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의 역사 - 시대를 품고 삶을 읊다
존 캐리 지음, 김선형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7월
평점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학작품 <길가메시 서사시> 부터 시작해서
다양성의 무한대를 경험 중인 20세기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에 이르기까지
시와 시인들의 삶에 관한 뒷이야기들을
연대기순으로 풀어 놓은 책 <시의 역사> 를 만났다.
소소의책 역사 교양서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시리즈 중에서는 처음 만나보는 책.
<철학의 역사>, <세계 종교의 역사> 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나의 호기심은 늘 인간에게로 향하고 있고
철학과 종교가 바로 인간의 본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의 역사> 에서도 인간이 속해 있는 사회의 영향을 받아
시대마다 가치를 두는 지점과 그 반작용들이 늘 존재함을 읽을 수 있었다.
524페이지의 벽돌책 수준인 만큼
서양 시의 역사는 이 한 권에 모조리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옥스포드대 명예교수이며 영문학의 거장인 존 캐리가
시대 속에 담긴 가장 위대한 시와 시인들의 삶을 총망라했다.
시의 구절이 내포하는 의미와
시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가치 짚어주기 또한 놓치지 않았다.
시를 읽지 않은 그대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와 시인들을
한 권으로 소장하고 틈틈히 기억해 두고 싶다면
<시의 역사> 만한 책도 없지 싶다.
목차에서 접한 시인의 이름이 혹여 반갑다면,
당신은 시와 친해질 준비가 된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길가메시 서사시부터
고대 그리스, 로마 제국,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러시아, 미국, 아일랜드, 스페인, 칠레, 멕시코까지
문학사적으로 시의 역사 속에 넣어도 손색없을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좋지만
서양, 더 들어가서는 영국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 아쉽다.
시 장르에 있어서 영국이 전 세계에 미친 영향력이 워낙 크기 때문이리라.
첫 번째로 소개하는 위대한 시 <길가메시 서사시> 는
전 세계의 신화와 민담에서 공통된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시아>와도 평행관계가 존재한다고 말하면서
신들이 인간 영웅들을 총애하거나 박해했고
지하 세계로 내려갔다가 산 자들의 세계로 돌아오는 등
서양의 시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상당 수 문학 작품들에게
모티프가 되어줬다는 분석에 수긍하며 읽어 나갔다.
특히 폭정을 일삼으며 오만함을 상징하는 길가메시가
결국은 죽음 앞에서 한낱 인간일 뿐이라는 성찰,
모두가 평등하다는 깨달음에 이르며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설정은
스케일이 큰 작품들을 보면 꼭 등장하는 흐름이 아닌가.
리듬과 운율, 각운이 보여주는 시의 대표성이
길가메시에서도 엿보인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지점이 있다.
시에서 소리와 의미, 어떤 것 하나에 방점을 찍는 일은
지금까지도 논쟁 거리로 남아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 는 구술이나 노래로 불려진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시를 판단하는 기준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라는 것.
옳고 그름은 없고 의견만 있을 뿐이라는 저자의 마지막 구절에서
시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한 듯 싶다.
역시 ..... 시에는 정답이 없는 것이었다.
단테가 <신곡> 에서 스승으로 모시며 함께 여정을 떠났던 베르길리우스는
고대 로마의 시인으로 <아이네이스> 를 썼다.
기독교 시대가 시작되기 전에 로마 역사의 시작을 보여준 이 작품과 더불어
고대 로마의 3대 시인으로
<변신 이야기> 의 오비디우스, <송가> 의 호라티우스도 만날 수 있다.
"오늘을 붙잡으라" 는 의미의 카르페 디엠이 바로 <송가>에서 나온 문구.^^
단테의 위대한 걸작 <신곡> 은 개인적으로 깊이 읽기 하고픈 작품이다.
중세 유럽의 기독교적 정신이 이 작품에 영향력을 미치긴 했지만
인간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고통과 형벌의 영원함은
그 어떤 작품보다 짙은 여운을 남긴다.
자비로운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신곡> 을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수도 없이 읽었다고 해서
품절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고.^^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의 위대한 극작가 셰익스피어.
알고 있어도 또 알고 싶은 시인이다.
그의 희곡이 워낙 유명하지만 여기에서는 소네트를 좀 더 들여다보게 한다.
소네트의 내용이 셰익스피어의 실제 삶을 반영했는지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다른 등장인물에게 시인이 말을 걸고 비난하며 극적인 분위기로 흘러간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무미건조함을 이끌어 가는 특징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은 결국
자신이 믿고 싶은 바를 말해주는 시를 만났을 때
깊이 빠져들기 마련인가 보다.
추상명사들이 행위의 주체가 되어
진짜 행동을 하게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부분도.
<리어왕> 과 <맥베스> 의 일부가 인용되면서
존 캐리의 해석이 더해져 작품의 묘미를 알아가는 것이 즐겁다.
지금은 쓸 수 없는 언어들이 셰익스피어 시대에 있었지만
한편 셰익스피어가 새로 만들어서 지금까지 쓰여지는 언어들이 무려
1700개에서 3000개에 이른다고 한다.
셰익스피어를 다루게 되면 문학과 언어에 미친 영향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뺄 수가 없을 정도로 지금까지 살아있는 고전으로 남아 있다.
어떤 의미에서 당대의 위대한 시인으로 시간이 흘러도
추앙받는지 존 캐리는 곳곳에서 선명하게 밝히고 있다.
영국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미국에도 최초의 시인들이 탄생하게 되었고
그렇게 만나게 된 시인으로 에밀리 디킨슨이 눈에 들어왔다.
휘트먼과 함께 과거의 낡은 틀을 벗어던진 디킨슨은
음울하고 아이러니한 어투로 죽음을 상상한다.
그 죽음이 자신의 것인지, 다른 사람의 것인지 분간할 수는 없지만
상상 속 죽음이 삶의 일과임을 어느 순간 깨닫게 만드는 것에서
그녀의 시를 읽는 독자는 충격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디킨슨에게 몰입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 너무나 좋아하는 오스카 와일드!!!
수 많은 명언과 시대적 이슈를 낳은 오스카 와일드는
당대의 편견에 맞서는 반항아이면서 동시에
고통 속에 한없이 나약한 인간이었다.
"사람은 각자 사랑하는 것을 죽인다."
이 한 문장만으로 보통 사람들은 가 닿기 어려운 자기 자신의 심연을
다녀갔던 예술가가 바로 오스카 와일드이다.
40개의 챕터로 시의 역사를 총망라하고 있는 <시의 역사> 를 만나서
내가 갖고 있던 시에 관한 지식의 구멍들을 하나 둘 채워본 시간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이 책이 품고 있는 방대한 양의 내용들을
나의 역량으로 담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시의 역사에 관한 한 백과사전과도 같은 스케일....^^
시와 시인들의 삶을 통해 그 시대와 사조,
문학적 특징들을 두루두루 접해볼 수 있어서
수많은 시인들 중에서 유독 관심이 가는 시인을 만나게 된다면
이 책을 읽은 이유로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