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지 않는, 기억 - 일본인 PD가 본 위안부 문제
나카지마 가제 지음, 최세경 감수 / 3월의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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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해방전후사는 늘 나의 관심사이다.

시간은 인간이 치유될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 을 출간하는 과정에서도

벌써 4분의 위안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저자 나카지마 가제는 일본 민영방송국 TBS의 보도 프로그램 PD이다.

15년간 한국을 취재하면서 섭렵한 기록들중에서도

위안부 문제 한일관계에 집중하여 직접 한국어로 쓴 책이다.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성폭력 피해라는 보편적인 인권, 여성의 인권 문제인데

책임을 저야할 당사자인 일본 정부는 이를 정치적으로 접근하여

가해 책임을 왜소화하거나 심지어는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도 여전히

한일간 입장과 해석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평행선을 걷고 있다.

그러나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일본인 PD의 균형잡힌 시각을 통해 일본이 강제동원이나 성노예 명칭의 삭제에 집착하며

피해자들의 삶과 기억을 지우려는 매우 부적절한 움직임에 대해서는

그 어떤 국가들도 지지하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점점 국제사회에서 인권 문제에 있어서 고립되어 가고 있으면서도

책임회피에 대한 의지는 여전히 강고하며

문제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과 주장은 참 변함이 없다.

위안부 문제를 '피해자 중심' 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나 전향적 태도를

역대 일본 총리 그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10대 소녀가 가족에게 보탬이 되겠다고 돈을 벌 수 있다는

낯선 이의 꼬임에 넘어가 의심없이 믿고 따라간 결과가

자기 의사로 간 매춘부였다는 모함으로 둔갑하게 된다면,

게다가 신체적으로도 성적 학대와 폭력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그 누가 침묵할 수 있을까!!!

그 어린 소녀가 자신의 딸이라고 한 번만 가정해 본다면

이렇게 끈질기게 인권 침해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영광을 여전히 꿈꾸고 있는 듯한 현재 일본의 윗세대들은

고유한 존재로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존엄성을 들여다보고 각성하길 바랄 뿐이다.

진실을 은폐하고 호도해온 역사가 적지 않아

그 시스템에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닌지 가엾기까지 하다.

동시에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말씀하듯이,

일본인 개개인의 응원과 방문은 언제나 감사한 일이라고 하셨다.

일본 정부의 공식적이고도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을 촉구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혹여 윗 세대들이 듣지 못한다면

현재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라도 귀기울여주길 바랄 뿐이라는 저자의 호소가 고맙기까지 했다.

일본 내에서 언론인으로서 객관적이고도 균형잡힌 시각과 목소리를 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에도 국제 약속과 국민 정서 양쪽 모두를 짚어준

나카지마 가제 PD의 기록은

영원토록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억하게 해줄 것이다.





2015년 시점에서 한국 정부가 인정한 위안부는 238명.

그 중 생존자는 47명이었고 2022년 현재는 11명뿐인 절박한 상황이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진실은 기억으로, 정의는 연대로" 를 외치며

조직적으로 행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 간절한 목소리의 울림은 미미한가보다.

가해자 측의 강제 연행이나 증언을 직접 증명하는 공적 문서가 나오지 않고 있을 뿐,

피해자 측의 증언과 기록들은 수도 없이 많음에도

강제연행을 확인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위안부 문제를 회피하는 일본.

오히려 돈으로써 이 모든 문제를 퉁치려는 행위가

더더욱 인간적인 모욕으로 다가와 상처가 가시기는 커녕 덧나고 있는 상황이다.

2015년 '불가역적' 인 한일합의 후 2016년 화해*치유재단 설립에 이어

정부가 바뀌고 2018년 해산에 이르기까지

국가간 대화 속에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 은 온데간데 없다.

당시 한국 정부측은 한일합의 결정에 대한 평가는 일단 차치하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초대하자는 제안에 대해 일본 정부는 거부했다는 사실을

<지워지지 않는, 기억> 을 통해 처음 접했다.

시간이 갈수록 자연스럽게 위안부 생존자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그렇게 역사에서 피해자들의 존재를 말살하려는 일본의 꼼수가 엿보여

분하고 참담하기 그지없다.

2015년 당시 한일간 외교부 장관이 한일합의를 하면서

사과의 의미로 일본은 한국에게 10억엔이라는 자금을 출자했다.

당시 46명의 생존자 중에서 34명이 1억원씩 받았고,

유가족에게는 2천만원씩 지급되었다.

혹자는 돈을 받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그 유가족들에게

억울하거나 자존심 상하지 않냐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피해자들의 신발을 신고 하루만 살아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위안소에서 매일 20명의 건장한 군인들을 받으며 강간을 당했던 피해자는

고향에 돌아와서도 순결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한없이 괴로웠을 것이 뻔하다.

