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시간 -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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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




삼사십대 싱글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어느새 토착화되버린 기분마저 드는 마스다 미리의 새로운 신간 "차의 시간"이
출간되었다. 주말엔 숲으로,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수짱의 연애 ,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등 수짱 시리즈를 비롯 수많은 책들을 펴내고 펴낸 족족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흥미진진한 스토리라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명료한 만화체도 아닌 우리나라의 옛 그림들의 매력 중 하나인 여백의 미가 한가득인것 같은 이 책에 왜 싱글들은 열광하는 것일까?
이 책을 읽는 이유는 줄거리를 파악하고 빅재미를 선사하는 기존의 만화와는 180도 다른 길을 걷고 있는데 책 장을 펼치고 무방비 상태에서 마스다 미리 그녀가 이끄는 그대로 눈알을 굴리다 보면^^ 그 훑는 행위 자체가 휴식이고 힐링이고 차의 시간이 된다는 것이다.
 

차의 시간은 그런 시간이다. 복잡하게 머리를 쓰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골치아픈 스케줄을 짜보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때론 멍때리면서 머릿속을 비우고 본연의 나로 돌아가보는 시간이다. 동료랑 가거나 친구랑 가거나 가족이랑 가거나,연인이랑 가거나 때론 혼자 카페를 가게 될때 나에게 스며드는 공기는 다를 수 있다. 그 모든 순간들을 마스다 미리만의 여유로운 눈썰미로 담아내고 있는 이 책을 읽다보니 다른 나라에 살고 있고,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여성이지만 삶과 일상을 대할때 느끼는 생각들이나 당황스런 에피소드들을 겪었을때의 상황이 너무나 비슷해  많이 공감하면서 읽게 되었다.
나의 어제와 오늘을 되돌아 보고 미래를 예측해보는 시간이였달까? ㅎ




스타벅스를 비롯 수많은 카페에서 음료와 디저트를 즐기며 옆 테이블의 학생들에 빙의되어 학창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비밀스런 대화를 이어가는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보기도 하며 편집자와 들른 카페의 메뉴에 대해  어떤게 더 맛있을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엄마와 수다도 떨어보고 살짝 어색한 아버지와는 최근에 읽은 책에 대해 서로 교류를 하며 차의 시간을 가진다.
나이드신 노부인들을 정중히 대접하는 웨이터를 보고 나오며 좋았던 시간이였다라고 떠올리는 에피소드에선 얼마전 들렀던 새로 개업한 시부야의 카페에서 어둡고 구석진 자리로 배치된 언짢은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란 그녀의 솔직한 속내가 짠하면서도 귀엽게 느껴졌다. 이젠 더이상 젊지 않은 나이가 되어 젊은 여성들에 비해 환영받지 못하고 소외되어 지는 그래서 더 나이들었을때의 내 모습을 떠올려 보는 모습은 삽사십대로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이지도 않은가 해서...더 공감되었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도 그려지지만 때론 불안한 현재,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같은 감정도 깔려 있다. 그리고 주위에 사람이 많거나 혼자이거나 느껴지는 외로움이란 감정에 대해서도.




"허무함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 라고 그녀는 말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 앞에서 자기표현을 하는 생물" (93 ~94 P)

인터넷,핸드폰,스마트폰 메신저,각종 SNS로 인해 직접적인 대화가 줄어드는 요즘 ,혼자서 카페를 들르는 이도 많아졌다.그들은 카페에 들러 아메리카로를 한잔 시켜 놓고 책을 읽기도 하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멍하니 고독을 씹기도 하며 노트북으로 무언가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린다. 집보다 카페에서 더 집중력이 생긴다는 이유도, 단지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가 내가 여기 있음을...나란 존재를 알아봐 달라는 무언의 표현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드는 요즘이다.
세상과 사람에 치어 혼자임이 더 편해진 현대인들이지만 또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게 이 세상이다.
이 카페란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도 누군가는 이 고독 또한 봐달라는 외로운 현대인들의 작은 몸짓이 때론 눈물겹기도 하다.




마스다 미리 책의 특징 중 하나는 '디저트'에 대한 그녀의 남다른 사랑이다. 주말엔 숲으로 에서도 시골로 이사한 하야카와에게 친구들이 도쿄의 유명한 제과점 과자들을 선물로 들고가 맛있게 나눠 먹는 에피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 책에서도 일본의 유명한 카페와 거기서 판매하는 디저트들이 대거 등장해 보는 내내 커피와 케잌이 당기기도 했다.ㅎ
한국에 그녀가 방한했을때 출판사 관계자들과 들른 카페에서 케잌을 한사람 당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나누어 먹는 모습에 신기해하는 에피소드도 등장하고 연중 행사인 호텔 디저트 뷔페에 관해서도 나온다. 개인적으론 파르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읽다보면 일본인들이 (아니면 마스다 미리가 ) 파르페와 단 디저트를 많이 사랑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사십대 싱글녀인 그녀이지만 어쩜 이렇게 비슷한 감성을 가지고 있는지 깜짝깜짝 놀라곤 하는데 일본으로 여행을 가서 혹여라도 스타벅스에 들러 달달한 라떼를 마시다 문득 고개를 돌리면 뭉뚱한 단발머리의 마스다 미리가 평온하게 파르페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다 내 눈과 마주치진 않을까? 라는 상상도 해보게 된다. 소소하지만 평안해지는 이야기들과 삶의 연륜에서 느껴지는 철학들도 짤막하게 등장해서 쉽게 읽히면서도 내 삶을 전반적으로 돌아보는 계기도 되는 책이다. 과거속으로 갔다가 미래로도 갔다가 지금의 현실로 돌아와 차 한잔 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언제나 차 한잔의 시간은 짧지만 다시 돌아올 그 시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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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웨이 미술사 - 미술의 요소와 원리.매체.역사.주제 - 미술로 들어가는 4개의 문
데브라 J. 드위트 외 지음, 조주연 외 옮김 / 이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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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TEWAYS TO ART




