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해법은 무엇인가?
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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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역성장의 또 다른 원천은 인터넷이 가능케 한 탈중개화disintermediation다.······· 탈중개화와 자유공개정보이용기술FOSSfree & open source software은 모두 개개인직접접속P2Ppeer-to-peer혁명이라는 더 일반적인 현상의 한 부분이다.(288-289쪽)


  인터넷은 참여하는 선물경제이며, 생산자와 소비자의 일관된 구분이 없는 P2P네트워크다.·······


혁신이 성장 아닌 효율성으로 이어지면서 비대해진 산업에 축소 압력을 가하고 있·······다.·······이런 과정은 주로 최종사용자인 우리 손에서 한가한 시간에 이루어진다. 우리는 소비만 하기보다 창조하고 나누기를 원하기 때문이다._에릭 리즌스(291쪽)


시작이 어느 한 사람이나 특정집단의 기획이든 아니든, 의도했든 아니든 P2P혁명은 명백히 분리문명을 정조준하고 있는 재통합 운동이다. 누군가 고의로 왜곡하지만 않는다면 평범하고 평등하고 평화로운 네트워킹을 표지 삼는 재통합문명의 한 혈맥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


분리문명에서는 돈의 얼굴마담인 거대유일신이 만휘군상을 반간反間한 중개자였다. 이 탐욕스런 중개자는 모든 존재의 호혜와 감사를 가로채 제 몸집을 불렸다. 유구한 사기극은 맹렬한 무신론을 통과한 뒤 존재와 존재가 마주하여 일으키는 네트워킹으로서 무한無限신 실재로 나아가고 있다. 무한無限신 실재에서는 모든 존재가 직접 창조하고 나눈다. 창조와 나눔의 네트워킹 자체가 참 신이므로 그 사이에서 간섭하고, 그 밖에서 통치하고, 그 위에서 군림하는 초월(분리) 신이 있다는 내러티브와 신앙의 허구가 허물어져간다. 그 증후 가운데 하나가 P2P혁명이다. P2P혁명의 영적 의미가 각별한 까닭이 여기 있다.


P2P혁명이 재발견한 P2P신학에서는 신과 신자의 일관된 구분이 없다. 창조와 신앙을 서로 나눈다. 서로 나눔은 무한히 순환한다. 무한순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한다. 그 동시성 속에서 넘쳐도 낭비 없는 풍요가 삶을 충만하게 한다. 탱맑은 충만 경제가 신성한 경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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