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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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래도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이 책의 반도 이해를 못하겠다. 처음에는 번역의 탓을 했다. 너무 어색하고 읽는데 불편했으며, 마치 영어가 완전 젬병인 내가 영어 시험을 치르면서 전혀 모르는 분야에 대한 독해 지문을 읽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다른 리뷰를 몇편 보았는데 칭찬하는 글들이 많아 결국에는 나의 아둔한 머리를 탓하게 되었다. 아직 다 읽지도 않았음에도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바로 그런 답답함에 대한 하소연이다. 나머지 부분을 다 읽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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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7-01-09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제 경우를 말하는 것 같아서 공감이 큽니다. 찬찬히 책을 읽어내시길 빕니다. ^^;;
 
책의 우주 - 세기의 책벌레들이 펼치는 책과 책이 아닌 모든 것들에 대한 대화
움베르토 에코.장필리프 드 토낙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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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 내용 중에 등장하는 이 책의 제목만을 보고 읽어보겠다는  생각을 해서 도서관에서 빌렸다.

움베르토 에코는 워낙 유명한 사람이지만 장클로드 카리에르는 시나리오 작가라는데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인데 그 역시 애서가이자 고서 수집가라고 한다.

 

이 두사람의 책벌레가 책에 대해 또 문학과 역사와 철학과 예술에 대해 나눈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둘의 대화를 읽으면서 미리 원고가 준비된 것이 아닐텐데 대화로서 이런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들의 지적 깊이에 놀랐다. 사실 대화의 내용 자체는 잘 기억나지 않고 또 잘 모르겠기 때문에 내가 감상이라고 적을 것도 없다. 다만, 책의 말미에 두 사람이 죽은 후에 각자의 서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는 보잘것 없는 내 책꽂이에 있는 책들을 생각하면서 나중에 내 자식들이, 손자들이 거들떠 보기나 할 것인지, 아니 죽을 때까지 책꽂이를 가지고 있을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니 괜스레 슬퍼지는 마음이 들었다.

 

에코의 말처럼 우리가 읽지 않은 그 모든 책들이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는 그 무언가를 나도 천천히 알아가기를..

우리의 기억이 짧아졌을 때, 이 뒤에 바짝 붙은 과거는 현재를 압박하여 거대한 의문부호를 이루는 - 어쩌면 벌써 느낌표가 되어 있을 수도 있는 - 미래 쪽으로 거칠게 밀어내게 됩니다. 현재는 어디로 간 걸까요? 지금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그리고 무수한 공모자들이 우리에게서 훔쳐내려 애쓰고 있는 이 경이로운 순간은 어디로 갔습니까?
-p.65 카리에르 -

우리는 기억의 일부를 책들과 기계들에 위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도구들을 최대한 유익하게 활용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의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기억력을 잘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지요.
-p.80 에코 -

각 문화는 무엇을 간직해야 하며, 무엇을 잊어버려야 할 지 우리에게 말해 줌으로써 여과 작용을 하지요. 이런 의미에서 문화는 우리에게 하나의 공동의 합의의 장 - 여기에는 오류들에 대한 것도 포함되지요 - 을 제공해 준다고 말할 수 있어요. (...) 그런데 인터넷은 (...) 더 이상 문화의 중개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여과 작용을 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인터넷으로 인해 우리는 앞으로 60억개의 백과사전을 가지게 될 위험이 있어요. 그렇게 되면 그 어떤 합의도 불가능하게 되겠죠.
-p.88 에코 -

이렇게 여과의 개념에 대해 토론하다 보니, 우리가 여과하여 마시는 포도주들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군요. 그런데 요즘에 나온 어떤 포도주는 <여과되지 않은>점을 장점으로 내세운 답니다. 이 포도주는 불순물들을 모두 간직하고 있고, 바로 그것들이 - 여과하면 걸러져 버리는 - 아주 특별한 풍미를 가져다 주는 거지요. 어쩌면 우리는 학교에서 지나치게 여과되어 불순한 맛들을 상실해 버린 그런 밍밍한 문학을 맛보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p.121 카리에르 -

