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와 홍련의 원전인 <장화홍련전>은 장화와 홍련이 재산에 눈이 먼 계모 허씨와 이복동생 장쇠가 갖가지 누명과 소동을 동원해 두 자매를 죽이고, 혼귀가 된 그들이 아버지 배좌수와 고을 현감에게 억울함을 호소하여 결국 원수를 갚고 편안히 저승길을 떠난다는 우리 고전 설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한국 영화사에서 이 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은 2003년작 김지운 감독의 현대판 <장화, 홍련>을 포함한다면 지금까지 여섯 작품이 만들어졌다. 

기록에 의하면 1924년 김영한 감독의 무성영화가 시초이고, 홍개명(1936), 정창화(1956, 1962) 감독 등이 만들었고, 이중 1924년, 1936년, 1956년의 <장화홍련전>은 현재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그나마 이유섭 감독의 1972년작 <장화홍련전>은 공포, 괴기영화의 요소인 흰 소복을 입은 자매 귀신의 등장이나 기괴한 사운드를 최초로 어필한 영화였고, 이후에는 30년이 지나서 2003년 김지운 감독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아무튼, 한국적 공포와 호러영화를 얘기할 때 <장화홍련전>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소재였다는 점이다. 이에 영화적 내용 보다는 그 이면에 숨은 이야기를 관련 책 <처녀귀신>을 통해서 정리해 보면 이렇다. 우선, 이 이야기들은 공통점이 있다.

계모의 박해, 구경꾼 이복동생, 아버지의 방관과 오해로 연못에 빠져 죽은 장화와 홍련이 귀신이 되는 이야기는 가정조차도 안전지대가 될 수 없었던 처녀들의 삶, 딸들의 수난사를 대변하는 한국적 문화기호가 되었다.
그 중심에는 '나쁜 계모'라는 문화적 통념 속에서 생모 없는 삶이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처럼 기쁨과 행복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재혼가정에 대한 편견의 주춧돌로 자리 잡은것도 사실이다.



특히나 2003년 김지운 감독의 영화 <장화, 홍련>은 원작과는 무관하지만 가족사 비극을 공포의 심상으로 원용하며 귀신이 되는 내력담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공포의 발원지가 가정이고 자살을 종용한 사람이 아버지이며, 모종의 가족적 음모가 연루되었다는 점에서 장화와 홍련의 이야기는 비밀스런 가족사 비극을 공포의 정서로 투명하게 감싸안아 드러내는 상상의 출구를 마련해 놓았다. 이것은 고소설이든 영화든 '장화홍련'을 내세운 비극은 혈연으로 맺어진 양(兩)부모 가족의 스위트 홈이란 환상적 로망을 부추기기도 한다.

동시에 양부모 가족을 '정상 가족'의 전형으로 여기는 한국사회의 문화적 강박증을 보여주면서 '사악한 계모와 착한 전실 딸'의 비틀린 대결 구도를 통해 가족제도의 모순을 '여자들의 문제'로 협소화하는 문화적 왜곡을 강화시켰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이것을 일반 드라마가 아닌 공포로 담아냈다면 그러면에서 2003년 <장화, 홍련>에서의 왜곡된 가족 관계나 비틀린 심상이 주는 공포는 영화적 미학과 세련된 구도, 시나리오의 잘 짜인 구조로 반향을 일으키며 공포 영화의 핫이슈로 자리매김 해온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공포'에 생기를 불어넣는 가족의 비극적 이야기를 풍부하게 하는 상상과 해석 작업은 공포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순간 작동돼 이성의 몫으로 남겨져 이야기의 개연성을 되짚어 보는 일종의 퍼즐놀이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공포의 진원에는 가족사 비극이 가족 안에서 가장 무력한 존재인 약자로서의 미성년자, 처녀, 전실 딸을 희생자로 삼는다는 일종의 문화적 합의가 자리해 있다.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비극적 가정소설의 희생자가 전실 딸로 고정되어왔다는 것은, 가족의 약자는 가권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미혼의 딸, 그를 보호할 친모가 없는 처녀라는 것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음을 반증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의 중심으로 면면히 이어져온 장화와 홍련은 버전을 달리하며 고소설로, 영화로 공포를 업테이트 해오며 이런 역사 문화적 함의를 갖고 또다시 탄생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의 코드에는 '사필귀정'과 '인과응보'라는 고전소설적 문법에 충실한 후일담을 담고 있는 성격이 짙다. 특히 고전소설 <장화홍련전>은 이런 문법에 충실해 서늘한 공포와 뼈아픈 고통은 속죄를 위한 통과의례의 몫으로 남기며 우리를 환기시키고 있다. 이렇게 고소설에서 전승되듯 우리의 뿌리깊은 가부장적 문화적 자리에 얽히고 섥힌 가족사의 비극이 자리매김하면서 그것이 공포라는 코드를 만나 이른바 '가족 괴담'으로 재탄생되고 자리매김한 장화와 홍련의 이야기..

그 속에는 한 가족사의 비극으로만 치부되기에는 사회적 문화적 키워드로 우리네 심상을 무던히도 건드리고 있다. 특히 이것이 현대적 공포와 호러를 만나면서 그들의 이야기는 그로테스크한 스릴러물로 연명되고 또 비밀스런 가족사 비극의 문제적 지형은 한국 호러 고전의 트라우마로 우리를 계속 환기시키고 있다. 즉, 이야기의 출발은 가족인 것이다. <장화, 홍련>이 다시 보고 싶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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