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어떤 남자를 따라갔다. 그는 잃어버린 것을 찾아주는 곳이라며 누군가를 이끌고 우세모노 여관을 향한다. 하지만 정작 우세모노 여관으로 사람들을 인도한 그는 여관의 문을 넘지 않는다. 여관 문 앞에서 그를 따라온 이를 여관의 지배인에게 인도할 뿐이다. 어쨌든. 여관을 찾은 사람들은 간절했던 마음이 더 간절해진다. 무언가를 찾아야만 했으니까. 잃어버린 무엇 혹은 잃어버린 사람을... 그래야 이 방황을 끝내고 다시 발걸음 할 수 있으니까.

 

 

 

 

 

 

 

 

 

 

이런 말부터 하긴 좀 민망하지만, 나는 이 책을 펼치기 전부터 이 책을 좋아하기로 마음먹었던 게 아닐까 싶다. 펼치자마자 그냥, 좋아해 버렸으니... 별거 없었다. 잘생긴 그 남자 마츠우라가 사람을 한 명씩 데리고 우세모노 여관으로 온다. 마츠우라를 따라 여관에 들어선 사람은 여관에 머물면서 그들이 찾는 것을 떠올린다. 무엇을 찾으러 왔을까? 찾고 싶은 게 있긴 한가? 아니, 그들이 찾는 것과 이 여관은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어떻게 알고 여길 찾아온 거지? 여관의 사장은 어린 소녀다. 그래서 더 의아하다. 나이 지긋한 사람이 사장이라면 연륜에서 나오는 삶의 지혜 같은 거라도 기대하겠는데, 이 어린 소녀에게서는 무엇을 기대하란 말인지... 그런데 여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손님이 무슨 질문을 하면 사장에게 물어보란다. 저렇게 어린 소녀가 무슨 대답을 해줄 수 있다고 자꾸 사장에게 물어보래? 여관의 손님은 그런 사장에게 관심 두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이 찾으러 온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나는 무엇을 찾으러 여기에 온 것일까?'라는 질문을 머릿속에 가득 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그러니 궁금증이 늘어날 수밖에. 궁금증이 늘면서 여관에 온 그들의 사연에 귀가 열린다. 그렇게 하나씩 펼쳐지는 이야기에 마음을 홀딱 빼앗겼다.

 

그러니까 이 부분, 여관의 손님이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기억을 더듬고 인생을 되짚어보는 장면이 시작될 때마다 가슴이 뛰곤 했던 거다.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예상되는 것 같아서 긴장했다. 예상되면 되는 거지 무슨 긴장이냐고 묻고 싶겠지만, 뭐라고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냥, 그냥, 막, 무슨 폭풍이 불어오기 직전의 고요함 같은 거? 그러다가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찾아낼 때마다 눈물이 고였다. 기억을 더듬고 아쉬운 것들을 찾아내어, 후회를 후회가 아닌 것으로 만든 다음에 떠나는 사람들. 여기서 드라마 <도깨비>의 저승사자의 임무가 겹쳐 보이면서, 누군가의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차 한 잔이 그려졌다. 저승사자는 자기를 찾아오는 망자들에게 차를 대접한다. 이 차를 한 잔 마시고 이쪽에서의 기억은 다 지우고 편한 마음으로 저쪽 세계로 가라고 문을 열어준다. 그렇게 망자들은 이곳, 그들이 살면서 겪었던 슬프고 기뻤던 모든 기억을 지우고 홀가분하게 저쪽 세상을 문을 열고 걸어간다. 아마 다음에 다시 태어나도 전생의 기억을 못 하는 건 저승사자가 내어준 차 한 잔 때문이겠지. 이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이 종종 등장했는데, 그때마다 생각했다. 전생의 기억이 있는 게 좋을까, 없는 게 좋을까. (이건 우세모노 여관 3권에서 등장하는, 여관 사장 사키의 이야기 때문에라도 계속 생각하게 되는 고민이다) 저승사자는 자기 임무를 수행하면서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전생에 큰 죄를 지어서 저승사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자기가 전생에 지은 죄를 알지 못했다. 그러니 지워진 전생을 생각하려 애쓰기 보다는,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기만 하면 되는 거다. 구백 년 넘게 살아온 도깨비를 제외하곤, 아무도 자기 전생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 혼란의 시간이 온다. 주인공들은 어쩌다 보니 자기의 전생을 알게 된다. 그 이후로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슬프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 장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낫겠다. 전생의 기억 따위 모르고 사는 게 행복하겠다. 가끔 술자리의 안줏거리로 전생의 우리 모습에 대해 상상하기도 하지만, 불행하고 슬픈 기억을 더듬어야 한다면 모르고 사는 게 나을 거라고... 그러지 않을까?