이봄에서 펴낸 『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을 인상깊게 읽었던 터라 이봄에서 최근 출간한 미술서 『게이트웨이 미술사』의 샘플북 체험단에 덜컥 응모하고 말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곰브리치나 젠슨,가드너가 쓴 전통적인 미술사 서적들은 그 정통성과 유명세에 미술을 본격적으로 접하는 이들에겐 이미 훌륭한 입문서로 인식되고 있긴 하지만 쉽게 접근하긴 어렵다는 시각과 수많은 미디어와 매체를 접하고 있는 2017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보편화된 서양미술사 뿐만 아니라 전 세계와 전 세대를 아우르며 더 넓고 다양한 시각을 갖게 해 줄 새로운 형태의 미술사 서적이 필요하다 싶은 시기에 짠하고 등장한게 이 책 게이트웨이 미술사가 아닐까 한다.


표지부터 보자면 마티스의 유명한 컷아웃 작품인 '이카루스'가 표지로 쓰였는데 기존의 미술사 서적 표지에 쓰였던 고전적인 서양화와는 조금 느낌이 다른 이 작품을 쓴 이유가 이 책이 지향하는 바를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 마티스의 초기 작품은 17세기 네델란드 화풍을 따랐다.야수파의 지도자로써 '붉은 방' 같은 강렬한 색채의 실내 풍경을 즐겨 그린것은 물론 점묘파와 조각에까지 관심을 기울였다.말년엔 건강이 악화되어 이젤 앞에 설 기력조차 없어지자 색을 칠한 종이를 오려서 작업하는 '컷아웃' 기법으로 작품활동을 이어 나가기도 한다. 이 책엔 정력적이라면 그에 못지 않는 친구 피카소에게까지 많은 영향력을 끼친 색채의 마술사 마티스의 '이카루스' 란 작품을 여덟 꼭지 중 한 꼭지로 쓰며 기초,매체,역사,주제,이 4개의 문을 통해 새롭게 조명해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미술작품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방법도 사람마다 다 다르니 독자가 자유롭게 읽으면서 각자 미술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나름의 길을 찾아가는 안내서이며 위대한 작품은 볼 때마다 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이 얼마나 보람찬 일인가를 증명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라고 한다.이 글을 읽으니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한참 미술관련 서적에 관심이 가던 시절 <명화 속 그림 읽기>

류의 책을 읽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대뜸 이런 말을 했다.


"이런 책 왜 읽어? 그림은 그냥 보고 느끼고 좋으면 그만이지,그리고 저 그림에 저런 뜻이 있는건지 저 옛날 그 화가가 직접 말이라도 해준거 아니지 않아? " 사람들이 괜히 그림에 의미를 찾고 없는 의미를 만들어 낸다는 의도의 말을 던져 내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지금도 지식이 거의 없지만 그 시절 더 무지했던 나는 그저 현대의 그림엔 작가의 의도나 의중말고 중세의 종교화에 숨어 있는 암시나 관념,메시지가 없을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다양한 미디어가 없던 시절엔 그림으로 밖에 메시지를 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 시절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숨은 속 뜻도 알아야 그림을 더 즐길 수 있지 않냐?이 정도의 말도 거의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물론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이 거창한 작가의 의도와 고귀한 뜻이 담겨져 있어야만 하는게 아니란것엔 백프로 동의한다.자기 침실 벽에 걸어 두고 싶은 그림은 그저 색채와 구도가 마음에 들고 전체적인 느낌이 좋으면 그만이라도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선 친구의 말에 동의하지만 미술도 학문이다. 박상미 작가가 쓴 '나의 사적인 도시'에도 나와 비슷한 일화가 나오는데 박상미님은 그림은 '논문이다'라고 말한다.물리학의 역사를 바꾼 논문들은 어렵다고 화내지 않으면서 동시대의 현대미술앞에선 이게 그림이냐? 라고 화를 내기도 하고 작품성을 폄하하기도 한다. 사람들에겐 기본적으로 색과 형태를 감상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개개인마다 좋아하는 색과 스타일이 있지만 한국어를 안다고 어려운 논문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것이 그림을 보는 기호는 될지언정 그림을 보는 능력은 아니라고. 
미디어가 없던 중세엔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예술이 이용되었고 카메라가 없던 시절 아름다운 풍경과 인물을 남기기 위해 그림이 이용되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이 충족된 요즘엔 미술은 그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좀 더 미술 자체의 이슈를 위한 것이 되고 말았으니 그 이슈를 모르는 건 제대로 된 미술을 이해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는 말에 공감이 되었다. 배움은 결코 억압이 아니라 자유로워 지기 위한 것이며 그림을 마음대로 보기 위해선 미술도 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이다.




