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 After Shock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흔히 만물의 영장을 '인간'이라 말한다. 다른 생물과는 다르게 고차원적인 지능을 갖추며 그 지능과 생각으로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우리 인간들이다. 하지만 그런 인간도 하늘이 노했는지 그 어떤 자연재해 앞에서는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 것도 우리 인간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 그런 사람들을 그리며 자연재해를 다룬 한 편의 영화가 있다. 보통 자연재해를 다루는 실제 다큐물이 아닌 이상 영화로 나올 때에는 영화적 감상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그런면에서 본다면 기존의 헐리웃 재난 영화들 흔히들 '블록버스터'라 불리는 그런 재난 영화들은 실제와 같은 재난 현장을 그대로 재현하며 이목을 집중시킨다. 산사태, 지진, 해일, 화산폭발 등 종류도 많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그런 재난을 당한 사람을 구하는 한 영웅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그 영웅이 위험을 뚫고 한 무리의 사람을 구하는 광경을 끝까지 지켜보게 된다. 이것이 보통의 헐리웃 블록버스터급 재난 영화들이 내건 이야기의 플롯이자 주제다.

'대지진' 재난 영화지만, 재난 보다 가족의 이야기다.

물론 그 속에서 재난을 당한 이들의 아픔, 특히 가족이 흩어지거나 누가 죽거나 하면서 보여주지만 그것이 주가 되지는 않는다. 켣가지 묻어갈 뿐 한 영웅의 활약상에 초점을 맞춘 것이 재난 영화의 아이러니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중국영화 <대지진>의 느낌은 이런 기존의 헐리웃 재난 영화와는 사뭇 다르다. 제목만 얼추 보고서 대단한 재난 영화라 생각할 수 있는데, 기실은 그렇지 않다. 재난의 현장은 1분 여로 끝나고 그 다음부터는 그 재난의 피해를 입은 한 가족의 이야기로 끝까지 뚝심있게 밀어부친 드라마로 봐야 한다. 그것도 감동의 휴먼 드라마로 해야할지, 물론 저마다 느낌은 다르겠지만, 여하튼 이 영화는 '대지진'이라는 자연재해 앞에서 살아남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영화 <대지진>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1976년 7월 28일 중국 당산.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23초간의 대지진.
악몽 같은 지진은 한 가족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소박한 일상이지만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일곱살 쌍둥이 ‘팡떵’과 ‘팡다’의 가족. 행복했던 그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예고되지 않았던 시련이 닥친다. 바로 27만의 목숨을 빼앗아간 지옥 같은 대지진. 폐허가 된 도시, 수많은 생명이 죽음을 맞이한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쌍둥이 남매는 극적으로 살아남지만 무너진 건물의 잔해 속에 묻히게 된다. 쌍둥이의 생존사실을 알고 구조대와 함께 아이들을 구하러 온 어머니는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쌍둥이 중 한 명만을 구해야 하는 운명의 선택 앞에 놓이게 된다. 가혹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어머니는 결국 아들인 ‘팡다’의 목숨을 선택하게 되고, 딸 ‘팡떵’은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채로 잔해 속에 남겨진다. 며칠 후, 죽은 줄로만 알았던 ‘팡떵’은 다른 구조대에 의해 발견되어 지진사망자 보관소에 버려지지만, 죽은 아버지 곁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된다. 폐허가 된 지진의 잔해 속에서 살아남은 소녀. 한 순간 운명이 바뀌어버린 남겨진 소녀의 운명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렇게 이 이야기는 실제 중국에서 벌어졌던 대지진의 현장을 담고 있다. 1976년 7월 28일 그날, 불과 1분도 안되는 찰나의 순간에 20만 명이 넘는 목숨을 앓아간 대지진, 바로 '당산 대지진'이라 일컫는 이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은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만 것이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살아남는 생명력 강한 인간이 있기 마련이고, 여기 주인공 엄마는 그 현장에서 비록 남편을 잃었지만 폐허가 된 잔해더미 속에서 두 아이를 구할려고 한다. 하지만 둘을 모두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들을 택한 엄마, 딸은 그렇게 남편과 함께 그 현장에서 죽었다. 그러다가 며칠 후, 죽은 줄로만 알았던 어린 딸이 다른 구조대에 발견되어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그리고 그 살아난 딸은 구조대로 활동한 인민해방군 군인 부부 슬하에서 자란다.

