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15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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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움베르토 에코 교수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치 아주 잘 알고 지내던 이웃집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비록 내가 에코 교수의 작품을 몇권 읽지 않았고 그마저도 제대로 읽었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이해도가 낮지만,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에코 교수의 지적 깊이와 넓이에 대한 감탄과 존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에코 교수의 사망 소식을 듣고 책을 고르고 한동안 열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야 띄엄띄엄 읽었다.

비록 시대적으로 차이가 있는 내용이지만 세상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잘 전달되는 재미있는 글들로 가득차서 좋았다. 책 속의 문장들을 옮기지는 못하지만 언제고 다시 책을 열고 뒤적이게 될 것임을 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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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 김훈, 문학동네, 2015


이 책은 오래전에 절판된 산문집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생각의나무, 2002), [밥벌이의 지겨움](생각의나무, 2003), [바다의 기별](생각의나무, 2008)에 실린 글의 일부와 그 후에 새로 쓴 글을 합쳐서 엮었다.

이 책의 출간으로, 앞에 적은 세 권의 책과 거기에 남은 글들은 모두 버린다.  - 김훈 -


책의 첫 문장이 시작하기도 전에 독자들에게 '일러두기'를 쓴 김훈의 문장을 읽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과거에 출간했던 세 권의 책 속에 실린 글들을 새로 모아 새 책을 냈다고 하면서 앞에 세 권의 책과 거기에 남은 글들을 모두 버린다는 저자의 심경을 읽어보려 노력했지만 나는 도무지 공감할 수 없었다. 저자의 태도가 그르다는 것이 아니라 나라면, 도저히 내 흔적들을 저리 과감히 '버린다'고 선언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소설이 아니고 산문이라 하더라도 글을 쓰고 책을 엮었을 때 가슴이 울렸을 터인데 그것을 어찌 버릴 수 있겠나.. 나는 물론 앞에 적은 세 권의 책을 모두 읽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을 샀을지도 모른다. '엑기스'라고 생각했기에..

그래서 그가 버리고자 하는 글들을 어쩌면 영원히 읽지 못할 수도 있다. 그가 버리든 버리지 않든 그의 글이 더 이상 그의 글이 아닐 소도 있음을 그는 헤아리고 있을까..


 

 

아, 나는 한평생 단 한번도 똥을 누지 못한 채, 그 많은 똥들을 내 마읆에 쌓아놓아서 이미 바위처럼 굳어졌다. 삶의 기억과 파편들은 내 마음에 찍혀있고 그 헛것이 주인 행세를 해왔는데, 내가 그 헛것에 갇혀서 오도가도 못하므로 똥은 이미 허상이 없으므로 똥의 장벽은 완강할 뿐 실체는 아닐 것이었다. 허상은 헛됨으로써 오히려 완강할 테지만 실체는 스스로 자족하므로 완강할 이유가 없을 것이었다.

울진 바다에 비추어 보니, 내 마음의 병명은 종신변비였다. 바다가 나의 병명을 가르쳐 주었다. 나에게 가장 시급한 처방은 마음에 쌓인 평생의 똥을 빼내고 새로워지는 것이리라. -p.50-

아직 살아있는 나는 죽어가는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마지막 망막의 기능으로 아직 살아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이 마지막 망막에 비친 살아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마지막 망막에 비친 살아있는 나의 모습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죽어가는 그와 마찬가지로, 한 줌의 공기나 바람은 아니었을까. -p. 138-

사람의 목소리는 경험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추억을 끌어 당겨준다. 사람의 목소리에는 생명의 지문이 찍혀있다. 이 지문은 떨림의 방식으로 몸에서 몸으로 직접 건너오는데, 이 건너옴을 관능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그러므로 내가 너의 목소리를 들을 때, 나는 너를 경험하는 것이다.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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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외 3부작 - 무라카미 하루키, 비채, 2013

