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치유의 본질에 대하여 - 노벨상 수상자 버나드 라운이 전하는 공감과 존엄의 의료
버나드 라운 지음, 이희원 옮김 / 책과함께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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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 라운이 환자에게 최우선으로 당부한 말은 “의사를 존중하되 의학에 대한 환상을 갖지 말아야 한다.”(436쪽)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의사에게 되돌려주고 싶다.


“의사로서 자신(의 삶)을 존중하되 의학에 대한 환상을 갖지 마라.”


전통적인 국민보건의료체계가 제국주의 침탈과 식민화로 붕괴된 경험이 몰고 온 열등감 때문에 우리사회는 서양의학에 가히 초월적 권위를 부여한다. 의료대중보다 양의사가 더욱 그런 풍조를 조장한다. 직업의 특성상 매판독재 부역세력으로 비판 받지도 않고 시대 변화와 상관없이 ‘철밥통’ 특권층으로 군림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최근 대놓고 수구 본색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서양의학에 대한 양의사의 환상이 정치적 은유로 그 완결판을 내는 듯하다.


통념과 달리 의학은 매우 정치적이다. 정치적일 바에야 정치적 올바름을 지녀야 함에도 주류 서양의학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제약회사의 하수인이 되어 질병 날조와 폐기를 밥 먹듯이 한다. 그중에서도 정신의학은 사이비 신흥종교 수준이다. 이 어둠이 짙을수록 환상은 더욱 드라마틱해진다. 드라마 속 자기존중은 중독일 따름이다.


한의학이라 일컫는 전통의학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국민보건의료체계 한 귀퉁이에 놓이면서 서양의학을 닮거나 종속되기를 강요당하는 현실을 전복할 힘을 한의학계는 지니고 있지 않다. 치료 개념과 방식이 근원적으로 서양의학과 다른 점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학문에서든 임상에서든 뚜렷한 지표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의사가 한의학에 무슨 환상을 갖겠는가. 오히려 환자가 온갖 양의사를 섭렵하고 돌아다니다 침이나 한 번 맞아볼까 하고 한의사한테 와서 한 방에 고쳐주기를 요구한다. 그들은 한의사를 존중하지 않는다. ‘용한’ 점쟁이 같은 한의사를 찾을 뿐이다.


우리사회의 의료 풍경은 이렇게 동강나 있다. 이판에 언감생심 무슨 치유 예술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입에 올려야 한다면 치유 예술은 혁파의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혁파의 바람은 변방에서 불어온다. 변방은 어둠을 직시하는 자의 칼날이다. 그가 익명의 칼집에서 칼을 꺼내드는 찰나 혁파는 시작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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