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그 어떤 불가항력적인 위험에 처해진 상황에 맞서 이겨내려는 '사투'(死鬪), 즉 죽음을 불사하고 싸우는 그 현장은 영화적 소재로 차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그림 자체가 주는 근원적인 힘이 있기 때문인데, 누구나 보편적인 삶을 영위하며 살아간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저마다 큰 위기에 봉착하기도 해 우리는 나름 사투의 연속으로 인생을 살고 있다. 하지만 죽음을 불사할 정도로 막바지에 몰린다면 그때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즉 누구의 도움도 없이 고립된 상황에 처해진다면 어떨까? 생각만해도 끔찍하기도 하고, 또 쉽게 일어나질 않을 일이라고 애써 치부해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우리네 사회면을 가끔씩 장식하며 인간의 질긴 위대함을 때론 보기도 하는데, 여기 그런 영화 한 편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인도 청년의 퀴즈왕 먹기 게임을 꽤 담백하게 어디에 치우치지 않게 잘 그려낸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감독 '대니 보일', 물론 그 전에 좀비와의 사투를 단순 B급에 머무르지 않고 메시지성이 강한 수작으로 남긴 <28일후>, 또 거슬러 올라가면 그 경쾌한 음악에 맞춰 무한질주하듯 아직도 달리는 뜀박질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던 <트레인 스포팅>까지.. '대니 보일' 감독은 그만의 스타일과 감각을 소유하며 스크린을 창조하는 일종의 능력자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인간의 사투를 그려내며 또 다시 주목을 받았는데, 더군다나 이 영화는 실제 실화를 바탕으로 살아난 한 인간을 그렸기에 더욱더 의미가 깊다 할 수 있다. 즉 상상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실제 주인공을 모델로 그 사투의 현장을 그려낸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는 '감동실화'라는 장르 선정에 쉽게 다가설 수 있음을 본다. 그것이 감동이 됐든 아니면 실망이 됐든, 그래도 인간의 사투를 이렇게 임팩트하게 아니, 담백하면서도 밀도감있게 그려냈으니 영화 '127시간'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실화극 <127시간>, 살고자 하는 의지보다 더 강한 것은 없다!

남은 건 오직… 로프, 칼 그리고 500ml 물 한 병 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127시간의 간절한 사투가 시작된다! 2003년 미국 유타주 블루 존 캐년, 홀로 등반에 나선 아론(제임스 프랭코)은 떨어진 암벽에 팔이 짓눌려 고립된다. 그가 가진 것은 산악용 로프와 칼 그리고 500ml의 물 한 병이 전부. 그는 127시간 동안 치열한 사투를 벌이며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되고 이 과정에서 그는 친구, 연인, 가족 그리고 그가 사고 전에 만난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마침내 살아남기 위한 결심을 굳히고, 탈출을 위해서는 자신의 팔을 잘라야 하는데……



한 남자의 사투 '127시간', 결국 자신의 팔을 자르고 살아남다.