이 책은 시각예술을 새롭게 안내하는 것으로 미술의 기초,매체,역사,주제라는 4부로 구성되어 있다.게이트웨이 미술사에선 미술작품을 바라보고 분석하고 해석하는 중요한 기술들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여덟 점의 대표적인 작품을 뽑아 'Gateways to art' 라 명명했다고 한다.책을 읽다보면 이 여덟 작품들을 거듭 마주치게 되는데 그럴때마다 미술의 새로운 면과 그 감상법을 배우게 배치되어 있다. 구성의 특성,제작에 사용된 재료,창조에 영향을 미친 역사적 시대와 문화,작품이 개인적인 면을 표현하는 방식 등에 대하여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될 것이다.때로는 같은 주제의 다른 작품과 비교하기도 하고 영적 세계나 삶과 죽음의 순환 같은 것에 관해 말해 주기도 하며 이런 논의들로 흥미가 생긴 독자가 이 책 속의 작품 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도 다시 찾아보는 선순환이 생기도록 미술에 대한 눈을 넓혀주고 있다.
미술이란 우리가 가장 힘들고 비극적인 상황에서조차 인간의 경험을 보고 느낄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으며 미술가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활동에 영감을 주기도 한다.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 소녀'를 보고 영감을 받아 소설을 쓴 일화는 유명하다.

한 점의 미술 작품을 깊이 있게 파고들거나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여러 작품을 비교하고 대조해 볼 수도 있는데 예를 들면 삽화를 설명하는 챕터에선 윌리엄 모리스·에드워드 번-존스의 <제프리 초서 작품집>과 캔버스 유채 그림인 노먼 웰록의 <리벳공 로지>와 컴퓨터로 만든 벡터 드로잉 작품인 콕 초우 여의 <키도>가 한 화면에 담겨 있어 고대에서 현대까지 미술가들이 선을 왜,어디에 사용했는지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어 편리하다.




'Gateways to art' 상자글에서 소개한 여덟 작품 중 '올메크족의 거대 두상'을 살펴보면 1부 기초에선 올메크족 미술가들이 덩어리 자체를 사용해서 권력을 과시하는 거대 두상을 만들어낸 방법을 살펴보고 2부 매체에선 올메크족의 도자기 그림과 거대 두상을 비교하고 조각 기법도 알아돈다.3부 역사에선 거대 두상을 발견하고 발굴해낸 과정을 경험하고 4부 주제에선 이 거대 두상들이 올메크족을 다스린 통치자들의 초상임을 알려주는 증거들을 살펴본다.





미술이란 무엇인가? 언뜻 나오지 않는 대답에 앞서 '강'이란 주제를 가지고 다른 시대,다른 화가들에 의해 표현된 작품들을 통해 유추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일본의 유명한 미술가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강을 떠다니는 단풍잎>은 강물과 잎사귀의 모습을 실제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보는이에게 가을날 강가의 평화로운 기분을 느끼게 해주니 이는 감상자에게 느낌을 전하고 있다.
기원전 10세기 이집트의 네스파웨시파이의 나무관에 그려진 강은 생존과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였다.깊은 종교적 관념을 표현하고 사후의 행복한 삶에 대한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방편이기도 했고.
윌리엄 G.월이 그린 강과 그 주변 풍경은 단순한 풍경의 강이 아니라 국가에 대한 정서를 표현하는 수단이자 미국의 확장과 발전을 기념하는 방편이였다.루이즈 니벨슨의 1972년 작품인 <수직으로 쏟아지는 하얀 물>은 물고기로 가득한 폭포의 유사성을 알아차리게 하는 것이 아닌 주의 깊게 쌓아올린 작품을 살펴보고 우리로 하여금 물이 쏟아지고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보는 듯한 감각을 느끼게 한다.
이 네 작품을 보면 다들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 강을 볼 수 있다.종교적 메시지,국가주의와 식민 정복,휴식의 기분을 자아내기 위한 수단,빈틈없이 구성된 기하학적인 암시로...




