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 펭귄클래식 14
김시습 지음, 김경미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양에만 멋스럽고 고풍스럽고 환상적이고 엘레강스하며 패러독스한 고전만 있는게 아니다. 우리 고전에도 이런 작품이 있었으니 학창시절 김시습하면 금오신화, 금오신화하면 김시습만 외웠지 사실 정작 '금오신화'를 읽어보지는 못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이자 한문소설인 금오신화 그의 생애와 이력도 정리했지만 생애 중반이후 1470년 즈음에 금와산에 들어가 도 닦으며 세상을 향해 외친 그의 한문 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 어떤 내용이고 어떻게 전해졌을까?

우선은 <금오신화>의 이본(異本)은 현재 8종(조선 목판본 1종, 일본 목판본 4종, 필사본 3종)이 남아 있다. 그종 조선 목판본이 1종이 중국 대련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조선 명종때 문인이었던 윤춘년(尹春年, 1514~1567)이 편집한 것으로 김시습이 죽은지 오십 년쯤 지나 출간된 것이다. 특히 8종의 이본들 가운데서 윤춘년이 편집한 이 조선 목판본은 가장 먼저 출간되었고, 가장 좋은 이본으로 인정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펭클'에서 나온판은 바로 이 조선 목판본을 완역한 작품으로 그 소개를 하면 이렇다. 먼저, 금오신화는 하나의 이야기로 되어 있지 않고 총 5개의 옴니버스식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의 세가지는 남녀간의 운우지정을 다루었고, 뒤의 두편은 염라왕, 용왕님과 세상사 돌아가는 토킹 어바웃 이야기다. ㅎ 주인공들도 다 생(生)자 돌림으로 순서대로 양생, 이생, 홍생, 박생, 한생이다. 간단히 줄거리는 이렇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소제는 '저포놀이가 맺어준 사랑'이다. 저포가 무엇이냐면 주사위 같은 것으로 나무로 만들어 던져서 그 끗수로 승부를 겨루는 놀이로, 지금의 윷놀이와 비슷하다. 여기 주인공 고독한 남성 문사 '양생'이 부처님 앞에서 저포놀이로 해서 얻은 여인네와 운우지정을 다룬 이야기로 양생의 절대 고독과 사랑에 대한 열정으로 이계를 넘나드는 모습이 마치 불후의 러브 영화 '사랑과 영혼'같은 스타일로 비극적 결말의 사랑의 아픔을 잘 이야기하고 있다.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소제는 '이생이 엿본 사랑'이다. 제목처럼 또다른 고독한 남성 문사인 '이생'이 아름다운 최씨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행복한 결혼생활은 고려말 전쟁으로 무참히 깨지며 아내와 가족을 잃고 혼자 남게된 이생이 귀신으로 다시 나타난 최씨와 못다 이룬 운우지정을 나누며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대신 여기서 이생은 앞에 양생과는 다르게 소극적인 반면에 여주인공 최씨는 사랑에 적극적이지만 홍건적의 위협앞에서 저항하는 정절 의식도 보인다.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소제는 '부벽정에서의 짧은 만남'이다. 여기서도 고독한 남성 주인공 '홍생'이 부벽루에서 기씨녀를 만나 함께 엄청난 시문을 주고받으며 정서적 공감을 얻는 이야기다. 그 공감은 바로 기씨녀는 위만에게 나라를 잃은 기자(箕子)의 딸로 나라가 망한뒤 자살하려다 선계로 인도되어 항아의 시녀가 된 인물이고 홍생도 고려말 개성 상인으로 둘다 망국의 비애를 경험했다는 점에서 쉽게 정서적으로 교우하며 고국의 흥망에 대한 회고의 정을 진하게 담은 이야기다.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소제는 '염마왕과의 대화'다. 유학을 공부하는 '박생'이라는 문사가 꿈에 남염부주를 다녀오는 이야기다. 즉, 꿈속에서 이계를 다녀오는 몽유록적 양식을 띄며 문답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염라왕과 귀신, 천당과 지옥, 윤회, 정치까지 철학적인 문제부터 현실 정치까지 서로 토킹 어바웃한 이야기다. 그래서 여기서는 시문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김시습의 현실 인식 태도를 보이며 그의 사상이 집약적으로 잘 표현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소제는 '물거품처럼 사라진 용궁 잔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역시 남성 문사 '한생'이 꿈속에서 용왕님 초대로 용궁에 가서 용왕님과 한바탕 즐겁게 노닐다 왔다는 이야기다. 즉, 문사답게 시문도 써주고 또 주고받고 유쾌하게 노래와 춤추고 잔치도 하며 즐겼다는 이야기로 앞에 <남염부주지>와 비슷하지만 대신 여기서는 유일하게 웃음이 배어있다. 하지만, 한생이 꿈에서 깬 뒤에는 세상의 명리를 구하지 않고 자취를 감추는 것으로 되어 있어 웃음 뒤의 비애를 남겼다.

이렇게 김시습의 한문 습작인 <금오신화>는 총 다섯편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모두 다 그의 세상에 대한 부조리와 비타협적인 성정답게 현식 인식이 짙게 배어 있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고독한 남성 문사들을 중심으로 그리며 그들이 처한 결핍과 부재의 상황이 부각됐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모두 고독하고 부정적인 현실의 도피를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 김시습의 정치적 좌절에서 비롯된 또 현실 인식의 발호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앞의 세편은 애정 전기소설(傳奇小說)의 형식을 띄며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남녀간의 사랑을 환상적으로 초현실적으로 그리며 때로는 판타지스럽고 형이상학적인 몽환적 분위기를 전달해 주었다. 그런 분위기는 바로 각 편마다 넘쳐나는 시문과 산문의 조화속에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미학적 기반을 둔 메세지적 작품이라는 점이다. 물론 남성 문사의 의리를 중시하고,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도 모두 김시습의 현실 인식과 깊이 관련되어 있음이다. 

그리고, 뒤의 두편인 <남염부주지>와 <용궁부연록>은 두 주인공 박생과 한생을 통해서 소외와 고독의 감정은 더욱더 문학적으로 형상화되며 염라왕과 용왕님과의 대화속에서 세상에 대한 외침이 바로 투영된 것이라 할 수 있으니 바로 그의 비극적 현실 의식의 발호로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막연히 비극적이라 할 수 없는게 시문과 산문이 적절히 조합된 미학적 분위기는 읽는 이로 하여금 때로는 고리타분함을 안겨줄 수 있지만 멋스럽고 고풍스런 맛은 분명히 주고 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오백여 년전 그가 쓴 작품을 이렇게라도 대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지 않은가..
수험식으로 무슨 작품이 있다 외우지 말고.. 그의 작품을 진중하게 함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