마치 우리가 통과하는 사건들이 우리를 변화시키듯, 독서가 행해질 때마다 책은 변화되는 법이죠. 위대한 책은 항상 살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와 함께 자라나고 늙어가되 결코 죽지는 않습니다. 시간은 책을 비옥하게 만들고 변화시킵니다. 반면 흥미를 끌지 못하는 책들은 역사 옆으로 미끄러져 나가 사라져 버리죠.
-p.178 카리에르 -

걸작은 걸작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걸작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위대한 작품들은 독자인 우리를 통하여 서로간에 영향을 준다는 점도 덧붙여야 겠지요. (...) 그리고 걸작은 끊임없이 재발견되죠. 하나의 작품은 시간을 통과하면서 자신이 어둠에서 벗어날 시간을 기다리는 것 같아요.
-p.179 카리에르 -

인간의 어리석음을 연구하면서 처음으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이 멍청이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멍청이로 취급할 때, 우리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어리석음은 바로 그들이 우리에게 내미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지요. 항구적이고 정확한, 그리고 충실한 거울입니다.
-p.244 카리에르 -

읽히는 것이 책이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는 정확하지 않은 말이죠. 신문은 읽히지만 책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편지, 묘비, 시위 때 등장하는 플래카드, 꼬리표, 혹은 내 컴퓨터 화면도 책이 아니죠.
-p.330 카리에르 -

(책이 많이 있는 어떤 방으로 가서 그중 한 권도 손을 대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할 때 무어라고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를 받게되는) 것은 집에대 수많은 책을 쌓아 놓은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예요. 공공 도서관이나 때로는 대형서점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경험이죠. 판매대 위에 보이는, 하지만 우리의 것은 아닌 책들의 향기를 맡는 것 만으로 정신이 살찌워지지 않았던 사람이 우리 가운데 몇이나 될까요? 책을 그저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거기서 어떤 지식을 길어 낼 수 있었던 경험 말입니다. 우리가 읽지 않은 그 모든 책들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약속하고 있지요.
-p.344 에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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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2015년판) -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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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 책들을 통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공유하는 가치들이 있음을 발견하였고, 작가로서의 그의 생각과 문학에 대한 자세 등을 옅볼 수 있는 기회였다.

 

"죽음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생각에 익숙해져라. 왜냐하면 모든 선과악은 지각에 근거하는데, 죽음은 이러한 지각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을 올바르게 통찰하면, 우리의 유한한 삶은 즐거울 수 있다. 왜냐하면 이 통찰이 우리 삶에 무제한적인 지속성을 부여하기 때문이 아니라 영원히 살고자 하는 욕구를 없애기 때문이다.(...) 가장 끔찍한 악인 죽음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오지않고 죽음이 오자마자 우리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폴커 슈피어링, `철학옴니버스`, 자음과모음, 2013) -`보다` p.93-

"인간은 원래 연극적 본성을 타고 납니다. 이 본성을 억누르면서 성인이 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되려는 욕망, 다른 사람인 척하려는 욕망을 억누르면서 사회화가 되는 겁니다." (...)
우리가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존재,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러가지 모습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게 무엇인지 영원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장면은 바로 우리의 일상일 것이다.
일상에서는 누구도 `컷`이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삶은 때로 끝도 없이 지루하게 이러지는 것만 같다. 그럴 때 누군가 이렇게 말해주면 참 좋을 것이다.
"자, 다시 갑시다." -`보다` p.123-

우리는 정보와 영상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많은 사람이 뭔가를 `본다`고 믿지만 우리가 봤다고 믿는 그 무언가는 홍수에 떠내려오는 장롱 문짝처럼 빠르게 흘러가버리고 우리 정신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댈 보기 위해서라도 책상 앞에 앉아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생각의 가장 훌륭한 도구는 그 생각을 적는 것이다. -`보다` 작가의 말 중 -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에게 허용된 최후의 자유이며,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마지막 권리입니다. 글을 씀으로써 우리는 세상의 폭력에 맞설 내적인 힘을 기르게 되고 자신의 내면도 직시하게 됩니다. (...) 그게 무엇이든 일단 첫 문장을 적으십시오. 어쩌면 그게 모든 것을 바꿔놓을지 모릅니다. -`말하다` p.60-

