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투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여기 세 남자의 원초적인 몸싸움을 그린 영화가 하나 있다. 이들은 조선군으로 저 광활한 만주벌판 전장터에서 죽다가 살아남은 자들이다. 물론 같은 편이기에 이들의 목적은 하나다. 고향 땅 조선으로 돌아가는 거. 그래서 의기투합해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가야 하는데, 이들은 서로를 경계하며 죽이려 한다. 아니 왜? 무엇 때문에 같은 아군인데도 불구하고 서로 죽이려 하는 것일까? 그것도 적지에서 말이다. 이런 의문에서 다소 독특한 설정으로 출발하는 영화가 바로 '혈투'다.

세 명의 조선군의 사투를 그린 '혈투', 박훈정 작가의 첫 감독 데뷔작

그런데 배경은 현대물이 아닌 사극으로 조선중기 광해군 11년 때라는 시대가 들어가 있다. 그래서 이들이 펼쳐낸 죽음을 불사하면서 싸우는 '사투'는 칼과 단검 도끼를 움켜쥔 채 다소 원초적인 몸싸움을 보인다. 그리고 이렇게 피를 볼 심산으로 '혈투'를 펼쳐낸 작품을 만든 감독은 영화 <부당거래><악마를 보았다>의 시나리오 작가 박훈정. 그의 첫 감독 데뷔작이자 유명세를 떨친 전작의 시나리오 작가라는 홍보만으로, 신예 감독의 영화가 이렇게 주목을 받은 셈이다. 그렇다면 두 편의 인상적인 시나리오처럼 영화도 제목처럼 혈투스럽게 그렸을까.. 먼저 이 영화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광해군 11년, 만주벌판. 적진 한가운데 고립된 3인의 조선군. 명의 압박으로 청과의 전쟁에 파병된 조선 군장 헌명(박희순)과 부장 도영(진구)은 전투에서 패한 후 적진 한가운데 객잔에 고립되고, 그 곳에서 또 다른 조선군 두수(고창석)를 만난다. 하지만, 친구인 헌명, 도영 사이에 엇갈린 과거가 드러나며 팽팽한 긴장과 살의가 감돌기 시작하고, 둘 사이에서 두수는 행여 탈영한 자신을 알아볼까, 누구 편을 들까 노심초사다. 각자의 손에 장검, 단도, 도끼를 움켜쥔 채 세 남자의 시선이 부딪히고, 청군의 거센 추격 속에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혈투의 순간이 다가오는데…. 2011년 2월. 비밀이 밝혀질수록 혈투는 뜨거워진다.


(고립된 세 명의 조선군 도영, 헌명, 두수. 이들은 서로의 목숨을 노린다.)

세 명의 강한 캐릭터들이 펼치는 혈투, 왜 서로를 죽이려 했을까?

이렇게 영화는 전장터에서 살아남은 세 명의 조선군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동지이면서도 적이 되버린 상황 속에서 '누가, 누구를 먼저 칠 것인가'라는 중요한 상황에 몰리면서 영화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먼저 줄거리를 다시 요약해 보면은 만주벌판에서 청과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조선군 세 사람, 각기 다른 위치에 있었지만 살기 위해서 허허벌판에 남겨진 다 쓰러져가는 객잔에 모이게 된다. 서로 적인 줄 알았지만 같은 조선군, 이에 안심하는 듯 하지만 이들은 동상이몽을 꿈꾸듯 모양새가 다르다. 그것은 각자가 살아온 길이 다르기 때문인데, 바로 그 지점에서 서로의 신분적 캐릭터로 대변된다. 그것은 바로 '계급'에 대한 것이다.