 

 

 

 

 

 

 

 

 

 

 

 

 

 

예상한 사람도 있겠지만, 우세모노 여관에 오는 이들은 망자다. 죽은 사람이 산속 깊은 곳에 자리한 우세모노 여관으로, 수상한 그 남자 마츠우라의 손에 이끌려 찾아왔던 거다. 다양한 사람들이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찾으러 오는 곳.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는데, 찾아야 할 것이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여관의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찾아오는 손님은 미련을 남기고 죽은 자들이고, 잃어버린 것을 찾지 못한 자들은 여관에 남아 종업원이 되어 계속 찾아다닌다. 그렇게 여관에 찾아온 사람들은, 자기가 찾아야 할 것을 찾으면 떠난다. 자기가 찾아야 할 것을 찾지 못한 사람은 남아서 여관의 일을 계속 하는 거고. 여관에 찾아드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다 이렇게 말한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죽은 다음 후회가 없는 삶이 있을 수 있을까? 대개 그렇잖아. 죽음에 다다르면 후회스러운 것들이 눈앞에 쫙 펼쳐진다는데, 죽고 나서도 그 후회들이 계속 생각날 것 같은데... 후회하지 않는다던 그들은 어떤 인생이란 말이지?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는 삶이라고 큰 소리로 말하며 이승을 떠난 슬픔을 덮을 수 있는 걸까. <도깨비>의 저승사자가 내미는 차 한 잔에는 그 후회를 지우는 것까지 포함하는 거로 생각해서 참 다행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우세모노 여관>의 사람들이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는, 그게 부러워야 하는데 이상하게 더 슬픈 거다. 왜 있잖아, 그런 거... 분명 후회하는데, 후회하지 않는다고 큰 소리로 말하면 후회 없는 삶이 되는 기적이라도 이루어질 것만 같은 간절함. 잃어버린 것 따위 없다고, 그러니 찾아야 할 것도 없어서 이 여관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런 마음이 이들에게 그렇게 말하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숨이 턱 막히곤 했다. 나는 아직 죽어보지 않았는데, 막상 내가 <도깨비>의 저승사자 앞에 도착했을 때나 <우세모노 여관>에 찾아갔을 때, 무엇을 후회하게 될지 모르는 지금 마음 상태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죽었다는 상상, 죽은 후에 마츠우라를 따라간 우세모노 여관, 여관에 들어서며 마주한 어린 소녀 사장의 눈빛 찌르기 같은 직설을 견디고,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 여관을 떠나는 순간까지. 죽었다는 상상부터 쉽지 않았고, 잃어버린 게 한 개뿐일까 싶어 가늠할 수 없더라.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후회하고) 살아왔을지 계산을 할 수가 없어서다. 지금도 후회하는 시간이 너무 많은데,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죽은 다음에 찾아간 우세모노 여관에서, 나는 찾을 것이 없다고 말하는 당당함을 가질 수 있을까? 아마도, 아마도 아닐 것 같다. 후회하고, 찾아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여관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무엇을 후회하느냐고? 글쎄. 뭘, 얼마나 후회하고 잃어버린 상태일까. 얼마나 많이 찾아야 그곳을 떠나는 발걸음이 가벼울 수 있을까...