위안부였던걸 공표할 수도 없는 성차별적 국가의 현실 속에서

먹고 살기가 상상할수도 없이 힘들었을 것을 생각하면

일본이 받은 그 돈을 받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해서는 안 된다.

이해하고 보듬어주며 옆에 서서 한 목소리를 내줘야 한다!

개개인의 동정이나 연민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말한다면

물론 이것만으로는 어떤 해결책도 볼 수 없을 거란걸 안다.

국가간의 공식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물론 힘쓰는 일도 계속하면서 동시에

하루하루를 고통스런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곁에 있어줄 사람들이

그래도 조금씩은 늘어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는 이렇게 그들의 목소리를 글로 남긴 사람들의 책을 읽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중이고.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들이 더 많이 담겨 있지만

당시 강간의 가해자 집단에 속해 있는 병사의 증언은

비교할수도 없게 노골적이고도 참혹하게 다가왔다.

이 말은 피해자들이 아니라 당시 병사였던 일본의 만화가가 남긴 것이다.

"위안소는 지옥이었다."

이런 지옥은 1930년대에 중국에 처음 위안소라는 이름으로 설치되기 시작해서

1941년 태평양전쟁이 시작되고 일본의 점령지마다 위안소를 설치하기에 이른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에서 여성들을 강제동원한 역사는 비단 한국만은 아니다.

일본은 주로 직업여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 간 것이었다 하고

그 외의 국가들에서 온 피해자들과 대우부터 달랐다고 전한다.

중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등 7개 지역에 걸쳐

자기 의사로 간 매춘부 취급 받으며 속아서 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대만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만난 저자의 이야기 속에도

한국의 피해자들이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진심어린 사죄를 받아 깊은 상처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처는 절대로 스스로 치유할 수 없는 일이다.

분명히 책임져야 할 대상이 있고 그들이 이 매듭을 풀어야 한다.

정치는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에서 빛을 발한다.

정치가 휴머니즘을 상실할 때 변질되는 것이다.


왜곡되어져서 앞이 똑바로 보이지 않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과거의 무거운 역사를 떠안고 살아가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가혹하고 지옥같았던 시간과 해방 후에도 겪었을 차별과 편견의 나날들을

상상하는 것조차 버거운 일이었다.

일본인 PD의 취재를 통해 일본의 시각을 접할 수 있어서 유의미한 시간이기도 했다.

피해 당사자들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이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다음 세대에 진실을 전하는 것이다.

위안부 추모비나 소녀상의 참된 의미는

시위가 아니라 바로 이 메시지인 것이다.

진실이 기억되고 전해지는 것이 두려워 가해자들은

그 상징물을 끊임없이 박해하고 없애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국가의 지배욕이 나약한 개인을 파멸시키는 이 아픈 역사를 보면서

온전히 다음 세대에 전달될 수 있도록,

지워지지 않도록 기록해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소명과도 같다.

누구나 선택권 없이 세상에 던져지고,

살아가야 하고, 때로는 힘겹게 살아내야 하겠지만

누구의 삶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개인의 잘못이 아니기에 사회가 힘을 보태줘야 한다.

인류애는 여전히 우리 주변에 살아있다고 믿는다.

현재 진행형의 위안부 문제를 균형잡힌 시각으로 접할 수 있어

주변에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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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 - 경계인이 바라본 반세기
도널드 리치 지음, 박경환.윤영수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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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매우 공교로운 만남이다.

일본에 대한 사적인 흥미가 거의 없는 마당에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 을 만나게 된 것에 대해서.

다양한 장르의 책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으로

꾸준히 탐독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 사실 일본발 책이 설 자리는 없었다.

물론 이 에세이는 미국인이라는 이방인이 반세기동안 바라본

일본 문화의 단면들을 모은 책이지만

그래도 일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큰 기대 없이 책을 펼쳐 읽어 가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에 담긴 문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본을 이해하는데 고전과도 같은 <국화와 칼> 보다도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 을 읽고 나면 더 일본에 대한 흥미로운 시각을 갖게 될 것이라고.

글항아리 서포터즈 2기로서 받은 책인데

자신있게 소개한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네.^^

별다른 기대감이 없던 내게 이웃나라 일본에 대해서 알려고 들지 않았던

나의 반지성주의적 태도에 반전을 가져다준

의미있는 일본 문화 에세이가 되었다.

 

도널드 리치가 20대 초반인 1947년에 연합군 사령부 군무원 소속으로

일본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경계인으로서의 인연은 시작된다.

중간에 미국에서 일이 생겨 가 있던 몇 년을 제외하고는

거의 60년간 일본에서 살면서 환대받고 또 배제되었던

이방인으로 살다가 88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 은 1960년대부터 50여 년에 걸쳐

다양한 일본 문화에 대해 도널드 리치의 관점으로 쓴 글을 시대순으로 19편 추렸고,

마지막 20번째 글은 "일본 미학 소고" 전체를 완역한 것이다.

