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방문은 열렸고 그리고 닫혀졌다. 방으로 들어간 용이는 월선을    내려다본다. 그 모습을 월선은 눈이 부신 듯 올려다본다.

 "오실 줄 알았십니다."

 월선이 옆으로 다가가 앉는다.

 "산판 일 끝내고 왔다."

 용이는 가만히 속삭이듯 말했다.

 "야 그럴 줄 알았십니다."

 "임자."

 얼굴 가까이 얼굴을 묻는다. 그리고 떤다. 머리칼에서부터 발끝까지   사시나무 떨듯 떨어낸다. 얼마 후 그 경련은 멎었다.

 "임자."

 "야."

 "가만히." 

 이불자락을 걷고 여자를 안아 무릎 위에 올린다. 쪽에서 가느다란 은비녀가 방바닥에 떨어진다.

"내 몸이 찹제?"

"아니요."

"우리 많이 살았다."

"야."

내려다보고 올려다본다. 눈만 살아 있다. 월선의 사지는 마치 새털같이 가볍게, 용이의 옷깃조차 잡을 힘이 없다. 

"니 여한이 없제?"

"야, 없십니다."

"그라믄 됐다. 나도 여한이 없다."

머리를 쓸어주고 주먹만큼 작아진 얼굴에서 턱을 쓸어주고 그리고 조용히 자리에 눕힌다.

 용이 돌아와서 이틀 밤을 지탱한 월선은 정월 초이튿날 새벽에 숨을 거두었다.


- 토지 2부 4권 / 박경리 대하소설 / 마로니에북스 p.243~244 -


월선이가 죽었다. 가련하고 강한 여인, 불행했으나 행복했던 여인. 그가 죽었다. 자신이 평생을 사랑했던 남자 용이를 마침내 마주하고 난 후에야 그녀의 질곡진 삶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월선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위의 대목에서 헉 하고 숨이 막혔고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가슴속 깊은 곳에 맺혀있는 응어리를 토해내는 듯한 신음소리도 토해냈다. 어깨가 들썩였다.

월선이가 죽었다. 끝내 그렇게 죽었다. 그런데 그들은 말한다. "우리 많이 살았다.", "여한이 없제?".


마지막 호흡을 몰아 쉰 순간 월선은 평온했을 것이다. "이제 끝이다. 다 했다.".

삶의 무거운 짐을 벗고 훨훨 가벼웠으리라,


나는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처음 읽는 이에게 일러두고 싶다.

이 책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야 한다고.

박경리 선생님이 자신의 평생을 쏟아부어 같이 동고동락했던 인물들이기에

우리도 그들과 함께 자라 청춘이 되고 늙음을 마주해야 한다고.

100년 전 이땅에 살았던 그들의 삶 속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함께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월선이 죽고 난 후 이제 서희와 그 일행은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세대에게 고향이라는 낱말은 어쩌면 이질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겠다.

전국 곳곳 잘 뻗은 교통망은 갈 수 없는 서러움, 아쉬움, 갈망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린 100년 전의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

나와 내 가족이 머물러 살았던 땅.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정성껏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들릴 것이다. 그 처절함이. 갈 수 없는 이북에 고향을 둔 이들의 한 또한 이해하게 되리라.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그 땅을 다시 밟아야 한다라는 부채를 짊어져야만 한다. 갈 수 없는 곳이 되어서는 안된다. 





* 1월, 2월은 나에게 여유가 없는 달이다. 그래서 책도 읽는 둥 마는 둥.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꼭 아프게 된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그랬다. 그래서 요즘은 좀 게으르게 살고 있다. 아주 쬐금.... 게으르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음식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약 7년 전, 이 시리즈의 첫 책인

<농장해부도감>을 집필하기 시작한 즈음부터였다. 이때부터 나는 육류 섭취를 중단하고 제철 과일과 채소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근처 그랜드 아미 플라자에 있는 농장가게에서 장을 보기 시작했으며 유기농 식품 그리고 지역생산 식품을 더 많이 구입했다. 이것은 직접 요리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거나 적어도 음식 준비를 거드는 일이 더 많아졌다는 뜻이다. 나는 전자레인지를 없애버리고 값비싼 고급 일체 식칼을 장만했다.