지진의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한 가족의 엇갈린 운명

그러면서 그 딸의 이야기와 또 살아남은 엄마와 아들 이 둘의 삶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드라마적으로 후반까지 흐르는 것이 영화 <대지진>의 플롯이다. 그래서 그 어떤 자연재해의 위용을 제대로 감상코자 하는 이들에게는 이 영화는 부족할지 모른다. 물론 영화상으로 스펙터클하게 지진발생 상황을 재현하며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그 재현이 길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실제 사건도 채 1분도 안 되었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찰나의 순간을 담은 현장 만큼은 볼만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남은 한 가족의 이야기인데, 그것이 다분히 드라마적으로 일관되며 제목에 걸맞는 자연재해 영화인지 의구심을 갖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지진 이후 한 가족사의 드라마로 본다면 이 영화는 심히 와 닿게 그렸다. 그것이 가슴을 울릴 감동실화라 홍보할지라도, 어느 정도 그 가족의 슬픔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도 모두 가족이 있기에 말이다. 그러면서 이 드라마는 살아남은 여자의 성장기, 그리고 남은 엄마와 아들의 삶을 그리면서 여자는 그 군인 가족에 따뜻한 보살핌 속에 의과대까지 들어가는 재원이 됐고, 남친과 원치 않는 임신에 아이를 낳고 나중에는 외국인 변호사와 결혼까지 하는 우여곡절을 겪는다. 아들 또한 커가면서 애인을 사귀고 엄마와 사사건건 부딪히며 곁을 떠날려고 하면서 힘들게 하지만 이들 가족은 그렇게 상처를 보듬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각자 힘겹게 살아가는 동안 그 대지진 이후 세월이 32년이나 훌쩍 넘긴 시점에 또 다른 지역에서 터진 지진, 그 지진의 참사 현장으로 여자와 남자는 구조대원으로 활동하다가 우연찮게 만나게 된다. 바로 또 다른 참사의 현장에서 헤어졌던 친남매가 그렇게 30여 년 만에 조우한 것이다. 그리고 남자는 자신의 여동생을 집으로 데려와 두 모녀간의 극적인 상봉을 이룬다.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어미된 입장에서는 딸을 버리고 아들을 구했다는 죄책감에 살아온 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회한의 눈물을 삼킨다. 이에 딸도 그런 엄마를 용서 아니, 엄마를 만났다는 기쁨에 한없이 울고 만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렇게 이 가족은 아빠만을 남겨둔 채 세월이 한참 흐른 뒤 다시 만난 것이다.



이것이 영화가 담아낸 드라마다. 그렇다. 많은 이야기가 필요없는 자연재해 앞에 속수무책 당하고 만 사람들, 그 속에서 살아남은 가족이 흩어지면서 그들의 삶을 드라마적으로 그리며 종국에는 만나게 됐다는 휴먼적인 이야기, 실제 사건이었기에 더욱더 와 닿기도 한 이 영화는 그 자연재해 앞에 상처받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특히 살아남은 가족의 이야기를 담는 그림을 보고 있으니까 주인공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대지진 이후 성장한 딸 역을 맡은 '장징추' 여배우는 마치 한국의 여배우 '김규리'는 보는 듯 했고, 그 딸을 잘 키워준 양아버지 역에는 '진도명'이 나왔다. 이 분은 중국사극 <와신상담>에서 월왕 구천 역으로, <대진제국>에서 상앙과 함께 진나라의 부국강병의 기틀을 만든 진효공역으로 나와서 낯이 익은 배우다. 나중에 딸이 아무런 연락도 없이 몇 년을 떠나 있어 힘든 부정(父情)을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대지진', 연기자들 호연 속에 묻어난 우리네 가족이야기

물론 여자 주인공이자 폐허 속에서 두 아이를 잃을 뻔했던 가슴 아픈 모정을 끝까지 보여준 '쉬판'의 연기 또한 좋았다. 젊은 시절부터 나이 들어 잃었던 딸을 만나는 그 순간까지 엄마는 그렇게 모진 세월을 견딘 것이다. 또한 영화 초반의 재난 장면에 지진으로 가족을 잃었던 2천 여명의 당산 시민들이 직접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그 촬영 현장은 절절한 눈물로 뿌려졌다는 후문이다. 

이런 감동의 드라마는 <집결호>, <야연> 등을 연출한 명실공히 중국 최고의 감독이라 평하는 '펑샤오강'이 메가폰을 잡으며 중국의 거장 '장예모'를 뛰어넘는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대지진 속에 파묻힌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것은 "2008년 5월 대지진후, 자연재해 앞에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자연으로부터 받은 고통을 감추지 말고, 살아남은 자들의 힘겹고 서글픈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그는 그 어떤 자연재해 속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자 했던 것이다.
 


장예모의 <인생>과 비슷하지만 다른 느낌의 가족이야기 <대지진>

그것이 감동이 밀려오던 안 오던 사람들의 이야기만은 확실하다. 그것도 한 가족의 이야기 말이다. 그래서 이런 느낌은 마치 장예모 감독이 연출하며 다수의 상을 수상한 영화 <인생>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강호는 이 '인생'의 이야기를 먼저 '위화'의 책으로 만나보고 영화로도 봤었다. 중국의 시대 상황을 반영하며 운명과 죽음이 교차하는 보편적 삶을 다룬 푸구이의 인생 역경을 그려낸 작품이 <인생>인데 반해, 이 작품 <대지진>은 인생 역경이 그 어떤 자연재해 뒤에 남겨진 한 가족의 엇갈린 운명을 드라마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바로 그 자연 앞에 무력한 인간과 이들 앞에 놓여진 잔인한 현실은 실상 인간의 삶이 어느 순간 맞딱뜨릴 수 있는 고통의 영역이며 그 고통을 감추는 게 아니라, 그 고통을 감내하고 과거와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대지진이 휩쓸고 간 남겨진 가족의 엇갈린 삶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네 이야기일 수도 있고 또 우리가 함께 하는 가족의 이야기다. 즉, 대지진으로 비극적 운명을 맞은 가족을 통해서 과거와의 화해와 용서를 다룬 것이다. 

결국에 이 영화는 재난 영화라기 보다는 지극히 드라마적인 휴먼 드라마다. 그 휴먼이 주는 감동은 차치하더라도, 재난 속에서 남겨진 한 가족의 이야기, 뻔한 이야기 같지만 그래도 와 닿는 게 우리의 인생살이가 다 그러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이 영화 <대지진>은 재난을 모티브로 한 전형적인 가족의 이야기다. 물론 이것은 드라마 이전에 실화이기에 더욱더 와 닿는 이야기이자,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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