 

도널드 리치의 일본 문화에 대한 시각의 바탕에는

그의 고향 미국 오하이오주의 작은 도시 리마가 깔려 있다.

답답하고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청년에게

일본이라는 섬나라는 상당히 이질적인 문화로 다가왔으며 해방감마저 느끼게 했다.

외국인이어서 예외 취급을 받는 일이 초반에는 일본 내 엄격한 규칙에 대한 유연함과

서양인에 대한 경외감이라고 생각했지만 도널드 리치는 살면서 깨닫게 된다.

경계가 분명한 일본인들이 사실은 이방인을 배제하는 것이고

같은 영역에 끼워주지 않는 것임을.

그렇게 저자는 일본 문화 속 그들만의 '패턴' 을 발견하고 익숙해지기에 이른다.

그가 찾아낸 패턴을 '일본 미학' 이라는 우아한 이름으로

특히 영화 평론가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간다.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 속에는 일본 영화에 대한 이방인의 시각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근대 이전과 이후의 일본, 일본의 근간을 이루는 전통,

내용만큼이나 형식을 중요시하는 일본의 형태, 표지판과 문자,

일본의 패션과 이미지 산업, 일본의 성과 자동차 문화,

영화 속 일본 여성과 열차, 그리고 파친코에 대하여.

관능적 쾌락을 추구하면서도 우아함과 과도한 격식에서 자유롭지 않은 일본의

복잡다단한 문화들을 담았는데 그것이 일본 내부자가 아닌

미국 이방인의 시각이라는 것이 흥미로운 것이다.

일본과 서양의 관점 차이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데

저자의 논조가 균형감을 잃지 않은 채 끝까지 힘있게 이어진다.

가령, 드러난 현실이 전부라고 보는 일본과

숨겨진 현실이 존재한다는 서양 영화에서의 차이도 그렇고

사회적 수치심에 더 민감한 일본과

개인적 죄책감이 더 고통스러운 서양인들의 특징도 그렇고.

특히 외국어가 새겨진 옷을 입는 행위에 있어서는

유행을 선도하며 진보적이라는 과시에 대한 욕망이 일본에 깔려 있다면

미국의 패션에서는 문자에도 역설적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는

해석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이 부분은 한국 역시 일본과 비슷한 행동양식을 취하는 것도 같고.

10세기 작품 <겐지 이야기> 는 몇 년 전 어떤 강좌에서

일본 문화의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며 소개받은 적이 있어 기억이 난다.

일본 미학의 바탕에 깔려 있는 단순함, 세련됨, 우아함, 절제됨, 품위,

풍류, 예술적 안목들이 이 작품 안에 녹아 있고

그래서 일본은 여전히 이 작품을 의미있게 여긴다.

미국의 이방인에게서 일본 문화의 가치를 지닌 작품 소개를 접하는 일이

어찌 보면 참 신기한데 희한하게 쉽게 이해가 된다.

이방인과 이방인은 통하는 것인가.^^

애플TV의 8부작 드라마 <파친코> 의 흥행은 이미 세계적인 것이 되었다.

국내에 개정판 파친코 1권과 2권 출간에 대한 관심과 열기도 뜨겁다.

드라마 팬들이 흥미로워 할만한 작품 분석에 대한 글은 아니지만

드라마를 보지 않은 나도 재밌게 읽은 내용은 1980년과 1986년에 쓰여진 에세이이다.

당시 파친코를 찾는 사람들의 진정한 목적을

도널드 리치의 시각으로 분석한 지점에 설득력이 있다.

전쟁후 생겨난 이 게임은 패전의 폐허가 복구되기도 전에 생겨난 것이었다.

당시 일본은 저렴한 가격에 유흥을 즐길 수 있다고 홍보했고

낙이라고는 없던 때에 단순한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였다.

정서적 확신이 없던 시기에 파친코가 일본인들에게는

제국에 대한 상실감을 대체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저 술집에 가는 것처럼 중독성을 구하러,

잠시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걱정없이 무언가에 몰두하는 쾌락을 위해 파친코에 가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망각의 효용성을 여실히 보여준 파친코는

삶으로부터 자기를 소멸시키는 임시 처방이라는 한계를 드러낸다.

드라마 속 파친코도 혹시 이러한 상징성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도널드 리치의 파친코에 대한 해석을 접하고 보니

드라마가 갑자기 너무나 보고 싶어진다.^^

도널드 리치는 이 일본 문화 에세이 곳곳에

자연의 패턴에 집중하고 자연을 손을 대고 꾸미는

일본의 특징에 주목하기도 한다.

그 경향은 일곱번 째 에세이 일본의 정원에 관한 글에 진하게 녹아 있다.

 

 

정원은 야생 상태의 있는 그대로가 아니다.