 - 음식해부도감 줄리아 로스먼 글, 그림 / 더숲/  p.6 -



1월과 2월은 내게 무척이나 바쁜 달이다. 학교가 방학을 하기 때문이다. 나의 일도 평소보다 1.5배 정도 더 많아지고 더불어 방학을 맞은 나의 아들도 돌보고 가르쳐야 한다. 게다가 이번 방학엔 남편도 더 많이 챙겨야 한다. 방학 시작과 동시에 나의 시간은 그야말로 로켓을 탄 것처럼 전력으로 달린다. 주말도 쉬지 못하는 날이 많기에 요일의 구분은 물론 오늘이 몇 일인지 아예 감이 오지 않는다. 그저 정말 빠르구나 하는 탄식만 할 뿐이다.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이미 각오하고 있었음에도 놀랍고 당황스럽다. 할 수만 있다면 딱 한 시간만이라도 시간을 잡아두고 싶다. 계획된 일을 해야만 하는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한 시간만이라도 멈추게 하고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간절하다. 하지만 불가능한 소망이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쪼개어 칼바람을 견디며 집밖으로 나가 걷는다. 내 걸음의 빠르기에 맞춰 천천히 스쳐가는 산책로의 풀섶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항상 동일하게 정확하게 흐르는 시간이 분명하겠지만 말이다. 


두꺼운 점퍼와 목도리를 두르고 단단히 추위에 맞설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어제보다는 추위가 누그러진 듯 하다. 하지만 여전히 춥다. 코 끝이 찡하다. 콧대가 많이 높은 것은 아닌데, 얼굴에서 가장 도드라진 부위인 모양이다. 그래서 추위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모양이다. 자꾸만 코를 감싸쥔다. 그런데 이 추위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모양이다. 꽝꽝 얼은 개천가 앙상하고 바싹 마른 나뭇가지에 봄을 알리는 전령이 보였다. 



매서운 추위를 견디고 보송한 속살이 올라왔다. 분명 봄이 올것이다. 오래지 않을것이다.  이 추위의 끝이 멀지 않았다라고 온 힘을 다해 알리는 듯 하다.


너무너무 바쁜 요즘... 하지만 나는 내가 존재함을 증명하려 애쓰고 있다.

내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들과 더불어 게을리 하지 않는 것. 바로 음식만들기.


바쁘다는 핑계로 바깥 음식을 사 먹을 수도 있겠으나 난 악착같이 나와 우리가족의 먹거리를 스스로 만들어 먹고 있다. 다만 장을 볼 시간이 여의치 않아 식재료 구입은  인터넷 마켓을 이용한다.

"음식해부도감"의 저자처럼 직접 장에 나가 식재료를 구입하면 더 좋겠으나 아무래도 그것까지는 너무 무리다. 대신에 깐깐하게 고른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인터넷으로 장을 본다. 

아무리 바빠도 예쁜 접시와 좋은 식기에 음식을 차려낸다. 식사 후에 마시는 커피도 직접 볶고 드립퍼를 이용해 직접 내린다. 그리고 반드시 잔 받침이 있는 커피잔에 비스킷 한 조각과 함께 커피를 마신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만족한다. 소비만 하는 인간이 아닌 생산도 하는 인간이라고.

 


얼마전엔 제주도 구좌 당근을 한 박스 구입했다. 과일 못지 않게 달콤한 당근이다. 오독오독 씹어먹기도 하고 아침엔 양파와 감자를 함께 넣어 따끈한 당근 수프를 끓이기도 한다.  마침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두어시간 정도... 그래서 당근을 다져 넣은 스콘을 구웠다. 욕심 내어 많이 구입했다가 김치냉장고에 보관 중 얼어버린 귤로 귤잼도 만들었다. 정제하지 않은 원당과 레몬즙 그리고 작년에 만들어 보관 중인 오렌지 마아말레이드도 추가해서 만든 잼이다. 하얀 밀크 잼은 스콘과 어울어졌을때 환상적인 맛을 낸다. 


