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위대한 질문 -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위대한 질문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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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우리에게 “당신은 믿음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이 문장의 의미는 “당신은 삶에 대해 깊이 묵상한 적이 있습니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찾았습니까? 그것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까?”이다. 이것이 믿음이다.(123쪽)


“초자연적인 절대자, 창조자 및 종교 대상에 대한 신자 자신의 태도로서, 두려워하고 경건히 여기며, 자비ㆍ사랑ㆍ의뢰심을 갖는 일. [비슷한 말] 믿음.”


이것은 국립국어원이 제시한 “신앙”의 정의입니다. 비슷한 말이라고 한 “믿음”의 정의도 이와 같습니다. 이 정의가 위 본문에서 인용한 예수의 질문에 걸맞은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초월적 존재에게 삶 전체를 내맡김(신뢰)이라고 조금 고쳐 다시 정의하면 아마도 근본적인 일치를 쉽게 발견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저자는 기도와 묵상의 차이를 설명할 때와 같이 신앙과 믿음의 차이를 상세히 설명합니다. 그리고 또 그 때와 같이 왜 차이를 드러내려 애썼는지 궁금할 만큼 마지막에는 두 말이 혼효를 일으킵니다. 탁월한 저작이 드러내는 옥에 티 같은 부분입니다. 사실 어원이나 번역 과정을 좇을 때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어원이나 번역이 사유의 매우 중요한 근거인 것은 분명하지만 언어의 발생 조건 자체가 그 언어 공동체의 유한한, 그래서 오류를 필연적으로 머금은 경험과 직관이기 때문에 어떤 개념의 현실 적합성을 탐색할 때 여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서고금을 가로지르는 보편적인 신앙과 믿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앙과 믿음의 주체 그 누구도 보편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대한민국의 상위 1%를 제외한 99%의 시민에게 신앙은 무엇이며 믿음은 무엇입니까? (상위 1%는 본질상 진정한 신앙과 믿음의 주체일 수 없으므로 제외함.) 이렇게 묻고 여기에 맞추어 대답하면 되겠습니까?


“당신은 삶에 대해 깊이 묵상한 적이 있습니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찾았습니까? 그것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까?”


막연합니다. 부족합니다. 이 질문을 구체적인 상황에 맞게 바꾸어보겠습니다.


“당신은 매판독재분단세력에게 개·돼지 취급을 받는 민중의 삶에 대해 깊이 묵상한 적이 있습니까? 이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찾았습니까? 그것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까?”


아직도 막연합니다. 부족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인 상황에 맞추어 바꾸어보겠습니다.


“당신은 세월호사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단식 중인 부모들의 삶에 대해 깊이 묵상한 적이 있습니까? 이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찾았습니까? 그것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까?”


이 글을 쓰고 있는데 416연대 공지 채널에 속보가 떴습니다.


“광화문 416광장에서 8일 째 단식 중이던 세월호 유가족 임영애 님(준영 군 어머니)이 호흡곤란 등의 건강 악화로 현재 병원으로 이송, 의사 검진 후 안정을 취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신앙을, 믿음을 지닌 사람이라 여길 때, 아니 신앙하는, 믿는 사람이라 여길 때, 당신의 깊은 묵상에 임영애 님이 들어 있습니까?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임영애 님의 소망이 포함되어 있습니까? 그 소망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아니라면 당신은 진정으로 신앙하는,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백보를 양보한대도 믿음이 적은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불의한 권력에게 핍박당하는 사람이 바로 당신의 하느님이라는 진리를 의심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는 준열히 묻습니다.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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