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버린 배 - 지구 끝의 남극 탐험 걸작 논픽션 24
줄리언 생크턴 지음, 최지수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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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항아리 서포터즈 2기로서 두 번째로 만난 <미쳐버린 배>

글항아리 걸작논픽션 신간이다.

실제로 1897년 벨지카호의 남극여정을 기반으로 한 논픽션이 맞긴 한데

프롤로그에서 역사 속 핵심 인물들의 현재 시점을 건드려주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구성이 마치 영화같은 픽션의 분위기도 풍긴다.

아주 옛날에 읽었던 자연사 도둑이야기 <깃털 도둑> 의 느낌도 살짝 감도는

소설같은 실화!!!

초기 극지 탐험에 꽂혔던 역사 속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과학기술의 역사이기도 하다.

2015년 저자는 잡지사에 앉아 있다가 우연히

벨지카호의 남극 모험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

홀린 듯이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 이야기를 수집해 나갔다고 한다.

사실을 추적하고 그를 바탕으로 이 스토리를 풀어가긴 했지만

진실을 밝힐 수 없는 역사적 한계에 따른 지점들은

실제와 허구를 저자의 선에서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미쳐버린 배> 의 프롤로그는 이렇게 시작한다.

교도소에 수감중인 의사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르웨이인 탐험가가 면회를 온 것인데

국민의 관심이 이 곳에 모여진 이유는 오랫동안 국민을 속였던 사기꾼을

명성이 높은 탐험가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왜 면회를 갔을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것이었다.

 

이 둘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을 이렇게 끄집어내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니

안 읽어볼 수가 없잖아....ㅋㅋㅋ

1870년에 쥘 베른의 <해저 2만리> 가 출간되었다는 것은

벨지카호가 1897년에 떠났던 극지 탐험의 여정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소설 속에 나온 노틸러스호가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었던

끝없는 얼음 바다와 빙하로 묘사된 장면들은

세상사람들로 하여금 발견되지도 않고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가상의 대륙, 남극에 대해서 환상과 신비감을 품게 하기에 충분했다.

<미쳐버린 배> 에 등장하는 벨지카호는

1830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젊은 나라 벨기에가

대외적인 명분으로는 과학적 탐사에 대한 기대감이었지만

속내는 신생 국가 벨기에에 대한 애국심에 의해 탄생한 것이었다.

19세기 유럽은 영토 식민지화로 인해 민족주의 바람이 불어

자연스럽게 탐험 열풍으로 이어진 시기였다.

벨기에 정부는 남극 항해의 가치를 알리면서

자금 조달을 위해 과학적 탐험이라는 명분을 내세웠고 애국심에 호소했다.

벨기에에 영광을 안겨줄 원정대 벨지카호는

미지의 해안 탐사를 목표로 식물, 동물, 지질학 데이터 수집을 위해

1897년 8월 23일 남극 대륙으로 출항한다.

과학적 탐사라는 임무와 남극 탐사의 수익성을 기대한 여정이었지만

벨지카호 선원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고 잊을 수도 없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영웅적인 업적으로 간주되었던 벨지카호의 극지 탐사는

인간 마음 속 깊은 곳의 욕망을 충족하는 일이었고

실행하는 사람과 지켜보는 사람 모두의 관심을 받는 일이었지만

결정적으로 벨기에의 영광에 대한 속내와 기대치는 다 달랐다.

벨기에인으로만 구성하려던 처음 계획과 달리

벨기에인 13명, 외국인 10명, 고양이 두 마리가 벨지카호에 올랐고

극지로 향하는 벨지카호의 시간들은

언어와 문화가 다른 선원들의 갈등과 대립으로 인해

인간 본성들과의 사투와도 같았다.

이 논픽션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모두 저자가 찾아낸

당시 벨지카호 선원들의 탐험 일지, 선실에서 주고 받은 서신과 비망록,

회고록, 당시 벨기에 신문 기사, 역사가의 자료들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아드리앵 드 제를라슈의 대담함과 로알 아문센의 불굴의 용기,

프레데릭 쿡의 상황대처능력이 있어 벨지카호가 고향으로 돌아올 수는 있었지만

미사여구를 넣어 기록했던 의사 쿡의 글 같은 경우는

자의적인 해석을 빼고 진실에 접근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고도 전한다.

그 와중에도 벨지카호의 남극 여정 중에 접했던 에피소드들은 여전히 흥미롭다.

남극 펭귄 무리와의 만남, 예상치 못했던 얼음 속 항해,

자비없는 땅인 남극에 대한 생명력,

황량하고 텅 빈 대륙에서 느끼는 인간의 모든 감정들,

영양불균형으로 인한 괴혈병과의 사투, 동료들의 죽음 등등

평범한 삶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극한 상황들이 흥미롭고 스릴 넘친다.

 

빅토르 위고는 우울함에 대해서

"햇빛이 없는 곳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나타나는 깊고 어두운 고뇌 상태" 라고 정의했다.

벨지카호 선원들은 거의 1년 가까운 시간동안 죄수처럼

배를 묶어놓았던 해빙을 뚫고 이동하기 전까지

절망감, 우울함, 현기증, 두통, 불면증, 고립감 등등

온갖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들을 경험했고

실제로 "우리는 지금 흰 감옥(정신병원)에 있다" 고 일지 속에 토로하기도 했다.