야생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은 낭만주의자들뿐인데,

일본인들은 낭만주의자가 되기에는 너무 실용적인 사람들이다.

또한 정원은 기하학적인 추상화도 아니다.

그런 것은 고전주의자들이나 매력을 느낄 만한 것으로,

일본인들은 이성적인 고전주의자가 되기에는

너무도 감정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정원은 자연을 재창조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란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

 

뛰어난 통찰력으로 일본을 관찰했던 이른바 일본학자들이 많지만

그 누구보다 일본에서 거주한 경계인으로서

일본의 겉과 속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도널드 리치가 아닌가 싶다.

서양과는 다분히 차이점을 드러내는 일본의 사회 문화적 기질, 기준, 심리에

역사와 사회적 맥락을 끌어와 풀어놓은 글들이 어렵지 않았고

심지어 가독성도 좋았다.

동양인이라는 접점이 엿보이기도 했고

한편 저마다의 문화권이 존재하는 것에서 오는

그들만의 이해체계도 접할 수 있었다.

다름을 인식하고 존중하려는 마음은 알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일본인들의 사고방식과 태도를 어떤 하나의 기준에 의해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다.

도널드 리치가 바라본 솔직담백한 일본인들의 이야기 속에는 깊은 관심과 이해가 담겨 있다.

자신의 인생 절반 이상을 일본에서 보낸 미국인이 쓴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

일본인보다 더 일본을 잘 알고 느끼는 이방인의 시선에

내가 왜 더 흐뭇해지는지 모르겠다.

나에 대해 이다지도 깊고 내밀하게 알고 있는 사람에게

그 누가 애정이 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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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조건 - 융 심리학으로 보는 친밀한 관계의 심층심리
제임스 홀리스 지음, 김현철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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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을 통해 궁극적으로 알고자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

융 학파 정신분석가인 제임스 홀리스는 <사랑의 조건> 에서

애정관계,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심리를 심층적이고 다각적으로 보여준다.

개인은 관계 안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살아가기 어렵듯이

모든 삶은 관계이기도 하다.

개인을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이

'관계'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관계에 과도하게 의존함으로써 겪게 되는

현대인들의 심리적 고통이 적지 않다.

1998년에 출간된 <사랑의 조건> 이 국내에서는 2022년 더퀘스트를 통해 처음 소개되었지만

저자 제임스 홀리스의 책이 처음 소개된 것은 아니다.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의 저자이기도 하다.



삶은 그 자체로 고통이라는 문장을 끌어 안고 살면서도

친밀하다 믿었던 '관계'로 인해 힘겨운 시간을 지나갈 때면

나왔던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은 심정마저 든다.

우리는 살아갈 뿐이고 때때로 안식처 찾는 일이 간절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융 심리학이 권하는 팁을 떠올려 본다.

"나를 둘러싼 현실을 의식적으로 깨닫고

내가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살 것"





플라톤의 <향연> 에서 아리스토파네스가

한 가지 흥미로운 말을 한다.

인간은 본디 완전한 형태였으나 신의 노여움을 사서

반으로 갈라졌으며,

그 뒤로 잃어버린 자신의 반쪽을 미친 듯이

찾아다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희망이 정확히 여기에 담겨 있지 않은가?





세상에 정답과 해답들은 널려 있고 알겠는데

정확히 인식하고 행동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여러번 하면서 읽었다.^^;

'우리가 말하는 희망' 이란 갈라져서 잃어버린 나의 반쪽이

수많은 타자들 중에서 있어서

친밀한 관계를 맺은 타자들 중에서 무의식적으로 투사를 하며

타자를 향한 갈망을 드러내는 것일까?

나의 존재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 반쪽을 찾아 헤매는 과정이

때로는 내게 고통을 안겨주는 경험으로 다가올 때가 너무 많다.

마음이 갈망하는 대상에 자신을 투사하여

동일시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긴 하지만

내가 찾는 그 타자가 사실은 내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은 계속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한다.

타자가 나와 다른 존재임을 발견하는 일은

타인으로 인식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때서야 비로소 자기Self가 생각의 중심에 설 수 있다.

나 자신으로 서 있음을 자각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사심없는 사랑을 할 수 있다.



<사랑의 조건> 을 통해 융 심리학에 점점 스며들게 되면서

타자와의 흐릿한 경계로 인한 고통을

스스로 조절하고 인식할 수 있음에 이전에 없던 자신감도 생기는 듯 하다.

타자와의 관계 유지가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ㅠㅠ

그는 곧 내가 아니기 때문에.

타자와의 거리가 가깝다 싶다가도 한 없이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해해 보고자 노력은 해보려고 한다.

한계를 알고 접근하면 두려움도 그만큼 줄어들거라 믿는다.

내가 하는 행동이 곧 나라는 책임감,

자신에게 책임을 지는 일이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저자의 이야기가 인상깊게 남는다.




