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 암스트롱, 자비를 말하다 - TED상 수상자가 제안하는 더 나은 삶에 이르는 12단계
카렌 암스트롱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인간이 겪는 수많은 고통의 원인이 자신의 내면에 있다는 것을 알면, 우리는 변화의 동기를 부여 받는다.(135쪽)


오랫동안 나는 나의 내면이라는 말을 무심코 써온 것이 사실이다. 정색하고 스스로 묻는다. 나의 내면은 어디/무엇을 말함인가? 당연하다 전제하고 오랫동안 의지해온 개념 치고는 답이 쉽지 않다.


유심히 생각하면 알다가도 모를 내면에 한 술 더 떠 ‘깊은’ 내면이라고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 깊은 곳/것은 어디인가? 더 매혹적인 표현이 있다. 존재의 심연! 과연 인간 존재는 심연인가? 갈수록 미궁이다.


폴 발레리가 말했다. “가장 깊은 것은 피부다.” 디디에 앙지외가 말했다. “자아는 피부다.” 시든 의학이든 이 말들은 진실을 향해 곧장 찔러 들어간 검이다.


내면은 나의 몸 어디 깊숙한 곳에 있는 실체가 아니다. 내면은 내가 너와 상호작용하면서 관계 맺어가는 경계의 사건이며 운동이다. 경계가 가장 깊은 것이다. 홀로서 가장 깊은 것이란 없다.


내면을 이렇게 다시 사유하고 나서 보면, 내가 겪는 수많은 고통의 원인이 나의 내면에 있다는 말은 내가 너와 상호작용하면서 관계 맺어갈 때 고통을 일으키는 쪽으로 내가 움직인다는 뜻이다. 인지 오류라 하든 상처trauma 반응이라 하든, 내가 그 사건을 그렇게 감지·해석·수용하기 때문에 괴롭고 아프다는 뜻이다.


저자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내 마음의 주인은 나다’를 제목으로 붙인 것에서 추론하는바, 저자는 아직 내면을 경계 사건으로 인식하는 데 온전히 도달하지 못 한 듯하다. 주객이원론의 잔흔처럼 보이기도 하고 일체유심소조의 번역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 마음의 주인인 나는 과연 누군가? 흔히 말하는 참 나인가? 그렇게 실체로 존재하는 참 나는 있는가? 없다. 경계 사건의 전 과정에서 흐르는 마음의 결이 참 나를 형성한다. 참 나는 너 없이는 불가능한 존재다. 참 나의 주인은 그러므로 참 내 마음이다. 참 내 마음은 참 네 마음에 닿아 하나를 이룰 때 비로소 가능하다. 나의 주인은 나에게서 비롯하여 네게로 번져가는 내 마음이다.


30년 동안 자신과 딸을 폭력적으로 일치시켜온 한 어머니가 딸이 자기 경계선을 긋기 시작하자 적대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우울장애로 상담 중인 그 딸에게 ‘의사가 너를 어떻게 홀렸는지 모르지만·······’ 운운한다. 불편해하는 딸에게 내가 말해준다.


“여태 어머니에게 너는 존재하지 않았다. 너에게는 어머니만 존재했다. 너의 경계를 세워야 어머니는 너에게로 번져올 수 있다. 너 또한 어머니에게로 번져갈 수 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나의 주인은 내 마음이라는 진실을 배우려면 각기 견뎌야 할 육중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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