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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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구이 노인처럼 잊히지 않는 사람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자기가 살아온 날들을 그처럼 또렷하게, 또 그처럼 멋들어지게 묘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말고는 또 없었던 것이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었고, 자기가 젊었을 때 살았던 방식뿐만 아니라 어떻게 늙어가는지도 정확하게 꿰뚷어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 P63

그런 노인을 시골에서 만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가간하고 고생스러운 생활이 그들의 기억을 그들의 기억을 흐트러뜨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대개 지난 일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대충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자기가 살아온 날들에 별다른 애정이 없는 듯, 마치 길에서 주워들은 것처럼 몇 가지 사소한 일들만 드문드문 기억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 사소한 기억마저도 자기가 아니라 남에 대한 것이었고, 한두 마디 말로 자기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표현해버렸다. - P63

그의 이야기는 새의 발톱이 나뭇가지를 꼭 움켜잡듯 나를 단단히 사로잡았다. - P63

후에 나는 생각을 달리 하게 됐지. 내가 나 자신을 겁줄 필요는 없다고 말일세. 그게 다 운명인 거지. 옛말에 큰 재난을 당하고도 죽지 않으면 훗날 반드시 복이 있을 거라 했네. 그래서 난 내 나머지 반평생은 점점 더 나아잘 거라 믿기로 했지. 자전에게도 그렇게 말했더니 그녀는 이로 실을 끊으며 이렇게 말하더군.
"저는 복 같은 거 바라지 않아요. 해마다 당신한테 새 신발을 지어줄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됐어요." - P111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다 믿을 수는 없게 된 거지. 믿지 않는 것이기도 했고, 감히 믿지 못하는 것이기도 했다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나날들을 어떻게 살아갈지 누구도 자신할 수 없었거든. - P165

그날부터 나는 낮에는 밭에서 일하고, 저녁이 되면 자전에게 성안에 가서 유칭이 좀 나아졌는지 보고 오겠다고 했지. 그러고는 천천히 성 쪽으로 걸어가다가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발길을 돌려 유칭의 무덤 앞에 가서 우두커니 앉아 있곤 했다네. 밤이 깊어져 바람이 얼굴 위로 불어오면 죽은 아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지. 소리가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떠나니는 탓인지 내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았어. 그렇게 한밤중까지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네. - P196

난 구불구불 성안으로 난 작은 길을 바라보았지. 내 아들이 벗은 발로 뛰어가는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네. 달빛만 처연하게 길을 비추는데, 마치 그 길 가득 하얀 소금을 훝뿌려놓은 것 같았어. - P199

"사람은 이 네 가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네.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고, 잠은 아무데사나 자서는 안 되며, 문간은 잘못 밟으면 안되고, 주머니는 잘못 만지면 안 되는 거야." - P200

나는 그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계속 들려달라고 청했다. 그가 하도 고마워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바람에, 꼭 내가 그를 위해 뭐라도 해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느 자기 신세타령을 다른 사람이 관심있게 들어준다는 사실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나타냈던 것이다. - P200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보면, 때로는 마음이 아프지만 때로는 아주 안심이 돼. 우리 식구들 전부 내가 장례를 치러주고, 내 손으로 직접 묻어주지 않았나. 언젠가 내가 다리 뻗고 죽는 날이 와도 누구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말일세. - P278

"푸구이는 괜찮은 녀석이야. 간혹 몰래 게으름을 피우기도 하지만, 뭐 사람도 틈만 나면 게으름을 피우는데 소야 더 말할 게 있나. 나는 놈한테 언제 일을 시켜야 하고, 언제 쉬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네. 내가 피곤하면 그놈도 피곤할 테니 쉬게 하면 되고, 내가 좀 쉬고 나서 정신이 들면 놈도 일할 때가 된 거야."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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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 - 김유정 단편선 한국현대문학전집 (현대문학) 8
김유정 지음, 김미현 엮음 / 현대문학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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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산한 검은 구름이 하늘에 뭉게뭉게 모여드는 것이 금시라도 비 한줄기 할 듯하면서도 여전히 짓궃은 햇발은 겹겹 산속에 묻힌 외진 마을을 통째로 자실 듯이 달구고 있었다. 이따금 생각나는 듯 살매 들린 바람은 논밭 간의 나무들을 뒤흔들며 공기는 쓸쓸하였다. 다만 뱃맷한 마루나무 솦에서 거칠어가는 논촌을 을프는 듯 매미의 애끊는 노래.