만약 글쓰기가 즐겁다면 그것은 글쓰기가 우리를 해방시키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은 감옥에 있을때도 글을 쓰고 정말 고통스러울 때도 글을 쓰잖아요.(...) 그런데, 그들이 편안하고 즐겁게 살고 있었다면 과연 그런 시를 썼을까요? 감옥에 갇혔을 때 정말 갑갑하고 괴로울때 인간은 글을 쓴다는 거죠. -`말하다` p.135-

이렇듯 창작의 과정이 복잡, 미묘하고, 독서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이라면, 작가와 독자가 직접적으로 소통한다는 것은 환상일 겁니다. 양자 사이에는 작품이라는 일종의 미로가 존재하며, 설령 그 미로 어딘가에서 양자가 만난다 해도 서로 알아보지 못할 겁니다. -`말하다` p.169-

책으로 얻은 것들은 누구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독서는 다른 사람들과 뭔가를 공유하기 위한게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공유할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 내면을 구축하기 위한 것입니다. -`말하다` p.180-

소설을 읽는다는 것, 그것은 인간이라는 어떤 우월한 존재가 책이라는 대량 생산품을 소비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이야기가 책이라는 작은 틈을 통해 아주 잠깐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세계와 영겁의 시간에 접속하는 행위입니다. 이야기의 세계는 끝이 없이 무한하니까요. -`읽다` p.69-

(...)우주안의 모든 존재가 서로를 끌어당기고 밀어내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도록 만듭니다. 책의 우주도 이와 비슷합니다. 책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개개의 책은 다른 책이 가진 여러 힘의 작용 속에서 탄생하고, 그 후로는 다른 책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읽다`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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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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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을 수상한 작가 한강의 그 소설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나는 한강이라는 작가도 잘 모르고 맨부커상의 권위도 잘 모르겠지만 언론에서 떠들어대니 호기심에 책을 주문했다.

한 여성이 갑작스레 - 꿈을 꾸었다고 하고,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영혜가 겪었던 과거의 기억들 몇 장면이 등장하지만 분명한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서 갑작스럽다 -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가 되고 결국에는 스스로 나무(?), 식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세명의 시선으로,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 세 편의 단편들이 엮여 전체 소설을 이루고 있다. 우선 채식주의자를 읽고난 후 느낀 점은 주제가 무엇인지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조금은 기이하고 공포영화 같은 장면들이 불편함을 느낄수도 있는 작품이라고 느꼈다. 나머지 두 편을 모두 읽고 나서야 나 나름대로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내가 느낀 것은 시선, 차별적 시선에 대한 것이다.
영혜는 사실 채식을 선택한 것이 아니므로 채식`주의`자가 될 수 없음에도 주변에서는 그녀의 선택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차별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강압적으로 그 `선택`을 바꾸려는 시도를 한다. 그것은 그녀를 `비정상`적으로 내모는 폭력이고 그 폭력은 언제나 비극적 결말을 초래하게 된다.

처제의 몽고반점 이야기를 듣고 예술적 영감이 발동해서 이를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예술`의 경계를 넘어선 형부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시선이 존재한다. 그의 입장에서 그의 행위 역시 그의 `선택`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무언가에 - 그것이 예술적 영감이든 욕정이든 간에 - 강하게 이끌려 스스로도 컨트롤 할 수 없이 모든 일이 진행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그의 눈에 비친 공포감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신병원에서 스스로 나무가 되어가는 동생을 바라보는 언니의 시선은 극적 변화를 겪게 되는데, 그녀가 동생으로 인해 받은 고통의 당사자임에도 동생의 마지막 보호자일 수 밖에 없는 그녀의 상황은 아이러니하다. 그런 그녀의 삶의 무게는 어린시절부터 계속 이어져 온 것이다. 그녀는 한번도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고, 그저 견뎌왔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 상황은 그녀에게 또 다시 견뎌야 하는 삶인 것이다. 동생의 치료를 핑계로 한 의료진의 폭력에 그녀는 소리치며 저항하는데 그것은 스스로가 만들었던 스스로에 대한 틀을 깨뜨리려는 몸부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건 동생을 이해한다기 보다는 동생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스스로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동시에 동생과 마찬가지로 어떤 틀을 깨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장인물들을 향한 시선은 기존의 틀이고 세상이 돌아가는 질서이다. 영혜가 채식을 `선택`함으로써 영혜는 기존 질서로 부터 추방당하는 것이다. 폭력적으로...

