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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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름이 중국명이고, 작가가 적은 내용도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한참 활발하게 진행되던 시기이다. 그런데 출판사를 보면 원래 출판된 곳은 프랑스이고, 게다가 파리이다.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없기에 프랑스에서 발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책 속에 문화대혁명 시기의 중국은 그야말로 어리석은 바보들의 축제였기 때문이다. 물론 지식인들과 엘리트들을 모조리 뒤집고, 중국의 유교문화를 파괴한다는 명제도 좋았으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 스스로 계몽할 수 있게 해주는 칸트의 계몽의식이 더욱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계몽이란 단어는 단지 기존의 관념을 억지로 다른 관념으로 바꾸어주는 하나의 폭력적 행위에 불과하다. 계몽이란 단어가 하는 행동에서 진실로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졌는가? 중국의 문화대혁명도 그러하거니와 프랑스대혁명에도 조금 문제가 있는 부분이 바로 여기이다. 혁명이란 것은 기존의 체계를 모조리 바꾸어도 그곳에 살아가는 인간이란 존재, 즉 삶에 대한 원초적인 요소까지 어렵다. 현대사회에서도 내가 가장 멍청한 슬로건으로 보는 것이 자기들의 세상, 사상을 외치는 자들이다.

 

새로운 사상과 세상을 말하고 글로 적는 것은 좋다. 문제는 인간의 생활에서 혁명이나 전쟁, 심지어 더러운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도 그 시대 사람에게 먹을 빵이 필요하고, 추우면 연료가 필요하다. 게다가 아프면 의사와 약사가 필요하다. 세상의 기본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하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에서 가장 멍청한 짓은 바로 의사들이나 과학자들, 교사들에 대한 억압과 분서갱유질이었다. 물론 지식인들이나 엘리트가 부패하면 그 나라는 완전히 망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행동이 더 치밀하고 교활하여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없다면 나라는 심한 문제에 빠진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에서 그 이유가 나온다. 의사가 잡혀가면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려도 해결하기 어렵고, 소수의 의사가 다양한 환자를 돌봐야 한다. 주인공 친구가 노동갱생을 위해 끌려온 산자락에서 만난 어여쁜 소녀가 임신하자, 임신중절수술을 맡은 의사는 내과, 외과, 정형외과 등 다양한 진료과목을 요일마다 다르게 진료했다.

 

책이 있으면 반동군자이고, 책을 읽어본 사람은 반혁명분자이었다. 하지만 책에 대한 부제는 문화적 빈곤에 시달렸다. 인간들은 이야기하기 위해 생각하는 존재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 후 그것을 이야기해주는 주인공과 친구의 모습에서 인간은 결론적으로 즐거움을 찾는 존재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독재라는 슬로건에서 카를 마르크스는 그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이름을 들어도 그들이 어떤 행동과 말을 했는지 일반인들은 전혀 모른다.

 

아니 심지어 그들의 얼굴조차 모른다. 주인공이 우연히 숨겨온 책을 떨어뜨리자 동네 건달은 그 책의 표지에 나온 사람이 카를 마르크스인지 레닌인지 스탈린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무식한 세상에 문자를 알고 이야기를 안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향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은 단순하게 사는 것을 원하지만, 한편으로 다른 재미를 원한다. 발자크가 나온 이유는 2친구가 다른 친구인 안경잡이로부터 받은 책이 발자크의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안경잡이가 숨겨둔 책은 발자크만 아니라 스탕달, 루소(신 엘로이즈를 안다면 그리 놀라지 않을 것이다), 위고, 뒤마 등 많은 저명한 작가의 서적들이었다. 보통 중국인들 그것도 산골짜기에 살아가던 문맹인들에게 그저 사치스럽고 때로는 반동의 세계일뿐이다. 이 책들이 이야기는 주인공 친구로 통해 바느질 소녀를 새로운 세상을 알게 해주는 길이 되어주었다. 관능적이고 달콤한 이야기 속에 사랑과 열정이 넘치는 낭만으로 가득했다.

 

낭만이 원래 혁명의 힘인데, 오히려 낭만이 혁명으로부터 죽음을 당하는 아이러니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옮긴이의 후기를 보면 분명 어둡고 위험한 시대지만, 책 속의 내용은 유머와 위트가 넘치고, 엉뚱한 모습도 종종 등장한다. 소설에서 보여주는 인물들은 대단한 인물이기보단 그저 삶의 한편에서 종종 보이는 인간유형이다. 인간이 어떤 위기에 닥친 상황에서도 어떻게도 삶의 묘미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현실의 조건은 여전히 암울하니, 즐거움이 되는 것은 비현실적인 세계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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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2-25 1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말이네요..한해도 좋은 포스팅 글로 만났습니다..
며칠 남지 않았지만 마무리 잘 하시고
또 새해에도 더 알찬 리뷰 기대합니다...^^.

만화애니비평 2016-12-26 09:40   좋아요 1 | URL
유레카님도 좋은 연말 보내시고, 내년에는 꼭 박과 최가 국민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기원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