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쿠루는 도쿄에서 규칙적으로 조용히 생활했다. 나라에서 추방당한 망명자가 이국땅에서 풍파를 일으키지 않도록, 쓸데없는 일을 만들지 않도록, 체류 허가를 박탈당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지내듯이. 그는 말하자면 스스로의 인생에서 망명한 인간으로 거기 살았다. 도쿄라는 대도시는 그렇게 익명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이상적인 장소였다.

그에게는 친구라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몇 번 여자를 만나 사귀다가 헤어졌다. 평온한 만남이었고 늘 원만하게 헤어졌다. 마음 안쪽까지 파고드는 상대는 없었다. 그가 그런 관계를 애써 원하지 않았던 탓도 있고, 아마도 상대가 그를 그다지 깊게 원하지 않았던 탓도 있을 것이다. 반반 정도라고 보면 될 것이다.

내 인생은 스무 살 시점에서 실질적으로 발걸음을 멈춰버린 것 같다고 다자키 쓰쿠루는 신주쿠 역의 벤치에 앉아 생각했다. 그 이후 찾아온 나날들은 거의 무게가 없었다. 시간은 잔잔한 바람처럼 그의 주위를 조용히 불어 지나갔다. 상처도 남기지 않고 슬픔도 남기지 않고 강렬한 감정도 불러일으키지도 않고 이렇다 할 기쁨도 추억도 남기지 않고. 그리고 이제 그는 중년의 영역으로 접어들려 했다. 아니, 중년이 되기까지는 아직 조금 시간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더는 젊다고 말할 수 없다.

(42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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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에 대해 부끄러움 없이 말할 수 있으려면 가정과 학교에 의해 강압적으로 전파되는 흠결 없는 문화라는 강박적인 이미지, 일생 동안 노력해도 일치시킬 수 없는 그 이미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진실보다는 자기 진실이 훨씬 더 중요하다. 우리의 내면을 억압적으로 지배하며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 것, 즉 교양 있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자만이 자기 진실에 이를 수 있다.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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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의 추억 속에는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밝히고 싶지 않은 그런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밝히지 않고, 은밀하게 자신에게만 밝히고 싶은 일들도 있다. 그러나 급기야는 자기 자신에게도 비밀로 하는 몇 가지 일들이 있다. 그리고 모든 점잖은 사람들은 그와 같은 일을 상당수 축적하고 있다. 나는 이런 말까지 해보겠다. 사람이 점잖을수록 그 같은 것을 더 많이 갖고 있다. 어쨌든 나는 내 옛날 모험들을 회상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지금까지 나는 항상 그것들을 지나쳤다. 그러나, 어떤 불안한 마음까지 가져가면서 내가 기억해 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것을  모두 기록하기로 결정한 지금 나는 다음 것들을 바로 시험해 보고 싶다. 적어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완전히 솔직해질 수 있을까? 그런데 나는 말하련다. 하이네는 믿을 만한 자서전은 거의 불가능하며 인간은 확실히 자신에 관해서 거짓말을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의견에 의하면, 루소가 그 예인데, 루소는 그의 고백록에서 확실히 거짓말을 했으며 허영심 때문에 인간은 때때로 모든 죄를 자기 탓으로 돌린다는 것을 이해하며, 그것이 어떤 종류의 허영심이 될 것인지도 잘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하이네는 청중 앞에서 고백을 하고 있는 사람에 대하여 언급한 것이다. 나는 반면, 나 자신만을 위하여 쓰고 있다. 그리고 내가 만일 독자들을 대하듯이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그 이유는 그렇게 쓰는 것이 나에게는 더 쉽기 때문이라고 단호하게 나는 주장한다. 그것은 형식이다. 단순히 형식일 뿐이다. 왜냐하면 나는 결코 독자를 가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62~63(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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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생전에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았을까? 한국은 알았어도 삼우반이라는 출판사는 몰랐겠지. 그리고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라는 제목을 보여줘도 이게 자기가 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겠지.