먼저 '도영'(진구)은 조정의 암투 속에 집안이 몰락한 세도가의 한량으로 모든 것에 무심한 듯 하지만, 마음 속에 독을 품고 있는 알 수 없는 본심이 있는 인물이다. 이런 도영과 죽마고우였던 '헌명'(박희순)은 조선최고의 군장으로 출세가도를 위해 권력의 편에 서면서 도영과 척을 두게 되는데, 전투에 패하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도영에게 남긴 한마디가 치명적인 사투를 불러 일으키게 된다. 바로 이 영화의 제목처럼 '혈투'를 불러 일으킨 사단이 된 거. 반면 여기 두 장수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두수'(고창석)는 군율을 어기고 전장에서 도망친 사병으로 하필이면 이 객잔에서 자신의 수장 헌명과 맞닥트리게 되며 위험에 처한다. 하지만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 그는 이곳을 살아 나갈려고 무진장 애쓰는 인물이다. 두 사람을 어떻게든 죽일려고 하면서..



이렇듯 영화는 세 명의 인물에 포커스를 맞춰어 그것도 한정된 공간 '객주'에 머물게 해, 이들의 사투를 그려낸 것이 기본 뼈대이자 플롯이다. 그런데 이런 그림들은 기존 사극에서 많이 보여준 장면들이나 흔한 이야기 구조가 아니다. 그것은 한복 대신 전투복, 당파싸움이 아닌 원정 파병 출정이라는 소재에서 조선 궁궐이 아닌 만주벌판에서 벌어진 전장터, 그리고 그 속에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살고자 하는 한 개인, 그런데 같은 편인 아군인데도 불구하고 대결을 펼쳐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그것은 어떤 승패가 아닌 생사가 걸린 혈투로 정점을 찍으며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객잔에 고립된 이들의 현재와 과거를 뒤돌아보게 해주며 시간의 역순으로 드러나는 새로운 형식적 재미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과도한 개입처럼 느껴져 매끄러운 극 전개에 방해가 된 느낌이다.

제목 '혈투'처럼 혈투스럽지 못한 가열한 다툼만이 남은 '혈투'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영화가 안고 있는 독틈함의 무게감 때문인지 몰라도 이들 상황에 대한 몰입이나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 느낌이 다분하다. 즉 죽마고우였던 두 장수가 서로를 죽이게 되는 상황으로 몰린 개연과 필연에 있어 다소 때꾼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 어떤 가열한 사투 속에서 미친 광기의 혈투를 보고 싶었지만, 웬지 혈투가 아닌 다툼으로 보이는 건 왜일까? 더군다나 두 장수에 개입된 사병은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듯 하면서 둘을 해치려 든다. 오로지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인데, 그것은 천민 출신이기에 신분 차별 사회에 대한 반항적 모드로 그들을 대하며 생사를 건다. 그러면서 이들은 그 객잔을 벗어나지 않은 채, 그 속에서 세 번을 전후로 가열한 몸싸움의 다툼으로 일관한다.

이것이 이 영화가 안고 있는 근원적인 패착의 느낌이다. 즉 제목처럼 '혈투'라는 게 무색할 정도인데, 그래도 마지막에 이제는 서로를 죽여야 하는 극한으로 달리고 청군이 그 객잔을 덮치면서 이들은 일촉즉발의 위기로 몰리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살아 남았을까? 아니면 모두 죽었을까? 이렇게 의문이 들지만 그간에 그 안에서 지칠대로 지친 몸싸움으로 그들은 기력조차 없을지도 모르겠다. '적이 되어버린 친구, 적군의 추격, 누구를 먼저 치고 누구와 손을 잡을 것인가'하는 동상이몽 속에서 영화는 끝장을 향한 최후의 혈투로 달려왔지만, 제목처럼 가열한 혈투 대신 살고자 하는 몸싸움의 다툼처럼 남고 말았다. 그래도 분명 기존 사극 영화와는 차별화가 느껴지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사극혈전' 핫이슈로 소개 되었지만, 제목만 다르게 고쳤어도 괜찮을 법 싶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이른바 죽음을 불사하며 피를 보는 가열한 사투인 '혈투',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