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거울이 된 남자
샤를 페로 지음, 장소미 옮김 / 특별한서재 / 2019년 12월
평점 :
샤를페로란 사람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장화신은 고양이도, 잠자는 숲속의 공주도, 빨간모자도 이분이 지은이였다니,
동화감성을 가지고 시작하였는데 이 책은 다소 딱딱하게 다가왔다.
그 시대의 문화를 잘 몰라서일까?
작가는 전지적 작가의 시점으로 관찰자의 위치에서 이야기한다.
현재와 달리 TV, 핸드폰이 없어 사교문화가 발달한 때 였는데
이 당시에는 포르트레라는 능력,
이는 회화에서 파생된 문학 장르로 언어로써 대상이나 사람을 표현하는 기법이라고 한다.
여기에 특출난 능력을 가졌던 '오랑트'라는 이름의 제목과 같은 '거울이 된 남자'
그는 살아있는 거울이었다.
무엇이든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영혼까지도 밝혀 주지만 스윽~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판단력도 제대로 없는..
그를 반기는 것은 여자들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자들은 그가 칭찬을 하면 더욱 기쁘게 받아 들였고
그가 나쁜 말을 하면 그 부분을 고쳐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있는 그대로 사심없이 이야기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신데렐라의 마법의 거울이 계속 떠올랐다.
새 엄마가 누가 가장 아름다운지 아무리 물어도 사실만을 이야기 했던
(그 시대나 현 시대나 보여지는 것이 중요하고 아름답게 보이고자 노력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를 가장 사랑한 여자가 있었다.
자기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그와 비례하여 오랑트라는 남성마저 사랑했던 여자 칼리스트
자신에 대해 사실을 이야기 해 주기 때문에 그에게 집착을 한 걸까.
그녀를 좋아하는 남성이 질투에 눈이 멀어 찾아왔음에도 오랑트라는 남자에게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한다.
얼마나 기이헸기에.
아마 함께 있어도 그 이상의 분위기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오랑트는 아픈 칼리스트에게 위로의 말을 해 주지 못해서 그녀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사랑의 신의 늦은 발걸음에 다시 살아나지 못하고 실제 거울이 되고 만다.
이에 아이러니함은 사랑의 신 마저 거울을 보고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이란 얼마나 변덕이 심한 동물인가
칭찬을 해 주면 나한테 왜 그런 말을 하지 의심하고 나쁜 말을 하면 그 말에 앙심을 품는다.
그게 진실일까 거짓일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자기자신에게 스트레스를 부여한다.
알고보면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도
오란트는 이야기 한다.
삶을 다 각적으로 보라고, 긍정적으로 보라고,
삶을 긍정적으로 보면 이 세상은 행복해질까?
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러기엔 우리 인간은 욕심이 너무 많고, 갖고싶은 것에 한정이 없다.
오랑트는 보이는 것에 있는 그대로 이야기 했을 뿐 그 이상이 없다.
칼리스트는 사랑하는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오랑트를 사랑했다.
아픈 모습도 아름답다는 좋은 말로 위로해주는 주변인들의 말은 듣지 않았다.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데로
묘사한 오랑트를 사랑했지만 죽여버렸다.
그랬음에도 오랑트가 힘들어했다거나 아파헀다거나 후회했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랑트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저 거울 이었을 뿐이었나.
솔직한 것이 해가 된 경우가 아닌가 싶다.
아니, 솔직했기에 사물인 거울이 되어 더 사실적으로 보고픈 것만 보여주게 된 것이 아닐까?
변덕스러운 사랑의 신은 자신을 거울에 비춰 보며 자신과 사랑에 빠졌어요 열정으로 타는 가슴에 극도의 기쁨이 느껴졌고 자신을 바라보는 반쪽이 나머지 반쪽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