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이 한 권의 장편소설이 화두다. 바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조정래'님의 신작 소설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이 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굴곡지게 씨날처럼 풀어쓴 대하 장편소설 시리즈인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읽은 사람이든 못 읽은 사람이든 그의 작품은 그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 다른 작품들이 있었지만 책으로 이렇게 출간된 것은 3년 만에 나왔다. 이름하여 <허수아비춤>, 이미 여러 번의 홍보가 되었던 책이라,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한 번씩 읽어야 할 그 어떤 교과서로 다가왔다. 마치 올 봄에 나왔던 황석영의 장편소설 <강남몽>처럼 말이다. 어찌보면 두 개의 작품은 다르면서도 많이 닮았다. '강남몽'이 대한민국 자본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강남의 형성사를 다루면서 인간 군상들의 역사를 되짚어보며 성찰했다면, 여기 '허수아비춤'은 역사가 아닌 현재 우리 시대 자본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조정래 작가의 신작 <허수아비춤>, 이 땅의 대기업을 소설로 말하다.

그것도 자본력으로 이 땅에 군림하고 있는 대기업의 이야기를 그렸는데, 이게 아주 제대로다. 아니, 제대로가 아닌 우리의 현주소라 봐야할 것이다. 대기업의 비리와 관련된 스카우트, 편법, 탈세, 로비, 비자금, 차명계좌, 상납, 홍콩 쇼핑 관광까지 소위 전방위적으로 그들의 작태를 드라마처럼 마음껏 풀어내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 가열한 느낌은 아니다. 그것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대기업의 모습을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기에 새삼스럽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확인 사살하는 기분이랄까, 그래도 디테일하게 들어가서 그들의 치부를 보니 일종의 쾌감까지 느껴지는 이상한 기분이 든다. 과연 '허수아비 춤'이 풀어낸 그 이야기 속에는 어떤 춤사위가 벌어진 것일까.. 그 이야기 속으로 잠깐 빠져보자.

이야기는 시작은 어느 대기업의 실행총무로 근무중인 '강기준'이 다른 대기업의 한 사람 '박재우'를 스카우트 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들은 선후배 사이다. 일광그룹에 다니는 강기준이 태광그룹의 핵심 브레인 박재우를 스카우트 하는 것이다. 물론 남회장의 하달이 있었고, 윤성훈 총본부장이 총책임을 맡으며 그를 끌어들이고 있는 것, 결국 박재우는 일광으로 넘어와 기획총장으로 앉는다. 그러면서 이들 셋은 남회장의 특별지시로 친위조직인 '문화개척센터'라는 조직을 만들어 알 듯 모를 듯 전방위적으로 로비를 펼친다. 왜냐? 재계 1위인 태봉그룹을 넘어서기 위해서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것인데, 이들의 활약상이 중반까지 치닫는다. 공무원 조직의 주사부터 서기관과 국장급은 물론 검찰 조직의 검사까지 끌어들여 위용을 갖춘다.

'대기업의 로비는 이렇게 하는 거다'를 제대로 보여주다.

이에 남회장은 세상을 다 가진 양 마냥 좋아하는데, 특히 이 남회장의 성정은 독불장군식 안하무인에 불도저식 경영 철학을 가진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시선이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코드를 무지 싫어하며 특히나 '노조'에 대해서 전형적인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어찌됐든 이 '문화개척센터'를 위시로 그들은 영입하려는 사람의 가족끼리 감동시켜야 한다는 '무한감동로비'의 기치를 내걸고 계속 활약한다. 설과 추석 때를 대비해서 전방위적 로비를 위해서 그들만의 비밀금고를 만들고 현찰을 쌓아 놓는 등 그 규모만도 1조원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이에 세 사람을 중심으로 로비는 가히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치고, 남회장은 이들에게 스톡옵션으로 50억, 40억, 30억을 차등 지급하며 홍콩에 공무겸 쇼핑 관광까지 보내준다.

한편 이야기는 중반 이후 검찰 조직에 대해서도 메스를 가하는데, 이른바 '상명하복 검사동일체'로 운영된다는 이 검찰 조직에서 제대로 적응 못하고, 고지식하게 버틴 '전인욱' 검사가 좌천돼 검찰 옷을 벗고 급기야 변호사로 전환해 경제민주화를 실천하는 시민단체로 들어간다. 그러면서 이 단체는 일광그룹과 대일전을 벌인다. 그전에 어느 대학의 한 교수가 일광그룹의 비리와 관련된 글을 신문에 게재하면서 그 파문이 확산돼, 급기야 그 교수는 직장을 잃게 돼 시민단체로 들어오게 된다. 그러면서 일광그룹의 불법적 재산권 상속과 경영권 승계 문제를 가지고 그 시민단체는 일광을 고발하며 부딪히게 되는데, 이에 남회장은 앙앙불락되고, 세 사람이 진화에 나선다. 이때 시민단체는 전 변호사가 공동대표로 추대돼 허 교수와 함께 그들의 법정 공방에 맞서지만, 쉽지가 않다.