시각적 수단을 통해 생각을 소통하면 세상을 새롭고도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바라보게 되고 이해를 키우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미술의 언어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아 끊임없이 진화하고 변화한다.
수천 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세계의 전 지역에서 만들어진 750점의 미술작품,865개의 컬러 도판을 통해 세대와 시대,장소를 초월한 미술작품을 한 자리에서 비교해가며 배우다 보면 미술의 언어를 이해함을 넘어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인류의 오해와 벽들도 허물어 지지 않을까하는 큰 그림도 그려보게 된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미술을 접하고 느끼고 평가하는것도 미술을 즐기는 한 방법이겠지만 이런 폭넓은 정보가 담긴 미술사 서적을 통해 서로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다면 그 즐거움이 더 커지진 않을런지 ^^

새로운 시각으로 미술사를 공부하고 싶은 분들,어렵게만 느껴지는 곰브리치를 접하기 망설여졌던 분들,미술이라 불리는 모든 매체를 한 곳에서 접하고 싶은 분들은 꼭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샘플북만 접하고서도 다양한 시각과 깊이에 반해서 꼭 구입해보리라 생각이 들만큼 신선한 미술사 책이란 생각이 들었기에 감히 추천해 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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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웨이 미술사 - 미술의 요소와 원리.매체.역사.주제 - 미술로 들어가는 4개의 문
데브라 J. 드위트 외 지음, 조주연 외 옮김 / 이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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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봄에서 펴낸 『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을 인상깊게 읽었던 터라 이봄에서 최근 출간한 미술서 『게이트웨이 미술사』의 샘플북 체험단에 덜컥 응모하고 말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곰브리치나 젠슨,가드너가 쓴 전통적인 미술사 서적들은 그 정통성과 유명세에 미술을 본격적으로 접하는 이들에겐 이미 훌륭한 입문서로 인식되고 있긴 하지만 쉽게 접근하긴 어렵다는 시각과 수많은 미디어와 매체를 접하고 있는 2017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보편화된 서양미술사 뿐만 아니라 전 세계와 전 세대를 아우르며 더 넓고 다양한 시각을 갖게 해 줄 새로운 형태의 미술사 서적이 필요하다 싶은 시기에 짠하고 등장한게 이 책 게이트웨이 미술사가 아닐까 한다.

표지부터 보자면 마티스의 유명한 컷아웃 작품인 '이카루스'가 표지로 쓰였는데 기존의 미술사 서적 표지에 쓰였던 고전적인 서양화와는 조금 느낌이 다른 이 작품을 쓴 이유가 이 책이 지향하는 바를 말해주는 것일까? 초기 작품은 17세기 네델란드 화풍을 따랐고 야수파의 지도자로써 '붉은 방' 같은 강렬한 색채의 실내 풍경을 즐겨 그린것은 물론 점묘파와 조각에까지 관심을 기울였다.말년엔 건강이 악화되어 이젤 앞에 설 기력조차 없어지자 색을 칠한 종이를 오려서 작업하는 '컷아웃' 기법으로 작품활동을 이어 나간다. 정력적이라면 그에 못지 않는 친구 피카소에게까지 많은 영향력을 끼친 색채의 마술사 마티스의 '이카루스'란 작품으로 기초,매체,역사,주제,이 4개의 문을 통해 새롭게 조명해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미술작품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방법도 사람마다 다 다르니 독자가 자유롭게 읽으면서 각자 미술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나름의 길을 찾아가는 안내서이며 위대한 작품은 볼 때마다 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이 얼마나 보람찬 일인가를 증명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라고 한다.이 글을 읽으니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한참 미술관련 서적에 관심이 가던 시절 <명화 속 그림 읽기>

류의 책을 읽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대뜸 이런 말을 했다.


"이런 책 왜 읽어? 그림은 그냥 보고 느끼고 좋으면 그만이지,그리고 저 그림에 저런 뜻이 있는건지 저 옛날 그 화가가 직접 말이라도 해준거 아니지 않아? " 사람들이 괜히 그림에 의미를 찾고 없는 의미를 만들어 낸다는 의도의 말을 던져 내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지금도 지식이 거의 없지만 그 시절 더 무지했던 나는 그저 현대의 그림엔 작가의 의도나 의중말고 중세의 종교화에 숨어 있는 암시나 관념,메시지가 없을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다양한 미디어가 없던 시절엔 그림으로 밖에 메시지를 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 시절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숨은 속 뜻도 알아야 그림을 더 즐길 수 있지 않냐?이 정도의 말도 거의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물론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이 거창한 작가의 의도와 고귀한 뜻이 담겨져 있어야만 하는게 아니란것엔 백프로 동의한다.자기 침실 벽에 걸어 두고 싶은 그림은 그저 색채와 구도가 마음에 들고 전체적인 느낌이 좋으면 그만이라도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선 친구의 말에 동의하지만 미술도 학문이다. 박상미 작가가 쓴 '나의 사적인 도시'에도 나와 비슷한 일화가 나오는데 박상미님은 그림은 '논문이다'라고 말한다.물리학의 역사를 바꾼 논문들은 어렵다고 화내지 않으면서 동시대의 현대미술앞에선 이게 그림이냐? 라고 화를 내기도 하고 작품성을 폄하하기도 한다. 사람들에겐 기본적으로 색과 형태를 감상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개개인마다 좋아하는 색과 스타일이 있지만 한국어를 안다고 어려운 논문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것이 그림을 보는 기호는 될지언정 그림을 보는 능력은 아니라고. 
미디어가 없던 중세엔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예술이 이용되었고 카메라가 없던 시절 아름다운 풍경과 인물을 남기기 위해 그림이 이용되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이 충족된 요즘엔 미술은 그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좀 더 미술 자체의 이슈를 위한 것이 되고 말았으니 그 이슈를 모르는 건 제대로 된 미술을 이해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는 말에 공감이 되었다. 배움은 결코 억압이 아니라 자유로워 지기 위한 것이며 그림을 마음대로 보기 위해선 미술도 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이다.





