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정과 신비 을유세계문학전집 128
르네 샤르 지음, 심재중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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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샤르의 <유년>. 이 시에서 공간과 시간의 대비가 재밌다. 표면적으로 시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재앙과 가혹한 시련으로 부터 멀리 떨어진 곳' , '새들의 볼모인 샘' , '제 상처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태양 빛을 신뢰하는 바위(즉, 상처를 가진 바위)'. 등 이 고통의 장소들을 이겨내는 건 유년이라는 시간, 곧 희망의 시간이다. '어린양들의 산들바람이 다시 새 삶을 불러온다'는 시구처럼 새로운 시간은 고통의 장소를 바꾼다는 것이다. '재앙과 가혹한 시련으로 부터 멀리 떨어진 곳'. 멀기 때문에 도래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테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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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탕 크게 하려다 배신을 당한 남자가 자기 몫을 되찾아 가려는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가 꿈인지 환각인지 그 남자가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호하다. 꽉 막힌 긴 통로, 사람 없는 광활한 공간, 증폭되는 피사체와 소리, 규칙적으로 배열된 건물과 인테리어는 초현실적이며 강박적이다. 존 부어맨이 스릴을 만드는 방식이 기가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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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J. J. Johnson's Jazz Quintets
J.J. Johnson & Kai Winding 연주 / Savoy / 199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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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J. Johnson's Jazz Quintets> 리듬 세션이 합주를 하고 뒤이어 관악기가 주제를 제시한 뒤 즉흥연주를 하고 다시 리듬 세션이 합주를 하고, 리듬 세션이 즉흥 연주를 하는 비밥의 특징이 연주에서 두드러진다. 요즘 퓨전재즈와 락재즈를 듣던 중이었는데 오랜만에 비밥을 들으니 예스러운 정취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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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짐승들의 투표를 기다리며 대산세계문학총서 174
아마두 쿠루마 지음, 이규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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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두 쿠루마의 <들짐승들의 투표를 기다리며>는 제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아프리카 각 나라가 독립을 하며 탄생한 독재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독재자의 악행, 대중기만, 대중지배, 폭력, 비합리성, 탐욕, 개인숭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독재자에게 지배받는 백성들의 목소리는 소설 마지막 챕터에 등장한다. 국민들이 독재자에게 저항하다가 다시 그리워하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한데 그만큼 국민들한테는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고, 공포와 주술과 빵으로 국민을 다루는 독재자의 지배는 강력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챕터마다 화자가 독재자의 삶을 읊고, 악사가 있고, 마지막엔 속담이 후렴구처럼 등장한다. 흡사 1인극 연극무대를 보는 것 같은 구성이 인상적이었는데 독재자들의 지배방식이란 곧 정교한 연극이기 때문이다. 독재자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세심하게 연출하고 치밀하게 구축하여 자신을 포장하고 백성들이 자신을 찬미하도록 한다. 히틀러, 무솔리니,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차우셰스쿠, 뒤발리에. 여지 없었다. 독재자들의 대중 지배 기술은 <들짐승들의 투표를 기다리며>에서도 똑같이 등장한다. 아마두 쿠루마는 독재자의 본성을 말하기 위해서 1인극 연극무대처럼 소설을 구성했으리라.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폭력이 등장한다. 아프리카를 착취하는 제국 열강의 폭력, 제국에서 독립한 아프리카 신생국 독재자의 정교한 폭력, 독재자에게 저항하는 백성의 처절한 폭력, 그런 백성에게 가해지는 무자비한 폭력. 반복되는 폭력은 시처럼 리듬을 주었는데 이때의 리듬은 슬프고 무거운 것이었다. 폭력은 멈출 것인가. 반복될 것인가. 책을 덮은 뒤에도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두 쿠루마는 독재자들이 국민을 움직이는 메커니즘을 꿰뚫고 있다. 지배하는 자의 욕망과 지배받는 자의 두려움을 읽고 있다. 그 통찰이 놀랍다. 너무나 좋은 작품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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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없다 대산세계문학총서 183
응우옌후이티엡 지음, 김주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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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선 응우옌후이티엡에 대해 상찬을 늘어놓지만 작품은 그저 그렇다. 다만 베트남 전쟁을 겪은 작가가 작품에서 전쟁과 민족을 말하지 않는다는 게 흥미로운데 내가 베트남을 아직도 전쟁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따이한, 공산주의와 싸우겠다며 베트남에 참전한 용사, 베트남전은 미국이 일부러 일으켰다는 주장, 베트남전 벌어졌던 양민 학살, 우리가 전쟁에서 이겼기 때문에 민간인 학살은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는 베트남 사람들, 전세계에서 열강과 싸워 이긴 유일한 나라 베트남, 고엽제, 영화 람보같은 것이 그러하다. 내 기억 속에선 박항서 감독과 베트남 쌀국수만이 베트남 전쟁과 관련이 없는 것 같다.

한 나라, 한 사회를 전쟁으로만 기억하는 게 온당한가. 나 자신한테 물어보지만 미디어에서 전쟁과 관련한 내용만 접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을 하게 된다. 당연히 베트남도 사람 사는 사회니 욕망이 있고 두려움이 있을 것이고, 사랑도 있고 고독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감정은 전쟁과는 무관할 수 있다. 응우옌후이티엡이 베트남 전쟁에 대해 말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 응우옌후이티엡의 산문집이나 인터뷰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읽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응우옌후이티엡을 읽고 베트남에서 유명하다는 작가의 대표작이 이 정돈가. 베트남 작가를 앞으로 읽지 말아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베트남을 알고 싶고 인간을 알고 싶으니 베트남 작가를 더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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