극지에 중간은 없었다.

극과 극, 아름다움과 위험만 존재했을 뿐.

위험한 여정인 걸 알면서도 인간은 다가올 영광을 기대하며 길을 나선다.

"각자의 마음 속 어딘가로 향해가는 목표의식은

영원히 정복해낼 수 없는 것."

 

희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던 벨지카호는 다행히도

얼음 속에 갇혀 지내는 일을 끝낼 수 있었고

폭풍을 지나 마침내 전쟁같았던 여정은 고향에 돌아오면서 끝나는가 싶었다.

신선한 야채와 포유류 고기로 배를 채우는 것이 선원들의 소원이었고

남극의 겨울에서 살아 돌아온 벨지카호는 돌아와도

괴혈병 증세로 인해 허약해지고 두통과 신경성 문제가 남아 있었다.

영광스런 귀환인 듯 하지만 어두운 그늘은 여전했다.

거기에 벨지카호 여정의 후반부를 책임졌던 의사 쿡이 정말

북극을 정복했는지 입증할 방법이 없어 회의론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가 누렸던 영광은 나흘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그렇다면 더더욱 쿡이 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지가 궁금해질 것이다.

쿡은 남극여정을 통해 잠시 얻었던 영광을 석유로 재건하려 했지만

사기혐의로 기소되고 오랫동안 미국 국민을 속여온 죄로

14년 9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남극해빙으로부터 서사적인 탈출을 이뤄냈지만

상상력만 풍부한 인간이라는 비난만 받게 된 의사 프레데릭 쿡이다.

그에게 노르웨이인 탐험가가 면회를 간 것이다.

바로 지구의 두 극점을 모두 최초로 정복한 사람으로 유명한 로알 아문센.

쿡 의사를 면회간 탐험가는 바로 로알 아문센이었다.

 

벨지카호 남극 여정을 함께 했던 두 사람.

모두가 쿡을 의심하지만 그래도 아문센은

남극의 겨울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쿡 덕분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벨지카호의 귀환 후 쿡과 아문센은 다른 길을 걷게 된 이야기가 또 제법 흥미롭다.

<미쳐버린 배> 2부가 시작되는 느낌.^^

아문센은 탐험가로서의 욕망을 이어간다.

노르웨이로 돌아오자마자 벨지카호 원정에서 배운 쿡의 아이디어를 적용하여

자신의 원정대를 계획하고 마침내 그가 이끄는 프람호는

1910년 8월 9일 노르웨이에서 남쪽으로 떠났다.

당시 남극 탐험의 라이벌이었던 로버트 팰컨 스콧과 달리

로알 아문센은 원주민(에스키모인) 방식을 채택한다.

땀과 추위에 적합하지 않았던 모피를 고집하는 유럽식이 아니라

동물의 털을 이용해 추위를 견뎠고,

선원은 소수로, 대신 썰매개 52마리를 끌고 썰매와 스키로 이동하는 방법이었다.

아문센은 개들과 지내며 정이 들긴 했지만 긴 여정을 위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가장 느린 개부터 한 마리씩 주기적으로 잡아 먹음으로써

다른 개들과 본인들의 영양을 보충해서 괴혈병에 대비했다.

고집 센 선장 스콧은 썰매개를 죽이는 건

잔인하고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조랑말로 바꿨지만 결론은 오판이었다.

남극 산지 그 추위에서 땀 배출하는 방식이 썰매개와 말은 달랐고,

말은 결국 땀을 배출하자마자 매서운 바람에 얼어붙어 죽어 나갔기 때문에

말이 짊어졌던 그 많은 짐들을 다 사람들이 이고 가야만 했던 고된 여정이었다.

마침내 아문센 탐험대는 1911년 12월 14일 남극점에 노르웨이의 깃발을 꽂는다.

아문센이 남극점에 도달할지 알리가 없던 스콧 탐험대는

1912년 1월 18일에 남극점에 도착했지만 펄럭이는 노르웨이의 국기를 발견하게 된다.

남극점까지도 힘겹게 가던 스콧 탐험대였기 때문에

다시 돌아오는 길에 남극의 매서운 추위를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결국 스콧 탐험대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남극 탐험에 대한 준비와 전략에서 아문센의 전략은 어쩌면

쿡의 아이디어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탐험가들의 도전을 보면서 인간에게 생존보다 더 강력한 명분이

지구상에 또 존재할까 싶은 생각도 든다.

살아서 다음을 도모할 수 있는 사람들의 상황과 비교할 수 없는 영역인 듯 싶다.

벨지카호 여행의 유산은 과학적 수확에

극지로의 첫 국제적 원정이라는 의미는 분명히 있다.

프레데릭 쿡이 의사로서 생리적, 심리적 피해를 기록으로 남기며

극지성 빈혈증을 보고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초기 극지 탐험의 진실에는 역사가 그렇듯

실제와 허구가 모두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구 끝의 남극 탐험" 에 관한 이야기에서 스릴러다운 면모도 있고

실화를 기반으로 한 스토리인데 심리 묘사가 더해져 픽션같은 착각도 들게 한다.

글항아리의 걸작논픽션이 <미쳐버린 배> 외에도 어떤 책들이 더 있는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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