이 책은 시각예술을 새롭게 안내하는 것으로 미술의 기초,매체,역사,주제라는 4부로 구성되어 있다.게이트웨이 미술사에선 미술작품을 바라보고 분석하고 해석하는 중요한 기술들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여덟 점의 대표적인 작품을 뽑아 'Gateways to art' 라 명명했다고 한다.책을 읽다보면 이 여덟 작품들을 거듭 마주치게 되는데 그럴때마다 미술의 새로운 면과 그 감상법을 배우게 배치되어 있다. 구성의 특성,제작에 사용된 재료,창조에 영향을 미친 역사적 시대와 문화,작품이 개인적인 면을 표현하는 방식 등에 대하여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될 것이다.때로는 같은 주제의 다른 작품과 비교하기도 하고 영적 세계나 삶과 죽음의 순환 같은 것에 관해 말해 주기도 하며 이런 논의들로 흥미가 생긴 독자가 이 책 속의 작품 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도 다시 찾아보는 선순환이 생기도록 미술에 대한 눈을 넓혀주고 있다.
미술이란 우리가 가장 힘들고 비극적인 상황에서조차 인간의 경험을 보고 느낄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으며 미술가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활동에 영감을 주기도 한다.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 소녀'를 보고 영감을 받아 소설을 쓴 일화는 유명하다.

한 점의 미술 작품을 깊이 있게 파고들거나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여러 작품을 비교하고 대조해 볼 수도 있는데 예를 들면 삽화를 설명하는 챕터에선 윌리엄 모리스·에드워드 번-존스의 <제프리 초서 작품집>과 캔버스 유채 그림인 노먼 웰록의 <리벳공 로지>와 컴퓨터로 만든 벡터 드로잉 작품인 콕 초우 여의 <키도>가 한 화면에 담겨 있어 고대에서 현대까지 미술가들이 선을 왜,어디에 사용했는지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어 편리하다.



'Gateways to art' 상자글에서 소개한 여덟 작품 중 '올메크족의 거대 두상'을 살펴보면 1부 기초에선 올메크족 미술가들이 덩어리 자체를 사용해서 권력을 과시하는 거대 두상을 만들어낸 방법을 살펴보고 2부 매체에선 올메크족의 도자기 그림과 거대 두상을 비교하고 조각 기법도 알아돈다.3부 역사에선 거대 두상을 발견하고 발굴해낸 과정을 경험하고 4부 주제에선 이 거대 두상들이 올메크족을 다스린 통치자들의 초상임을 알려주는 증거들을 살펴본다.




미술이란 무엇인가? 언뜻 나오지 않는 대답에 앞서 '강'이란 주제를 가지고 다른 시대,다른 화가들에 의해 표현된 작품들을 통해 유추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일본의 유명한 미술가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강을 떠다니는 단풍잎>은 강물과 잎사귀의 모습을 실제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보는이에게 가을날 강가의 평화로운 기분을 느끼게 해주니 이는 감상자에게 느낌을 전하고 있다.
기원전 10세기 이집트의 네스파웨시파이의 나무관에 그려진 강은 생존과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였다.깊은 종교적 관념을 표현하고 사후의 행복한 삶에 대한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방편이기도 했고.
윌리엄 G.월이 그린 강과 그 주변 풍경은 단순한 풍경의 강이 아니라 국가에 대한 정서를 표현하는 수단이자 미국의 확장과 발전을 기념하는 방편이였다.루이즈 니벨슨의 1972년 작품인 <수직으로 쏟아지는 하얀 물>은 물고기로 가득한 폭포의 유사성을 알아차리게 하는 것이 아닌 주의 깊게 쌓아올린 작품을 살펴보고 우리로 하여금 물이 쏟아지고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보는 듯한 감각을 느끼게 한다.
이 네 작품을 보면 다들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 강을 볼 수 있다.종교적 메시지,국가주의와 식민 정복,휴식의 기분을 자아내기 위한 수단,빈틈없이 구성된 기하학적인 암시로...