올해의 화두는 "소확행"이란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음식을 만드는 것은 나에겐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물론 노동을 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온전히 나와 내 가족을 위한 노동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내것이 될 수도 없는 것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내가 움직인 댓가로 정확하게 결과가 보이는 노동이다. 마치 수학에서 함수처럼. 수학에서 X값이 결정됨에 따라 Y값이 오직 하나 결정되는 것을 함수라 한다. 나에게 요리는 함수와 같다. 나의 노동은 정확하게 하나의 요리로 결정된다. 


이 노동이 즐겁기 위해 나는 내 나름의 사치도 부린다. 이쁜 상차림을 위한 그릇. 그리고 만족할만한 음식을 기대할 수 있는 주방 기구. 질 좋은 무쇠팬. 값나가는 가방이나 옷, 화장품 대신에 난 이 도구들을 선택했다. 그리고 나는 매일매일 이 도구들을 사용해 생존에 꼭 필요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고 행복해 한다. 쓸모있는 나를 뿌듯해 하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의 입과 손은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말하고 서명하는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그의 유일한 관심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재빨리 알아내어 다시 못살게 굴기 전에 얼른 털어 놓는 것이었다. 그는 고위 당원의 암살, 불온문서 배포, 공금 횡령, 군사 기밀의 암매, 각종 파업 행위 등에 대해서 자백했고, 오래전인 1968년 이스트아시아 정부의 돈을 받고 간첩 활동을 했다고도 털어놓았다. 그리고 자신은 독실한 신자이며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데다 성도착자라고 거짓 자백을 했다. 

그는 또 아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자신은 물론 심문자들도 뻔히 알고 있는데도 아내를 죽였다고 거짓 자백을 했다. (중략) 있는 것 없는 것 다 자백하고 모든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끌어들이는 것이 상책이었다.

 - 1984/ 조지 오웰 / 민음사/ P.338 -



영화 1987을 보기 위해 극장에 가던 날 오전 소설 1984 읽기를 끝냈다. 우연이었다. 많은 생각이 곳곳에 머물러 있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 그러던 차에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었다. 슬픔이 아니었다. 모두가 느끼는 고마움 때문만도 아니었다.

소설 1984를 읽은 독자라면 알 것이다. 그 이야기의 끝이 얼마나 끔찍한 지. 정녕 인간에게 희망이란 없더란 말인가. 윈스턴이 그토록 희망했던 무산계급은 소설이 끝나도록 끝내 봉기하지 않았다. 윈스턴 역시 끝내 파멸의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1987은 그렇지 않았다. 

 

1987의 도화선이 되었던 "박종철 고문 치사". 누구나 안다. 고문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행위이고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그러나 어디까지나 대부분의 우린 들어서 아는 것이다. 그걸 직접 경험해봐서 아는 것이 아니라. 소설 1984에서 윈스턴은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 그 과정이 너무도 적나라해서 책을 읽는 내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읽는 것조차 건너뛰고 싶으리만큼. 소설은 고문이 한 인간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자세하게 묘사한다. 1988년 올림픽을 앞둔 대한민국.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될 이 땅에서 고문은 어찌보면 일상이었다. 모두가 아닌 비밀. 해서는 안되는 만행이었지만 그 명령을 내리는 권력에게 대항할 수 없었다. 영화 속 대사처럼 그저 "받들겠습니다."라고 할 뿐.


