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인간 - 식(食)과 생(生)의 숭고함에 관하여
헨미 요 지음, 박성민 옮김 / 메멘토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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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할머니가 서울로 돌아간다고 해서 떠나기 전날 밤에 잔치를 열기로 했다.

대구역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세 할머니와 나는 마늘을 산더미처럼 쌓아올린 불고기를 먹었다. 연근조림과 오징어김치도 먹었다.

그러고 나서 문 할머니가 아는 사람이 한다는 식당 겸 술집의 온돌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문 할머니가 장구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귀국한 다음 잠시 동안 기생이 되어 장구를 배웠다고 한다.

“보고 싶은 마음, 무서운 마음을 잊어버리고·······.”

문 할머니가 노래를 부르자 모두 다라 불렀다.·······

할머니들에게 기억은 무엇일지를 생각했다.

둥둥, 두둥둥 하고 장구소리가 울리자 50년 전 기억이 둥둥, 두둥둥 하고 다가온다.·······


잔치가 끝난 뒤에 내가 말했다. 이제는 죽겠다고 하지 마십시오.

문 할머니가 장구 치던 손을 멈추더니 “약속할게.” 하고 대답했다.

김 할머니도, 이 할머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할머니가 고쳐 앉더니 말했다.

“나, 어젯밤에 김 할머니하고 얘기했어. 케 세라 세라, 그렇게 살기로 했어. 안 좋은 일은 잊어버리는 거야. 어떻게든 되겠지.”

다행이다. 다행이야. 케 세라 세라. 나는 할머니들의 손을 꼭 쥐었다.

케 세라 세라. 할머니들의 삶이 그 말처럼 되리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으면서, 또 우리도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내 아버지뻘 되는 수많은 일본 병사들의 몸을 눈물을 흘리며 만질 수밖에 없었던 손, 50년이 지나 칼로써 그 모든 기억을 지우려고 했던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을 나는 울면서 꼭 잡았다.(342-344쪽)




‘잔치’처럼 좋은 말도 드물다. 기쁜 일과 먹는 일이 결합되어 있다. 기쁨을 나누는 데 함께 먹는 일만한 것이 없다. 함께 먹는 데 기쁜 일만큼 맛을 돋우는 것이 없다. 세 분 할머니와 저자가 벌인 잔치는 “칼로써 그 모든 기억을 지우려고 했던” 모진 결심에서 돌이켜 삶을 이어가리라 약속하며 손을 잡는 기쁜 자리가 되었다. 이 기쁜 회심에 “마늘을 산더미처럼 쌓아올린 불고기” “연근조림” “오징어김치”가 한몫했다고 말하는 것이 무리라고 할 수 없으리라. 아니 그 음식들이 있어 이 잔치가 지상의 잔치가 되었으리라.


이 지상의 잔치는 한편으로 우리에게 육중한 과제를 안겨주었다. “케 세라 세라. 할머니들의 삶이 그 말처럼 되리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으면서, 또 우리도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할머니들의 존엄을 지키고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보상을 받아내야 한다. 매판의 무리들이 여전히 나라를 움켜쥐고 있는 현실에서 할머니들의 잔치는 날카로운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매판의 무리를 척결하고 진정한 자주국가가 되는 날까지 우리는 할머니들의 “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을” “울면서 꼭 잡”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소망한다. 더 이상 울지 않고 할머니들과 함께 “마늘을 산더미처럼 쌓아올린 불고기” “연근조림” “오징어김치”를 먹을 날이여 속히 오라. 우리는 요구한다. 촛불의 힘으로 세워진 권력은 할머니들의 삶이 ‘케 세라 세라’가 되지 않도록 총력을 다 하라. 거듭 김복선 할머니, 문옥주 할머니를 포함하여 의로운 날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모든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복을 빈다. 의로운 날을 열기 위해 아직도 거리에 서 계신 이용수 할머니와 함께 살아계신 서른여섯 분 할머니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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