사실 줄거리도 볼 거 없이 한 남자가 홀로 산악 모험을 하던 중, 암벽에 팔이 끼면서 고립돼 그 상황이 제목처럼 '127시간' 동안 벌어지는 사투를 그린 것이다. 즉 5일을 넘게 버텨낸 '그 남자가 살아남는 법'을 그린 일종의 다큐스런 영화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많은 주인공이 필요치 않다. 얼마 전 강호가 본 영화 <베리드>처럼 관속에 묻힌 한 남자의 사투를 그리듯 여기서도 오직 한 사람만이 나올 뿐이다. 그대신 여기서는 대자연의 공기를 마시며 나름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는 제공됐다. '베리드'처럼 꽉 막힌 공간이 아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래서 초반에 팔이 끼었을 때 주인공 아론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뭐.. 움직여보면 빠지겠지 싶었다. 하지만.. 그 암석은 수천 년의 세월을 버텨온 듯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때부터 아론은 '오.. 지저스'가 절로 나오게 된다. 절대 빠지지 않을 팔을 애처롭게 보기 시작하며 그만의 사투가 그곳에서 벌어진다. 홀로 고립되다 보니 갖가지 상념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진다. 이렇게 고립되기 전 만났던 신선한 처자들과 찍은 비디오를 보기도 하고, 칼로 바위를 깍아도 보고, 목마른 갈증의 욕구가 샘솟아 단지 '마시고 싶다'는 꿈에 부풀고, 유일한 대화 상대인 캠코더 앞에서 녹화를 하는 등, 그는 버티기 위해서 나름 노력한다. 때로는 친구들과 질펀한 파티를 상상하기도 하고,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그곳에 물이 차올라 드디어 암석에서 팔이 빠지는 꿈까지 꾸는 등, 그에게는 온갖 상념으로 가득차 그곳에서 고립된 상황의 돌파구를 찾는다. 즉 환청과 환영에 시달리며 나름의 위안을 얻는 것인데, 그런데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점점 피폐해지고 메말라간다.

결국 5일째가 되던 날, 그는 결심한다. 더이상 버티기도 힘들고, 어찌됐든 살아서 돌아가기 위해 그 암석에 낀 팔을 결국 자르기로 결심한다. 절대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무엇보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던 아론으로서는 최선의 방책인 셈이다. 좀비물을 보듯 가열하게 팔을 슬래셔급으로 잘라내 드디어 탈출에 성공한다. 그러면서 그 와중에도 그곳을 기념하듯 디카로 찍어주는 센스.. 분명 이 모습이 웃긴 건 아니지만 그 여유로움에 놀라울 뿐이다. 또한 팔을 어떻게 자를 수 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이것은 실화기에 분명 가능한 이야기다. 이후 잘라진 팔을 감싸고 그곳을 뛰쳐나온 그는 물부터 찾아 마시고, 지나가던 산악인을 보고 혼절해 구원을 요청한다. 그 순간 그는 구조돼 결국 살아서 돌아오게 된다.



그 남자의 가열한 사투를 통해서, 인간의 생존적 몸부림을 보다.

이렇듯 영화는 꽤 정공법으로 영화를 그려냈다. 그 어떤 덧칠없이 한 인간이 고립된 상황에서 보일 수 있는 갖가지 상황을 연출하며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스토리가 아쉽긴 해도 사실 스토리보다는, 그 남자가 죽지 않고 사는 법이 더욱더 중요하게 그려져야 할 상황이기에 그림 연출은 볼만했다. 긴 런닝타임이 아니어서 지루함도 없이 그를 주시하게 되고, 그것은 탄탄의 연기력으로 사투의 현장을 리얼하게 연기한 '제인스 프랭코'의 호연도 한몫 했음이다. 또한 '대니 보일'식의 감각적인 영상이나 음악도 같이 어우려져 마지막 팔을 자르기 전 까지는 실제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게 만들기도 했다. 그만큼 영화적 기법에다 실화가 잘 어우러진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영화는 실제 그 현장에서 살아남은 한 남자의 사투를 중점적으로 그려낸 실화다. 그것이 감동을 주고 안 주고는 사실 차후의 문제이자, 그것이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바로 감독의 의도도 그렇고, 그것은 '인간의 사투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가이드같은 모습을 보인다. 즉 혼자서 사투의 현장 속 고립된 상황에 있다 보면, 그 순간 인간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려하며 일종의 삶의 끈을 놓치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결국 영화는 그곳에 초점을 맞춰 그려냈고, 종국에는 팔까지 자르게 된 그 상황에 대한 개연과 필연을 나름 와 닿게 그려냈다고 할 수 있다. 지켜보며 이 상황에 동참한 이들에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하는 물음과 함께, 여기 주인공은 그 선택의 기로에서 그렇게 함으로써 사투의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것만이 살길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또 인간인 것이다.

여기 실제 주인공 '아론 랜스톤'처럼 말이다. 결국 인간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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