 

사람들은 울었다. 자기가 찾아야 할 것을 떠올리기 위해 기억을 더듬으면서 계속 울었다. 후회하는 순간을 찾을 때마다 울었고, 누군가에게 미안하고 슬픈 마음에 또 울었다. 작정하고 그런 게 아니었기에, 무언가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기도 했기에, 그게 최선이라고 믿었던 마음이었지만, 후회하는 마음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때는 그 선택이 전부였기에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겠지만... 한 번 지나간 그 순간을 불러내고 지켜보면서, 후회든 기쁨이든 확인하면서, 이제 더는 그때 그 순간에 미련을 두지 않기 위해 복기한다. 개운하게 눈물도 쏟아내고, 웃음도 찾아내면서, 여관에 찾아온 손님들은 그 끝에서 반드시 자기가 찾아야 할 것들을 찾아서 떠나곤 했다. 그게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들의 기억에서 지워졌든 각인되었든, 시간이 오래 걸리든 짧게 걸리든, 결국에는 찾았다. 그게 우세모노 여관의 마법이다. 여관의 마법이 통할 때마다, 읽는 이도 울지 않을 수가 없다. 울컥하고 치미는 감정에 눈물이 고이는 건 자동이다.

 

'우세모노(うせもの)'는 '잃어버린 물건', '유실물'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여관의 이름에 너무 잘 어울리고, 여관에 찾아온 손님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방식에 잘 맞는 의미인 것 같다. 여관에 찾아오는 손님의 사연에 따라 바뀌는 계절도 신비하다. 찾아오는 손님에 따라 계절이 바뀌는 곳이라니. 겨울이었다가 겨울일 수도 있고, 가을이었다가 여름일 수도 있는 곳. 그런 곳에서 찾게 되는 것은 마음에 얼마나 더 깊게 다가올까. 여관의 손님들이 자기의 유실물을 찾을 때마다 잃어버린 진심을 마주한다. 아니라고 거부했던 것들, 아니라고 말해야만 했던 진심을 마주한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도깨비>의 저승사자가 내미는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있는 장면과 닮았다. <우세모노 여관>에서 여관이나 여관 사장이 찾아준 유실물을 앞에 둔 모습과 같은 느낌이다. 이걸 마셔야겠지, 그래, 이걸 찾았던 거지. 이제 됐다. 홀가분하게 저 문을 열고 나갈 수 있겠구나...

 

이제 궁금한 거 한 가지 더 남았을 거다. 여관의 사장 사키는 누구인가, 여관에 손님을 데리고 오는 마츠우라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만화의 하이라이트는 3권이다. 여관의 손님들과 여관 종업원들의 사연까지 다 지나가고 나니, 정작 남은 이들은 여관 주인과 마츠우라다. 그들의 사연이 없을 수가 없지. 과한 스포일러가 될까 봐 더는 말할 수 없지만, 한 가지만 언급하자면 기억을 잃은 사키가 등장한다. 이 부분 때문에 기억의 여부를 두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 기억하고 싶지만 불가능한 상태인 아무 기억도 없는 이와 잊은듯했지만 결국엔 다 기억나버려 잊을 수 없는 이, 둘 중 누가 더 아플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계속되는 거다. 영원히 분명한 답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언제나 그 순간에 최선이라 여기는 선택을 하며 살아가겠지만, 그때마다 후회가 찾아오겠지만, 우세모노 여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 찾으면 되겠지.

 

만화를 잘 모른다. 그래서 더 관심이 없는 장르다. 어렸을 적에 보던 순정만화 몇 편이 전부였는데, 몇 년 전에 우연히 『결혼식 전날』을 접하고 '호즈미'라는 이름을 기억해두었다. 매력적인 만화 단편집이었다. 그림도 예뻤고 스토리가 소설을 읽는 느낌 그대로였다. 몇 컷의 그림과 주고받는 이야기에 푹 빠져 읽었다. 그러다가 다음 작품 『안녕, 소르시에』까지 샀고, 이번 작품 『우세모노 여관』은 완결판이 나오기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구매했다. 망자들의 후회를 덜어주고 편한 걸음 만들어주는 여관이라는 설정은 판타지였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되는 현실이었다. 읽는 이들과 마음이 닮은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호즈미의 다음 작품을 고민 없이 구매하게 만드는 매력이 담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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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7-02-14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즈미님의 만화 저도 ‘결혼식 전날‘을 접하고 너무 좋았어요. 그러다가 ‘안녕 소르시에‘도 읽었는데, 저도 구단님 따라 이제 우세모노 여관을 읽어야할 차례인가봅니다.^^

구단씨 2017-02-15 10:34   좋아요 0 | URL
만화를 잘 모르는데, 호즈미의 만화는 기다려집니다. ^^
이야기가 참 예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