무라카미 하루키가 패션잡지 `앙앙`에 연재한 에세이를 책으로 묶었다.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총 3권의 연작 시리즈로 발간되었다.
특별한 주제를 정한 것이 없이 하루키의 소소한 생각들을 솔직한 문장으로 적고 있다. 읽다보면 하루키란 사람은 참 엉뚱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조금은 어이없는 생각들도 있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상당히 공감가는 부분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작가의 초상을 통해 일찍 죽은 작가들은 언제까지고 젊을 때 얼굴로 남아있는데 비해, 장수한 작가는 죽기 직전의 사진이 `기본`으로 정착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너무 장수하는 것도 좀 그렇군`하는 생각이 든다고 하는 것이나, `새빨간 거짓말`의 어원을 거짓으로 둘러대는 글에서는 나도 갑자기 왜 `새빨간` 이라고 표현하는 지 궁금해져서 인터넷을 뒤적여 보기도 했다.

리히테르는 라이브 녹음이어서 마지막에 청중의 박수소리가 들어가 있는데 나는 이 박수 또한 좋다. 과연 이탈리아인 들이다. 곡의 마지막 한 음이 공기에 빨려들어가 사라질까 말까 할 때, 마치 오페라 아리아를 마주했을 때와 같은 절묘한 반응으로 우와아아아 하는 결광적인 박수와 환성을 잊지 않는다. 관중이 얼마나 깊이 매료되었는지 짜릿하게 전해진다. 진정한 박수란 이런 것이지 싶은 훌륭한 박수다. (.....) 음악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그만 리히테르 음반에 녹음되어 있는 박수와 같은 타이밍에 치고 말았다. 요컨데 `곡의 마지막 한 음이 공기에 빨려들어가 사라질까 말까`할 때, 반사적으로 우와아아아 하면 박수를 친 것이다. 정말 부끄러웠다. 여기는 일본이다. 그 대목에서 박수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
인생에는 감동도 수없이 많지만 부끄러운 일도 딱 그만큼 많다. 그래도 뭐, 인생에 감동만 있다면 아마 피곤할테죠.
[저녁 무렵 면도하기] -p.102-

나도 지금까지 인생에서 적지않은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해왔지만 `안녕`을 능숙하게 말했던 예는 거의 기억에 없다. 지금 돌이켜보면 `좀 더 제대로 말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후회가 남는다 - 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설령 후회스럽다고 해도 그래서 삶의 방식을 고칠 것도 아니고),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무책임한 인간인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인간은 아마 어떤 일이 생겨 갑자기 덜컥 죽는 게 아니라 여러가지 이유를 켜켜이 조금씩 쌓으면서 죽음으로 가는 것 일테죠.
[저녁 무렵 면도하기] -p.205-

(야구감독인) 나가시마 시게오씨는 (....) 감독시절 `나는 선수를 신뢰합니다만, 신용하지는 않습니다`라고 인터뷰했다. 그때는 `또 의미없는 말장난 이라니`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 내가 그 나름의 입장이 돼보니 그 뉘앙스가 마음깊이 이해됬다. 주위 사람을 기본적으로 신뢰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무턱대고 신용하여 서로가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
사람을 신뢰하면서 신용하지 못하는 인생이란 것 역시 때로는 고독한 것이다. 그런 미묘한 틈, 괴리 같은 것이 통증을 초래하며 우리를 잠 못 이루게 하는 밤도 있을 것이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p.54-

악마도, 깊고 푸른 바다도 어쩌면 바깥이 아니라 내 마음안에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 한없이 깊은 해저의 웅덩이를 떠올릴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그것은 늘 어딘가에서 잠재적으로 우리가 지나가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인생이란게 뭔가 두렵군요.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p.107-

예를들어 아내는 튀김이나 냄비 요리를 전반적으로 좋아하지 않아서, 결혼하고 지금까지 그런 건 일절 만들어주지 않는다. `삶의 방식을 거스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니 반론할 여지가 없다. 부부라고는 하지만 `삶의 방식을 거슬러 줘`라고는 차마 못한다. ` 그럼 당신도 한 가지 삶의 방식을 거슬러 줘`라고 하면 상당히 곤란하니까.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p.168-

그렇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삶의 방식` 일 수 있다. 내가 사소하게 생각하는 어떤 것도 상대방에게 `삶의 방식`으로 작동할 때는 그에게는 절대 사소한 것이 아닐 것이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숱하게 `삶의 방식`을 거스를 것을 요구해 왔을까..