어쨌든 나는 조지 오웰이 쓴 글을 꽤 오랜 시간이 지나 파리나 런던과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에서 번역되어 나온 책으로 봤지만, 좀 움찔했다. '써내려갔다'는 표현은 이런 글에 잘 어울릴 것이다. 예쁜 표현 생각해서 고쳐넣고 더 있어 보이는 문장을 끼워넣는 등의 꼼수는 잘 안 보이는 이런 글 보면, 이런 글을 '써내려갔을' 사람이랑은 아직도 참이슬 한 병 같이 따고 싶다. 그리고 이 세상 사람이고 저 세상 사람이고 간에 한 잔 졸졸 따라드리고 싶다. 물론 조지 오웰은 참이슬 역시 알 턱이 없겠지.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문학동네에서도 나와 있던데 이 제목은 내 눈에는 좀 오바로 보인다. <동물농장>이랑 엮여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따라지, 인생 모두 너무 멀리 나갔다.



  우리가 꼼꼼이 살펴보면 걸인의 생계비와 남부끄럽지 않은 무수한 사람들의 생계비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걸인은 일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이란 무엇인가? 잡역부는 곡괭이를 휘두름으로써 일한다. 회계사는 숫자를 더함으로써 일한다. 걸인은 어떤 날씨에도 한데에서 서 있고, 하지 정맥류와 만성 기관지염 등에 걸림으로써 일한다. 이것도 다른 어떤 것과 마찬가지로 직업이다. 물론 아주 무익한 직업이긴 하지만, 그렇게 본다면 평판 좋은 많은 직업들도 아주 무익한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유형으로서도 걸인은 다른 수십 가지 직업인들과 비교하여 정직하고, 일요 신문 사주와 비교하여 고상하며, 집요한 할부 판매원과 비교하여 상냥하다. 간단히 말해서 걸인은 기생충이지만, 상당히 무해한 기생충이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정도 이상을 사회로부터 뜯어내는 일이 거의 없고, 또 우리의 윤리 개념에 따라서 걸인을 정당화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걸인들이 고통을 당하면서 되풀이하여 갚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걸인이 남들과는 다른 계층에 속한다거나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경멸당할 만한 권리를 줄 만한 점이 전혀 없다고 본다. (227~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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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못 나가. 어딜 나가. 영국이 EU에서 나갈 것 같아 보이냐고 밥상머리에서 아빠가 물어보실 때 나는 굉장히 자신있게 말했다. 나가긴 어딜 나가냐고, 그 변화 싫어하고 의뭉스러운 인간들은 결국 눌러있는 쪽을 택하게 돼있다고.

나 따위가 뭘 알고 말했을 리가 없다. 돌이켜봐도 이것은 모종의 전망이나 예언이 아니었다. 그보단 어떤 간절한 바람의 다른 표현이었다. 대낮에 소파에 뻗은 채로 스마트폰 화면을 훑다말고는 별안간 뭐에 홀린 듯이 추리닝에서 청바지로 갈아입고 집에서 나와 국민은행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서 창구 직원한테 통장을 내밀고 지금 그 계좌에 있는 금액 싹 다 파운드로 외화통장에 넣어달라고 청한 뒤 딱 칠천원 남은 기존 통장이랑 난생 처음으로 갖게 된 외화 통장을 손에 쥐고 돌아온 자가 그로부터 두 달쯤 지난 시점에서 지닐 수 있는 간절한 바람, 그런 거 말이다.

나름 운빨을 시험해보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는데, 똥값이 되어버렸구나. 오늘 오후 한 시경 전일 대비 120원 넘게 폭락한 파운드 환율을 확인하는 순간 내 입가에서 질질 새던 그 헛웃음을 나는 당분간 별 이유 없이 문득문득 떠올릴 것 같다. 그러고는 잠깐씩 쓴웃음을 짓게 되지 않을까. 뭐 우는 것까진 좀 오바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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