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박미옥
박미옥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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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나 작가처럼 글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 쓴 글이 아니라 다른 일로 먹고 사는 사람이 쓴 글을 읽을 때 곧잘 느끼는 것이 있는데 글에 비문이 있고, 불필요한 수식어구가 많아 문장을 읽어도 매끄럽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이는 것을 걷어내면 그 속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 때가 많다. 특히 한평생 하나의 일에 종사한 사람은 그 분야의 전문가이고, 박사 학위를 받지 않았더라도 박사이고, 철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철학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므로 그들의 글에서 깨달음을 얻을 때가 많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에 대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재밌기도 하고.

형사 박미옥이 퇴임하고 쓴 책에서 그는 짧은 이야기마다 사건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신창원 탈옥사건, 숭례문 방화 사건, 정남규 사건, 압구정역 제과점 인질극 사건, 짝사랑한 스승을 스토킹하다 살해한 사건처럼 세간에 알려진 사건부터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사건까지 박미옥은 사건을 맡으며 느낀 소회를 담담하게 밝힌다. 이를테면 짝사랑한 스승을 스토킹하다 살해한 사건에서 박미옥은 긴 형사 생활을 했지만 자신의 시선과 마음이 경험치를 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경험치를 뛰어넘어 상대의 진실을 들어주고, 상대에게 진정 필요한 말을 해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한다는 그의 말은 사건의 의미를 단정하여 선정적인 타이틀을 붙여 속보로 내보내는 언론과 대비되는 것이었다.

책에 등장하는 짧은 이야기들이 넷플릭스 드라마 에피소드 하나하나인 것 같았다.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그대로 <형사 박미옥>이라는 제목으로 드라마나 다큐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짧은 이야기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내용이 있었으니 ‘관찰과 관용의 마음으로 편견없이 묻는다.’,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그저 들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탈주범은 알고 우리는 몰랐던 것이 있음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형사로 살면 살수록 나는 세상과 사람에 대해 점점 모르는 사람이 되어간다’ 같은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박미옥의 뼈속에 박혀 긴 세월 박미옥을 지탱한 것이리라. 책에서 본 그는 겸손한 사람,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 끈질기게 움직이는 사람, 열린 마음으로 듣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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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Pat Metheny - Dream Box
팻 매시니 (Pat Metheny) 연주 / Warner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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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 매서니의 평온하면서도 감미로운 기타 소리를 듣고 있으니 스르륵 눈이 감긴다. 꿈으로 인도하는 음악이라 드림 박스인가. 꿈같은 음악이라서 드림 박스인가. 꿈에는 악몽도 있고 찝찝한 꿈도 있게 마련인데 팻 메서니가 그리는 꿈은 아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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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가시 대산세계문학총서 184
시마오 도시오 지음, 이종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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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가지고 있는 매력으로 여러가지를 들 수 있을텐데 그중에 묘사가 있다. 소설가는 인물을 묘사하고, 배경(풍경)을 묘사하고, 사건을 묘사하면서 소설의 분위기와 이야기 속으로 독자를 끌고 들어간다. 무엇을 묘사하느냐, 어떻게 묘사하느냐는 소설가마다 다른데 그걸 다르게 말하면 소설가마다 각자의 세계가 있다는 뜻이다. 소설가 자신의 세계를 규정하는 것이 묘사이니 묘사는 소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시마오 도시오는 <죽음의 가시>에서 인물의 심리를 묘사한다. 바람을 피웠다가 부인에게 들킨 남편은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부인은 남편을 믿지 못해 끊임없이 추궁한다. 남편은 변명하고, 부인은 진정되었다가 다시 폭발할 때(남편은 아내가 발작을 한다고 표현한다.)의 심리 묘사가 500페이지 가까이 이어진다. 그 묘사 속에서 가정과 개인은 점점 붕괴되어 간다.