기억을 다시 정리하거나 기록된 자료를 허위로 변경했다면, 그 다음에는 그렇게 했다는 사실을 잊어야 한다. p.297


"과거를 지배하는 데 대한 당의 슬로건이 있네. 그걸 한번 외워보게."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윈스턴은 순순히 외웠다.  P.345 


소설 1984의 무대인 오세아니아의 정치 통제 기구인 당은 끊임없이 과거를 수정한다. 할 수 있는 한 모든 과거를 그들에게 맞게 고친다. 그리고 고친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진실따윈 중요하지 않다. 진실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이 진실이다. 당이 말하는 것이 진실이다. 그래서 당을 배신한 사상범도 그들의 조작에 의해 너무도 쉽게 만들어진다. 그들이 지목하는 순간 모든 것은 준비되어진 퍼즐 맞추듯이 딱 들어맞는다. 증거조차도.... 아니라고 버티어보지만 소용없다. 지독한 고문은 모두 스스로 한 일이라고 자백하게 만든다. 끌어들일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끌어들이게 만든다.


마치 영화 1987의 남영동에서 간첩단을 만들었던것처럼.


권력은 타인을 괴롭힘으로써 행사할 수가 있지. 복종으로는 충분하지 않네. 괴롭히지 않고, 어떻게 권력자의 의사에 복종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있겠는가? 권력은 고통과 모욕을 주는 가운데 존재하는 걸세. P.373


과두 체제의 본질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부자 세습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 남겨놓은 세계관이나 생활양식 등을 산 사람이 고수하는 데 있다.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후계자를 지명할 수 있는 한 지배계급이다. 당은 그들의 혈통이 아니라 당 자체를 영속시키는 데 관심이 있다. 계층적 구조를 언제나 동일하게 유지 하는 한 누가 권력을 장악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P.292


누구든 권력을 장악하면 그것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 법이지. 권력은 수단이 아닐세. 목적 그 자체이네. p.368


독재 정권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고 뒤 이어 들어선 전두환 정권. 그들은 어떤 의미에선 한 몸이었다.  

또한 1987년 발표한 "호헌"은 그들의 또 다른 후계자를 내세우려는 권력의 야심이었다.

남영동의 권력 또한 그러했다.


'이 분 증오'가 끔찍한 것은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저절로 거기에 휘말려들기 때문에 끔찍한 것이다. 일단 휘말려들면 삼십 초도 안 되어 어떤 억제도 소용없게 된다. 공포와 복수심에의 무서운 도취, 큼직한 쇠망치로 때리고, 고문하고, 얼굴을 깨부수어 죽이고 싶은 욕망이 전류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흘러 들어가서 뜻하지 않은 사람조차 오만상을 찌푸린 채 비명을 지르는 광적인 상태에 빠져버린다. p26.


전쟁 행위의 본질은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노동력의 산물을 파괴하는 것이다. 대중을 지나칠 정도로 편안하게 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그들을 지혜롭게 하는 데 사용되는 물품들을 박살내거나 하늘로 날려버리거나 바다 속 깊이 빠뜨리는 것이 전쟁이다.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가 실제로 파괴되지 않는다고 해도 무기 공장은 소비 물자 생산에 사용될 노동력을 소모시키는 역할을 한다. (중략) 또 전쟁을 하고 있다거나 전쟁이 위험하다는 의식을 심어줌으로써 모든 권력을 소수 특권계급에게 이양하는 것이 생존을 위해 당연하고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분위기이다. p.268~269



1984의 무대인 오세아니아는 늘 전쟁중이다. 그리고 사실은 존재 했었는지 조차도 불분명한 반역자 골드스타인은 온 국민의 증오의 대상이다. 당원들 모두는 철저하게 감시 당한다. 심지어 자신들의 자식들에게까지 감시를 당한다. 여차하면 자식들의 신고 때문에 끌려가기도. 늘 전쟁중이고 반역자 집단의 침투에 대비하고자 당원 모두는 그런 감시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골드스타인을 처철하게 증오한다. 온 맘과 온 힘을 다하여. 때문에 반역자들은 모두 죽여야 한다.


내 어린 시절. 난 "간첩신고는 113"이라는 포스터를 늘 가까이 접했다. 간첩은 이렇게 생겼다라는 교육은 너무도 당연한 것. 간첩을 잡으면 큰 돈을 포상금으로 받는다고 했다. 부자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꼭 간첩을 잡아봤으면 하는 꿈도 꾸었다. 그 시절 내가 그린 반공 포스터에 등장하는 북한 사람들은 모두 뿔 달린 사람. 아니면 만화 "똘이장군"에 나오는 못된 돼지들로만 생각했다.

