이 그려냈다. 그러면서 내던져진 우리네 여자들이 자식들의 과외비를 위해서 몸을 파는 것까지 가버린 그 자학적인 그림으로 자본주의적 슬픔을 대변하는 비애감까지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절대 이 이야기는 소위 싼티가 아닌, 꽤 품격있게 그려내며 박범신 작가 특유의 수사적 표현으로 이야기를 관조적 욕망과 고독의 자세로 풀어내고 있다.

역시 박범신답다. 결국 제목 '비지니스'가 의미하는 그 비지니스는 절대로 단순한 일거리가 아니다. 이 가열한 자본주의를 살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을 투영하듯 매개체로써, 이미 주인이 되버린 '자본' 앞에 우리네 삶의 유일한 전략으로 내몰린 상황이 펼쳐져 있다. 그 속에서 작가는 자조적인 비애감과 함께 고독과 갈망을 추구하는 몸부림으로 이 가열한 비지니스 세계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읽기 전 책 표지의 여인이 누구일까 궁금했었다. 그 여인은 바로 주인공 '칼라'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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