시마오 도시오는 부부 사이에 직접 경험한 사건을 글로 옮겼다고 한다. 과거를 어떻게 서술할 것이냐. 과거는 현재의 관점에서 해석되고, 누락되고, 왜곡된다. 과거를 되살릴 때 세세한 사실관계는 틀릴 수 있어도 당시의 감정만은 온전히 서술될 수 있다. 과거는 왜곡될지언정 감정은 왜곡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시마오 도시오가 과거를 이야기하며 인물의 심리를 묘사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에 인물의 심리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부인은 남편에게 불륜의 증거를 요구하고, 불륜녀가 찾아와서 남편에게 협박성 메모를 남기고, 남편은 이사를 가니 병원에 입원하니 하며 인물의 행동도 같이 일어난다. 심리와 행동이 같이 나타나는 이유도 감정의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감정은 몸에 기억되기 때문이다.


<죽음의 가시>를 흥미롭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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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드 팔마 <강박관념>. 인물이 등장하면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인물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 등장한 인물과 기존 인물이 형성하는 이야기-갈등 같은 것이다. <강박관념>에서 인물들은 죄책감과 원망을 십 수년간 품고 살았다. 돈 가방이 영화의 초반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은 돈 가방에는 이들의 죄책감과 원망이 투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십수 년 뒤 갈등이 해결될 때 다시 돈 가방이 등장하는 건 자연스럽다. <강박관념>을 보고 히치콕을 떠올렸다. 히치콕이 오랫동안 영화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수긍이 되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최근 들어 히치콕의 영화는 가부장적이다, 남성중심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영화들은 히치콕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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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복 割腹 - 거짓을 가르고 진심을 드러내다 문화와 역사를 담다 46
노성환 지음 / 민속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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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에서 할복을 찾으면 할복은 일본 고유 문화라는 말과 함께 일본의 할복에 대해 길게 설명을 한다. 신문 칼럼에서도 기자들은 할복이 일본의 문화라고 서술을 한다. 하지만 노성환은 할복은 중국, 한국, 일본의 문화이며 중국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할복은 일본 고유의 것라는 생각이 오해라는 것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중국에서 누가 할복한 이야기를 듣고선 칭송을 했지만 일본에서 누가 할복한 이야기를 듣고선 폄훼했다. 일본을 왜국이라고 업신여기고 중국을 대국이라고 숭상하는 인식이 반영된 게 아닐까 싶다.


할복의 이유가 다양한 것도 재밌었는데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할복을 하기도 했고, 순결을 지키고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서 할복을 하기도 했다. 사무라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할복을 하기도 했으며 칼을 배에서 한 쪽으로만 긋느냐, 열십자로 긋느냐에 따라 할복의 의미도 달라졌다. 심지어 말로만 할복을 할 뿐 실제로는 시행하지 않는 할복도 있었고, 할복을 한 뒤 항의의 표시로 내장을 꺼내서 던진 이도 있었다. 할복의 이유와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할복이 가지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리라.


할복을 했다고 해서 사람이 금방 죽지는 않는다. 고통만 오랫동안 느낄 뿐이기에 할복한 이의 목을 칼로 치는 카이샤쿠라는 이가 있었다. 미시마 유키오가 할복을 해서 죽었다고 세간에 알려져 있지만 미시마 유키오의 배에 난 자상은 8센치미터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미시마 유키오 옆에서 카이샤쿠가 미시마의 목을 내리쳐서 미시마는 죽었는데 다만 이때 카이샤쿠가 칼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미시마의 목을 세 번 내리쳤다고 한다. 매우 고통스럽게 미시마 유키오는 죽었던 것이다.


할복이 죽음의 한 방법이라고 하면 매우 비효율적인데 왜 사람들은 할복을 했나. 옛사람들한테는 뱃속에 진심이 있다는 사고방식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관념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 속이 검다, 배짱이 있다, 흉금을 터놓다, 심보가 못 됐다, 담이 크다. 라는 관용어로 남아 있다고 한다.


저자가 중언부언하는 것이나 책에 오탈자가 많은 건 아쉽지만 흥미롭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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