시각적 수단을 통해 생각을 소통하면 세상을 새롭고도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바라보게 되고 이해를 키우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미술의 언어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아 끊임없이 진화하고 변화한다.
수천 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세계의 전 지역에서 만들어진 750점의 미술작품,865개의 컬러 도판을 통해 세대와 시대,장소를 초월한 미술작품을 한 자리에서 비교해가며 배우다 보면 미술의 언어를 이해함을 넘어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인류의 오해와 벽들도 허물어 지지 않을까하는 큰 그림도 그려보게 된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미술을 접하고 느끼고 평가하는것도 미술을 즐기는 한 방법이겠지만 이런 폭넓은 정보가 담긴 미술사 서적을 통해 서로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다면 그 즐거움이 더 커지진 않을런지 ^^

새로운 시각으로 미술사를 공부하고 싶은 분들,어렵게만 느껴지는 곰브리치를 접하기 망설여졌던 분들,미술이라 불리는 모든 매체를 한 곳에서 접하고 싶은 분들은 꼭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샘플북만 접하고서도 다양한 시각과 깊이에 반해서 꼭 구입해보리라 생각이 들만큼 신선한 미술사 책이란 생각이 들었기에 감히 추천해 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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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역사 - 고대부터 르네상스까지, 예술에 담긴 음식 문화사
질리언 라일리 지음, 박성은 옮김 / 푸른지식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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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지식에서 출간된 미식의 역사는 표지만큼이나 흥미로운 음식과 미식의 역사들이 가득차 있어 흡사 고대 궁정의 보물창고나 먹음직스런 음식이 가득차 있는 음식창고 같은 느낌이 물씬 드는 책이다.

제법 큰 판형에 500P 가까이 되는 두께감,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등장하는 음식과 관련된 화려한 그림들은 그것만으로도 보는 즐거움을 던져주고 있다.

보고 느끼고 즐기는 고대부터 르네상스까지 중세시대엔 어떤 음식들을 먹고 살았으며 어떤 음식들을 선호했는지 음식을 대하는 가치관이 지금과는 어떻게 달랐는지를 고대벽화부터 시작해 피라미드,도자기,모자이크,정물화등을 통해 미식의 역사를 엿보며 이해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만 기미나인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중세시대에도 그런 역활을 드는 시중이 있었으며 궁중에서 여는 만찬이 단지 먹는 목적 때문만이 아니라 정치적 술수로 이용된거며 고기를 써는 준수사항이란게 있는데 그 항목이 7가지나 된다.격식에 맞게 옷을 갖춰 입고 왼쪽 새끼 손가락엔 값비싼 반지를 꼭 껴야하며 발레를 하는듯한 동작으로 고기를 접시에 놔야 하는등..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한 격식들이 등장하기도 한다.일주일 내내 이어진 연회에 쉬지 않고 음식을 올려야하는 하인들의 노고와 흥청망청인 귀족들과의 엄청난 괴리감이란.


중세시대 사람들은 처음엔 채소가 위험한 음식이라 생각하고 고기를 최고의 음식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채소와 생과일의 찬 성분 때문에 몸에 좋지 않을꺼라 여겼었지만 시골에선 이미 많이들 샐러드로 만들어 생으로 먹기도 했으며 자코모란 이탈리아 여행가가 이런 관습을 바꾸고자 유럽과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여행하며 과일과 채소를 전파하기도하고 고기와 단것을 많이 먹는 영국인의 식습관을 바꿔놓기도 했다.결국 농민들이 주로 먹던 샐러드가 귀족 연회에까지 오르며 식문화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환경과 시대에 따라,혹은 생산량에 따라 대접받고 홀대받는 음식들의 서열이 바뀌기는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다.과연 먼 미래엔 어떤 음식들이 대접받게 될지 우리의 식문화는 어떤 변화를 겪게 될런지 궁금해 진다.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는 후식겸 간식인 과자나 파이의 다양함 못지 않게 이미 르네상스 시대에도 그 화려함과 가짓수엔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이 책이 아니였다면 아마 평생 몰랐을 수도 있었겠다 싶고 ^^

지금도 볼 수 있는 파이의 격자무늬 크러스트나 딱딱한 겉덮게는 음식을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한 아이디어 였으며 손님을 놀래키기 위해 그 속에 새를 넣어 놓기도 했다고 하니 그 시절에도 참 번뜩이는 센스감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음주전, 음주후 양배추를 먹으면 몸에 좋다고 생각했다거나 아스파라거스를 귀한 식재료로 여긴거며 포도주에 여러가지 첨가물을 가미해 주조해 색다른 맛을 찾아내고 생산지와 만든이의 이름을 라벨화 시켰다거나 한걸 보면 지금이랑 별반 차이나지 않는 선조들의 앞선 지혜를 엿볼 수 있다.그리스 로마 시절,집안 곳곳에 음식벽화나 모자이크로 장식하기도 했는데 단지 음식으로 배를 채우기 보다 미식의 즐거움도 상당히 중시했음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맥주의 시작은 언제일까? 고대 메소포타미아 시절부터 맥주여신 '닌카시'를 향한 찬가까지 불리워 졌다고하니 인간이 맥주와 함께한 세월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참 놀랍기만 하다.비록 가설이긴 하나 수렵과 채집을 하던 인간들이 정착하기 시작한것도 맥주사랑 때문이라고 하니 ㅎ 아마 맥주를 먹기 위해선 정착을 하고 곡식과 열매를 경작하고 여자들은 집에서 맥주를 만들고 빵을 구으며 농업이 발전했다는 가설.책 속에 자주 등장하는 고대벽화나 무덤의 벽화를 보면  빵만드는 방법이나 음식을 만드는 그림들이 나오는데 조금이나마 그 시절을 추측해보고 상상해 볼 수 있는 귀한 자료가 아닐까 한다.