타인과 이어지지 않은 사람은 전일성을 가질 수 없다.

전일성은 영혼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영혼은 '당신' 이라는 대상이 지닌 다른 한쪽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일성은 '나' 와 '당신'의 결합이며,

이 둘은 초월적 결합을 이루는 각 부분이다.




융이 남겼던 말을 보면서

타자가 갖는 신성한 의미를 깨달을 때

어쩌면 갈라져 잃어버린 그 반쪽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과 육체, 남성과 여성, 인간과 신처럼

반대되는 것이 서로 얼마나 다르든 간에

하나의 현실로 경험할 때 전일성을 경험하는 일이라고.

반대되는 것을 존중하면서 연결되었음을 경험하는 초인간적인 순간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게 될지 알 수가 없다.

살면서 한 번은 경험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로서도 난해하지만

타인과 친밀한 교감을 주고 받는 경험들이 쌓여 간다면,

어쩌면 무의식의 원형에 지배받고만 살게 되지는 않겠다는 것이

큰 위안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심리학이라는 주제 자체가 워낙 녹록지 않지만

그 풀이가 쉽게 들어오지 않아 몇 번을 돌아가서 읽고 또 읽었다.

인간의 감정과 본성의 표면 아래에 숨어 있는

심층 심리를 융 심리학으로 풀어준 <사랑의 조건>.

융 심리학에 대한 나의 지적 디폴트 값이 깊지 않다 보니 이해하기가 어렵긴 했지만

내가 수용할 수 있는 지점들 또한 만날 수 있어서 이로운 독서였던 건 분명하다.

독자마다 겪게 되는 심리적 문제들이 제각각이어서

와닿게 되는 책 속의 문장들도 다양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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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버린 배 - 지구 끝의 남극 탐험 걸작 논픽션 24
줄리언 생크턴 지음, 최지수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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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항아리 서포터즈 2기로서 두 번째로 만난 <미쳐버린 배>

글항아리 걸작논픽션 신간이다.

실제로 1897년 벨지카호의 남극여정을 기반으로 한 논픽션이 맞긴 한데

프롤로그에서 역사 속 핵심 인물들의 현재 시점을 건드려주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구성이 마치 영화같은 픽션의 분위기도 풍긴다.

아주 옛날에 읽었던 자연사 도둑이야기 <깃털 도둑> 의 느낌도 살짝 감도는

소설같은 실화!!!

초기 극지 탐험에 꽂혔던 역사 속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과학기술의 역사이기도 하다.

2015년 저자는 잡지사에 앉아 있다가 우연히

벨지카호의 남극 모험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

홀린 듯이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 이야기를 수집해 나갔다고 한다.

사실을 추적하고 그를 바탕으로 이 스토리를 풀어가긴 했지만

진실을 밝힐 수 없는 역사적 한계에 따른 지점들은

실제와 허구를 저자의 선에서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미쳐버린 배> 의 프롤로그는 이렇게 시작한다.

교도소에 수감중인 의사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르웨이인 탐험가가 면회를 온 것인데

국민의 관심이 이 곳에 모여진 이유는 오랫동안 국민을 속였던 사기꾼을

명성이 높은 탐험가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왜 면회를 갔을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것이었다.

 

이 둘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을 이렇게 끄집어내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니

안 읽어볼 수가 없잖아....ㅋㅋㅋ

1870년에 쥘 베른의 <해저 2만리> 가 출간되었다는 것은

벨지카호가 1897년에 떠났던 극지 탐험의 여정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소설 속에 나온 노틸러스호가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었던

끝없는 얼음 바다와 빙하로 묘사된 장면들은

세상사람들로 하여금 발견되지도 않고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가상의 대륙, 남극에 대해서 환상과 신비감을 품게 하기에 충분했다.

<미쳐버린 배> 에 등장하는 벨지카호는

1830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젊은 나라 벨기에가

대외적인 명분으로는 과학적 탐사에 대한 기대감이었지만

속내는 신생 국가 벨기에에 대한 애국심에 의해 탄생한 것이었다.

19세기 유럽은 영토 식민지화로 인해 민족주의 바람이 불어

자연스럽게 탐험 열풍으로 이어진 시기였다.

벨기에 정부는 남극 항해의 가치를 알리면서

자금 조달을 위해 과학적 탐험이라는 명분을 내세웠고 애국심에 호소했다.

벨기에에 영광을 안겨줄 원정대 벨지카호는

미지의 해안 탐사를 목표로 식물, 동물, 지질학 데이터 수집을 위해

1897년 8월 23일 남극 대륙으로 출항한다.

