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지 않는, 기억 - 일본인 PD가 본 위안부 문제
나카지마 가제 지음, 최세경 감수 / 3월의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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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해방전후사는 늘 나의 관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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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인간이 치유될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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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지 않는, 기억> ​을 출간하는 과정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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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분의 위안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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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나카지마 가제는 일본 민영방송국 TBS의 보도 프로그램 PD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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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 한국을 취재하면서 섭렵한 기록들중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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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와 한일관계에 집중하여 직접 한국어로 쓴 책이다.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성폭력 피해라는 보편적인 인권, 여성의 인권 문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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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을 저야할 당사자인 일본 정부는 이를 정치적으로 접근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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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책임을 왜소화하거나 심지어는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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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핵심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도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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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간 입장과 해석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평행선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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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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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PD의 균형잡힌 시각을 통해 일본이 강제동원이나 성노예 명칭의 삭제에 집착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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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의 삶과 기억을 지우려는 매우 부적절한 움직임에 대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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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국가들도 지지하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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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국제사회에서 인권 문제에 있어서 고립되어 가고 있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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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회피에 대한 의지는 여전히 강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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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과 주장은 참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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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를 '피해자 중심' 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나 전향적 태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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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일본 총리 그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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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소녀가 가족에게 보탬이 되겠다고 돈을 벌 수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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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의 꼬임에 넘어가 의심없이 믿고 따라간 결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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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의사로 간 매춘부였다는 모함으로 둔갑하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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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신체적으로도 성적 학대와 폭력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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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시대를 사는 그 누가 침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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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린 소녀가 자신의 딸이라고 한 번만 가정해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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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끈질기게 인권 침해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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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국가로서의 영광을 여전히 꿈꾸고 있는 듯한 현재 일본의 윗세대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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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한 존재로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존엄성을 들여다보고 각성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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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은폐하고 호도해온 역사가 적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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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스템에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닌지 가엾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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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말씀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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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개개인의 응원과 방문은 언제나 감사한 일이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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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의 공식적이고도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을 촉구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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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윗 세대들이 듣지 못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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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라도 귀기울여주길 바랄 뿐이라는 저자의 호소가 고맙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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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에서 언론인으로서 객관적이고도 균형잡힌 시각과 목소리를 내는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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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쉽지 않음에도 국제 약속과 국민 정서 양쪽 모두를 짚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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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지마 가제 PD의 기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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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토록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억하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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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시점에서 한국 정부가 인정한 위안부는 23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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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생존자는 47명이었고 2022년 현재는 11명뿐인 절박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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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곳곳에서 "진실은 기억으로, 정의는 연대로" 를 외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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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적으로 행동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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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이 간절한 목소리의 울림은 미미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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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측의 강제 연행이나 증언을 직접 증명하는 공적 문서가 나오지 않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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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측의 증언과 기록들은 수도 없이 많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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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연행을 확인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위안부 문제를 회피하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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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돈으로써 이 모든 문제를 퉁치려는 행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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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더욱 인간적인 모욕으로 다가와 상처가 가시기는 커녕 덧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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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불가역적' 인 한일합의 후 2016년 화해*치유재단 설립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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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바뀌고 2018년 해산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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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간 대화 속에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 은 온데간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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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한국 정부측은 한일합의 결정에 대한 평가는 일단 차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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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초대하자는 제안에 대해 일본 정부는 거부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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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지 않는, 기억> 을 통해 처음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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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갈수록 자연스럽게 위안부 생존자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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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역사에서 피해자들의 존재를 말살하려는 일본의 꼼수가 엿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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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하고 참담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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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당시 한일간 외교부 장관이 한일합의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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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의미로 일본은 한국에게 10억엔이라는 자금을 출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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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46명의 생존자 중에서 34명이 1억원씩 받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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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에게는 2천만원씩 지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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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돈을 받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그 유가족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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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거나 자존심 상하지 않냐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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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의 신발을 신고 하루만 살아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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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소에서 매일 20명의 건장한 군인들을 받으며 강간을 당했던 피해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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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돌아와서도 순결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한없이 괴로웠을 것이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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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였던걸 공표할 수도 없는 성차별적 국가의 현실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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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가 상상할수도 없이 힘들었을 것을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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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받은 그 돈을 받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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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고 보듬어주며 옆에 서서 한 목소리를 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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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개인의 동정이나 연민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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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것만으로는 어떤 해결책도 볼 수 없을 거란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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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간의 공식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물론 힘쓰는 일도 계속하면서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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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를 고통스런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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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곁에 있어줄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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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조금씩은 늘어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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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그들의 목소리를 글로 남긴 사람들의 책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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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중이고.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들이 더 많이 담겨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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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강간의 가해자 집단에 속해 있는 병사의 증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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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할수도 없게 노골적이고도 참혹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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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피해자들이 아니라 당시 병사였던 일본의 만화가가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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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소는 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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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지옥은 1930년대에 중국에 처음 위안소라는 이름으로 설치되기 시작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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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태평양전쟁이 시작되고 일본의 점령지마다 위안소를 설치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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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의 식민지에서 여성들을 강제동원한 역사는 비단 한국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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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주로 직업여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 간 것이었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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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의 국가들에서 온 피해자들과 대우부터 달랐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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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등 7개 지역에 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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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의사로 간 매춘부 취급 받으며 속아서 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대만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만난 저자의 이야기 속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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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피해자들이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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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어린 사죄를 받아 깊은 상처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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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처는 절대로 스스로 치유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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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책임져야 할 대상이 있고 그들이 이 매듭을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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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에서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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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휴머니즘을 상실할 때 변질되는 것이다.


왜곡되어져서 앞이 똑바로 보이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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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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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무거운 역사를 떠안고 살아가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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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하고 지옥같았던 시간과 해방 후에도 겪었을 차별과 편견의 나날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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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는 것조차 버거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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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PD의 취재를 통해 일본의 시각을 접할 수 있어서 유의미한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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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당사자들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이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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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에 진실을 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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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추모비나 소녀상의 참된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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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가 아니라 바로 이 메시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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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기억되고 전해지는 것이 두려워 가해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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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징물을 끊임없이 박해하고 없애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국가의 지배욕이 나약한 개인을 파멸시키는 이 아픈 역사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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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다음 세대에 전달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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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지 않도록 기록해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소명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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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선택권 없이 세상에 던져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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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야 하고, 때로는 힘겹게 살아내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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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삶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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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잘못이 아니기에 사회가 힘을 보태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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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애는 여전히 우리 주변에 살아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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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행형의 위안부 문제를 균형잡힌 시각으로 접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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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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