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그때까지 다소 불안기를 보여오던 암소 세 마리가 음매
하고 큰소리를 내질렀다. 그 암소들은 꼬박 24시간 젖을 짜지 않아
젖통이 터질 지경이었던 것이다. 잠시 생각한 끝에 돼지들은
양동이를 가져오게 해서 제법 솜씨 있게 젖을 짰다.
돼지 발굽은 그 일을 하는 데는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약간 거품이 뜬 크림색 진한 우유가 다섯 양동이나 되었고 많은
동물들이 상당한 관심을 갖고 우유통들을 바라보았다.
「저 우유는 다 어떡할 참이야?」누군가가 물었다.
「존즈는 우리 먹이에 가끔 우유를 타주었는데」하고 암탉 하나가
말했다.
「우유에 신경 쓸 거 없소, 동무들!」 나폴레옹이 우유 양동이 앞으
로 나서며 말했다.
「우유 걱정은 말아요. 건초 수확이 더 중요합니다. 스노볼 동무가
여러분을 인도할 거요. 난 좀 이따가 뒤따라가겠소. 자 동무들, 앞으로! 풀밭이 기다리고 있소」
동물들은 건초용 꼴을 베기 위해 풀밭으로 전진했다. 저녁때 그들이 돌아와보니
우유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 동물농장/ 조지 오웰/민음사 p.27 -
이 시점부터가 시작이었다.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고 인간으로부터 착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혁명을 일으켰던 동물농장의 동물들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운것은 이때부터였다. 엘리트 돼지들도 이 순간까지는 분명 일을 했다. 그리고 사라진 우유는 모두가 예상했겠지만 그 똑똑한 돼지들의 소행이다. 만약 이때 동물들이 나서서 우유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좀 더 치열하게 토론했더라면, 우유를 빼돌린 돼지들을 벌했더라면 훗날 동물농장은 그렇게 무너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동물들은 똑똑한 돼지들을 너무 믿었고 또 너무 의지했다. 타고 나기를 영리하게 타고난 돼지들은 그 영리한 머리로 인간들의 문자와 지식도 습득했다. 다른 동물들이 배우는 것은 너무 어렵다며 혀를 내두르며 포기할 때 그들은 열심히 배웠다. 그리고 그 지식으로 철저하게 혈맹으로 맺은 그들의 동지들을 짓밟았다.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그냥 믿고 넘기지 말자. 왜?라는 의문을 꼭 품어보자. 막연히 좋은 게 좋은거야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유도 모른 채 추락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안타깝게도 이런 태도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조직의 목표에 방해되는 인물로 찍히기 쉽상이다. 그래서 급기야 그 조직에서 추방 당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 그런 장면을 몇 번 목격하게 되면 그때는 두렵다. 그래서 아닌것이라 생각하지만 결국 다수에 순응한다. 이것이 바로 조지오웰이 그토록 증오했던 전체주의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라고 무작정 외치는 양들의 외침을 따라 그냥 눈 감고 외면하게 된 것이다.
참으로 어렵다. 나는 원래 순응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2~30대는 더 그러했다. 그래서 직장에서든 어디서든 잘못되었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참 많이 대립했다. 그 상대가 나보다 지위가 높다거나 나이가 많다거나 하는 것을 가리지 않았다. 그 사람이 나보다 많이 배워서 우월한 사람이라 할 지라도 주눅들지 않았다. 간들간들 요령 피우지 않았기에 나는 곧잘 부러졌다. 그래도 나의 선택이었으므로 아프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내가 내 아이에게는 "적당히"라는 말을 한다. 내가 다치는 것은 견딜 수 있었는데 아이가 다치는 것은 두렵다. 그래서 한창 불쑥 곧추세우는 십대 아이를 예의와 배려 등을 운운하며 다독인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인류의 진보란 결국 "이상하다... 뭐지??? 왜??? 정말 그것이 최선인가???"라는 물음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나는 아이를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한다.
학교에서 시험이 치루어질 때마다 나는 마음이 불편하다. 아이의 시험지를 들여다 보지 않으면 편할 일이지만 아이는 내게 곧잘 시험지를 들이민다. "이 문제 좀 봐주세요."
절대로 안 볼거야 하다가 어느 새 나는 그 시험지를 들여다 보고 분노한다. 이런 말도 안되는 문제를 출제한단 말야? 해당 선생님의 인격과 자질을 모두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 시험 문제 한 문제로 인해 그 선생님의 모든 면이 평가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시험이란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의 여부를 가리는 기능 못지 않게 아이들에게 바람직한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아이들을 소고기 등급 매기듯 1등급 2등급.... 분류하기 위한 수단이어서는 안된다라고 생각한다.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문제는 대충 이러하다.
중동지역 국가들에서는 "일부다처제"를 인정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부일처제가 가장 바람직한 결혼제도라고 생각하지만 일부다처제의 기능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동국가에 도움이 되었다라는 식의 지문이 제시된다. 그리고 문제.... 다음중 중동 지역의 일부다처제의 기능을 고르시오.
정답으로 제시된 선택지의 내용. 일부다처제 덕분에 가난한 중동국가의 여성들을 구제해 줄 수 있었다라는 내용...
물론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다른 선택지의 내용들이 말이 안되는 내용이었으므로... 그래서 아이도 답을 맞추었다. 하지만 이건 정답을 맞추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난 바로 아이에게 해당 교과서를 가져오라고 했고.. 위의 내용이 있는 페이지를 펼쳐서 읽었다.
그러면 그렇지 교과서는 일부다처제의 긍정적인 면이 핵심이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 중동지역에서는 이런 생각으로 일부다처제 지지했지만 지금은 여성의 권익 신장과 사회활동 증가 등으로 대부분 일부일처제라는 내용이다.
"사회문화"라는 교과의 내용이다.
내가 교사라면 아이들에게 중동지역 여성들이 왜 독립적일 수 없었는지 어떤 배경 때문이었는지를 가르쳤을것 같다. 그들의 주장을 가르칠것이 아니라...
그런데 이 문제에 반기를 드는 학생은 아무도 없다.
시험이 끝나면 보통 답안 오류 또는 시험문제 오류 등의 정정을 요구하는 시간을 갖기는 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기계적인 측면에서의 오류는 없다. 다만 내지 말았어야 하는 문제일 뿐이다.
기계적인 오류가 없는 문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나 역시 아이에게 선생님에게 의견을 말해라 라고 주장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내가 나설 수도 없다. 아이들 시험 문제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학부모로 낙인 찍히고
그건 내 아이를 향한 또 하나의 화살일 수도 있기에...
또한 교사의 고유(?)한 권한에 대립하는 것이기에.
부끄럽다.
학부모들이여 우리 아이들의 시험 점수만을 보지말고 어떤 문제로 시험을 치루고 그로 인해
우리 아이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게 되는지 눈 여겨 보자.
최근에 불수능을 요구하는 네티즌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도대체 얼마나 더 아이들이 쓸모 없는 공부에 앞도 보지 않고 내달려야 하는가 말이다.
우리 아이들이 더욱 바람직한 세상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무조건 맞히고 보자는 식의 시험이 아닌 시험다운 시험이었는지... 등을 피드백할 수 있는 시험을 치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의 가치관이 모두 바람직한 것은 아니기에.
우리 아이들은 착하게 열심히 살았음에도 착취의 대상이 되었던 동물농장의 동물들이 아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