<소낙비> 중에서 - P31

그 전날 왜 내가 새고개 맞은 봉우리 화전밭을 혼자 갈고 있지 않았느냐. 밭 가생이로 돌 적마다 야릇한 꽃내가 물컥물컥 코를 찌르고 머리 위에서 벌들은 가끔 붕, 붕, 소리를 친다. 바위틈에서 샘물 소리밖에 안 들리는 산골짜기니까 맑은 하늘의 봄볕은 이불 속같이 따스하고 꼭 꿈꾸는 것 같다. 나는 몸이 나른하고 몸살(을 아직 모르지만 병)이 나려고 그러는지 가슴이 울렁울렁하고 이랬다.

<봄.봄> 중에서 - P160

인제는 봄도 늦었나 보다. 저 건너 돌담 안에는 사쿠라 꽃이 벌겋게 벌어졌다. 가지가지 나무에는 싱싱한 싹이 피었고 새침히 옷깃을 핥고 드는 요놈이 꽃샘이겠지. 까치들은 새끼 칠 집을 장만하느라고 가지를 입에 물고 날아들고-.

<따라지> 중에서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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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2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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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탕이 일어나지 않는 호수처럼, 한여름의 파란 하늘처럼 깨끄하게 잘 알아들었어요. 저를 믿으셔도 되요. - P50

신은 무엇을 원하시는 걸까? 신은 선 그 자체와 선을 선택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을 원하시는 걸까? 어떤 의미에서는 악을 선택하는 사람이 강요된 선을 받아들여야 하는 살마보다는 낫지 않을까? 심오하고 어려운 질문들이구나. - P114

그래, 그래, 바로 그거지. 청춘은 가버려야 해. 암 그렇지. 그러나 청춘이란 어떤 의미로는 짐승 같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아니, 그건 딱히 짐승이라기보다는 길거리에서 파는 쬐끄만 인형과도 같은 거야. 양철과 스피링 장치로 만들어지고 바깥에 태엽 감는 손잡이가 있어 태엽을 끼리릭 끼리릭 감았다 놓으면 걸아가는 그런 인형. 일직선으로 걸아가다가 주변의 것들의 것들에 꽝꽝 부딪히지만,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청춘이라는 건 그런 쬐끄만 기계 중의 하나와 같은 거야.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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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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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는 풍부한 시간을 유일한 재산으로 가진 나이를 모르는 소녀이다. 마찬가지로 필요한 만큼 노동을 하고 노동을 하기에 필요한 시간만큼 여유를 가질 줄 알았던 동네 사람들과 함께 모모는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모두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빈 공터에서 멋진 함선과 폭풍을 만들며 즐겁게 놀곤 했다. 모모와 친구들은 별것없지만 행복한, 아니 행복이 행복인지도 모를만큼 행복한 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매트릭스'의 스미스요원같이 생긴 시간저축은행의 회색인간들이 나타났다. 회색인간들은 모모의 친구들에게 '시간'을 아껴 자기들의 시간저축은행에 시간을 저금하라고 영업을 했다. 아낀 시간은 나중에 이자에 이자를 붙여서 더 크게 더 많이 삶을 즐길 수 있다고 했다. '더 크게 더 많이' 즐길 수 있다는 말에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기 시작했다. 모모의 친구들이 아낀 시간은 회색인간의 시간저축은행에 저축되기 시작했다. 모모의 친구, 식당을 운영하던 푸지씨도 회색인간에게 영업당하여 시간을 아끼기 시작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아끼고 있다.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 시간을 아끼고 돈을 벌기 위해서 시간을 아끼고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서 시간을 아낀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시간을 아꼈다. 나의 과거는 푸지씨의 하루와 다르지 않았다. 아침 6시 기상. 1시간의 출근시간. 7:30 출근. 오전 업무. 점심. 오후 업무. 운동. 독서. 사교. 영어. 육아.요리.살림. 승진. 회의.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반복 반복 반복.

처음에는 자기계발에 시간을 투자한다고 생각했다. 조금 지나서는 자아실현에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기계발과 자아실현을 위해서 아낌없이 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투입하였다. 강산이 두 번 정도 바뀌고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계발이 되고도 충분히 여유가 남았어야 했을 '자기'는 계발이 아니라 방전이 되었다. 실현되었어야 할 내 '자아'는 여전히 어디있는지 모른 채 아직까지 흩어진 자아를 찾기에 분주했다. 결단의 시간이 왔다. 나는 노력과 시간의 투자와 투입 대신 이제 그것을 꺼내 쓰기로 하였다. 그래서 반복되는 하루 일과를 버렸고 모모와 모모의 친구들처럼 하나를 해결하는데 느린 행동과 많은 시간을 들이기로 하였다. 그렇게 하니 가능한 한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닌 무슨 일을 하든 필요한 만큼 시간이 풍부해진 나는 모모와 모모의 친구들처럼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었을까? 풍부해진 시간 속에서 나는 다시 길을 잃었다. 넘쳐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시간은 금이다. 시간을 아껴라는 교육을 받았을 뿐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시간 안에서 어떻게 자유를 누리는지를 미처 배우지 못했다. 풍부해진 시간 안에서 불안을 느꼈다. 시간 저축은행에 저축해둔 내 시간을 꺼내 쓰는 것인데도 마치 남의 시간을 훔쳐 쓰는 것처럼.

