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십대 초반 제자들과 술잔 기울이다 왔다. 저들이 대학생이었을 때 만났으니 삼십 년을 넘겼다. 이제는 흰 머리카락 마주보며 소소한 얘기들을 주고받는다. 의미 재미 넘어선 화제를 가로질러 생의 어떤 내밀한 향이 흘러간다. 농활 가서 비누 나눠 쓰던, 가투하다 끌려가던, 인사동 카페에서 맑스 읽던 얘기를 다시 꺼낼 때도 훌쩍 지나고 보니 그저 허허하하한다. 좀 더 자주 보자 다짐하지만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다. 다짐의 틈새로 시간이 스며들면서 저들 또한 내 뒤를 따라 그리 늙어가리라. 평소보다 훨씬 많이 마셨음에도 '은화처럼 맑은' 정신이 잠 맞아들일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아, 일요일.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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