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들은 길든 집까마귀 모지즈가 퍼뜨리고 다니는 거짓말에 대응하느라 더 힘든 싸움을 벌여야 했다. 존즈 씨가 특별히 아끼는 집까마귀 모지즈는 스파이에다 고자질쟁이였지만 동시에 영리한 얘기꾼이기도 했다. 그는 ⟨슈가캔디 마운틴⟩이라는 신비한 하늘나라가 있다는 걸 자기는 안다, 동물들은 죽으면 모두 그 나라로 간다고 주장하고 다녔다. 그의 말인즉 그 슈가캔디 마운틴은 구름 너머 하늘 어디엔가 있는데 그 나라에서는 일주일 일곱 날이 모두 일요일이고 일 년 내내 클로버가 자라고 각 설탕이며 아마씨 케이크가  산울타리에서 자란다는 것이었다. 떠들고만 다녔지 일은 하지 않는 모지즈를 동물들은 미워했지만 몇몇은 슈가캔디 마운틴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믿었다. 돼지들은 그런 곳이 있을 턱이 없다며 동물들을 설득하느라 땀까지 흘려야 했다. - 동물농장/조지오웰/민음사 p.20 -



영화 "설국열차"가 개봉되어서 화제가 될 무렵 나는 영화가 아닌 그 영화의 원작이라 할 수 있는 만화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제 1권 탈주자, 제 2권 선발대, 제 3권 횡단 이렇게 3편이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다소 거친 그림으로 그려진 이 만화책을 나는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문명의 마지막 보루인 설국열차. 결코 멈추지 않는 설국열차는 영원한 겨울의 광활한 백색 세상을 지구 이편에서 저편 끝까지 횡단한다. 열차 안에서도 끔찍한 계급이 존재한다. 차별도 존재하고...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늘 배고픔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일까 그 기차 안에서조차 종교가 생겨난다. "기계사제단"이라 불리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거룩한 열차를 숭배한다. 생의 근원인 거룩한 열차에게 자비를 구한다. 결국 그들은 열차안에서 최고 권력자가 된다. 신권을 장악한 이가 권력도 장악하는 것이다. 충격이었다. 우린 그럴 수 밖에 없는 존재인가?

좀 더 이성적일 수는 없는가? 너무도 나약한 인간의 의지와 그 나약함을 이용하는 인간의 잔혹함. 그 양면성에 나는 치를 떨었다. 답답했다.


동물농장의 동물들도 "종교" 아니 "신앙"이라는 그 애매함에 점점 의존하기 시작한다. 날이 갈 수록 그들의 삶은 힘들고 배고프기 때문에 "다음에..."라는 뭔가의 존재는 그들에게 오늘을 견디는 힘이었을 것이다. 정말로 존재하는 지 확인된 바 없으나 아니 오히려 그런 세상이 존재해야만이 덜  억울한것이다. 오랜기간 동안 나에게도 종교가 있었다. 그들이 정해 놓은 것이 아닌 다른 세상의 가치는 그닥 의미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치 판단도 그 안에서만 하려고 최선을 다하던 때가 있었다. 유년시절부터 30여년이 넘게 그 가치관은 나를 통제했다. 이상한 낌새가 있었지만 (종종 그들에게 화가 나곤 했었다) 묵묵히 견디었다. 내가 유별난가 보다하고... 그러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왔고... 치열하게 내 자신과 싸웠다.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그리고 결국 단호하게 잘라냈다. 익숙한 모든 생활과 결별했다. 쉽지는 않았다. 익숙함과 끝을 본다는 것이... 때로는 불안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도 괜찮은 것일까?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흘렀다.


가끔씩은 기도란 것을 하고 싶다. 나의 노력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라고 생각되어질 때.

말도 안되는 일을 당한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은 누군가에게 강렬하게 매달리고 싶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전쟁터에 내 몰린 사람들이 그럴것이고, 지독한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그럴것이다. 또한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목도해야 하는 이들이 그럴것이다. 