하지만 세월은 저절로 흐른 것만은 아니다. 지금 내가 가진 시간은 과거의 내가 가진 시간과는 다르다. 무작정 시간을 아끼고 돈을 모으고 먼 미래를 계획하면서 시간을 저당 잡히지는 않겠다. 막연히 불안한 미래를 위해 하루를 견디지 않겠다. 그저 이 순간에 충실하며 바로 다음 단계만을 그릴 것이다. 그것이 내가 강산이 두 번씩이나 바뀌면서 터득한 내 시간의 운영의 묘미이다.

<모모>에서 가장 마음이 갔던 캐릭터인 베포 씨. 느리지만 늘 신중하고 말을 아끼며 서두르지 않은 청소부 베포 할아버지. 그가 모모에게 했던 말을 가슴속에 담아본다. , 원하는 만큼 시간을 낼 수 있었다. 나의 시간이 어린 시절처럼 다시 풍부해진 것이다.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P5

과연 모모는 저축당한 시간을 회색 인간에게서 되찾아왔을까? 모모와 친구들은 풍부한 시간을 누리며 다시 행복한 나날을 맞이하였을까?


가벼운 어른을 위한 동화로 책을 열었다면 삶을 풍부하게 할 철학적인 질문으로 책장을 덮게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러니, 시간을 저축하고 있는 친구들이여 <모모>를 만나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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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디에서 왔니 - 탄생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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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때문에 친정엄마가 두 아이의 육아를 맡게 되었으며 친정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게 된 것이 나에게는 아주 큰 행운이었다. 당신이 우리를 키웠던 방법 그대로 손자와 손녀를 키워내셨다.

내가 첫 애를 낳고 산후조리를 하러 친정집에 온 지 열흘쯤 지났을 때 아이 탯줄이 마침내 떨어졌다. 탯줄을 집어놓은 집게에 말라붙은 탯줄은 흉측하게 보였지만 엄마는 이 역시 색깔 고운 헝겊에 잘 싸더니 내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니 애가 뱃속에서부터 온갖 기운과 양분을 한데 모은 거다. 아이가 큰 일 있을 때마다 같이 하게 해라. 엄마 뱃속에서 힘을 모은 것 같이 온 힘을 모아주는 거다. 흉하다고 함부로 대하지 말고 애 낳을 때마다 잘 보관해라." 과학적 근거도 없는 탯줄의 영험함을 내 대학입시에서 이미 한번 겪은 나는 엄마의 간절한 기원과 말씀 때문이라도 탯줄을 잘 보관해야겟다고 생각했고 아직까지 잘 간직하고 있다.

 

아이가 두 어달쯤 지나 목을 스스로 가눌 수 있게 되자 엄마는 이내 애를 들쳐 업고 다녔다. 서서 부엌일을 할 때도 가벼운 손빨래를 할 때도 시장에 장을 보러 갈 때도 친구분들과 마실을 나갈 때도 포대기에 애를 업고 낭창낭창하게 걸으며 동네를 활보하였다. 시간이 흘러 아이의 무게가 제법 무거워졌음에도 주로 업고 많이 다니셨다. 반면 나는 허리가 아파 주로 걷게 하거나 유모차를 태우기를 선호했다. 내가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들이를 나서면 엄마는 말하곤 했다. "유모차에 앉아있으면 어른들 발 밖에 더 보겠나? 엄마 등에 업히면 사람들 얼굴도 보고 경치도 보고 엄마 등에 기대서 자고 싶을 때는 폭닥 시리 편안하게 잠도 자고. 애가 세상을 보게 해야지 땅 하고 발만 보게하믄 되겠나? 엄마 편할라고 자꾸 유모차에 태우면 안 되지." 나는 내가 불편한데 아이인들 편하겠냐며 몇 번을 유모차를 고집했지만 사람은 평소 보고 듣는 게 무서운 것이다. 인이 박히도록 엄마에게서 들었던 포대기와 업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나도 어느덧 유모차보다 업는 것을 선호하게 하였다.