이 책을 읽으면 과거와 현재의 미식문화 뿐만이 아니라 미래의 음식문화까지도 유추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환경적 요인으로 고기만 섭취할 수 밖에 없었던 이누이트 족이 어떻게 살아 남았는지를 보며 앞으로 지금보다 더 환경이 파괴되고 식수도 부족해지며 식량 부족사태가 심각해질때 우리 인간은 어떻게 과거에 그랬던것처럼 현명하게 적응해 나가며 미식의 역사를 쌓아 나가게 될런지..어떤 동물보다 환경에 잘 적응해 나가는 인간이기에 오랜 미식의 역사를 가진 인간이기에 먼 미래도 그리 어둡지만은 않지 않을까?

비록 캡슐로 연명하게 될 우주시대가 도래한다고 해도 여러가지 맛 버전이 있을것이고 또 식감이 다른 버전도 있을테니...ㅎ 정말 바라지 않는 바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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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코다 이발소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로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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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한 문체로 쉽게 써나간듯 하지만 그 속엔 인간을 향한 따듯한 관심과 근원적 고민들을 향한 날카로운 성찰들이 늘 존재하고 있어 우리를 울고 웃게도 만들었던 스토리텔링의 천재 오쿠다 히데오가 무코다 이발소로 돌아왔다.

표지를 보면 참 유쾌하다.제목도 유쾌하고 겨울을 연상시키는 풍경속에 두둥실 떠있는 아주머니,아저씨들의 표정이 참으로 유쾌하다.

기대감으로 읽어나가고 마지막 장을 닫고 리뷰를 써나가는 지금 저 표지속의 인물들일듯한 야스히코 아저씨,교코 아주머니,다니구치 아저씨,가즈마사 청년 등등 동네 주민들은 여전히 하얀눈이 소복히 쌓여 있는 조용한 도마자와에서 그들만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을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1950년 일본 유슈의 탄광도시로 번성했던 도마자와 면은 1960년대 후반 석탄이 대부분 석유연료로 대체되면서 급격한 쇠퇴기를 맞게 된다.부친의 병환으로 집안의 가업인 이발소를 물려받게 된 야스히코. 

작은 시골마을이 안고 있는 인구 감소와 공동화 현상으로 도마자와에 단 두 곳만이 남은 이 무코다 이발소엔 하루에 손님이 한 명도 없는 날이 부지기수인데 이런 이발소를 야스히코의 20대 아들인 가즈마사가 도시의 직장생활을 때려치우고 물려받겠다며 고향집으로 내려 오게 된다.

자신의 가업잇기도 선망하던 도시생활과 직장생활의 부적응에서 온 결과물이였기에 젊디 젋은 스물 셋의 아들이 게다가 어릴때부터 끈기라곤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 없었던 그 아들이 희망이 보이지 않는 가업을 이어나가겠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쇠락한 이 곳을 일으켜 세우고자 이미 여러 차례의 농촌진흥 프로젝트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로 돌아간 전적이 많았기에 야스히코는 도쿄에서 내려온 면사무소 파견 관료인 젊은 사사키의 패기 넘치는 오지랖들이 좋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그런데 거기에 동네 청년들이 하나 둘 합세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아들마저 저러고 다니니 그들의 희망찬 계획들에 사사건건 고추가루나 뿌리는 고집세고 까칠한 이미지가 되어 가고 만다.

실패하고 내려온 루저란 의식이 팽배했던만큼 자신의 아들도 어쩌면 자신과 같은 케이스는 아닐까? 젊은 혈기에 뒤돌아보지 않고 으쌰으쌰하는 분위기에 휩싸여 내실없는 캐치프레이즈만 남발하고 꺼져가는건 아닌가하는 노파심에 전전긍긍 하게 된다.


그 와중에도 마을엔 축제도 열리고 청년회에선 다양한 이벤트들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야심만만하게 준비하던 이벤트가 저조한 참여도로 실패로 돌아가기도 하고 동네 어르신이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 챕터에선 농촌 마을의 고령화 문제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입시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이야기들과 고민들이 등장한다. 언젠간 우리에게 ,나에게 닥칠 나이드신 부모님들의 준비되지 않은 노후에 대한 걱정과 미래의 일이니 일단 외면하다보면 어느새 코앞에 닥쳐버린 엄청난 무게의 현실들에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다들 불안을 껴안은 채 어영부영 살고 있다..란 책 속 문장이 현실을 말해주고 있는 게 아닐까?




이처럼 입밖에 내어 말하기도 두려운 미래의 노후에 대해 이 책은 무거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오쿠다 히데오는 각자에게 닥친 불행을 혼자서 껴안고 있지만 말고 이웃이 서로를 도와가며 그 무게들을 나누어 보자고 이야기 한다.

