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아프리카 전통문화에는 관용을 강조하며 어떤 탐욕의 표출도 경계하는 강력한 도덕적 원칙이 있다. 재산과 재화를 공유하지 않고 개인을 위하여 모으는 것은 범죄로 간주된다.·······“아프리카 종교에서 요구되는 윤리를 한 마디로 묘사한다면 바로 사교성(환대와 열린 마음으로 나눔을 의미)이다."(Magesa, L.『African Religion』-인용자 붙임)(122쪽)


관용과 공유, 그러니까 환대와 나눔은 나와 남이 불연속 아닌 연속인 존재라는 자각에서 온다. 연속의 자각은 불연속 상태이기 때문에 온다. 불연속과 연속은 각기 홀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다. 서로 밀고 당기면서 전체성을 형성한다. 타락, 그러니까 자아폭발 이전 우리 조상들은 이 전체성을 무의식 상태에서 향유하며 살았다.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터질 때 속수무책이 된다. 혼전 성교란 자신의 인생에 당연히 없는 일이라고 굳게 믿는 미국보수개신교 십대 여학생의 임신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현상을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정색하고 문제 삼아보자. 남은 당연히 나인가? 나는 당연히 남인가?


출생 직후 영아는 엄마를 자신이라고 여긴다. 자신의 몸을 경계로 하는 자아의식이 없다. 당연히 타자의식도 없다. 내남의 구분이 안 되는 시기가 지속되다가 9개월 전후로 서서히 분리가 일어나 자아의식이 생긴다. 2세 전후까지 아기는 분리를 거부하고 타자를 자아에 연속·복속시키려 한다. 3세 전후해서 분리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대립적 결속 관계를 형성한다. 6-7세 전후로 이 과정을 다시 시작해 청소년기에 이른다. 청소년기를 기점으로 청년기까지 이 과정은 또 한 번 되풀이된다. 반복과 전진이 나선을 이루며 어른으로 성장해간다.


발달심리학의 여러 이론들을 버무려 대략 구성한 내러티브다. 이런 변화를 거치는 동안 인간은 자타의 분리를 체득하고 분리된 자타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관용과 공유를 익혀간다. 물론 이것은 충격의 계기마다 연착륙이 성공해 건강하게 자란 경우 이야기다. 경착륙이 트라우마를 일으킬 경우 아이는 정신분열, 성격장애, 우울증 따위의 이름을 지닌 질병에 노출된다. 크게 보면 모든 정신병은 발달불균형증후군 또는 발달장애스펙트럼이다. 그 증후군 또는 스펙트럼의 극단적 어둠을 일러 악이라 한다.


이 성장 내러티브, 특히 경착륙 에피소드를 인류역사에 적용하면 스티브 테일러의 타락 이론은 어떤 한 면에서 명쾌한 설득력을 획득한다. 부연하지 않아도 그냥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어떤 다른 면에서는 근원적 난관에 봉착한다는 사실이다. 그가 타락을 “분리”(367쪽)the separate sense of self exists(p. 262)라고 묘사하기 때문이다. 분리라고 묘사하면 당연히 목표는 (재)통합이다. (재)통합이 단순 복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도 진경을 정확히 묘사한 말은 아니다. 진경을 정확히 묘사하려면 “전체성의 파괴 또는 상실”이라 해야 한다. 전체성의 진경은 통합된 하나가 아니다.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不二而不(守)一” 상태가 전체성의 진경이다.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 상태의 전체성을 깨달아서 향유하면 두 가지 더 큰 축복 아래 놓인다. 문제가 생길 때 다시는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향유하는 기쁨이 더욱 탱탱해지고, 고마움이 더욱 생생해진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문화유산뿐만이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