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마동, 말은 돌아온다는 뜻이요.

돌아온다는 것은 강을 못 건넜다는게 아니겠소?

이곳을 찾아드는 사내와 여인은 아름답고 씩씩하고 그리고 젊지.

 아암 젊고말고.

(중략)

사내와 여인이 이곳을 찾아오면 나는 말 두필을 마구간에서 내어주는 게요.

그네들이 말에 오르고 나란히 떠날 때 이르는 것은 말고삐를 놓으면 죽는다는 말인데 그 말을 세 번 되풀이하지. 

말고삐를 놓으면 죽는다구.

해가 떨어질 무렵, 그들은 건너갈 강을 향해 떠나는 게요.

(중략)

그러나 그들은 어김없이 돌아왔었소.

말 한 필은 서쪽에서 돌아오고 다른 한 필은 동쪽에서 돌아오는 게요.

실은 그들이 돌아오는 게 아니라 말이 돌아오는 거지만.

한데 사내와 여인은 옛날의 그들은 아니오. 아니거든.

머리칼은 햇볕에 타서 삼을 모양으로 누렇게 뜨고 얼굴에는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 같은 굵은 주름,

거미줄 같은 잔주름, 이빨은 빠져서 양 볼이 꺼지고 파파할멈 할아범의 모습들이오.

허나 그보다 슬픈 것은 사내와 여인이 서로를 알지 못하며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는 일이었소.

그네들은 타인이며 먹구름이 몰려오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게요.

제가끔 자기 갈 길을 탄식하는 게지.


-토지(박경리) 제 2부 2권 p.138~139-



아이의 등교를 준비하면서 바쁘게 커피를 볶았다.

볶은 커피를 담아두는 병이 비었기에.

덕분에 오전내내 집안 가득 기분 좋은 향이 가득하다. 행복감을 느끼게 해 주는 향이다.


"귀마동"이라는 마을에는 강이 하나 있단다. 저승 갈때 건너는 강과는 달리

그 강은 남녀 한 쌍이 말을 타고 건너는 강이란다. 그래서 외롭지 않다.

그 강을 건너기만 사내와 여인에게 이별이 없어진단다.

그런데 어찌된일인지 단 한 쌍도 그 강을 건너지 못했단다.

끝도 없는 벌판을 가다보면 지치고 정신이 멀어지고 심한 졸음이 몰려오면서,

사람을 태운 채 말이 혼자 저절로 가게 된다고...

나란이 가던 말이 동과 서로 갈라지면서 

그 둘 사이는 차츰 멀어져 마침내 되돌아 오게 되는 마을 귀마동.


길상이 꿈속에서 만난 노인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마을이다.


우리 부부는  그 강을 잘 건너고 있는 것일까?

20여년을 건너고 있으니 짧지 않은 시간인 듯 싶은데.

그저 서로가 옆에만 있어 주어도 좋았던 때가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같은 음식을 먹고...

그랬다. 그래서 지금도 눈을 감으면 난 늘 그때를 생각한다.

약게 셈을 할 줄 몰랐던 그때가... 그래서 약지 못했던 나를 원망할 때도 있지만(주로 다투었을 때)

그래도 그때가 이쁘다. 세상에서 가장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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