길가다 애국가가 나오면 멈춰서서 예를 갖추는 것이 당연했고, 매일 아침마다 교문에 들어설때는 선도부장 앞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또박또박 외워야 했으며, 교실마다 태극기 옆에 걸린 대통령 사진이 당연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나의 부모님은 훨씬 더 했다. 6.25 전쟁을 몸소 겪으셨던 분들이다. 피난 길에 낙동강이 핏물이 된 것을 직접 목격하셨던 분들. 때문에 권력의 엄한 목소리는 실로 무서운 소리였던 것이다.  


오브라이언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은 자체의 목적을 위해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나약하고 비겁한 동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를 수호할 수도 없거니와 진리와 접할 줄도 모른다. 당이 권력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 자체가 자기보다 강한 타인에 의해 통치되거나 체계적으로 기만을 당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유와 행복 중 어느 한편을 선택해야 하는데, 대부분 행복을 더 선호한다. 당은 약자의 영원한 수호자이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며, 선을 구현하기 위해 악을 행하는 헌신적인 집단이다. p.366~367


우리도 그랬다. 자유가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냐 하던 때가 있었다. 밥 먹고 살면 되었지.

하지 말라는거 하지 말고 살아라. 시키는 대로 살면 된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소위 말하는 산업화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국가가 알아서 우리의 안녕을 지켜줄 것이니 국가가 시키는 대로만 하고 살면 된다. 


그러나 한순간의 일이긴 해도, 수백명의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굉장한 힘을 발휘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좀 더 중대한 일에 대해서는 그 같은 함성을 지르지 않는 걸까? p.100


윈스턴. 우리는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삶을 지배하고 있네. 자네는 우리가 하는 일에 분노해서 우리에게 반항하는 인간성이라 불리는 어떤 것을 상상하고 있지만, 우리는 인간성 자체를 창조해 낸단 말일세. 인간이란 무한한 신축성이 있는 존재이네. 자네는 노동자나 노예들이 봉기하여 우리를 전복시킬 수도 있다는 옛날식 생각을 하고 있을 걸세. 그러나 그런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게. 그들은 짐승처럼 무력하네. 인간성은 곧 당일세. 그 외의 것은 아무것도 아니네. p.377


1984에서 윈스턴은 무산계급만이 희망이라 했다. 내부당원도 외부 당원도 아닌 당이 노예취급 하는 무산계급. 그들이 일어선다면 희망이 있을거라 믿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윈스턴은 끝내 자신의 모든 죄를 고백했고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공범자로 만들었다. 당이 원하는 것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침내 총살당했다. 인간의 모든 가치를 상실한 채. 하지만 1987의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끝내 일어났다. 권력에게 무지렁이 취급 당하던 우리가 들고 일어선 것이다. 정말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우린 끝나지 않았던 거야. 그리고 우린 2016년 또 다시 촛불을 들고 일어 선 것이다. 1987의 난 중학교 3학년이었기에 구경꾼이었지만 2016년의 난 내  아이와 함께 촛불을 들고 외쳤다. 국가란 무엇인지, 국가란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난 분명히 알고 있다. 2016년 우리가 촛불을 들고 일어설 수 있었던 까닭은 우리에게 1987의 교훈이 있었기 때문이란 것을. 


한 밤의 꿈은 아니리 / 오랜 고통 다한 후에 /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빛나는 눈물들 / 한 줄기 강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 /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짧은 추억도 / 아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소설 1984에서는 이루지 못한 꿈을 1987의 대한민국에서는 이루었다. 그리고 우린 모두 빚을 진 사람들이다. 때문에 그들의 유산을 잘 지켜야 한다. 우리의 아이들을 올바르게 교육시키고

늘 판단하고 생각해야 한다. 늘 긴장해야 한다. 권력은 또 어디에선가 뿌리 내리려 할 것이기 때문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닐라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넌 무엇에든지 애정을 너무 많이 쏟는구나, 앤. 앞으로 살면서 실망할 일이 많을까 봐 걱정이다."