(오믈렛 전용 프라이팬을) 이 상태로 만들기까지 들여야 하는 시간과 수고가 상당하다. 새 프라이팬은 좀처럼 오믈렛을 만드는데에 협조해주지 않는다. 그런 프라이팬을 어르고 달래고 칭찬하고 협박해서 간신히 내 것으로 만든다. 일단 내 것이 된 뒤에도 사용 후 관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조금만 얼룩이 남아도 달걀은 삐쳐서 예쁘게 미끄러져주지 않는다. 꽤 까다롭다. 생각해보면 고작 아침밥 반찬인데.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p.38-

어디 오믈렛용 프라이팬 뿐이겠는가. 세상 모든 일이, 물건이, 사람이 다 그렇다.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여야 하며 또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해야 하는가. 세상에 공짜란 없으니까. 고작 아침밥 반찬조차 그럴진대...

나이먹는 것을 여러가지를 잃어가는 과정으로 보는가, 혹은 여러가지를 쌓아가는 과정으로 보는가에 따라 인생의 퀄리티는 한참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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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의 꿈
리처드 바크 지음, 이정애 옮김 / 선영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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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서점에 들렀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는 옛날 추억에 집어들었다. 번역이 별로 맘에 안들고 사진 대신 들어간 삽화도 별 감흥이 없다.
별 두개는 그저 이 책에 얽힌 옛 추억의 감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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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5 범우 한국 문예 신서 73
정비석 지음 / 범우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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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석 선생의 초한지를 다시 읽었다.

책장의 책들을 이리저리 넣었다 뻈다하다가 맨 아랫칸에서 줄지어 꼽혀있는 삼국지, 수호지, 초한지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삼국지와 수호지는 이문열씨가 평역한 것이고, 초한지는 정비석씨가 소설 형식으로 엮은 것인데 초한지에 우선 손이 갔던 이유는 별개아니고 나머지 것들은 10권짜리 셋트인데 초한지는 다섯권짜리 셋트였기 때문이다.


`삼국지연의`처럼 별개의 텍스트가 전하는 것은 아니고 사마천의 `사기`를 원전으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 `초한지`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만화가 고우영 화백이라고 한다. 초한지는 잘 알려진대로 대륙을 통일했던 진나라가 무너지고 중원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항우와 유방의 싸움을 다룬 작품이다. 정비석 선생의 초한지는 진시황이 대륙을 통일하여 진나라를 세우는 과정부터 쓰고 있어서 이야기를 읽는 사람의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 역발산기개세라 일컬어지는 맹장 항우는 싸움에선 당할자가 없었으나 유방과 수많은 전쟁을 치른 끝에 최종적으로 유방에게 천하를 내어주게 된다. 힘과 용맹함만으로는 천하를 얻을 수 없었다.

유방은 관인후덕한 인품으로 주변에 한신, 영포, 팽월과 같은 뛰어난 장수와 장량, 소하, 진평과 같은 뛰어난 지략가들이 모여들어 결국에는 한(漢)고조가 되었으나, 통일 후 일등공신인 한신, 영포, 팽월을 모두 제거함으로써 스스로의 위협을 없앴다. 권력의 비정함이다. 장량의 탄식처럼 부귀와 공명은 모두 헛되고 부질없는 것이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도 영생을 꿈꾸었지만 객지에서 허망한 죽음을 맞았고, 항우는 물론이고 유방도 죽음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유방이 죽은 후 질투와 권력욕에 눈이 멀어 유방의 애첩인 척부인의 자식을 죽이고 척부인을 인간돼지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결국 자신의 아들까지 죽게 만든 여황후도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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