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못 나가. 어딜 나가. 영국이 EU에서 나갈 것 같아 보이냐고 밥상머리에서 아빠가 물어보실 때 나는 굉장히 자신있게 말했다. 나가긴 어딜 나가냐고, 그 변화 싫어하고 의뭉스러운 인간들은 결국 눌러있는 쪽을 택하게 돼있다고.

나 따위가 뭘 알고 말했을 리가 없다. 돌이켜봐도 이것은 모종의 전망이나 예언이 아니었다. 그보단 어떤 간절한 바람의 다른 표현이었다. 대낮에 소파에 뻗은 채로 스마트폰 화면을 훑다말고는 별안간 뭐에 홀린 듯이 추리닝에서 청바지로 갈아입고 집에서 나와 국민은행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서 창구 직원한테 통장을 내밀고 지금 그 계좌에 있는 금액 싹 다 파운드로 외화통장에 넣어달라고 청한 뒤 딱 칠천원 남은 기존 통장이랑 난생 처음으로 갖게 된 외화 통장을 손에 쥐고 돌아온 자가 그로부터 두 달쯤 지난 시점에서 지닐 수 있는 간절한 바람, 그런 거 말이다.

나름 운빨을 시험해보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는데, 똥값이 되어버렸구나. 오늘 오후 한 시경 전일 대비 120원 넘게 폭락한 파운드 환율을 확인하는 순간 내 입가에서 질질 새던 그 헛웃음을 나는 당분간 별 이유 없이 문득문득 떠올릴 것 같다. 그러고는 잠깐씩 쓴웃음을 짓게 되지 않을까. 뭐 우는 것까진 좀 오바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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