"아, 마릴라 아주머니, 앞일을 생각하는 건 즐거운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루어질 수 없을지는 몰라도, 미리 생각해 보는 건 자유거든요. 린드 아주머니는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런 실망도 하지 않으니 다행이지'.라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 빨간 머리 앤 / 루시 모드 몽고메리/시공주니어 p.131 -


난, 열심히 산다. 어떤 일이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 왜냐면 그거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물려 받는 다는 것은 애시당초 생각해 본 일이 없고 그렇다고 운이라는 것에 기대어 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순간 그 운이라는 것이 내 편이었던 기억은 별로없다. 그래서 대충대충 얼버무리기 보다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한다. 그것만이 내가 해볼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으므로. 그러다보니 막연한 직관에 의존하기 보다는 부족하더라도 경험에 근거한 나름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자 애를 쓴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다 보면 당연히 그 대상에게 애정을 품게 마련이다. 정성이 들어갔으므로. 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아님 추상적인 것이든.

그래서 나의 애씀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된다.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좋은 결과가 있을거야. 이렇게 아껴 주었는데 잘 자랄거야. 이렇게 사랑해주었는데 그 사람도 같은 마음일거야.


그러나


그 기대는 무참히 짓밟혔다. 애쓴만큼 결실을 가져온 것도 아니었고, 정성껏 키웠다고 잘 자라주는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화분의 꽃까지도. 내가 좋아한만큼 상대도 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결국 기대는 실망으로 좌절로 이어지곤 했다.

지금도 젊은 날 나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의기소침해진 채 캄캄한 골목길을 홀로 걷던 그날의 내가  눈에 선하다.

도무지 헤어날 방법을 모르겠는데 하늘의 별은 어찌나 빤짝거리던지.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별빛이 야속해 길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끼던 그 날의 내가 눈 감으면 너무도 아프게 밟힌다. 그래도 그때는 다시 시작했다. 방법이 있을거야. 지금 온 길이 완전히 잘못 된 길은 아니었을거야. 다시 해보자. 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왜냐면 다른 대안이 없었기때문에.

그래서 누군가의 실패를 보면 난 너무 아프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야"라는 상투적인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말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나이가 들면서 목표한 일을 위한 노력에 대한 배신보다 더 아픈것도 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바로 사람에 대한 기대가 무너진다는 것.

누군가를 애정한다라는 행위는 그에 따른 기대도 하기 마련이다.

내가 좋은 마음으로 대해주었으니 상대도 그렇지 않을까?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 사람에 대한 기대는 물거품과도 같아서 너무도 쉽게 무너지곤 했다.


그래서 '나는 기대하지 않을거야'하고 내 자신을 위한 보호벽 쌓기를 열심히 한다.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기. 

사랑을 주고 정성을 다 하는 행위는 또 다른 나의 만족을 위한 것이다. 

그러니 그걸로 되었고 더 이상은 기대하지 말자. 실망하게 되면 너무 힘드니까. 나는 내 할 일만 하면 그만이야. 하고 나를 훈련시켰다. 


어느새 기대하지 않기는 내 생활속에 깊숙히 자리했다.

정말 기대하지 않으니 그닥 실망할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오늘 앤의 말을 들으니 정말 기대하지 않는 것이 실망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일까 하고 고민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무 해의 체험 속에서, 이 가운데 어떤 것은 만족스러웠지만 어떤 것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 쓸모 없고 거칠기만 하던 산골짝의 땅뙈기를 개간해 기름진 밭으로 가꾸어 풍성하게 거두었다. 좋은 채소, 과일, 꽃이 다 거기서 났다. 

둘, 집짐승이나 집짐승의 똥오줌, 화학 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도 농사일을 만족스럽게 해냈다.