 

"아이고 우리 되련님, 진지를 많이 자셨는 가베? 이렇게 이쁜 똥을 많이도 맹글었네!" "왕자님, 밥 잡수이시더. 많이 자시고 어서어서 크셰이." "되련님요, 목욕 하입시더. 따땃한 물에 노곤 노곤하니 목욕하고 한숨 주무이소." 엄마는 돌도 안된 아이와 끊임없이 대화하였다. 말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하였다. 아이라고 낮춰하는 대화가 아니라 한 인격체로 존중하면서 끊임없이 아이의 낯빛을 살피고 눈을 맞추며 몸을 어루만지며 대화를 하였다. 혼자 하는 말이었으면 두어 마디 하다 말았을 것이지만 엄마는 아이가 눈으로 몸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고 믿으셨다. '잼잼''곤지곤지''까꿍'도 그저 놀이가 아닌 대화의 하나로 힘들어하지 않고 아이와 교감을 하였다. 엄마는 손주가 아닌 자식에게도 저리 하셨을까? 기억이 없는 나는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엄마가 그렇게 정성을 기울여 키웠던 아들아이와 얼마 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TV에서 한 엄마가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가는 장면이 지나갔다. "요새 엄마들은 애를 대개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드라. 포대기에 업고 다니는 게 훨씬 좋은데."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이 불쑥 입 밖으로 나왔다. 아들은 업고 다니는 게 뭐가 좋으냐고 유모차로 다니는게 몸도 안 아프고 아이도 앉아 있으니 더 편하고 좋지 않냐고 하면서 과학적으로 따지지도 않고 옛 것이 좋다는 꼰대 같은 어른들의 생각 아니냐고 퉁을 쳤다.

무슨 말이든 어떤 일이든 근거를 대고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고 논리적으로 타당해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요즘 세대인 아들에게 나는 근거를 대지 못했고 증명을 하지 못했으며 타당한 논리를 말하지 못했다. 그저 "너거 할매한테 들었고 할매의 할매를 통해 다 증명되고 전수된 내용이다"라고만 옹색하게 받아쳤다. 아들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것을 눈으로 표정으로 양껏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내 말이 옳다고 자신하는데 근거와 논리를 대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속이 상했다. 부모님의 말씀이면 논리적이지 않아도 일단 수용하고 다만 내가 생활해나가면서 그분들의 말씀을 알아서 취사선택하여 사용했던 우리와 달리 논리적으로 수긍이 되지 않으면 용납을 하지 않고 보는 아이들 보면서 전통의 대물림이 이제 정말로 쉽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도 이제 나이라고 한 해 두 해 먹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몸의 나이만 먹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나이도 먹어가는 것인지 어릴 때 듣던 엄마의 말씀이 세월이 지나고 보니 옮은 말씀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엄마의 생활 모습이 현명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엄마 아버지가 내 나이 때 하시던 것들이 내가 내 아들 딸의 나이었을 때는 조금은 어리석고 오래된 인습처럼 나도 느꼈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나도 그들의 나이가 되고 보니 모든 것이 다 버리고 폐기해야 할 것들만은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채고 있다. 배움과 깨달음은 왜 매번 뒤늦게 찾아오는 건지. 보고 듣고도 느끼지 못하는 온전한 내 탓인지 사소한 것의 소중함을 잘 가르치지 못한 내 어머니 아버지의 부족함때문인지. 온전한 젊었던 내 탓이라고 하자니 지금 내 아이들의 모자람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니 내가 잘못한 것이 아예 없다고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부모님 탓 조상 탓으로 돌리자면 지금 내가 또한 부모가 되었기에 곧 내 탓이 되는 것이다. 이래 저래 진퇴양난의 처지가 아닐 수 없다.

 

이어령 교수의 글을 좋아한다는 지인의 추천으로 <한국인 이야기-탄생: 너 어디에서 왔니>를 읽었다.

나이 80이 훨씬 넘은 노교수가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한국인의 좋은 습성과 풍습을 논리적으로 하나하나 따져가며 우리가 얼마나 영민하고 자랑스러운 민족인지 모두 12가지 것들을 경험과 옛 글과 서양 문화와의 상호 비교를 통해서 연구하고 그것들을 한 권의 책으로 풀어놓았다. 원래는 중앙일보에 칼럼으로 썼던 글들을 묶어 새로 다듬어 편찬한 것이라고 한다.

 

내가 이 책을 미리 읽고 아들과 대화를 했더라면 적어도 포대기 문화에 대해서만은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 말했던 업는 것의 위대함을 잊지 않고 기억에 품었다가 할머니의 논리를 당신의 손자에게 근거로 댈 수 있었을 것이다.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탄생: 너 어디에서 왔니>는 뒷부분에 가서는 동의어의 반복과 약간은 요즘 말로 '국뽕'에 차오른 과장된 논리도 간간이 섞여 있긴 하지만 이것은 온갖 시대적 어려움을 넘고 헤쳐온 80이 넘은 노학자가 가진 우리 민족에 대한 자부심으로 넘길 수도 있는 정도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20~30대의 젊은 세대, 특히 아이를 낳고 키우는 혹은 막 낳으려고 하고 키울 준비를 하는 이들에게 더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들은 세상의 속도에 맞추느라 이런 콘텐츠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세상은 인생은 항상 뒤늦게 깨달음을 주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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