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드라이브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우리는 고도화된 산업문명 속에서 복잡다변한 인생사를 살고 있다. 그런 인생사에는 수많은 일들과 변화가 있어 사람들이 울고, 웃고, 화나게 만드는 일들을 만나는게 태반이다. 그러면서 그런 인생에 우리는 묻어가며 마지못해 살고 있는 아니.. 자신의 의지가 됐든 아니든 우리는 그렇게 오늘도 하루를 보내며 산다. 바로 여기 그렇게 살아온 40대의 한 남자가 있다. 일본 유수의 은행에서 잘 나가며 부지점장까지 노렸던 40대 초반의 은행맨.. 하지만 그 치열한 은행 조직 사회에서 상사에게 말 한마디 잘못으로 그는 좌천돼 결국 은행에서 퇴출되고 만다.

"아.. 큰일이군.. 그 잘난 직장 은행에서 나왔으니 이제부터 뭘 하며 먹고 살아야할까.." 심각할 고민이 아닐 수 없다. 40대 가장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으니 가정 경제가 휘청이는건 뻔한 일.. 여기 주인공 '마키무라 노부로'(이하 노부로)는 그래서 택시 운전대를 잡는다. 사실, 처음에는 반 장난식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다른 곳의 번듯한 직장을 잡기전까지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이 택시 운전사가 되는 순간부터 빠져나오지 못하는 수렁처럼 그 속에서 헤매게 된다.

그는 도대체 무엇을 헤맨 것일까.. 물론, 초보 택시 운전사로서 운행중 실수도 하고, 손님 응대도 서툴고, 매일 할당된 운행 수입을 채우지 못해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등.. 좌충우돌이다. 뭐.. 그럴 수 밖에.. 20년 가까이 은행 일만 해온 사람인데, 하루종일 운전대 잡고 사람 상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알다싶이 택시 손님들은 별의별 천태만상이니 말이다. 특히, 밤에는 취객들 상대는 정말 메뉴얼이 없으면 낭패보기 십상이다.

이렇게 여기 초보 택시 운전사 노부로는 택시 운전으로 처음에는 고생한다. 그런데, 자신의 이런 일 뿐만이 아니라 회사의 불합리한 사납금 제도나 개선되지 못한 처우 문제와 열악한 근무여건등 택시계의 현실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일본이나 우리나 매한가지다. 그러면서 이 책은 이런 현실들을 '노부로'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심각한 수준으로 고발하기 보다는 때로는 위트를 섞어가며 풍자하듯 까는 느낌으로 읽은 이로 하여금 웃음을 짓게 만든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 노래방 기기 도입을 해서 뒷자석에 달자고 했을때 반응 같은 것들도 그렇고.. ㅎ

암튼, 노부로는 가면 갈수록 초보티를 벗어나며 동료나 선배 대장님의 노하우를 몰래 배우며 잘 적응해 나간다. 그런데, 이야기는 그의 택시 운전대를 잡은 상황만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노부로가 겪어온 인생사를 반추하며 과거로 돌아간다. 그것은 직관적인 아닌 노부로의 몽상, 망상, 공상을 통해서 그려낸다. 노부로의 유년시절의 추억과, 학창시절 중학생때까지 잘 나가던 야구부 시절, 대학 시절 책 서클에서 활동하며 첫 사랑 '메구미'와 여러가지 추억들까지..



그는 이렇게 택시 운전대를 잡는 동안에 또 그 운전이 익숙해지면서 몽상을 하며 자신의 추억을 좇는다. 심지어는 그런 추억이 서린 장소들을 찾아가서 자신의 과거를 뒤돌아본다. 은행원 시절의 여러가지 에피소드부터 어느 출판사를 찾아갔다가 운 나쁘게 변태로 몰리기도 하는등..ㅎ 특히 여기서는 과거 몽상의 대부분을 첫사랑 '메구미'와 맞춰져 있다.

즉, 과거로 돌아가 지금 부인이 아닌 메구미와 결혼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보다 좋지 않았을까.. 메구미는 나를 잊지 않고 있을까.. 스토커처럼 그는 그녀를 찾아가지만 막상 눈앞에서 보지는 못한다. 그만큼 그는 어찌보면 여린 남자다. 그렇다고 마냥 여리기만 한 남자는 아니다.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이 택시 드라이버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있다. 그것은 가정 생활에서 이제는 대접을 받지 못하는 분위기도 한몫 했음이다.

10살의 아들 '게이타', 중학생 딸내미 '도모미', 이제는 섹스리스도 지낸지도 오래된 부인 '리츠코'.. 이 셋은 노부로를 그렇게 환대하지 않는다. 심지어 큰딸은 아버지를 홀대까지 하는데.. 그것은 택시 운전대를 잡아서가 아니라 그 나이때 아빠의 관심과는 별거의 문제인 것이다. 어린 아들은 매일 게임기속에 빠져살고, 부인은 캐셔 아르바이트로 파김치가 되고, 사실 가정생활은 각자 따로 가는 분위기다. 그래서 그는 일을 마치거나 하는중에 몽상이나 공상에 빠져드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몽상이나 공상만 매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택시 운전에 완전히 익숙해지며 그날도 손님을 태우는데.. 그는 자신을 은행에서 나가게 한 전 지점장 '도쿠다'를 차에 태우게 된다. 그런데, 그는 만취한 상태다. 그러면서 노부로의 복수?가 마지막에 펼쳐지는데.. 그때 비로서 그는 자신의 나아길을 찾게 된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 해답은 책 마지막에 있다.

이렇게 이 일본 소설은 행간에 인생의 애환을 무던히도 담아낸 '오기와라 히로시'의 작품이다. 어찌보면 잘 나가던 은행맨이 퇴출당해 택시 운전대를 잡은 간단한? 이야기를 단편이 아닌 300여 페이지에 담아내는 그만의 스토리텔링이 놀랍다. 그것은 경쾌한 필치와 곳곳에 깔린 유머로 무장하며 한 남자의 인생사를 반추하듯 좇고 있다. 그러면서 택시 운전대를 잡는 현실의 애환과 과거 추억의 편린들을 잘 교합시켜 전달했으니 '한편의 인생 드라이브'를 보는 듯 했다.

하지만 일본 소설의 번역의 문제인지 술술 읽히다가도 끊기는 느낌이 조금 있고, 특히 택시 운전으로 돌아다니다보니 익숙치 않은 일본 지역의 이름들이 난무한 곳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 고충이 있었다. 그런 점만 뺀다면 이 소설은 충분히 '노부로'를 통해서 우리네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인생사 교과서 같은 소설이다. 특히 나를 포함해서 30대와 40대 분들에게는 정말로 와 닿는 이야기가 많다. 한 가장으로서 또 한 남자로서 겪는 여러가지 고충들이 말이다.

비록 지나온 인생이 실수 투성이고, 영화 <박하사탕>의 유명한 대사 "나, 다시 돌아갈래!"처럼.. 다시 과거로 돌아가 이렇게 살아봤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지라도.. 어차피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 그런 현실로 돌아오는 일련의 과정들을 겪으며 우리는 미래의 '또 하나의 인생'을 그려보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것은 바로 인생사가 운전대를 잡듯 이리저리 오가는 '드라이브'와 같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일독을 권하며 택시 드라이버 '노부로'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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