셋, 몸을 누이고 쉴 집을 손수 지었고,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고 살았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을 만큼의 잉여 농산물도 있었다. 우리가 쓴 것들 가운데 4분의 3은 우리가 스스로 땀 흘려서 얻은 열매들이었다. 이처럼 우리는 노동 시장으로부터 독립해 갔고, 생필품도 거의 시장에 의존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우리는 불황이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그리하여 미국 경제가 점점 해체되어 가는 가운데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경제 단위였다.

넷, 작은 사업을 시작하여 임금이 나올 만큼 제법 훌륭하게 꾸렸다. 

다섯, 스무 해 동안 전혀 의사를 만나거나 찾아가지 않았을 만큼 건강을 지켰다. 

여섯, 도시의 삶이 요구하는 복잡함 대신에 단순한 생활 양식이 자리잡았다.

일곱, 해마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시간을 여섯 달로 줄이고 나머지 여섯 달은 여가 시간으로 정했다. 여가는 연구, 여행, 글쓰기, 대화, 가르치기 들로 보냈다.

여덟, 우리 집은 늘 열려 있어서 누구나 찾아와 함께 먹고 잘 수 있었다. 사람들은 며칠 동안 묵기도 했고, 몇 주 또는 그보다 더 오래 머물기도 했다.


- 조화로운 삶/헬렌 니어링, 스콧 니어링 씀/류시화 옮김/ 보리출판사 p.7~8-



최근 디스토피아를 다룬 책들을 읽었다. 틈이 날때마다...

그리고, 또 무척이나 추운 나날이었다. 현실은 춥고, 책속의 세상은

우울하고 절망적이다. 뭔가가 필요했다. 메말라가는 내 감정을 적셔줄 이야기가... 그때 몇달 전 구입하고 책꽂이에  꽂아만 두었던 "빨간 머리 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나에게 이 책이 비타민이 되어 주겠구나 싶어서 꺼내 들었다.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설레는 마음이 가득했다.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과 얼굴 맞대고 두런댈 수 있을 것 같아 마냥 기뻤다. 아니나다를까. 기분 좋은 느낌의 딱딱한 겉표지를 넘기면 빨간머리 앤의 모습이 보인다. 기차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리고 그 페이지를 넘기면 앤이 사는 마을의 지도가 나온다. 그 지도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새 나의 마음엔 행복이 가득해진다.

"진지한 세상에 햇빛이란 지나치게 현란하고 무책임하다"라고 생각하는 마릴라 커스버트의 고지식함 조차도 정겹게 느껴졌다.

항상 새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익숙하기 때문에 편안하고 행복하기도 하다.

책도 그렇다. "빨간 머리 앤"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기때문에 그래서 새로울 것이 없는 데도 이 책의 책장을 넘긴 다는 행위 자체가 행복하다. 예상되는 전개와 결말...

내 뜻대로, 내 예상대로 되는 일이 그닥 많지 않은 현실이기에 익숙함을 배신하지 않는 잘 알고 있는 책의 이야기가 위로가 되기도 하고 희망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또 한 권의 책이 생각났다. 위에서 인용한 책이 바로 그 책이다.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와 더불어 내 삶의 로망이 된 니어링 부부가 스무해 동안 버먼트 숲속에서 살았던 기록을 담은 책이다. 노동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현대인의 삶. 인간의 존재의미가 생산물을 소비하는 소비의 주체, 그리고 그 생산물을 생산하는 생산의 주체, 그리고 그 생산물을 구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동을 해야 하는 경제라는 시스템의 주체로서만 인식되어지는 현대인이다. 이런 시스템을 거부할 수는 없을까? 그때 롤 모델이 되어준 이들이다.

물론 나는 아직은 그들과 같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나로 살거야. 라는 꿈을 늘 꾼다. 




앤이 사는 마을이란다. 앤이 살게 될 "초록 지붕 집"도 보인다. 구불구불한 길과 전나무와 밭...

지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 마을의 풍광이 그려진다. 

지도는 "빨간 머리 앤/시공주니어 출판"의 한 페이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