과학적 탐사라는 임무와 남극 탐사의 수익성을 기대한 여정이었지만

벨지카호 선원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고 잊을 수도 없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영웅적인 업적으로 간주되었던 벨지카호의 극지 탐사는

인간 마음 속 깊은 곳의 욕망을 충족하는 일이었고

실행하는 사람과 지켜보는 사람 모두의 관심을 받는 일이었지만

결정적으로 벨기에의 영광에 대한 속내와 기대치는 다 달랐다.

벨기에인으로만 구성하려던 처음 계획과 달리

벨기에인 13명, 외국인 10명, 고양이 두 마리가 벨지카호에 올랐고

극지로 향하는 벨지카호의 시간들은

언어와 문화가 다른 선원들의 갈등과 대립으로 인해

인간 본성들과의 사투와도 같았다.

이 논픽션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모두 저자가 찾아낸

당시 벨지카호 선원들의 탐험 일지, 선실에서 주고 받은 서신과 비망록,

회고록, 당시 벨기에 신문 기사, 역사가의 자료들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아드리앵 드 제를라슈의 대담함과 로알 아문센의 불굴의 용기,

프레데릭 쿡의 상황대처능력이 있어 벨지카호가 고향으로 돌아올 수는 있었지만

미사여구를 넣어 기록했던 의사 쿡의 글 같은 경우는

자의적인 해석을 빼고 진실에 접근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고도 전한다.

그 와중에도 벨지카호의 남극 여정 중에 접했던 에피소드들은 여전히 흥미롭다.

남극 펭귄 무리와의 만남, 예상치 못했던 얼음 속 항해,

자비없는 땅인 남극에 대한 생명력,

황량하고 텅 빈 대륙에서 느끼는 인간의 모든 감정들,

영양불균형으로 인한 괴혈병과의 사투, 동료들의 죽음 등등

평범한 삶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극한 상황들이 흥미롭고 스릴 넘친다.

 

빅토르 위고는 우울함에 대해서

"햇빛이 없는 곳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나타나는 깊고 어두운 고뇌 상태" 라고 정의했다.

벨지카호 선원들은 거의 1년 가까운 시간동안 죄수처럼

배를 묶어놓았던 해빙을 뚫고 이동하기 전까지

절망감, 우울함, 현기증, 두통, 불면증, 고립감 등등

온갖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들을 경험했고

실제로 "우리는 지금 흰 감옥(정신병원)에 있다" 고 일지 속에 토로하기도 했다.

극지에 중간은 없었다.

극과 극, 아름다움과 위험만 존재했을 뿐.

위험한 여정인 걸 알면서도 인간은 다가올 영광을 기대하며 길을 나선다.

"각자의 마음 속 어딘가로 향해가는 목표의식은

영원히 정복해낼 수 없는 것."

 

희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던 벨지카호는 다행히도

얼음 속에 갇혀 지내는 일을 끝낼 수 있었고

폭풍을 지나 마침내 전쟁같았던 여정은 고향에 돌아오면서 끝나는가 싶었다.

신선한 야채와 포유류 고기로 배를 채우는 것이 선원들의 소원이었고

남극의 겨울에서 살아 돌아온 벨지카호는 돌아와도

괴혈병 증세로 인해 허약해지고 두통과 신경성 문제가 남아 있었다.

영광스런 귀환인 듯 하지만 어두운 그늘은 여전했다.

거기에 벨지카호 여정의 후반부를 책임졌던 의사 쿡이 정말

북극을 정복했는지 입증할 방법이 없어 회의론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가 누렸던 영광은 나흘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그렇다면 더더욱 쿡이 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지가 궁금해질 것이다.

쿡은 남극여정을 통해 잠시 얻었던 영광을 석유로 재건하려 했지만

사기혐의로 기소되고 오랫동안 미국 국민을 속여온 죄로

14년 9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남극해빙으로부터 서사적인 탈출을 이뤄냈지만

상상력만 풍부한 인간이라는 비난만 받게 된 의사 프레데릭 쿡이다.

그에게 노르웨이인 탐험가가 면회를 간 것이다.

바로 지구의 두 극점을 모두 최초로 정복한 사람으로 유명한 로알 아문센.

쿡 의사를 면회간 탐험가는 바로 로알 아문센이었다.

 

벨지카호 남극 여정을 함께 했던 두 사람.

모두가 쿡을 의심하지만 그래도 아문센은

남극의 겨울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쿡 덕분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벨지카호의 귀환 후 쿡과 아문센은 다른 길을 걷게 된 이야기가 또 제법 흥미롭다.

<미쳐버린 배> 2부가 시작되는 느낌.^^

아문센은 탐험가로서의 욕망을 이어간다.

노르웨이로 돌아오자마자 벨지카호 원정에서 배운 쿡의 아이디어를 적용하여

자신의 원정대를 계획하고 마침내 그가 이끄는 프람호는

1910년 8월 9일 노르웨이에서 남쪽으로 떠났다.

당시 남극 탐험의 라이벌이었던 로버트 팰컨 스콧과 달리

로알 아문센은 원주민(에스키모인) 방식을 채택한다.