기하치 할아버지는 쓰러지셨지만 남은 할머니와 아들에게 각자에 맞는 위로와 도움을 건네는 도마자와 이웃들.

산사람과 아파 누운 사람..소임을 다하고 이젠 짐만 되는 사람..산사람은 또 그렇게 일상의 즐거움을 누리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죽음이란게 멀리 있는게 아니고 지극히 현실적인 현상이며 참으로 나약한 인간은 혼자로만 살아가기엔 세상은 너무나 버거워서 마음을 열고 이웃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줄 아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하는 장이였다.


중국에서 온 신부편에선 작은 시골마을에 시집오게 된 낯선 이방인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웃들과 그걸 밝히기 꺼려하는 신랑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작은 마을에서 가업을 잇는 아들의 혼사문제는 걱정하면서 정작 딸은 이 곳으로 시집보내기 싫어하는 야스히코가 이율배반적이지만 이해가 되기도 한다.

공동체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농촌에서는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존재하지 않는다.자신의 처지에 나서고 싶어하지 않는 다이스케에겐 이런 마을 사람들의 관심들이 부담스러울수 밖에 없는 상황.하지만 눈뜨면 마주치고 부딪치는 그곳에서 개인의 사생활을 고수하며 살기란 쉽지가 않다. 결혼한 친구의 시집이 문중들이 모여사는 작은 시골인데 명절만 되면 인사를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며 하소연하는걸 매년 듣게 된다.^^ 하지만 공동체 생활의 장점들도 존재하는 법.다이스케는 폐쇄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마음의 문을 열고 소통을 시작하게 된다.

여기서도 야스히코의 활약이 두드러지는데 이웃들을 피하고 숨기고 살아가면서 더 답답했을 다이스케는 야스히코와의 소통을 통해서 훨씬 더 마음이 가벼워지진 않았을까 싶다.중국인 아내에게도 이웃과의 교류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지 않을까?


가장 흥미로웠던 챕터! '조그만 술집'에선 온 마을의 남심을 홀린 술집 마담이 등장한다.매력적인 외모의 사사에도 도마자와 출신으로 도시에 나가서 생활하다 내려온 여인이다.마을 남자들의 단골 술집엔 찬바람이 불고 어느덧 세련됨과 야릇한 매력을 무기로 무장한 사사에의 술집은 매일매일 동네 남자들로 북적대기 시작한다.

우리의 꼿꼿한 주인공,무코다 이발소의 야스히코마저 간만에 느낀 여인의 향기에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까칠한듯 보였던 야스히코는 알고보면 동네 이장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정도로 온갖 동네의 일들의 전면에 나서며 중재를 하기도 하고 비밀들을 눈감아주고 혼자 삭이기도 하며 그야말로 도마자와의 무게중심이라 할만하다.

게다가 '붉은 눈'에선 동네에 내려온 영화관계자들 앞에서 엑스트라 오디션을 보기도 하고 여인의 향기에 단체로 홀려 갈대처럼 흔들대던 남심들에 곧바로 초를 치지 않고 지켜주기도 하는 귀여운 면모의 아저씨 이기도 하다.


야스히코가 운영하는 무코다 이발소는  이야기가 오고가고 사연이 오고가며 마을 주민들의 애환들이 넘쳐나는 동네 다방같은 공간이며 조금은 까칠하지만 신중한 자세로 남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소소한 도움을 주려하는 야스히코는 도마자와에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 '도망자' 편에선 사기를 치고 도망자 신세가 된  도마자와 출신의 슈헤이를 아들 가즈마사가 설득시켜 자수하게 한 사건에서 야스히코는 드디어 아들의 성장한 모습에 크게 감동받게 된다. 심심하고 별일 없이 정체되어 있는 시골 마을을 변화시키고자한 아들의 노력과 바램이 헛되지만은 않을 것이란 기대감으로 행복하다.


농촌 사회의 고령화,인구감소,공동화 현상으로 인한 각종 문제점들로 점점 더 소외되어가기만한 현실에서 만난 오쿠다 히데오의 이번 작품은 사태의 심각성에 경종을 일깨우기만한 한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에피소드들 속에 유연한 해결점들을 숨겨 놓기도 하고 잔잔한 미소를 지을만한 유쾌함도 지니고 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없다는 공동체 사회의 단점도 있지만 대화와 교류를 통해 갈등과 오해가 풀리고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힘듬을 나누어 가지는 문화 속에서 작은 동네만의 장점들도 다시금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된 듯 하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도마자와가 아니라 설경으로 아름다울, 동네 주민들의 따듯한 관심들로 아름다울 도마자와의 겨울이 떠올라 어딘지는 모르지만 무코다 이발소를 꼭 한번 방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정말 그 곳에 가면 첫 눈엔 까칠해 보여도 속마음은 누구보다 따듯한 야스히코 아저씨가 따듯한 차한잔을 내어 주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장이 아쉽게 넘어갔다. 뒷 이야기가 더 있을것도 같은데..오쿠다 히데오 아저씨!! 너무 짧았어요.더 쓰셨어도 좋았을텐데..다음 이야기도 있는 거죠? 그럼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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