그래서 나는 믿음을 갖는 것이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않으련다. 비난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해서 살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 그 편이 낫다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그 약함을 이용하는 그들은 몸서리치게 증오한다.

약한 마음을 빌미로 위협하고 강요하고... 그리고 통제하려는 그들과 그 시스템은 증오한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신권은 참으로 잔혹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는 자유를 선택한 순간 풍요로움과 행복을 버려야 했던 것과 반대로 

자유를 버리고 신의 보호 아래 행복을 선택했던 이들에게 그들은 참으로 잔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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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순간, 그때까지 다소 불안기를 보여오던 암소 세 마리가 음매

 하고 큰소리를 내질렀다. 그 암소들은 꼬박 24시간 젖을 짜지 않아 

 젖통이 터질 지경이었던 것이다. 잠시 생각한 끝에 돼지들은 

 양동이를 가져오게 해서 제법 솜씨 있게 젖을 짰다.

 돼지 발굽은 그 일을 하는 데는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약간 거품이 뜬 크림색 진한 우유가 다섯 양동이나 되었고 많은

 동물들이 상당한 관심을 갖고 우유통들을 바라보았다.  

「저 우유는 다 어떡할 참이야?」누군가가 물었다.

「존즈는 우리 먹이에 가끔 우유를 타주었는데」하고 암탉 하나가 

  말했다.

 「우유에 신경 쓸 거 없소, 동무들!」 나폴레옹이 우유 양동이 앞으

 로 나서며 말했다.

 「우유 걱정은 말아요. 건초 수확이 더 중요합니다. 스노볼 동무가 

 여러분을 인도할 거요. 난 좀 이따가 뒤따라가겠소. 자 동무들, 앞으로! 풀밭이 기다리고 있소」

동물들은 건초용 꼴을 베기 위해 풀밭으로 전진했다. 저녁때 그들이 돌아와보니

우유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 동물농장/ 조지 오웰/민음사 p.27 -

 

이 시점부터가 시작이었다.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고 인간으로부터 착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혁명을 일으켰던 동물농장의 동물들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운것은 이때부터였다. 엘리트 돼지들도 이 순간까지는 분명 일을 했다. 그리고 사라진 우유는 모두가 예상했겠지만 그 똑똑한 돼지들의 소행이다. 만약 이때 동물들이 나서서 우유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좀 더 치열하게 토론했더라면, 우유를 빼돌린 돼지들을 벌했더라면 훗날 동물농장은 그렇게 무너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동물들은 똑똑한 돼지들을 너무 믿었고 또 너무 의지했다. 타고 나기를 영리하게 타고난 돼지들은 그 영리한 머리로 인간들의 문자와 지식도 습득했다. 다른 동물들이 배우는 것은 너무 어렵다며 혀를 내두르며 포기할 때 그들은 열심히 배웠다. 그리고 그 지식으로 철저하게 혈맹으로 맺은 그들의 동지들을 짓밟았다.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그냥 믿고 넘기지 말자. 왜?라는 의문을 꼭 품어보자. 막연히 좋은 게 좋은거야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유도 모른 채 추락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안타깝게도 이런 태도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조직의 목표에 방해되는 인물로 찍히기 쉽상이다. 그래서 급기야 그 조직에서 추방 당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 그런 장면을 몇 번 목격하게 되면 그때는 두렵다. 그래서 아닌것이라 생각하지만 결국 다수에 순응한다. 이것이 바로 조지오웰이 그토록 증오했던 전체주의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라고 무작정 외치는 양들의 외침을 따라 그냥 눈 감고 외면하게 된 것이다.

 

참으로 어렵다. 나는 원래 순응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2~30대는 더 그러했다. 그래서 직장에서든 어디서든 잘못되었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참 많이 대립했다. 그 상대가 나보다 지위가 높다거나 나이가 많다거나 하는 것을 가리지 않았다. 그 사람이 나보다 많이 배워서 우월한 사람이라 할 지라도 주눅들지 않았다. 간들간들 요령 피우지 않았기에 나는 곧잘 부러졌다. 그래도 나의 선택이었으므로 아프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내가 내 아이에게는 "적당히"라는 말을 한다. 내가 다치는 것은 견딜 수 있었는데 아이가 다치는 것은 두렵다. 그래서 한창 불쑥 곧추세우는 십대 아이를 예의와 배려 등을 운운하며 다독인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인류의 진보란 결국 "이상하다... 뭐지??? 왜??? 정말 그것이 최선인가???"라는 물음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나는 아이를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한다.