땀과 추위에 적합하지 않았던 모피를 고집하는 유럽식이 아니라

동물의 털을 이용해 추위를 견뎠고,

선원은 소수로, 대신 썰매개 52마리를 끌고 썰매와 스키로 이동하는 방법이었다.

아문센은 개들과 지내며 정이 들긴 했지만 긴 여정을 위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가장 느린 개부터 한 마리씩 주기적으로 잡아 먹음으로써

다른 개들과 본인들의 영양을 보충해서 괴혈병에 대비했다.

고집 센 선장 스콧은 썰매개를 죽이는 건

잔인하고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조랑말로 바꿨지만 결론은 오판이었다.

남극 산지 그 추위에서 땀 배출하는 방식이 썰매개와 말은 달랐고,

말은 결국 땀을 배출하자마자 매서운 바람에 얼어붙어 죽어 나갔기 때문에

말이 짊어졌던 그 많은 짐들을 다 사람들이 이고 가야만 했던 고된 여정이었다.

마침내 아문센 탐험대는 1911년 12월 14일 남극점에 노르웨이의 깃발을 꽂는다.

아문센이 남극점에 도달할지 알리가 없던 스콧 탐험대는

1912년 1월 18일에 남극점에 도착했지만 펄럭이는 노르웨이의 국기를 발견하게 된다.

남극점까지도 힘겹게 가던 스콧 탐험대였기 때문에

다시 돌아오는 길에 남극의 매서운 추위를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결국 스콧 탐험대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남극 탐험에 대한 준비와 전략에서 아문센의 전략은 어쩌면

쿡의 아이디어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탐험가들의 도전을 보면서 인간에게 생존보다 더 강력한 명분이

지구상에 또 존재할까 싶은 생각도 든다.

살아서 다음을 도모할 수 있는 사람들의 상황과 비교할 수 없는 영역인 듯 싶다.

벨지카호 여행의 유산은 과학적 수확에

극지로의 첫 국제적 원정이라는 의미는 분명히 있다.

프레데릭 쿡이 의사로서 생리적, 심리적 피해를 기록으로 남기며

극지성 빈혈증을 보고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초기 극지 탐험의 진실에는 역사가 그렇듯

실제와 허구가 모두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구 끝의 남극 탐험" 에 관한 이야기에서 스릴러다운 면모도 있고

실화를 기반으로 한 스토리인데 심리 묘사가 더해져 픽션같은 착각도 들게 한다.

글항아리의 걸작논픽션이 <미쳐버린 배> 외에도 어떤 책들이 더 있는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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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역사 - 시대를 품고 삶을 읊다
존 캐리 지음, 김선형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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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학작품 <길가메시 서사시> 부터 시작해서

다양성의 무한대를 경험 중인 20세기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에 이르기까지

시와 시인들의 삶에 관한 뒷이야기들을

연대기순으로 풀어 놓은 책 <시의 역사> 를 만났다.


소소의책 역사 교양서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시리즈 중에서는 처음 만나보는 책.

<철학의 역사>, <세계 종교의 역사> 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나의 호기심은 늘 인간에게로 향하고 있고

철학과 종교가 바로 인간의 본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의 역사> 에서도 인간이 속해 있는 사회의 영향을 받아

시대마다 가치를 두는 지점과 그 반작용들이 늘 존재함을 읽을 수 있었다.

524페이지의 벽돌책 수준인 만큼

서양 시의 역사는 이 한 권에 모조리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옥스포드대 명예교수이며 영문학의 거장인 존 캐리가

시대 속에 담긴 가장 위대한 시와 시인들의 삶을 총망라했다.

시의 구절이 내포하는 의미와

시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가치 짚어주기 또한 놓치지 않았다.

시를 읽지 않은 그대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와 시인들을

한 권으로 소장하고 틈틈히 기억해 두고 싶다면

<시의 역사> 만한 책도 없지 싶다.

목차에서 접한 시인의 이름이 혹여 반갑다면,

당신은 시와 친해질 준비가 된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길가메시 서사시부터

고대 그리스, 로마 제국,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러시아, 미국, 아일랜드, 스페인, 칠레, 멕시코까지

문학사적으로 시의 역사 속에 넣어도 손색없을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좋지만

서양, 더 들어가서는 영국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 아쉽다.

시 장르에 있어서 영국이 전 세계에 미친 영향력이 워낙 크기 때문이리라.

첫 번째로 소개하는 위대한 시 <길가메시 서사시>

전 세계의 신화와 민담에서 공통된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시아>와도 평행관계가 존재한다고 말하면서

신들이 인간 영웅들을 총애하거나 박해했고

지하 세계로 내려갔다가 산 자들의 세계로 돌아오는 등

서양의 시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상당 수 문학 작품들에게

모티프가 되어줬다는 분석에 수긍하며 읽어 나갔다.