이미 태봉그룹이 거대한 비자금 조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회장이 풀려나듯, 여기 남회장도 유죄는 커녕 다른 하부 조직만 솜방망이 처벌로 넘어간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주소인 것이다. 그리고 이들 셋은 보란듯이 시민단체의 무모함을 꼬집으며 자화자찬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한다. '정치민주화'는 이뤄냈을지 몰라도 '경제민주화'는 요원한 것이다. '기업이 잘되어야 우리가 잘살 수 있다'는 대중들의 근저에 깔린 이기주의와 기회주의 때문이라도 우리 기업들은 망할 수도 없거니와 경제의 속성상 민주화는 될 수가 없다. 그래서 대중들은 '바보스러울 만큼 착하게 자발적 복종을 한다'며 자신들의 건재함을 위해 건배를 든다. 일견 와 닿는 말이기에 그들의 건배에 속이 쓰릴 뿐이다. 그러면서 이들의 이런 로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을 예견하며, 오늘도 내일도 춤사위를 벌이고 있다.

이렇게 이 소설의 이야기의 중심에는 바로 '대기업'이 있다. 일견 어느 기사에서는 여기 나오는 일광그룹과 태봉그룹을 H그룹, S그룹이라 보기도 한다는데, 뭐.. 그게 중요한 것보다 어느 기업이 됐든 간에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대기업들 비리와 관련된 작태임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정직하게 돈 벌어서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은 생색내기 일뿐, 각종 편법과 불법이 판을 치고, 이름도 모를 새로운 조직을 친위대처럼 조직해서 로비자금을 융단 폭격하듯 마구 쏟아내며 이 사회를 부조리하게 만들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그런 그림은 조정래식의 문학적 총체로 어우러져 풍자의 속성을 그대로 고발하듯 그려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움직이는 그 부조리한 야만의 존재를 명징하게 말이다.

대기업 비리를 총체적으로 담아낸 <허수아비춤>, '경제민주화'는 요원한가?


그리고, 또한 이 소설의 재미는 드라마처럼 전개되는 과정 속에서 작가 특유의 새로운 우리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불콰하다, 깔끄장하다, 요로요로하다, 기욋돈, 꼬약꼬약, 괴어오르다, 고소롬하다, 잦바듬하다, 발싸심, 조단조단, 어스름, 때꾼하다 등.. 수없이 많다. 강호가 읽는 내내 수첩에 적은 것 중에 고른 게 이 정도다. 그만큼 읽는 이로 하여금 흥미를 유발시키는 단어들인데, 이외에도 문장들이 와 닿는 표현들이 많다. "자기보다 열 배 부자면 그를 헐 뜯고, 자기보다 백 배 부자면 그를 두려워하고 자기보다 천 배 부자면 그에게 고용당하고, 만 배 부자면 그의 노예가 된다.(사기)", "선거는 지배 계급에게 주기적으로 지배와 억압에 대한 정당성을 선사해 제는 제도일 뿐이다.(프루동)", "정치란 비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무 도덕적인 것이다. (마키아벨리)", "이 세상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고루 나누어 먹고도 남는다. 그러나 부자들의 욕심을 채우기에는 모자란다.(마하트마 간디)" 등 구구절절 와 닿는 문구들도 많다.

그만큼 조정래의 소설 '허수아비 춤'은 단어와 문장을 오가며 색다른 재미를 주는데, 특히 강조하는 이야기로 수컷들의 본능에 대해서 몇 번을 언급하며 소위 '씨뿌리기'에 대한 단상을 말한다. 정말 이 또한 번외편의 와 닿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는데, 이렇게 이 소설은 이런 재미는 물론, 우리의 대기업들이 지금 자행하고 있는 온갖 비리 그중에서도 '로비'와 관련된 것에 중점을 맞춰 드라마를 보듯 써내려갔다. 그래서 묵직함 울림보다는 가벼운 터치가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가볍게만 볼 수 없는 본질적인 풍자가 담겨져 우리네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어느 신문 인터뷰에서는 읽은 이들에게 일종의 '모욕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대기업의 행태에 모욕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마지막 단원의 11장 '착해라, 자발적 복종' 이야말로 대중들의 심리를 꿰뚫은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여기 제목 '허수아비춤'이 말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도 곱씹어 봐도 딱히 이거다 싶은 생각은 안 떠오르지만, 이 제목은 바로 허수아비처럼 어떤 실존과 허상의 양면으로 치닫는 우리네 현주소를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 철저하게 외면화된 대중들의 이름 모를 춤사위, 또 그런 춤사위를 지켜보며 자기들 나름대로 춤을 추는 대기업들, 그러니 박자가 같이 맞아 어울려야 할 그 춤사위는 어긋나며 아직도 '경제민주화'는 요원하다고 역설한 것은 아닐까.. 그래 아직 갈 길은 멀다.

이 한 권의 소설로 대기업의 비리를 제대로 해부했다고 또 경제민주화의 대안을 제시했다고 볼 순 없지만, 조금은 말랑말랑하게 써내려간 이 소설 속 이야기는 분명 소설같지 않다는 거, 그것만 재확인을 했다면 순간 잊고 있었던 문학으로서 소설의 총체성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아직도 허수아비 춤을 추고 있는 것을 스스로 목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당신은 과연 어느 장단에 춤추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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