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치유의 본질에 대하여 - 노벨상 수상자 버나드 라운이 전하는 공감과 존엄의 의료
버나드 라운 지음, 이희원 옮김 / 책과함께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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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을 연장하는 시술은 비용이 많이 드는 한편 이윤이 많이 남아, 병원 수입의 상당 부분은 여기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죽음은 의료산업에서 가장 이윤율이 높은 분야고, 인생의 종말과 관련된 지출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예를 들어 연간 메디케어(65세 이상의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미국정부 주관의 의료보험) 지출의 1/3이 대상자의 6%에 불과한 그해 사망하는 고령자의 진료비다. 죽음을 연장하려는 시도가 발달하면서 죽어가는 과정에 대한 지출 또한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한 개인이 일생 동안 지출하는 의료비의 40%가 마지막 한 해 동안에 지출된다. 오늘날 의료제도는 고령층을 괴롭히고 있는데, 그것은 본디 특성이 나빠서가 아니라 상환체계가 환자 개인 편에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이 이렇게 왜곡된 데는 크게 다섯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생명을 거의 무한하게 연장시킬 수 있는 생명공학 기술의 발달, 죽음과의 무의미한 싸움을 확대시킴으로써 이익을 얻는 병원, 죽음과의 전쟁을 선포한 의사 등 의료진,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고통 받는 데 익숙해진 환자, 그리고 의사가 항상 이기기만을 기대하는 대중이다.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은 미국사회 내에 죽음을 연장시키고자 하는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음모의 기저에는 이른바 과학적 진료가 있는데, 그것은 생명을 연장시키고 그 질을 높이기도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죽음을 악화시키는 면도 분명히 존재한다.(380-381쪽)


극단적 산업사회의 모든 상거래는 폭리에 기반을 둔 수탈행위다. 수탈행위의 백미는 단연 의료다. 요람 이전에서 무덤 이후까지 개인은 병원의 화수분이자 볼모로 존재한다. 그 가운데 가장 악질적인 것이 노인의 죽음, 소아의 목숨을 놓고 벌이는 협박의 상술이다. 산업연명의 문제점은 수치가 웅변한다. (산업출산 문제는 미셸 오당에 대한 리뷰 참조.)


연간 메디케어 지출의 1/3이 대상자의 6%에 불과한 그해 사망하는 고령자의 진료비다.

한 개인이 일생 동안 지출하는 의료비의 40%가 마지막 한 해 동안에 지출된다.


이윤율 최고를 자랑하는 이 협잡에 가담해 인간의 존엄을 팔아먹는 5적당, 전능한 생명공학 기술· 탐욕스런 병원·야차 같은 의료인·노예로 중독된 환자·맹신에 빠진 의료대중 가운데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 누군가. 죽음을 모독하는 것이 나쁜 까닭은 단지 죽음의 존엄성을 깔아뭉개기 때문만은 아니다. 죽음이 위요하고 있는 삶의 존엄까지 깔아뭉개기 때문이다. 더는 이 복마전에 몸담아서는 안 된다. 가장 먼저 유서 한 장부터 쓴다.


“나는 강용원입니다. 혹시 뜻하지 않은 사고나 중대한 질병으로 내가 정상적인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없는 마지막 상황이 올 때를 대비해 이 말을 남깁니다. 내게 그 어떤 연명기술도 쓰지 마십시오. 이미 쓰고 있다면 즉각 중단하십시오. 제 삶과 죽음의 존엄을 지켜주실 줄 믿어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나는 연명기술을 의술이라 부르는 것에 반대한다. 의술을 빙자한 사악한 상술일 뿐이다. 이 가차 없음이 순진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 삶과 죽음을 놓고, 내 가족의 사랑과 행복을 놓고 개인적으로 신중히 판단한 것이다. 사악한 장사꾼의 손에 내 삶의 마지막 시간과 죽음의 순간을 맡기고 싶지 않다.


가능한 한, 나는 내 생애 남은 부분을 의술을 빙자한 사악한 상술을 거절하고 삶과 죽음에 경의를 표하는 존엄의술을 추구하는 데 보낼 생각이다. 이 꿈을 꾸고 실천에 옮기는 일은 150인 ‘꿈꾸미’를 필요로 한다. 그들을 만나러 나는 길을 떠날 것이다. 머지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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