특히 폭정을 일삼으며 오만함을 상징하는 길가메시가

결국은 죽음 앞에서 한낱 인간일 뿐이라는 성찰,

모두가 평등하다는 깨달음에 이르며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설정은

스케일이 큰 작품들을 보면 꼭 등장하는 흐름이 아닌가.

리듬과 운율, 각운이 보여주는 시의 대표성이

길가메시에서도 엿보인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지점이 있다.

시에서 소리와 의미, 어떤 것 하나에 방점을 찍는 일은

지금까지도 논쟁 거리로 남아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 는 구술이나 노래로 불려진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시를 판단하는 기준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라는 것.

옳고 그름은 없고 의견만 있을 뿐이라는 저자의 마지막 구절에서

시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한 듯 싶다.

역시 ..... 시에는 정답이 없는 것이었다.



단테가 <신곡> 에서 스승으로 모시며 함께 여정을 떠났던 베르길리우스는

고대 로마의 시인으로 <아이네이스> 를 썼다.

기독교 시대가 시작되기 전에 로마 역사의 시작을 보여준 이 작품과 더불어

고대 로마의 3대 시인으로

<변신 이야기> 의 오비디우스, <송가> 의 호라티우스도 만날 수 있다.

"오늘을 붙잡으라" 는 의미의 카르페 디엠이 바로 <송가>에서 나온 문구.^^



단테의 위대한 걸작 <신곡> 은 개인적으로 깊이 읽기 하고픈 작품이다.

중세 유럽의 기독교적 정신이 이 작품에 영향력을 미치긴 했지만

인간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고통과 형벌의 영원함은

그 어떤 작품보다 짙은 여운을 남긴다.

자비로운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신곡>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수도 없이 읽었다고 해서

품절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고.^^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의 위대한 극작가 셰익스피어.

알고 있어도 또 알고 싶은 시인이다.

그의 희곡이 워낙 유명하지만 여기에서는 소네트를 좀 더 들여다보게 한다.

소네트의 내용이 셰익스피어의 실제 삶을 반영했는지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다른 등장인물에게 시인이 말을 걸고 비난하며 극적인 분위기로 흘러간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무미건조함을 이끌어 가는 특징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은 결국

자신이 믿고 싶은 바를 말해주는 시를 만났을 때

깊이 빠져들기 마련인가 보다.

추상명사들이 행위의 주체가 되어

진짜 행동을 하게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부분도.

<리어왕><맥베스> 의 일부가 인용되면서

존 캐리의 해석이 더해져 작품의 묘미를 알아가는 것이 즐겁다.


지금은 쓸 수 없는 언어들이 셰익스피어 시대에 있었지만

한편 셰익스피어가 새로 만들어서 지금까지 쓰여지는 언어들이 무려

1700개에서 3000개에 이른다고 한다.

셰익스피어를 다루게 되면 문학과 언어에 미친 영향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뺄 수가 없을 정도로 지금까지 살아있는 고전으로 남아 있다.





어떤 의미에서 당대의 위대한 시인으로 시간이 흘러도

추앙받는지 존 캐리는 곳곳에서 선명하게 밝히고 있다.

영국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미국에도 최초의 시인들이 탄생하게 되었고

그렇게 만나게 된 시인으로 에밀리 디킨슨이 눈에 들어왔다.

휘트먼과 함께 과거의 낡은 틀을 벗어던진 디킨슨은

음울하고 아이러니한 어투로 죽음을 상상한다.

그 죽음이 자신의 것인지, 다른 사람의 것인지 분간할 수는 없지만

상상 속 죽음이 삶의 일과임을 어느 순간 깨닫게 만드는 것에서

그녀의 시를 읽는 독자는 충격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디킨슨에게 몰입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 너무나 좋아하는 오스카 와일드!!!

수 많은 명언과 시대적 이슈를 낳은 오스카 와일드는

당대의 편견에 맞서는 반항아이면서 동시에

고통 속에 한없이 나약한 인간이었다.

"사람은 각자 사랑하는 것을 죽인다."

이 한 문장만으로 보통 사람들은 가 닿기 어려운 자기 자신의 심연을

다녀갔던 예술가가 바로 오스카 와일드이다.





40개의 챕터로 시의 역사를 총망라하고 있는 <시의 역사> 를 만나서

내가 갖고 있던 시에 관한 지식의 구멍들을 하나 둘 채워본 시간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이 책이 품고 있는 방대한 양의 내용들을

나의 역량으로 담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시의 역사에 관한 한 백과사전과도 같은 스케일....^^

시와 시인들의 삶을 통해 그 시대와 사조,

문학적 특징들을 두루두루 접해볼 수 있어서

수많은 시인들 중에서 유독 관심이 가는 시인을 만나게 된다면

이 책을 읽은 이유로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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