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음식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약 7년 전, 이 시리즈의 첫 책인

<농장해부도감>을 집필하기 시작한 즈음부터였다. 이때부터 나는 육류 섭취를 중단하고 제철 과일과 채소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근처 그랜드 아미 플라자에 있는 농장가게에서 장을 보기 시작했으며 유기농 식품 그리고 지역생산 식품을 더 많이 구입했다. 이것은 직접 요리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거나 적어도 음식 준비를 거드는 일이 더 많아졌다는 뜻이다. 나는 전자레인지를 없애버리고 값비싼 고급 일체 식칼을 장만했다.


 - 음식해부도감 줄리아 로스먼 글, 그림 / 더숲/  p.6 -



1월과 2월은 내게 무척이나 바쁜 달이다. 학교가 방학을 하기 때문이다. 나의 일도 평소보다 1.5배 정도 더 많아지고 더불어 방학을 맞은 나의 아들도 돌보고 가르쳐야 한다. 게다가 이번 방학엔 남편도 더 많이 챙겨야 한다. 방학 시작과 동시에 나의 시간은 그야말로 로켓을 탄 것처럼 전력으로 달린다. 주말도 쉬지 못하는 날이 많기에 요일의 구분은 물론 오늘이 몇 일인지 아예 감이 오지 않는다. 그저 정말 빠르구나 하는 탄식만 할 뿐이다.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이미 각오하고 있었음에도 놀랍고 당황스럽다. 할 수만 있다면 딱 한 시간만이라도 시간을 잡아두고 싶다. 계획된 일을 해야만 하는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한 시간만이라도 멈추게 하고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간절하다. 하지만 불가능한 소망이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쪼개어 칼바람을 견디며 집밖으로 나가 걷는다. 내 걸음의 빠르기에 맞춰 천천히 스쳐가는 산책로의 풀섶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항상 동일하게 정확하게 흐르는 시간이 분명하겠지만 말이다. 


두꺼운 점퍼와 목도리를 두르고 단단히 추위에 맞설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어제보다는 추위가 누그러진 듯 하다. 하지만 여전히 춥다. 코 끝이 찡하다. 콧대가 많이 높은 것은 아닌데, 얼굴에서 가장 도드라진 부위인 모양이다. 그래서 추위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모양이다. 자꾸만 코를 감싸쥔다. 그런데 이 추위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모양이다. 꽝꽝 얼은 개천가 앙상하고 바싹 마른 나뭇가지에 봄을 알리는 전령이 보였다. 



매서운 추위를 견디고 보송한 속살이 올라왔다. 분명 봄이 올것이다. 오래지 않을것이다.  이 추위의 끝이 멀지 않았다라고 온 힘을 다해 알리는 듯 하다.


너무너무 바쁜 요즘... 하지만 나는 내가 존재함을 증명하려 애쓰고 있다.

내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들과 더불어 게을리 하지 않는 것. 바로 음식만들기.


바쁘다는 핑계로 바깥 음식을 사 먹을 수도 있겠으나 난 악착같이 나와 우리가족의 먹거리를 스스로 만들어 먹고 있다. 다만 장을 볼 시간이 여의치 않아 식재료 구입은  인터넷 마켓을 이용한다.

"음식해부도감"의 저자처럼 직접 장에 나가 식재료를 구입하면 더 좋겠으나 아무래도 그것까지는 너무 무리다. 대신에 깐깐하게 고른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인터넷으로 장을 본다. 

아무리 바빠도 예쁜 접시와 좋은 식기에 음식을 차려낸다. 식사 후에 마시는 커피도 직접 볶고 드립퍼를 이용해 직접 내린다. 그리고 반드시 잔 받침이 있는 커피잔에 비스킷 한 조각과 함께 커피를 마신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만족한다. 소비만 하는 인간이 아닌 생산도 하는 인간이라고.

 


얼마전엔 제주도 구좌 당근을 한 박스 구입했다. 과일 못지 않게 달콤한 당근이다. 오독오독 씹어먹기도 하고 아침엔 양파와 감자를 함께 넣어 따끈한 당근 수프를 끓이기도 한다.  마침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두어시간 정도... 그래서 당근을 다져 넣은 스콘을 구웠다. 욕심 내어 많이 구입했다가 김치냉장고에 보관 중 얼어버린 귤로 귤잼도 만들었다. 정제하지 않은 원당과 레몬즙 그리고 작년에 만들어 보관 중인 오렌지 마아말레이드도 추가해서 만든 잼이다. 하얀 밀크 잼은 스콘과 어울어졌을때 환상적인 맛을 낸다. 


올해의 화두는 "소확행"이란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음식을 만드는 것은 나에겐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물론 노동을 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온전히 나와 내 가족을 위한 노동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내것이 될 수도 없는 것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내가 움직인 댓가로 정확하게 결과가 보이는 노동이다. 마치 수학에서 함수처럼. 수학에서 X값이 결정됨에 따라 Y값이 오직 하나 결정되는 것을 함수라 한다. 나에게 요리는 함수와 같다. 나의 노동은 정확하게 하나의 요리로 결정된다. 


이 노동이 즐겁기 위해 나는 내 나름의 사치도 부린다. 이쁜 상차림을 위한 그릇. 그리고 만족할만한 음식을 기대할 수 있는 주방 기구. 질 좋은 무쇠팬. 값나가는 가방이나 옷, 화장품 대신에 난 이 도구들을 선택했다. 그리고 나는 매일매일 이 도구들을 사용해 생존에 꼭 필요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고 행복해 한다. 쓸모있는 나를 뿌듯해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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