결국, 이 소설은 기존 질서의 틀과 시선으로 부터 멀어졌을 때 가해지는 폭력성에 대한 고발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작가 한강의 문체는 군더더기가 없는 느낌이다. 읽기는 수월하나 문장이 함축적이어서 단순한 `이야기`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내가 믿는 건 내 가슴 뿐이야. 난 내 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거지. 이젠 더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채식주의자 p.43

이 모든 것을 고요히 받아들이고 있는 그녀가 어떤 성스러운 것, 사람이라고도, 그렇다고 짐승이라고도 할 수 없는, 식물이며 동물이며 인간, 혹은 그 중간쯤의 낯선 존재처럼 느껴졌다.
-몽고반점 p.107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 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전의 어린 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나무불꽃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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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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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To Kill A Mockingbird'. 번역 후기에 의하면 Mockingbird는 앵무새(Parrot)와는 다른 종으로 미국 남부지방에 주로 서식하는 '흉내내기지빠귀'라는 새라 한다. 지빠귀가 어찌하여 앵무새로 둔갑하였는지는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으나 최초 번역자가 흉내내기지빠귀라는 이름이 너무 길고 생소해서 '흉내내기'에서 착안하여 앵무새로 바꾼 것 같다. 그런데 앵무새가 흉내내기를 잘하는 것이 맞는 지 모르겠다. 구관조랑은 뭐가 다른 건지.. 아무튼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지빠귀 죽이기'가 아니라 '앵무새 죽이기'를 읽는 독자를 가진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어쩐지 앵무새 죽이기라고 하는 것이 훨씬 어감이나 뜻의 전달도 쉬워질 것 같다.




이 책 역시 지난 2월에 작가 하퍼 리의 사망소식과 함께 '파수꾼'의 원고가 발견되고 그 원고에서 인종차별주의자로 변한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의 모습이 그려져 미국 사회에 충격을 안겨 주었다는 기사를 접하고 나서 흥미가 생겨 사두었던 것을 이제야 꺼내 읽었다.




백인여성을 강간했다는 누명을 쓴 흑인을 변호하는 시골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의 이야기를 통해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단순히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대한 것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당시 -지금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겠지만,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야만적 차별행위와 학대는 이미 많은 책과 영화 등을 통해 익히 알려져 있다. 개인적으로도 예전에 '블랙 라이크 미'(존 그리피 하워드)를 읽었을 때 충분히 공감하고 분노했으며 체념한 주제이기도 하다. 이 책의 주된 줄거리 역시 인종차별의 시대를 고발하고 인류평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인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차별적 사고에 대해, 편견에 대해, 자기중심적 세계관과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회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입만 열면 민주주의와 인권을 들먹이는 미국의 추악한 자기모순을 고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보편적 인류가 가져야 할 가치,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비단 과거, 그리고 미국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전 세계 어디서나 인류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나 존재하고 벌어지고 있는 모든 차별적 시각과 편견이 모든 분쟁의 근원일 것이다. 종교, 민족, 인종, 지역, 가문, 학연, 이데올로기...




마지막 장면에서 스카웃이 래들리의 집을 늘 바라보기만 했던 시각을 래들리의 집 현관에서 반대로 바라보는 장면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역지사지, 중용, 똘레랑스 뭐 이런 말들이 다 같은 말 아닐까.

모두가 알고 있지만 쉽게 바꿀 수 없는 것들. 내 안에도 무수히 존재하고 있을 그런 사고와 시각들을 비록 고칠 수 없을 지 몰라도 겉으로 드러내고 남을 향해 총을 쏘아대는 것은 하지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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