 

학교에서 시험이 치루어질 때마다 나는 마음이 불편하다. 아이의 시험지를 들여다 보지 않으면 편할 일이지만 아이는 내게 곧잘 시험지를 들이민다. "이 문제 좀 봐주세요."

절대로 안 볼거야 하다가 어느 새 나는 그 시험지를 들여다 보고 분노한다. 이런 말도 안되는 문제를 출제한단 말야? 해당 선생님의 인격과 자질을 모두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 시험 문제 한 문제로 인해 그 선생님의 모든 면이 평가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시험이란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의 여부를 가리는 기능 못지 않게 아이들에게 바람직한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아이들을 소고기 등급 매기듯 1등급 2등급.... 분류하기 위한 수단이어서는 안된다라고 생각한다.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문제는 대충 이러하다.

 

중동지역 국가들에서는 "일부다처제"를 인정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부일처제가 가장 바람직한 결혼제도라고 생각하지만 일부다처제의 기능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동국가에 도움이 되었다라는 식의 지문이 제시된다. 그리고 문제.... 다음중 중동 지역의 일부다처제의 기능을 고르시오.

 

정답으로 제시된 선택지의 내용. 일부다처제 덕분에 가난한 중동국가의 여성들을 구제해 줄 수 있었다라는 내용...

 

물론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다른 선택지의 내용들이 말이 안되는 내용이었으므로... 그래서 아이도 답을 맞추었다. 하지만 이건 정답을 맞추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난 바로 아이에게 해당 교과서를 가져오라고 했고.. 위의 내용이 있는 페이지를 펼쳐서 읽었다.

그러면 그렇지 교과서는 일부다처제의 긍정적인 면이 핵심이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 중동지역에서는 이런 생각으로 일부다처제 지지했지만 지금은 여성의 권익 신장과 사회활동 증가 등으로 대부분 일부일처제라는 내용이다.

 

"사회문화"라는 교과의 내용이다.

 

내가 교사라면 아이들에게 중동지역 여성들이 왜 독립적일 수 없었는지 어떤 배경 때문이었는지를 가르쳤을것 같다. 그들의 주장을 가르칠것이 아니라...

 

그런데 이 문제에 반기를 드는 학생은 아무도 없다.

시험이 끝나면 보통 답안 오류 또는 시험문제 오류 등의 정정을 요구하는 시간을 갖기는 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기계적인 측면에서의 오류는 없다. 다만 내지 말았어야 하는 문제일 뿐이다.

기계적인 오류가 없는 문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나 역시 아이에게 선생님에게 의견을 말해라 라고 주장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내가 나설 수도 없다. 아이들 시험 문제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학부모로 낙인 찍히고

그건 내 아이를 향한 또 하나의 화살일 수도 있기에...

또한 교사의 고유(?)한 권한에 대립하는 것이기에.

부끄럽다.

 

학부모들이여 우리 아이들의 시험 점수만을 보지말고 어떤 문제로 시험을 치루고 그로 인해

우리 아이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게 되는지 눈 여겨 보자.

 

최근에 불수능을 요구하는 네티즌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도대체 얼마나 더 아이들이 쓸모 없는 공부에 앞도 보지 않고 내달려야 하는가 말이다.

 

우리 아이들이 더욱 바람직한 세상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무조건 맞히고 보자는 식의 시험이 아닌 시험다운 시험이었는지... 등을 피드백할 수 있는 시험을 치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의 가치관이 모두 바람직한 것은 아니기에.

 

우리 아이들은 착하게 열심히 살았음에도 착취의 대상이 되었던 동물농장의 동물들이 아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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